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인구 7% 인터넷 안돼… “5G 전면 확장” 재선 시동 건 바이든
1일(현지 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라우든 카운티의 초고속 인터넷망 확장 설치 현장. 본격적인 재선 캠페인에 시동을 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52조 원을 투입하는 ‘초고속 인터넷 전국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라우든=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50㎞가량 떨어진 버지니아주 라우든 카운티. 아마존과 구글 등 빅테크의 데이터센터가 몰려 있어 ‘동부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곳에는 최근 광(光)섬유 초고속 인터넷 매설 공사가 한창이다. 라우든 카운티는 미국에서 가구 소득이 가장 높은 곳이지만 여전히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지역이 절반 이상에 이른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카운티 내 모든 가정에 초고속 인터넷을 연결하기 위한 공사에 나선 것이다.》
라우든 카운티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발표한 ‘2030년 초고속 인터넷 전국화’ 프로젝트의 핵심 지역으로 꼽힌다. 빅테크의 100여 개 데이터센터가 몰려 있는 만큼 이 지역을 중심으로 인근 농촌 지역에 5G 등 초고속 인터넷망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돈 그레이브스 상무부 부장관도 지난달 29일 라우든 카운티를 찾아 “초고속 인터넷은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다”라며 “실리콘밸리나 워싱턴뿐 아니라 2030년까지 미국의 모든 기업과 가정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약 400억 달러(약 52조 원)의 자금이 투입되는 바이든 대통령의 초고속 인터넷 전국화 프로젝트는 ‘인베스트 인 아메리카(invest in America·미국에 투자)’ 구상의 핵심 사업이다. 취임 첫해인 2021년 1조2000억 달러(약 1423조 원) 규모의 인프라법, 지난해 3690억 달러(약 493조 원) 규모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2800억 달러(약 366조 원) 규모의 반도체과학법에 이어 또다시 대규모 인프라·기술 투자에 나선 것이다.
내년 11월 열릴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바이든 대통령은 이 같은 경제정책을 담은 ‘바이드노믹스(Bidenomics)’를 재선 캠페인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이드노믹스를 통해 미국인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가 나오느냐가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여부를 가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非도시 지역 유권자 겨냥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백악관에서 초고속 인터넷 전국화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미국의 모든 가정과 농장에 전기를 공급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는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캠페인을 본격화하기 위한 ‘인베스트 인 아메리카’ 투어의 첫 행사였다. 자신의 ‘인베스트 인 아메리카’ 정책이 대공황 시절 미국 낙후지역에 전기를 공급했던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뉴딜 정책’과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
바이든 대통령이 초고속 인터넷 전국화를 재선 캠페인의 첫 정책으로 내놓은 것은 민주당 지지세가 약한 비(非)도시 지역을 겨냥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백악관에 따르면 현재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미국인은 전체 인구의 7%가량이다.
펜데믹 이후 재택근무나 화상수업 등이 크게 늘어나면서 초고속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는 지역에 사는 이들은 취업이나 학업에 불이익이 생기는 등 ‘디지털 디바이드’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전역에서 약 2400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에게 초고속 인터넷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며 “자녀들이 숙제를 할 수 있도록 맥도널드에 함께 앉아 있어야 하는 부모들을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초고속 인터넷 전국화 프로젝트의 최대 수혜 지역은 내년 대선에서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남부 주(州)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하버드대 조사에 따르면 남부 주는 전체 가구 중 29%가 아직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서부(24%), 북동부(15%) 지역에 비해 높은 수치다. 실제로 조지아와 노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등 이른바 ‘선벨트’ 지역과 대표적인 대선 격전지인 미시간주 등 쇠락한 공업지역인 ‘러스트벨트’ 지역이 초고속 인터넷망 확대를 위한 연방정부 보조금이 가장 많이 배정되는 주로 꼽혔다.
재선 전략 ‘바이드노믹스’
바이든 대통령은 초고속 인터넷 전국화 프로젝트 발표와 함께 자신의 경제정책을 ‘바이드노믹스’로 규정하며 이 표현을 재선 캠페인의 전면에 내세웠다.
바이든 대통령은 바이드노믹스의 세 가지 키워드로 투자와 교육, 경쟁을 꼽았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 분야의 미국 내 제조업 기반을 확대하는 투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지원을 통한 중산층 확대, 빅테크와 정유사, 제약업체 등에 대한 압박을 통해 경쟁을 촉진하고 체감 물가를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시카고 연설에서 “지난 40년간 ‘낙수효과(trickle-down)’ 정책은 부자들을 제외한 모두의 아메리칸 드림을 제한했다”며 “바이드노믹스는 마침내 경제정책을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에 대응해 감세와 작은 정부,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을 살리면 저소득층에 혜택이 돌아간다는 ‘레이거노믹스’를 대체하겠다는 취지다.
바이드노믹스를 강조하고 나선 배경에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재선 도전 과정에서 경제 성과 알리기에 실패해 고전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의원들에게 “버락은 너무 겸손했고 우리는 대가를 치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근 연설에서 “바이드노믹스는 효과가 있다”며 “우리는 2년 만에 모든 미국 대통령이 첫 번째 임기 때 창출한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냈다”고 했다. 이어 “바이드노믹스 덕분에 4900억 달러의 투자가 미국으로 오고 있다. 내 전임자 시절 미국 제조업은 2%밖에 성장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2년 만에 100% 성장했다”고 말했다.
고물가에 유권자 반응은 ‘글세’
바이드노믹스에 대한 지지율은 여전히 낮은 상황이다. AP통신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 34%만이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지지한다고 답해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국정지지율(41%)보다 낮았다. 워싱턴포스트(WP)의 5월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4%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보다 ‘경제정책을 잘했다’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IRA와 반도체법 등을 통해 한국 등 동맹국의 우려에도 해외 첨단 산업을 대규모로 미국에 유치하고, 50년 만에 최저 실업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바이드노믹스가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가 상승으로 실질소득이 오히려 떨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산(産) 우선 정책인 ‘바이 아메리칸’ 강화로 인프라 건설 계획 등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인력난과 높은 임금에 대한 우려도 여전한 상황이다.
애나 웡 블룸버그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WP에 “바이드노믹스는 중요한 장기적인 과제가 있다”며 “생산 능력이 한계치에 이른 상황에서 재정 지출을 늘리면서도 상승한 물가를 안정시키고, 동시에 경기 침체를 피할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