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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에서 세석까지
정 태 규
세칭 도인마을로 불리는 청학동 골짜기에서 화계 불일폭포 쪽으로 빠지는 평탄한 등산로를 버리고 삼신봉의 품안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게류를 끼고 들어섰을 땐, 헹군 듯한 오전 햇빛이 울창한 전나무 숲 사이로 비쳐들고 있었다. 바위투성이인 가느다란 숲길은 한 줄기 칡넝쿨처럼 뻗어 올라 계곡을 가파르게 사행하고 있었다. 여물 대로 여문 골짜기의 물소리가 발 밑에 밟혔고 어디선가 개똥지빠귀가 울었다. 아무 근심 없이 키대로 쭉쭉 자란 전나무들이 숲은 오를수록 깊어져 눈앞에 보이는 산등성이에 올라서면 시야가 트이겠거니 하는 기대를 번번이 무산시키며 첩첩이 하늘을 덮었다. 전나무 가지 사이로 어쩌다 내다뵈는 건너편 산자락의 활엽수 잎들이 초가을 햇살에 사금파리처럼 반짝였다.
지연은 가끔씩 멈추어 서서 깊은 심호흡으로 차오르는 숨결을 다독였다. 그때마다 새물내 같은 숲 향기가 흔감하게 폐부로 밀려들었다. 남편 영모는 한 번 뒤돌아보는 법도 없이 묵묵히 앞서가고 있었다. 배낭을 걸머멘 영모의 어깨가 오늘따라 유난히 좁아보였다. 골짜기로 접어들면서 더욱 무거워진 듯한 영모의 침묵이 옷 속에 든 까끄라기처럼 마음에 걸렸다. 남편은 이 산에서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것일까. 새삼스런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30여 년 세월 저편의 잔해이거나 아니면 이제는 등산객들의 무심한 발걸음에 흔적조차 없이 마멸되어 사라진 폐허 위를 뒹구는 돌 한 조각이기 십상이리라. 가도 가도 끝없는 숲길. 지연은 그 숲을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까닭 모를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엷은 현기증이 밀려와 발을 헛디딜 뻔했다. 시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 남편은 크게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말수가 줄었고 평소 입에 대지 않던 술에 만취되어 들어오는 횟수가 늘었다. 밤늦도록 그의 서재에서는 빛이 새어나왔다. 때때로 새벽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발견되는 남편의 얼굴은 적막한 허허벌판이었다. 그렇게 곰살 맞게 거두던 아이들에게마저 곁을 잘 주지도 않고 늘 차에 받힌 표정으로 서재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지연은 그때까지도 영모의 그런 갑작스런 황폐가 시부의 죽음에 대한 상심에서 기인하는 것이겠거니 하는 연민의 눈으로 조심스럽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친부도 아닌 양부에게 쏟는 영모의 정성은 사실 지극한 데가 있었다.
휴일이면 꼭꼭 안부전화를 챙겼고 명절과 집안 대소사에는 물론 수시로 아이들을 앞세우고 그 먼 지방의 소읍까지 가는 헌털뱅이 버스에 몸을 싣곤 했다. 남자 노인네에게 필요한 상품을 진열한 가게 앞을 예사로 지나치지 못하는 지연의 오랜 버릇은 순전히 그런 남편 덕분이었다. 어쩌다 도회지 나들이를 오던 시아버지도 사직동에 사는 친자인 작은 아들네보다는 지연이네에 묵을 경우가 더 많았다. 그 지방 소읍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아오다 이태 전에 정년퇴임한 시아버지는 무척 온화하고 조용한 성품이었다. 갓 시집을 온 지연에게는 신랑이 양자란 사실이 그늘을 지울까봐 세심한 데까지 신경을 써주곤 했다. 그 덕택에 지연도 꼭 남의 산소에 잘못 절한 듯하던 초기의 위화감을 삭이고 어엿한 시댁 식구로 쉽게 편입될 수가 있었다.
시동생들과 시누이 그리고 차례로 들어온 아랫동서들까지 그녀에게 맏며느리로서의 깍듯한 예우를 다해 주었으므로 지연은 남편이 고아란 사실을 잊고 사는 편이었다. 그 소읍에서 건어물상을 크게 벌이고 있는 친 장자에게 의탁하던 시아버지가 쓰러진 것은 몇 달 전이었다. 병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암세포가 이미 간을 완전히 잠식하고 난 뒤였다. 병원에서도 두 손 든 마당에서도 간암에 좋다는 약을 구하러 동분서주하는 영모의 발 구름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쯧쯧쯧! 뭐니뭐니 캐싸도 제일 서러울 사람은 영모 저 사람이구마.” 장지에서 하관이 시작될 때 영모의 통곡소리는 여 상주들이 물러나있던 언덕 너머까지 처절하게 들려왔다. 둘러서 있던 친척 아주머니 한 사람이 그렇게 혀를 찼다.
“하모. 덕보 양반도 복 받아 이래 호상이제마는, 영모 저 사람 친자석도 아니문서 오데 그런 안갚음이 있을라꼬.” “때까치 보은이제, 때까치 보은이여.” 지연이 남편의 휘청거림이 단순히 시부의 타계에서만 기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시아버지가 남편 앞으로 남긴 한 통의 두툼한 유서를 통해서였다. 탈상을 다녀온 후 영모는 휴일마다 높직한 배낭을 메고 표연히 집을 떠났다. 그리곤 다음날 저녁 늦게야 지친 짐승처럼 돌아왔다. 어디를 다녀오는지 일체 말해주지 않았다. 어느 땐 며칠씩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돌아와 현관에서 등산화의 끈을 푸는 그의 어깨에는 언제나 무거운 침울이 매달려 있곤 했다.
