아래 본문에서 주께서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고 했는데 오늘로 치면 예배를 기뻐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으로 뭔가 이상한 듯하지만 그러나 뒤에 이어지는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에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으로..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죄악들을 품고 벗하며 반복하는 가운데 드리는 제사들, 그러한 죄악들 가운데에서의 예배들, 기도들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이고, 그러한 경우와 상황들, 그러한 심령과 인생들은 그 어떤 제사들이나 예배들, 기도와 작정들, 헌신과 서원들 등보다도 가장 먼저 자복하고 돌이키며 말씀의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가장 우선이라는 것이고,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래의 본문은 그 당시에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이라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게다가 다윗과 같이 믿음의 대선배이고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혜와 응답들, 승리와 복들을 생생하고 풍성하게 누린 자들에 있어서는 실상 있을 수 없어 보이는 죄악을 범한 후에 남겨진 것으로 참으로 당연하고 마땅할 수밖에 없는 고백과 증거와 자복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좀 더 본질적, 근원적으로 따지고 보면 당시의 제사라는 것부터도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에 있어서의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과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이라 할 수 있는 희생 제물, 피 제사 등으로 인해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자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며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권능으로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하나하나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가장 대표적인 역사와 영역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것이고, 사실 그 모든 순서와 절차와 방법들 등에 있어서 하나하나마다 말씀대로 하는 것이 전적으로, 마치 생명 같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으며, 무엇보다 그를 위해 앞에 세우신 제사장들 부터해서 어떤 식으로든 함께 참예하는 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이 말씀대로의 신앙이 됨이 모든 중심과 관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실상 오늘날의 예배에 있어서도 본질적으로는 그와 조금도 다를 수 없는 것이며, 무엇보다 그 주요 순서들인 설교, 기도, 찬송, 봉헌, 교제, 헌신 등에 있어서 단 한 부분도 빠짐없이 말씀 그대로이거나 말씀과 완전히 직결된 것이고 진정 그래야 예배가 예배로서의 의미와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일 수가 없는 것이고, 특히 말씀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충만한 예배일 수 있는 것이며, 게다가 주님께서 강조하신 영과 진리의 예배일 수가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 그러한 예배 때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의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에서 수시로 올려 드리는 기도라는 것부터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으로, 말씀과 함께 보이시고 약속하시며 역사해 오신 일들에 있어 결코 자신의 정욕이나 기복이 아닌, 또한 세속이나 인간적인 목적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 다름 아닌 말씀대로 간구하거나 말씀대로 행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그와 함께 말씀 그대로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내시고 성취되게 하시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며..
실상 그와 같은 제사나 예배들, 기도들, 작정들, 헌신들 등에 있어 주재자이시고 응답하시며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곧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실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단 한 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렇듯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 아니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받으시며 역사하시고 화답하시는 제사와 예배와 기도들 등에 있어서, 더 나아가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믿음, 마치 산 제사, 산 제물과 같은 삶들에 있어서 가장 먼저는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들, 약속과 계시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됨이 모든 우선과 전제와 근본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더 나아가 이 험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까지, 또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 하는 날까지 살아가면서 그것이 끝일 수는 없는 것으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마다 누구든지, 진정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 있어서는 그 무엇보다 먼저 마치 발을 씻듯 자복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되는 것이며, 동시에 주야로 더욱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특히 제사와 예배와 기도와 작정들 등에 있어서야 말로 반드시 그와 같은 선상에서 전적으로 진행되고 온전히 참예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참으로 그와 함께 가면 갈수록 더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케 되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온갖 은혜와 은사와 응답과 열납들, 복과 승리와 영광과 부흥들 등이 더욱 생생하고 강렬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편51:16~17)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7월 21일(금)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