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워터테크, 충주 장미산성 물탱크 발견
성곽 안에 계획형 저류시설 구축한 목조집수지
대형 댐 없이 지형을 활용한 분산형 워터테크
장미산성·공산성·벽골제에서 드러난 백제의 ‘분산형 워터테크’ 주목
1600년 전 백제는 오늘날처럼 대규모 댐을 건설하지 않고도 지형과 수원을 활용해 물을 확보하고 저장·관리하는 정교한 수자원 관리기술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또다시 확인됐다.(사진 위로부터 장미산성 집수지,공산성식수댐)
충주 장미산성에서 확인된 대형 목조 집수지는 당시 백제가 산성 내부의 물을 어떻게 확보하고 관리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장미산성·공산성·김제 벽골제를 함께 살펴보면 백제의 물관리는 단순한 우물이나 저수시설을 넘어 집수→저장→배수·조절→생활·농업용수 공급으로 이어지는 체계적인 수리토목 기술로 발전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는 최근 충주 장미산성 발굴조사에서 백제 한성기 최대 규모의 목조 집수지를 확인했다. 2022년부터 이어진 조사에서는 기존 석축성벽에 앞서는 백제 한성기의 판축성벽과 생활공간도 확인돼, 장미산성이 백제의 중원지역의 핵심 거점이었음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성 안 북쪽 계곡부에서 발견된 목조 집수지는 내측 한 변 약 6.5~6.7m, 깊이 약 1.8m의 정방형에 가까운 구조다. 길이 7m가 넘는 참나무와 밤나무 등을 통째로 가공해 9단으로 쌓고, 모서리는 목재를 서로 맞물리도록 정교하게 결구했다. 최대 약 8만3천L(83㎥)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최대 용량의 약 70%를 실제 이용한다고 가정할 경우 성안에 머무는 300명이 두 달 반 이상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으로 설명하고 있다. 집수지 주변에서는 우물이나 샘으로 볼 수 있는 별도의 집수시설도 확인돼, 대형 집수지는 생활용수, 작은 집수시설은 식수 확보에 활용됐을 가능성이 제시됐다.
계곡을 물 저장시설로 바꾼 백제의 ‘분산형 워터테크’
장미산성 집수지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단순히 8만3천L라는 저장용량이 아니다. 핵심은 물을 확보할 장소를 먼저 선택하고 그 지형에 맞춰 수리시설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집수지는 물이 모이는 북쪽 계곡부에 설치됐다. 즉 산 전체의 물을 먼 곳에서 끌어오는 방식이 아니라 빗물과 계곡수, 지하수가 모이는 지형을 활용해 필요한 장소에 저장시설을 만든 것이다.
현대의 대규모 수자원 개발이 거대한 댐과 광역 상수도망을 통해 물을 한곳에 모아 장거리로 공급하는 방식이라면, 장미산성의 방식은 수요가 발생하는 현장에서 가까운 수원을 찾아 저장시설을 설치하는 분산형 물관리에 가깝다.
물론 고대의 집수지를 현대의 분산형 물관리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물이 있는 곳을 찾아 저장하고 필요한 만큼 이용한다는 기본 원리는 오늘날 기후위기와 물 부족에 대응하는 물관리 방식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7m 통목재 9단…수압과 토압을 견딘 목조 토목기술
토목기술 측면에서도 장미산성 집수지는 주목할 만하다.
7m가 넘는 목재를 운반해 정밀하게 가공하고 9단으로 맞물려 쌓았다는 것은 단순한 목조 구조물 이상의 기술이 필요했음을 보여준다. 연구소 역시 대형 목재의 확보와 운반, 정밀한 가공, 석축 보강 등을 고려하면 계획적인 축조가 이뤄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
물이 저장되면 벽체에는 수압이 작용하고 외부에서는 토압도 발생한다. 따라서 목재의 길이와 두께, 결구방식, 벽체의 안정성, 배면의 지반조건 등을 고려한 설계와 시공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장미산성 집수지는 단순히 나무로 만든 ‘물통’이 아니라 산성의 지형과 수원을 분석해 물을 모으고 저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대의 수리토목 구조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생활유물이 보여주는 ‘물과 함께한 백제인의 삶’
집수지는 물을 저장하는 기능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존한 공간이기도 했다.
집수지에서는 국내에서 확인된 것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삼태기와 소 코뚜레, 나무자루가 온전히 남은 쇠도끼 등이 출토됐다. 쌀·콩·팥·밀 등 곡물과 복숭아·자두·머루 등 다양한 식물 유체, 소·말·돼지·개 등의 동물 뼈도 확인됐다.
특히 물이 고여 있던 습윤한 환경이 유기물의 보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면서 1600년 전 백제인의 생활과 생산활동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됐다.
따라서 장미산성 집수지는 단순한 ‘물탱크’가 아니라 백제의 토목기술과 생활사, 식생활, 농업과 가축 이용까지 보여주는 고고학적 타임캡슐이라고 할 수 있다.