“어딜 그렇게 열심히 다니시는지 이젠 말해줄 때도 되지 않았어요?” 저번 주 일요일 밤이었다. 그날도 온몸에 먼 객지의 먼지를 묻힌 채 들어서는 영모를 향해 지연은 참지 못하고 내쏘듯 물었다. “지리산.” 웬일인지 영모의 대답이 쉽게 나왔다. 그날 밤, 영모는 더 이상 혼자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몸짓으로 시아버지의 유서를 지연 앞에 내던졌다. 남편 앞으로 된 유서는 그동안 얼마나 되풀이 보고 매만졌는지 모서리마다 하얀 보풀이 강아지풀처럼 일어서 있었다. 지연은 시부의 뼈를 거두는 기분으로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원경 애비 보아라.
내 병은 이제 틀린 것 같구나. 나도 가야할 날이 머지않은 듯싶다. 요즘엔 먼저 간 네 어머니가 자꾸 꿈에 보여. 네가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이 애비는 북망산에서 네 어머니를 만나고 있을 게다. 누구나 한 번은 가는 인생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참 길게도 살았구나 싶다. 돌아보면 누구 말마따나 8할이 바람인 인생이었다만 건실한 너희들로 하여 아무 여한은 없다. 아범아.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구나. 이 애비는 평생 이 말을 내 가슴에 묻어두었다가 저승으로 갈 때도 그냥 안고 가고 싶었단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 말을 아범에게 전해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구나. 그러나 네 어머니도 가고 없는 세상에 나마저 그냥 떠나버리고 나면 누가 있어 이 이야기를 네게 들려주겠느냐. 그리하여 죽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결심하게 되었느니라. 그러하니 지금부터 이 애비의 말을 잘 새겨듣도록 하여라. 네게는 이야기가 얼마나 뼈에 사무치는 한이 될지는 이 애비도 충분히 주지하는 바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놀랍고 서러운 일일지라도 절대로 경거망동하여서는 안 되느니라. 아범도 이제 내일 모레면 불혹의 나이지 않느냐. 명심하도록 하여라. 너에게 너무 큰 짐을 떠맡기고 떠나는 듯해서 안쓰럽기 그지없다만 현명한 너이기에 잘 극복해내리라 믿는다…….
전나무 숲이 끝나고 떡갈나무 오리목 북나무 개옻나무 등이 어우러진 잡목림이 시작되는 곳에 샘이 숨어있었다. 종내 뒤따라오던 우금의 물소리는 멀어진지 오래였고 겨우 시야가 트이며 삼신봉에서 곧바로 뻗은 능선의 울끈불끈한 근육들이 벌써 은근한 단풍 색을 띠기 시작한 잎들 위로 솟아있는 게 보였다. 영모가 잠잠히 샘가의 표주박을 건네주었다. 샘의 암물은 이가 시리도록 차고 싱그러웠다. 거기서 세석평전 아래의 음양수까지는 다시 샘이 없다는 영모의 말에 따라 지연은 이른 점심준비를 시작했다. 버너의 불꽃을 조절하고 있는 영모의 얼굴이 명주실처럼 풀리는 화사한 햇살 아래 그늘져 있었다.
대학시절, 강아지도 운율적으로 짓는다는 그 연애시절엔 영모의 그렇게 그늘진 얼굴마저 아름답게 느껴졌었다. 지지리도 가난한 연애였다. 시간과 돈 둘 다……. 피차 과외 아르바이트에 쫓기며 어렵사리 짜 맞추던 그 황금의 데이트시간마저 둘은 식은 찻잔 너머로 무청 같은 웃음만 교환하곤 했었다. 그래도 세상이 꽉 차고 넘쳐보이던 그 넉넉한 시절들. 청학동 민박집에서 얻어온 고들빼기 무침은 별미였다. 지연은 문득 친정에 맡기고 온 아이들 생각이 났다. 맛난 것만 보면 애들 생각부터 나는 이것이 어미 됨인가 싶어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아이스크림과 핫도그에 길든 아이들 입에 고들빼기 무침이 당키나 하랴.
“씨--. 엄마 아빠만 놀러가고…….” 큰애 원경은 엄마 잔소리에서 해방된다는 기쁨에 신이나 있었지만 원미는 입이 한 자나 삐져나왔다. 둘 다 얼마나 천방지축으로 집안을 휘몰아쳐 대던지 그것들과 싸우느라 하루해가 저무는 것이 지연의 일과였다. 때로는 그런 일상에 자신의 젊음이 저당 잡혀 있는 듯해서 참담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아이들 생각은 지레 구만리였다. “자식새끼는 죄다 애물덩어리여.” 영모와의 결혼을 허락하면서 어머니는 긴 한숨과 함께 그렇게 내뱉었다. 지연이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워 사흘 동안 내리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난 후였다. 과부의 몸으로 1남 3여를 혼자 키워낸 어머니의 고집은 유명했다. 또한 자식들에 대한 집착도 대단했다.
