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는 1879년9월2일생으로 1909년 중국 하얼빈에서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처단한 구한말의 독립운동가이지요. 본관은 순흥이고 자는 몸에 일곱개의 점이 있다고 해서 응칠이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집안이 천주교 신자들로 안중근 의사의 세례명은 토마스로 양반가에서 태어났으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후 1906년부터 계몽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1907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자 강원도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1909년 단지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해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가 회담을 마친 뒤 환영군중 쪽으로 갈 때 권총 3발을 쏘아 사살했고 대한만세를 외친 뒤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사형을 언도받아 1910년 여순 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 그리고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진해현감을 지낸 안인수이며 아버지는 진사 안태훈입니다. 태어날 때 배에 검은 점이 7개가 있어서 북두칠성의 기운으로 태어났다는 뜻으로 어릴 때에는 응칠이라 불렀는데 이 이름을 해외에 있을 때 많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1884년 갑신정변 이후 개화당의 일원이었던 아버지가 황해도 신천군 두라면 청계동으로 피신했고 이곳에서 아버지가 세운 서당에서 공부를 했으나 사서오경에는 이르지 못하고 통감 9권까지만 마쳤다고 합니다. 말타기와 활쏘기를 즐겼고 집 안에 자주 드나드는 포수꾼들의 영향으로 사냥하기를 즐겨 명사수로 이름이 났다고 합니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 해주감사의 요청으로 아버지가 산포군을 조직해 농민군을 진압할 때 참가하여 박석골전투 등에서 기습전을 감행 진압군의 활동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1895년 아버지를 따라 천주교에 입교하여 토마스라는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천주교를 통해서 신학문에 관심을 가졌으며 신부에게 프랑스어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한때 교회의 총대를 맡았고 뒤에 만인계 1000명 이상의 계원을 모아 돈을 출자한 뒤 추첨이나 입찰로 돈을 융통해주는 모임의 채표회사 즉 만인계의 돈을 관리하고 추첨을 하는 회사 사장을 지냈습니다. 17세에 결혼해 2남 1녀를 두기도 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국권회복운동을 하기 위해 상하이로 갔으나 기대를 걸었던 상하이의 유력자들과 천주교 신부들로부터 협조를 거절당하고 이무렵 아버지가 죽어 다시 돌아왔다. 1906년 3월에 이사한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석탄상회를 경영하다가 이를 정리하고 삼흥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곧이어 천주교 계열인 남포 돈의학교를 인수했습니다. 1907년에는 전국적으로 전개되던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호응하여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장으로 활동했습니다.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와 한일신협약의 체결 군대해산에 따라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자 독립전쟁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강원도에서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일본군과 싸우다가 국외에서 의병부대를 창설하기 위해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계동청년회의 임시사찰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이범윤을 만나 의병부대의 창설을 협의하는 한편 엄인섭 김기룡 등과 함께 의병부대 창설의 준비단체인 동의회를 조직하고 최재형을 회장으로 추대했습니다. 이들은 연해주의 한인촌을 돌아다니며 독립전쟁과 교육운동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의병을 모았습니다. 의병지원자가 300여 명이 되자 이범윤을 총독 김두성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참모중장이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두만강 부근의 노브키에프스크를 근거지로 훈련을 하면서 국내진공작전을 준비했습니다.
1908년 6월에 특파독립대장 겸 아령지구군사령관으로 함경북도 경흥군 노면에 주둔하던 일본군 수비대를 격파했습니다. 그뒤 본격적인 국내진공작전을 감행하여 함경북도 경흥과 신아산 부근에서 전투를 벌여 전과를 올렸으나 얼마 후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받아 처참하게 패배했습니다. 이때 기습공격을 받은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투에서 사로잡은 일본군 포로를 국제공법에 의거해서 석방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와 의병을 다시 일으키려고 했으나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고 부대는 해체되었습니다. 1909년 3월 2일 노브키에프스크에서 함께 의병활동을 하던 김기룡 황병길 강기순 유치현 박봉석 백낙규 강두찬 김백춘 김춘화 정원식 등 12명이 모여 단지회 일명 단지동맹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했다.
그는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로 하고 3년 이내에 성사하지 못하면 자살로 국민에게 속죄한다고 맹세했습니다. 9월 블라디보스토크의 원동보와 대동공보를 통해 이토가 북만주 시찰을 명목으로 러시아의 대장대신 코코프체프와 회견하기 위하여 온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하얼빈과 채가구를 거사장소로 설정하고 채가구에 우덕순과 조도선을 배치하고 그는 하얼빈을 담당했습니다.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이토가 코코프체프와 열차에서 회담을 마친 뒤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하고 환영군중 쪽으로 가는 순간 권총을 쏘아 이토에게 3발을 명중시켰습니다. 이어서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만철 이사 다나카 등에게 중경상을 입힌 뒤 대한만세를 외치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러시아 검찰관의 예비심문과 재판과정에서 한국의병 참모중장이라고 자신을 밝히고.
이토가 대한의 독립주권을 침탈한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이므로 대한의용군사령의 자격으로 총살한 것이며 안중근 개인의 자격으로 사살한 것이 아니라고 거사동기를 밝혔습니다. 러시아 관헌의 조사를 받고 일본측에 인계되어 뤼순 감옥으로 옮겨졌습니다.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여러 차례의 재판을 받는 동안 나는 의병의 참모중장으로 독립전쟁을 했고 참모중장으로서 이토를 죽였으니 이 법정에서 취조받을 의무가 없다라고 재판을 부정하고 자신을 전쟁포로로 취급하여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일본검찰에게 이토의 죄상을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 1905년 11월에 한일협약 5개조를 체결한 일. 1907년 7월 한일신협약 7개조를 체결한 일.양민을 살해한 일. 이권을 약탈한 일. 동양평화를 교란한 일 등 15가지로 제시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밝혔습니다.
