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비 - 김신용
화석이 되어도 살아 있는 물고기를 보네
소금 무덤에 묻혀서도 지느러미 활짝 편 물고기를 보네
염장 속에서도 아직 푸른 바다의 물비늘을 반짝이는 것 같아
살들은 팽팽히 물방울을 튕기며 튀어오르는 듯하여
어골문으로 세한도를 그리는가
삭풍에도 굴신하지 않는 야윈 뼈들을 세워놓는가
그런 모습 누런 물감 칠한 부세처럼 바라보는 눈길 있겠으나
그 몸에 금가루마저 입히는 浮世의 손길도 있겠으나
개의치 않네. 다만 그 뼈의 세한도를 가난에게
먼저 부치지 못할 마음의 가난을 더 부끄러워할 뿐, 굴신할 뿐
이렇게 살의 물기를 말릴수록 뼈 더 단단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 흘림체로 쓴 겨울의 가지들을 석쇠 삼아
제 몸 올려놓는 것도 보네
시린 바람 몇 자락까지 더 얹어놓네
그 바람의 공복에 살의 남은 물기까지 다 채워주지만
배어 있는 비릿한 바다 내음은 메말라가면서도 지워지지 않아
그런 굴비 한 마리 숯불에 구워놓고 식탁에 앉은 마음의
허기들이 부세처럼 더 눈물겨울 때, 그리하여 살 한 점
남김없이 목구멍으로 넘기는 가난이, 더 뼈아프게 식도를 찢을 때
고드름이겠네
어깨 처진 처마 끝에 가만히 흘러내려
차가운 눈빛으로 이 겨울을 지켜보는
고드름이겠네
시집 『도장골시편』(천년의시작, 2007) 중에서
[출처] 굴비 - 김신용|작성자 파랑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