아마 혼자 몸으로 받아왔던 당신의 세상 설움을 자식들 잘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는 심산이었으리라. 그러나 세상은 끝까지 어머니 편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조그만 수공업으로 기반을 잡았지만 오빠도 젊었을 적엔 무던히도 어머니 속을 뒤집었다. 어찌된 양반이 사업이랍시고 벌였다 하면 금방 뒤돌아서서 말짱 말아먹곤 두 손 털고 나자빠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위로 두 언니마저 어머니 염원과는 반대로 고만고만한 집안으로 출가해서 햇빛 제대로 볼 날 없이 살았다. 그런저런 한들을 가슴에 푸른 서릿발로 보듬고 있던 당신의 욕심으로야 제 손으로 대학까지 나와 준 막내딸의 사윗감으로 영모가 눈에 반도 찰리가 없었을 게다. 무엇보다 어머니를 손사래 치게 만든 것은 영모가 양부모 슬하에서 자란 씨도 밭도 모를 고아란 사실이었다.
“난리 통에 길가에 버려진 나를 지금의 아버지가 주어다 길렀다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어. 집에 놀러온 친척아주머니의 수다를 통해서였지. 그 길로 집을 뛰쳐나갔지. 온 세상이 날 속여 왔다는 배신감에 견딜 수 없었거든. 친구 집을 전전하다 일주일만에 담임 선생님께 잡혀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내 어깨를 잡고 우셨지.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이 꼭 한마디만 하셨어. 너는 내 아들이다…….” 영모가 그 말을 한 게 언제였더라. 대학교 앞 시장 통 술집에서 희멀건 막걸리 잔을 앞에 두고 이였으리라. 그때도 영모의 얼굴에는 저렇게 굴뚝나비 날개처럼 어두운 그늘이 내려있었던가. “다 지 복은 타고나는 법인겨. 인력으로야 하릴 없제.”
그런 자위로 고집을 꺾던 어머니도 막상 잔칫날엔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샘물에 대강 그릇을 부시고 짐을 챙겨 드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떼의 젊은이들이 행렬을 이루며 올라왔다. 금세 샘터를 가득 메운 젊은이들은 목을 축이며 유쾌하게 떠들었다. 적막하던 산 속이 갑자기 활기로 가득 찼다. “수고 많으십니다.” 저마다 선착 객을 향해 인사를 빠트리지 않았다. 온산이 수런수런 깨어나는 듯했다. 젊음이란 언제나 이토록 선연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이마마다 묶여있는 흰 띠를 보자 지연은 가벼운 거부감을 느꼈다. 「통일염원 지리산등반대회」라고 쓰인 그 띠는 주인의 결연한 의지를 충실하게 표징하며 단호하게 매어져 있었다. 먹으로 쓴 글씨가 땀에 번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배낭 옆구리에 북과 꽹과리 장구 등의 풍물이 매달려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북과 꽹과리를 치며 연신 팔을 치켜들어 구호를 연호하는 사람들의 무리, 어깨동무를 하고 밀려가는 대열의 물결, 검은 우주인처럼 무장한 또 다른 대열, 흩어지는 사람들의 발길들, 곧 이은 돌과 화염병과 최루탄의 공방전, 쫓고 쫓기는 다급한 발걸음들……. 갑자기 티브이 등에서 익히 보아왔던 그런 광경이 눈앞에 생생히 떠올랐다. 그때 북과 꽹과리를 쳐대던 사람들의 이마에도 저렇게 흰 띠가 약속처럼 묶여 있었지. 그 광경은 늘 체한 듯한 답답함으로 다가오곤 했었다. 또한 그들이 치는 풍물소리에는 어릴 때 시골에서 들었던 지신밟기의 그 풋풋하고 흥겹던 장단은 거세되고 혼란스러운 절박감만 느껴졌었다. 젊음이란 아름답지만 위태롭다. 청년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것처럼 또 갑자기 숲길로 사라졌다.
정상이 가까워졌는지 나무들의 키가 낮아졌다. 길은 여전히 보리수나무가 밀생한 숲 사이를 가파르게 기어오르고 있었다. “이게 뭔지 알겠어?” 영모가 뒤돌아보며 길섶의 키 낮은 풀을 가리켜 보였다. 그러나 풀이 아니었다. 얼핏 보기엔 곧은 설대 같았으나 그보다 줄기가 가늘고 잎이 넓었다. “산죽이라는 거야. 옛날 빨치산들은 이걸로 비트를 지었대.” “비트라뇨?” “외부에서는 좀체 발견할 수 없도록 교묘히 지은 빨치산의 은신처. 비밀 아지트의 준말이지.” 지연은 영모가 밤늦도록 탐독하던 빨치산에 관계된 서적들을 기억해냈다. 전설이에요. 잊어버려요 제발. 죽은 과거는 죽은 채 묻어두세요. 지연은 몇 십 년 동안 까마득히 버려진 들판에서 이삭줍기를 하고 있는 영모가 안타까워 속으로 부르짖었다.
원경 애비야.