당시 국내외에서는 변호모금운동이 일어났고 안병찬과 러시아인 콘스탄틴 미하일로프, 영국인 더글러스 등이 무료변호를 자원했으나 일제는 일본인 관선변호사 미즈노와 가마타의 변호조차 허가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사형당했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안중근은 한말 계몽운동 계열의 근대화론에 영향을 받아 계몽운동에 참여하면서도 일제에 대한 폭력투쟁 즉 의병활동으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그의 사상을 일면이나마 보여주는 것이 감옥에 있을 때 집필한 동양평화론입니다. 이 글은 서론 부분만 있지만 그의 사상과 활동의 연관성을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당시의 세계정세를 약육강식의 풍진시대로서 서양세력이 동양에 뻗쳐오는 시기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동양민족이 일치단결하여 서양세력의 침략을 극력 방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동양평화를 위하여 서양의 동양침략인 러일전쟁 때 동양평화를 유지하고 한국독립을 공고히 한다고 내건 일본의 명분은 올바른 것이었으며 이때 한민족이 일본을 지원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동양평화의 약속을 깨뜨리고 한국의 국권을 빼앗았기 때문에 한국의 원수가 되었으며 이에 한국인들은 독립전쟁을 벌이게 된 것으로,동양평화를 실현하고 일본이 자존하는 길은 한국의 국권을 되돌려 주고 만주와 청나라에 대한 야욕을 버린 뒤 서로 독립한 3국이 동맹하여 서양세력의 침략을 막고 나아가 개화의 역으로 진보하여 구주와 세계각국과 더불어 평화를 위해 진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글은 당시 일본이 주장하고 계몽운동자들의 일부가 가지고 있던 서양에 대응하는 동양세력의 단결을 주장하는 동양주의적인 입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이 가시화된 1905년 이후 대부분의 계몽운동자들이 일제에 대한 투항의 모습을 보인 것과 달리 폭력투쟁으로 나아간 것은 안중근 사상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처럼 투철한 애국자가 지금에 와서 이땅에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일제에 빌붙어 오가호의 하였던 자들의 후예들은 반성할줄 모르고 정통성이 없는 정부. 혁명정부가 건국했다고 합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망할것이요 역사를 부정하는 자들은 한 국가의 국민될 자격을 상실한 자들입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은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순수한 민족이 아닙니까. 일제에 빌붙어 자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앞에 총칼을 겨눈자들은 이 나라 국민될 자격이 없습니다.
독립을 얻고자 소중한 생명을 초게같이 던졋던 위대한 애국자들을 친일한 그들이 제대로 기억하겠습니까. 恨이 서린 우리의 역사를 그들은 왜 이토록 외면하려 드는지 우리는 똑똑히 보았고 이를 기억해야 합니다. 독립을 쟁취하고자 목숨을 버린 애국지사들을 그들이 기억할리 없습니다. 위대한 우국충정의 애국지사들의 행적을 조금이라도 기억하고 배웠다면 감히 건국이란 말을 입밖으로 내 뱉을 수 있을 일입니까. 광복을 기념하는 날에 야당의 원내대표라고 하는 인간은 뭘 배우겠다고 족구을 찾겠다고 목숨까지 던지 선현들의 자리에 무엇을 하겠다고 찾아간 것인지 그게 궁금합니다. 여행을 간 것일 테지만요. 게다가 거대 야당의 대표라는 者는 광복기념의 자리에 초대 받아 가고는 모두가 박수를 치는데 나홀로 아리랑 하고 있던데 이런 경을 치고 남을 인간이 또 어디있을까 싶습니다. 이런 者들에게 안중근을 공부하라 말하고 싶습니다.
1907년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자 강원도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1909년 단지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해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가 회담을 마친 뒤 환영군중 쪽으로 갈 때 권총 3발을 쏘아 사살했고 대한만세를 외친 뒤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사형을 언도받아 1910년 여순 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 그리고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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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보다는 덜 춥다고 합니다만 비가 온 뒤라서 춥긴춥네요..
오늘 하루도 건강한 하루로 맞으시고 행복한 날 되십시요, 감기조심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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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눈이나 비가 올 것 같은데 기상청은 조금 다른 소리를 합니다..
우리는 날씨보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더 스트레스를 받지요. 이들이 제 정신이길 기도하고 싶습니다..
잔뜩 흐린날씨가 아무래도 미세먼지가 아닐지 걱정인 아침입니다. 건강에 신경 쓰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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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길이 많이 미끄럽다고 합니다..
안전운전하시고 오늘도 건강한 하루로 맞으시고 행복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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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하늘로 태양이 반가운 오늘입니다..
바람이 조금 차긴 해도 미세먼지를 몰아내준 바람이라서인지 그래도 좋습니다..
오늘도 건강한 하루로 맞으시고 편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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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건강한 오늘이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미세먼지가 없는 맑은 하늘만 보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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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즐거운 하루로 맞으십시요..
날씨가 조금 춥기는 해도 그래도 낮에는 햇살이 고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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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평화로운 하루로 맞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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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많이 차게 느껴집니다..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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