공산성은 왕성의 복합 수리체계 보여줘
백제의 물관리 기술은 장미산성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공산성은 백제 웅진기의 왕성으로, 왕궁 관련 시설지에서 약 80여 동의 건물지를 비롯해 도로·배수로·저수시설·연못 등이 확인됐다. 골짜기 지형을 대규모 토목공사로 평탄하게 만들고 축대를 쌓아 계단식 대지를 조성하면서 저수와 배수시설을 함께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공산성의 물관리는 단일한 ‘물탱크’나 ‘소형댐’이라기보다 왕궁과 성내 생활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저수·연못·배수시설이 결합된 도시형 수리체계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장미산성이 계곡부의 물을 모아 저장하는 산성형 집수체계라면, 공산성은 왕궁과 생활공간의 공간계획에 물관리시설을 결합한 왕성형 수리체계였던 셈이다.
벽골제는 물관리의 목적이 ‘농업’으로 확대된 사례
김제 벽골제는 또 다른 차원의 물관리 기술을 보여준다.
『삼국사기』에는 330년 벽골제를 처음 만들었으며 둘레가 1,800보였다고 기록돼 있다.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는 이 지역이 당시 백제 영역이었던 점을 고려해 실제 축조 시기를 백제 비류왕 27년(330)으로 보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후 신라·고려·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중수됐다.
현재 약 3㎞의 제방이 남아 있으며, 1975년 조사에서는 물의 양을 조절하던 수문 관련 유적이 확인돼 높은 수준의 측량과 토목기술이 활용됐음을 보여준다.
벽골제의 특징은 장미산성이나 공산성과 달리 물관리의 목적이 농업생산에 있었다는 점이다.
즉 장미산성이 산성 내부의 생존과 생활을 위한 물 확보였다면, 벽골제는 대규모 제방을 통해 물을 저장하고 수문을 이용해 농경지에 공급하는 농업용수 인프라였다.
백제의 물관리는 ‘하나의 대형 댐’이 아니었다
세 시설을 함께 보면 백제의 물관리 기술은 목적과 지형에 따라 달랐다.
장미산성은 ‘집수와 저장’, 공산성은 ‘왕성의 저수·배수’, 벽골제는 ‘농업용 저수와 관개’가 핵심이었다.
백제시대 장미산성,공산성,벽골제의 특징
| 구분 | 충주장미산성 집수지 | 공주 공산성 저수시설 | 김제 벽골제 |
| 축조시기 | 백제 한성기 5세기전후 | 백제 웅진기 475-538년 | 백제비류왕27년,330년 |
| 물관리시설 | 대형목조집수지 | 저수댐,연못,배수시설 | 대형저수지,제방,수문,수로 |
| 시설규모 | 내측약6.5~6.7m, 깊이 약 1.8m | 약 11.0m × 9.7m × 3.3m | 『삼국사기』 기록 1,800보의 제방,3km |
| 최대저장량 | 약 83,000L = 83㎥ | 약 352㎥ = 352,000L | 고대 담수량 미확정 |
| 주요목적 | 산성 생활용수 확보 | 왕궁·성내 생활 및 물 관리 | 농업용수,관개 |
| 물확보방식 | 계곡의 지표수·지하수 집수 | 생활용수, 물의 저장·배수 및 연못등 다목적 | 광범위한 물을 제방으로 저류 |
| 핵심토목기술 | 7m 이상 목재 9단 결구 + 석축 보강 | 지형을 대규모 성토·평탄화하고 저수·배수시설 배치,석축 | 대규모 제방 축조 + 수문 + 수로 |
| 물조절 | 집수·저장·관리 | 저수·배수 | 수문을 통한 방류·관개 조절 |
| 성격 | 산성형 물탱크/생존용수 | 왕성형 복합 수리시설/생활용수 | 국가 농업용수 인프라/농업용수 |
1600년 전 백제의 물관리에서 수자원관리 배우자
오늘날 우리나라는 기후변화와 가뭄, 집중호우, 산업용수 수요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물관리 방식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용수 수요가 증가하면서 대규모 수원 개발과 함께 물 재이용, 누수 저감, 지역 단위 물순환 등 다양한 대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미산성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모든 물 문제를 하나의 대형 댐으로 해결할 필요는 없다. 기후변화라는 위기속에 빗물을 포함한 물의 다원화와 관련하여 적정 지역에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1600년 전 백제는 물이 모이는 장소를 찾고, 그곳에 필요한 규모의 시설을 만들었다. 장미산성에서는 계곡부의 물을 집수해 성 안에서 활용했고, 공산성에서는 왕성의 공간계획과 저수·배수시설을 결합했으며, 벽골제에서는 농업생산을 위해 대규모 제방과 수문을 구축했다.
이는 현대의 물관리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얼마나 큰 댐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물이 어디에 있고, 어디에서 필요한가, 그리고 어떻게 연결하고 저장할 것인가’가 먼저라는 것이다.
백제의 물관리 기술을 오늘날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역의 수원과 지형을 활용하고, 필요한 곳에 필요한 규모의 물관리시설을 분산 배치했던 사고방식은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워터테크를 고민하는 데 충분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1600년 전 백제의 장미산성 목조 집수지는 결국 하나의 오래된 물탱크가 아니다. 성의 생존을 위해 물을 찾아내고, 저장하고, 관리했던 백제인의 수자원 전략이며, 오늘날 우리가 다시 살펴봐야 할 고대의 ‘분산형 워터테크’다.
(환경경영신문 https://ionestop.kr// 김동환 환경국제전략연구소장, 환경경영학박사, 시인,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