52년 12월 초순으로 기억된다. 당시 이 애비는 수도사단 소속의 소대장으로 지리산 공비토벌에 투입되어 청학동 아래 묵계부락에 배치되어 있었단다. 어느 날 우리 소대는 이웃 소대와 한 조가 되어 세석평전 아래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곳에서 다른 중대와 합류하라는 지시였다. 다음날 새벽 일찍이 우리는 청학동을 출발했다. 눈 덮인 겨울 지리산을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가 무릎까지 빠져드는 가파른 눈길을 헤치고 삼신봉에 올랐을 땐 무슨 예시처럼 흐린 하늘에서 희끗희끗 눈발이 치더구나.
반공半空에 외연히 솟은 삼신봉 꼭대기에 올랐을 때 아아, 지리산은 거대한, 참으로 거대한 중생대의 공룡으로 누워있었다. 거림골 너머, 그야말로 하늘의 왕처럼 신비롭게 솟아있는 천왕봉에서 제석봉 연하봉 촛대봉을 거쳐 세석평전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칠선봉 꽃대봉을 다시 거슬러 올라 반야봉 쪽으로 아득히 뻗어나간 주능선은 하늘로 향한 땅의 장엄한 율동이었다. 봉우리의 이마들이 벌써 단풍으로 불타고 있었다. 남북한을 통틀어 4대 영산의 하나로 꼽히는 산세의 위용이 사람을 압도했다.
“여수반란사건 이후 국군의 토벌작전이 끝날 때까지 피아 만 6천여 명이 이 산록에서 죽어갔지. 악산이야. 악산.” 영모가 능선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영모의 메마른 관자놀이에 푸른 정맥이 내비쳤다. “산이 죈가요. 인간이 죄죠.”지연이 다가앉자 영모의 그림자가 그녀의 가슴을 눌렀다. 천왕봉의 어깨너머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쑥부쟁이 꽃잎 빛깔로 펼쳐져 있었다. 세석평전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멀고 지루했다. 거북등 같은 군소봉을 수십 번도 더 오르내려야 했다. 능선에는 굴참나무와 산죽이 무성했고 가끔씩 단풍나무가 선혈처럼 붉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새색시처럼 나타났다. 천왕봉은 천천히 옆얼굴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거림골의 수많은 협곡들이 빗살무늬를 이루었다.
지연은 다리가 피곤해져와 영모를 불러 세웠다. 목이 말랐다. 수통의 물맛은 달디 달았다. 영모는 회나무의 그루터기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숲을 헤치고 나온 바람이 지연의 긴 머리칼로 숨어들었다. 영모의 옆머리에 아른거리는 새치가 지연의 눈에 아프게 잡혔다. 남편과 함께했던 세월의 깊이가 그렇게 아른거리고 있었다. 참 숨 가쁘게 살아온 느낌이었다. 갓 결혼해서는 사글세방의 애옥살림에 남편 몰래 울기도 많이 했었다. 어느 한 모서리 바늘귀 꽂을 여유조차 없이 안강달강하던 살림살이였다. 오죽했으면 남편 출근버스요금 한 푼조차 없어서 난감했던 때가 있었으랴. 그러다 아이 둘 낳고 부룩송아지 같은 그것들 뒤치다꺼리하느라 또 세월없이 종종걸음치고…….
결혼 8년 만에 13평짜리 낡은 시민아파트를 장만했을 땐 그게 그렇게 흔전스러워 밤새 뒤척여야 했다. 영모도 덩달아 잠 못 이루어 둘은 그 밤을 꼬박 흰 눈으로 지새우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27평 맨션에 연탄 냄새도 모르고 사는 요즘이야 호사라면 호사였다. 아니 조간신문을 받아들면 제일 먼저 주식시세표부터 찾는 버릇이 생기고 아파트 주차장에 하나둘 늘어나는 자가용에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대한민국의 어엿한 중산층으로 자부할 수도 있었다. 수돗물은 불안해서 못 먹겠다고 정수기를 구입한 게 언제였더라. 참, ○○물산의 주가는 회복세로 돌아섰는지 몰라. 화장대 앞에 앉으면 농익은 젊음이 우러나오고 고만한 나이의 인생을 살아온 여자들이 흔히 갖기 쉬운, 세상에 대한 자신감이 만만한 얼굴이 기껍기도 했다.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주었고 남편은 성실했다. 이만하면 등 따습고 배부른 경지라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연은 어느 구석인가 텅 비어 있고 목이 마른 듯한 느낌에 허둥거릴 때가 있었다. 화장기가 잘 먹지 않는 날이면 지연은 거울 속에서 욕심만 잔뜩 남은 추한 중년여인의 얼굴을 발견하곤 했다. 그것은 단단한 일상의 갑옷 속에 갇혀 늙어가는 여자의 모습이었다. 지연은 누구인지조차 모를 그 얼굴에 그때마다 몸서리를 쳤다. 단풍나무가 우거진 숲길은 분홍빛 프리즘의 세계였다. 빨갛고 작은 손바닥의 단풍잎 아래서 햇빛은 연분홍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가풀막을 돌아서자 고대국가의 성문처럼 버티고 서있는 석문이 나타났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거대한 바위를 정교히 쌓아올려 놓은 듯했다.
“장인어른이 상이용사셨다지?” 석문 앞에 배낭을 부리며 영모가 생급스럽게 물었다. “그래요. 동부전선에서 다릴 하나 잃으셨죠.” 지연은 자신이 마른버짐투성이인 아이 적에 불귀의 객이 된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아버지의 얼굴은 안개에 가린 듯 희미했고 목발을 짚고 뒤뚝이며 걷던 그 육체적 파행과 술 취해 온 동네를 행짜부리며 다니던 정신적 파행의 모습만이 떠올랐다.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군가를 부르며 고샅길을 들어서는 아버지의 빈 한쪽 바짓가랑이는 어린 지연에게 얼마나 큰 두려움이었던가? 그러던 아버지도 무슨 병으로인지 시난고난하다가 지연이 나눗셈을 깨치던 초등학생일 적에 훌쩍 세상을 뜨고 말았다. 어머니의 고생길은 그때부터 활짝 열렸다. 늘 술에 취해 살던 바보 같은 아버지. 그렇게 떠난 아버지는 막내딸의 꿈속에도 한 번 찾아와주지 않았다.
석문을 지나자 대성골의 여러 골짜기가 발 아래로 달려왔다. 산등성이와 골짜기는 기울어진 햇발에 판화 같은 음양의 대조를 이루며 수없이 겹치고 얽혀들었다. 멀리서 보는 산자락들의 수해樹海는 부드러운 녹색 바탕에 단풍 빛의 문양이 호화로운 양탄자였다. 길은 능선을 비껴나 급사면을 위태위태하게 휘돌고 있었다. 내려다보면 깊이도 없이 아득히 떨어져 내린 골짜기들. 칠선봉에서 뻗어 내린 능선의 발치께에 병아리처럼 안겨있는 대성마을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세석 쪽에서 하산하는 한 떼의 남녀들과 부딪쳤다. 하나같이 원색의 등산복 차림인 그 행렬은 왁자하니 떠들며 내려왔다.
“미스 김, 왜 자꾸 뒤로 처지는 거야. 내 앞에 서라니까……. 그래야 내가 엉덩이라도 받쳐주지.” “장 과장 힘으론 어림없다구. 미스 김은 몸무게는 열 근인데, 엉덩이는 스무 근이거든. 서려면 내 앞에 서야 할 거야.” “흥, 두 분 다 나한테 받쳐달란 소리나 마세요.” 낭자한 웃음소리가 숲을 흔들었다. 지연은 눈앞에 흔들리고 있는 영모의 등을 오래 지켜봤다. 묻어두세요. 이제 케케묵은 전설을 찾아 지리산을 오르는 사람은 없어요.“저기쯤 일거야…….” 갈림길을 지나 음양수 바로 못 미친 지점에서 영모가 걸음을 멈췄다. 세석평전이 정면으로 올려다 보였다. 영모가 가리킨 거림골이 시작되는 산등성이께는 단풍이 산불처럼 일렁였다. 영모의 두 눈에 흐린 구름이 몇 점 몰려들고 있었다. 지연도 몇 십 년 전 겨울, 젊은 시아버지가 눈 속에 파묻혀 있었을 그 산자락을 오래 지켜보았다.
날이 저물어서야 우리는 세석평전 아래의 목표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단다. 그 산비탈엔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그러나 합류하기로 되어 있는 중대는 어디에도 보이질 않더구나. 야영준비를 마치고 눈이 빠져라 고대했지만 부대는 종내 무소식이었다. 대신 무서운 눈보라만 휘몰아쳐 왔구나. 밤새 눈보라가 산등성이를 몰매질 놓는 소리가 들려왔었지. 정말 혹독한 폭설에다 무서운 눈보라였단다. 눈은 다음날에도 계속 내렸고 온몸을 날려버릴 것 같은 바람도 여전했다. 그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우리는 꼼짝없이 고립되었음을 깨달았다. 먼저 식량이 떨어졌다. 불을 피울 마른나무도 더 이상 구할 수가 없었단다. 그 와중에서도 공비들의 기습이 두려워 보초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구나. 그러나 보초근무를 나간 대원은 다음날 아침이면 웅크린 채 얼어 죽은 시체로 발견되곤 했다.
대원들의 손발에 너나없이 얼음이 박혀들었고 기아와 추위에 대원들은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부하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 애비의 심정은 어떠했겠느냐. 그때만큼 지휘관이 된 걸 후회해본 적이 없었단다. 꼬박 6일만에야 눈이 그치고 눈부신 햇살이 그 산비탈을 비추었을 땐 대원 전체의 삼분의 일 이상이 굶주림과 추위에 희생되어 있었다. 나머지도 성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신음하는 전우를 들것에 메고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 길은 더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걷다가 눈 위에 쓰러져 잠이 드는 대원도 있었단다. 아범아,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구나. 오오, 그 추위, 그 배고픔……. 우리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오직 내려가야 산다는 일념뿐이었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공비들 생각을 까맣게 잊고 있었구나. 한데 요란한 총소리가 우리의 발길을 묶은 것은 거림마을을 향해 출발한 지 두 시간이 채 못 되어서였단다.
음양수의 샘물로 목을 축이고 세석평전으로 향했다. 거기서 세석까지는 금방이었다. 숲을 빠져나와 고원의 첫머리에 들어섰을 때 지연의 일행을 맞이해준 것은 그 너른 너덜겅을 빼곡이 채우고 있는 텐트의 물결이었다. 울긋불긋한 원색텐트의 군락이 반야봉 쪽에서 밀려오는 노을빛과 버무리여 철쭉의 단풍을 무색케 했다. 산장의 스피커에선 「아, 대한민국」이 흘러나오고 각종 산악회의 깃발들이 만장처럼 펄럭였다. 샘가에는 물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밥 타는 냄새와 된장국 끓는 냄새, 저 도회지에 두고 온 일상의 냄새들이 고지를 점령한 채 바람에 떠밀려 다녔다. 지연은 무언가에 속은 듯한 기분이었다. 지리산은 이미 영산도 악산도 아니었다. 등산객이 버린 쓰레기에 몸살을 앓고 있는 노회한 거산에 지나지 않았다.
산장 주위에서 끝내 텐트를 칠 자리를 발견하지 못한 지연과 영모는 자드락을 기어올라 촛대봉 정상에 섰다. 멀리 서편으로 등황색으로 타오르는 노을 속에 고개 숙인 칠선봉과 토끼봉이 묵상에 잠겨 있었고 발 아래로 끝없이 중첩하고 교차한 능선들이 보랏빛 저녁 이내에 싸여 푸른 등줄기를 굽혀서 부복해 있었다. 어디선가 호오이― ― 소리 높여 외치는 소리가 메아리쳐 왔다. “워어이 ― ― !” 거기에 화답하듯, 영모가 손나팔을 만들어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약속처럼 청정한 메아리가 되돌아왔다. 영모의 외침은 몇 번이고 되풀이 되었다.
총을 쏘며 산비탈을 새까맣게 쏟아져 내려오는 공비들을 보고도 우리는 그저 멍하니 서있었다. 숨고 달리고 총을 쏘고 하는 일련의 동작을 해낼 만한 기력이 우리에겐 남아있지 않았단다. 또한 그런 의지조차 없었다. 우리는 순순히 손을 들고 말았다. 그리고 재빨리 체념했다. 우리의 목숨에 대하여……. 전투에 참가한 이래로 수없이 보아왔던 처참한 시체들. 묻지도 않아 산짐승에 파 먹힌 버려진 시체들. 우리들도 미상불 그런 시체의 하나로 이름 모를 산골짜기에 버려지리라 생각했다. 즉각 무장해제를 당한 우리는 줄줄이 빨치산의 아지트로 끌려갔다. 그들의 아지트에는 많은 빨치산들이 우리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나와 있었다. 그네들 중에는 놀랍게도 아기를 업은 아낙네도 보였다. 전쟁 초기 지방 빨치산 중에는 온가족이 입산하기도 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해 보였다.
눈 위에 꿇어 엎드려 이제나저제나 하고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에게 뜻밖에도 주먹밥이 배급되어졌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주먹밥. 아아, 그 밥 냄새. 우리는 당장 죽게 된다는 공포감도 잊은 채 걸귀들 마냥 아귀아귀 먹어치웠다. 이윽고 나와 이웃 소대의 김 소위는 그들의 토굴 같은 어느 비트로 끌려갔다. 어두컴컴한 토굴 속에는 촛불이 켜져 있고 개털잠바의 사내와 인민군관복 차림의 사내가 통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야윈 얼굴에 눈빛만이 형형히 빛나는 개털잠바의 사내가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우리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사내가 묻는 대로 숨김없이 대답했다. 심문이 끝나자 그 사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깊은 생각에 빠진 눈빛이었다. “좋소. 당신들을 보내주겠소. 따지고 보면 당신들도 농민의 아들이 아니겠소. 대신, 다시는 우리를 적대시해선 안 되오. 다시는 우리에게 총부리를 들이대선 안 되오. 아시겠소?”
오랜 침묵의 끝에서 입을 연 사내의 말은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우리를 살려준다니. “아, 알겠습니다.” 김 소위와 나는 엉겁결에 대답했다. “맹세할 수 있소?” 사내는 우리의 눈을 정면으로 뚫어질 듯 쳐다보며 다짐을 놓았다. 우리는 다시 머리를 강하게 끄덕였다. “동무, 이 일에 대해선 전적으로 동무가 책임을 져야 하오.” 그때까지 옆에서 잔뜩 불만스런 눈빛을 굴리고 있던 군관복의 사내가 씹어뱉듯 내쏘곤 벌떡 일어나 나가버렸다. 개털잠바의 사내는 우리에게 손짓으로 조용히 나가라고 지시했다. 우리가 대원들에게 돌아왔을 때 군관복의 사내는 대원들에게 빨치산 선전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 ……우리 영용한 빨치산 전사들은 동무들을 모두 살려 보내기로 결정했음메. 동무들이 미제의 폭압에 어쩔 수 없이 국방군에 들어왔음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음메. 그러니끼니…….”
사내의 말이 여기에 이르자 우리 대원들 사이에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다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들이었다. 당장 눈물을 뚝뚝 흘리는 대원도 있었다. 그런 대원 중 몇은 돌아가지 않고 빨치산에 남겠다고 나서기도 했단다. 질 좋은 우리 군복을 탐낸 빨치산들과 옷을 바꿔 입고 우리들은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뒤에서 빨치산들이 우렁찬 적기가로 우리를 환송하더구나.
하루의 쇠잔한 노을이 마지막 숨을 죽이자 골짜기에 끈끈하게 고여 있던 어둠이 능선을 타고 넘어왔다. 하늘로 퍼져 올라간 먹빛 어둠이 하나 둘 별을 돋워내었다. 차가워진 고지의 칼바람이 갈퀴질하듯 촛대봉을 넘나들었다. 내려다뵈는 세석평전은 수많은 모닥불을 지펴놓은 듯한 불야성의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갑자기 요란한 꽹과리 소리가 울려왔다. 산장 앞의 빈터에서 횃불들이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횃불 주위에 몰려 서있는 사람들의 어깨가 불빛에 드러났다. 서두를 잡은 꽹과리 소리에 북소리와 장구소리, 징소리가 어울려들면서 역동적인 화음을 엮어나갔다. 그 소리는 어둠을 흔들고 골짜기와 봉우리를 흔들고 하늘로 퍼져 올랐다. 횃불의 원무가 빨라지면서 풍물소리도 잦은 장단으로 자지러졌다.
어깨춤을 덩실거리며 춤판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몸짓이 마디마디 끊겨 보였다. “그때도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을까? 한때는 그들로 이 지리산이 새까맸다는데…….” 바위에 걸터앉아 춤판을 이윽히 내려다보던 영모가 지연에게 소주잔을 내밀며 중얼거렸다. 지연은 주저 없이 술잔을 받았다. 술은 지독히 쓰고 차가웠다. 목젖에서 명치까지 뜨거운 열기가 훑고 지나갔다. 둥둥, 북소리가 유난히 돋들렸다. 고원 가득히 수십, 수백으로 지펴진 화톳불 가에 총을 멘 사나이들이 둘러앉아 있다. 여긴가 저긴가 어디쯤 커다란 장작불 가에선 러시아 민속춤을 호기롭게 추는 사나이들도 보인다. 지연은 고원의 광경을 그렇게 대치시키고 있는 자신에 놀라 영모에게 종이컵을 황급히 내밀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 남짓 후, 우리는 그렇게 학수고대했던 중대와 조우했다. 폭설로 길이 막혀있던 중대가 우리를 찾아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급히 중대장에게 전말을 보고했다. 보고를 듣는 중대장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어려 들었다.“아직도 그놈들이 거기에 있겠지?” 중대장은 기습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곤 길잡이로 나와 몸이 성한 하 중사를 지목했다. 아범아, 그때 나는 중대장을 후려갈기고 싶었단다. 결코 방금 우리를 살려 보내준 그 사람들에게 총질을 하러가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절대로 그 빨치산 대장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명령인 것을. 우리가 빨치산의 비트에 접근했을 때 치열한 교전이 있었다. 빨치산들은 이미 노출된 비트를 버리고 이동준비를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빨리 기습해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듯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곧 후퇴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점령했을 때 빨치산의 비트는 두세 구의 시체만 뒹굴 뿐 텅 비어 있었다. 중대는 주위를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소대장님!” 하 중사가 허리를 굽힌 채 나를 불렀다. “안에 누가 있습니다.” 하 중사는 바윗돌과 산죽으로 위장된 비트를 총검으로 가리켰다. 귀를 기울이자 멀리서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게 들렸다. 조심스럽게 거죽을 들어내었다. 그런데 비트 안에는 산발한 여자가 누운 채 검은 눈동자로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단다. 기겁을 해서 뒤로 물러섰지만 여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가슴에 치명상을 입고 죽어 있었다. 울음소리는 그 여자가 꼭 껴안고 있는 보퉁이에서 나고 있었다. 나는 여자의 가슴에서 그것을 빼들었다. 그러자 보퉁이에서 자지러지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러 겹으로 싼 보자기를 풀어헤쳤을 때, 오오, 거기엔 배냇머리가 보송보송한 사내아이가 붉은 얼굴로 울고 있었다.
“빨갱이 새끼. 그냥 내버려둡시다. 짐승들 밥이나 되게. 까짓 것!” 인민군에게 부모를 잃었다는 하 중사가 등 뒤에서 퉤퉤 침을 뱉었다. 나는 말없이 아이를 안고 돌아섰다. 갑자기 가슴이 왈랑왈랑 뛰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어쩌면 우리를 살려주었던 그 개털잠바 사내의 형형한 눈빛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대로 귀환한 나는 그때 눈보라 속에서 얻은 동상이 덧나, 오른쪽 발가락 셋을 절단하고 제대했단다. 군문을 나서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그 아이가 맡겨져 있는 고아원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를 내 호적에 입적시켰다. 그 아기를 내 손으로 키우는 것이 나에게 덤의 인생을 내려준 조물주의 섭리라고 믿으면서……. 원경 애비야. 그리하여 너는 나의 아들이 되었다.
두 번째의 술병까지 다 비운 영모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텐트의 천정에 매달린 가스등의 푸른 불빛에 영모의 눈가에 번져있는 눈물자국이 드러났다. 촛대봉을 넘어가는 밤바람이 긴 꼬리를 끌며, 무언가를 두들겨 일깨우는 손짓으로 자꾸만 텐트를 흔들었다. 지연은 여전히 바람소리에 실려 오는 산장의 풍물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버지의 유서를 처음 읽었을 때 내가 느낀 것은, 뭐랄까, 어떤 무서운 전율 같은 것이었어. 실핏줄 하나하나까지 송두리째 일어서는 두려운 떨림이었지. 하지만 그 떨림의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거야. 무엇이 그토록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인지…….
그걸 확인하고자 이 골짜기를 혼자서 대여섯 번도 더 미친 듯이 헤매어 다녔지. 그 결과 희미하게나마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내가 고아라는 사실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는 점이야. 살기에 급급해서, 혹은 이만큼 살게 된 게 흥감스러워서, 그 행운을 향유하는데 몰두해서 내가 누군지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점이야…….” 마지막 술잔을 비우며 영모가 자조적으로 뱉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지연은 살며시 텐트를 빠져나와 촛대봉 정상에 올랐다.
차가운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뺨을 할퀴었다. 한창 절정을 향해 치닫는 사물놀이의 타음이 바람에 밀려왔다. 횃불들은 커다란 모닥불로 바뀌어 있었다. 모닥불 주위에 아직도 흥을 파하지 못한 사람들의 춤사위가 출렁였다. 아득히 멀리 평지의 불빛들이 오디 빛 어둠 속에서 잔별들처럼 흩뿌려졌다. 지리산은 산자락마다 마을의 불빛을 어미닭처럼 품은 채 어둡고 무겁게 누웠다. 산장 앞의 모닥불이 기름을 부은 듯 풀썩 솟구쳤다. 마지막 흐드러진 한 마당을 예감케 하며 상쇠잡이의 꽹과리 소리가 덧불처럼 도드라졌다.
지연은 잔돌이 밟히는 비탈길로 내려섰다. 춤꾼의 무리에 어울려 한바탕 신명난 어깨춤을 추고 싶다는 충동이 갈증처럼 일어났다. 갑자기 모닥불의 불꽃들이 저마다 붉은 머리를 풀어 올리며 합창으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낮게 시작된 그 소리는 점점 높아지면서 고원의 어둠을 뒤흔들었다. 그것은 마치 지리산이 거대한 저음으로 우는 소리 같았다. 지연은 걸음을 재게 놀렸다.
“천하영산 지리산에 영험 높은 산신령님.”
“얼싸 얼싸 산신령님.”
“어리석은 우리 중생 소원풀이 들어보소.”
“얼싸 얼싸 들어보소.”
“남문대감 북문대감 아량 깊은 산신령님네― ―”
“얼싸 얼싸 산신령님네― ―”
“시퍼런 우리네 가슴 한풀이나 들어주소.”
“들어주소. 들어주소.”
“지리산에 봄이 오면 칼날 같은 얼음도 녹고.”
“얼싸 얼싸 얼음 녹고.”
“천왕봉의 거친 구름 산지사방 풀리는데.”
“얼싸 얼싸 풀리는데.”
“백년 천년 중음신 신세 풀릴 날이 없삽네다.”
“얼싸 얼싸 없삽네다.”
“황천 천리 피맺힌 걸음 쉬어 갈 곳 없삽네다.”
“없삽네다. 없삽네다.”
메기고 받는 소리가 메아리로 되돌아왔다. 그 소리 사이로 시아버지의 음성이 들리고 있었다.
원경 애비야.
처음과는 달리 이 이야기를 끝마치는 지금 이 애비는 기쁘구나. 그것은 아마 너에게는 평생 가슴의 못이 될지도 모르겠다만 어쨌거나 너의 원래 핏줄을 조금이나마 확인시켜 주었다는 안도감 때문일 게다. 그 핏줄은 너의 것만이 아니라, 저 먼 고래로부터 너에게 이어져 다시 너의 자식과 자손으로 뻗어나갈 소중한 것이라 믿는다. 아범아. 이 애비는 사상이 뭔지 역사가 뭔지 아직도 잘 모른다. 하지만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핏줄이란 것만은 안다.
아범아.
나는 때때로 예수쟁이들이 믿는 그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느낀다. 그때 그 공비대장이 우리를 살려준 것과 내가 너를 발견하고 부자지간의 인연을 맺게 된 사실 사이에는 아무래도 불가사의한 어떤 신비로운 손길이 작용했으리라고 믿어질 때가 있다. 그 손길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우리들로서야 알 길이 없겠지만……. 험한 세월이 맺어준 너와 나의 인연이지만, 나는 너로 인해 내 인생이 보다 기쁘고 흐뭇했다고 확신한다. 네가 어렸을 적에 천진난만하게 웃던 웃음이 지금 왜 생각날까? 또 통증이 밀려오는구나. 진통제의 약효가 다한 모양이다. 간호사를 불러야겠다. 이만 줄이마. 이승에서 하는 애비의 마지막 이 말들이 부디 너에게 의미 있기를 빈다. 잘 있거라.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풍물소리가 훨씬 가까워졌다. 모든 잠자는 것들을 두들겨 일깨우듯 그것은 마지막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무겁게 누워있던 지리산이 꿈틀거리며 우쭐우쭐 일어서고 있었다. 지리산은 전설 속에서 몸을 털고 일어서며 지연의 발밑을 측량할 길 없는 거대한 힘으로 밀어 올렸다. 그 힘은 지연의 단단한 일상의 갑옷을 뚫고 들어와 그녀의 온몸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힘이 춤사위가 달아오른 모닥불 가를 향해 지연을 밀어갔다. 거의 뛰는 걸음으로 허둥대던 지연은 기어코 자갈길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아팠다. 그 어두운 고원에서…….아이들 생각이 났다. <발표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