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대 제네시스 EQ900(후기형은 G90으로 이름을 바꾼다)
1세대 현대 에쿠스 / 2세대 현대 에쿠스
현대자동차그룹 기함은 그동안 ‘방구석 호랑이’였다. 국내 F세그먼트 시장을 열었던 초대 에쿠스와 첫 뒷바퀴굴림 기함 2세대 에쿠스, 제네시스 브랜드로 거듭난 EQ900(후기형은 G90이다)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대한민국 최고의 차다. 그러나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나 BMW 7시리즈 등 세계적인 명차 앞에 서면 어설펐고 주눅도 들었다.
그 계보를 잇는 4세대 G90이 겨냥한 목표는 명확하다. 방구석을 넘어 세계를 누비는 호랑이다. 각 브랜드가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자존심 대결의 장, F세그먼트 세단 시장에서 렉서스 LS를 넘어 아우디 A8, 7시리즈, 그리고 명실상부 최고의 세단으로 군림하는 S-클래스와 격돌해야 한다. 할 수 있을까? 시승을 마친 후 그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이제 해볼 만하다.”
G90은 주눅 들지 않는다. 해외 명차 앞에서도 당당하다. 남을 쫓지 않고 오로지 제네시스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까닭. 이전 G90이 선보인 패밀리룩이 세대교체를 거쳐 더욱 무르익었다. 보닛에서부터 테일램프까지 큰 포물선을 그리는 파라볼릭 라인이 이어지고, 방패 문양 크레스트 그릴과 두 줄 헤드램프는 남다른 인상을 뽐낸다. 특히 펜더까지 거대한 알루미늄 한 판으로 덮은 클램셸 보닛과 모듈 하나마다 200여 개 마이크로 옵틱 렌즈로 구현한 얇은 두 줄 헤드램프는 브랜드 기함답게 과감하다.
남다른 외모와 달리 실내는 비교적 무난하다
기함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 역시 듬뿍 담아냈다. 가령 차 앞에 다가서면 문 손잡이가 스르륵 튀어나오고, 시트에 앉아 버튼을 딸깍 누르면 문이 자동으로 닫힌다. 실내 분위기에 맞춰 두 가지 향을 퍼뜨리는 향기 시스템은 은은하게 코를 자극하고, 가상 공간에 울려 퍼지는 소리를 구현한 23개 스피커 뱅앤올룹슨 사운드 시스템은 입체 음악으로 귀를 두드린다.
움직이는 모든 감각은 풍요롭다.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V6 엔진이 부드럽게 반응하고 공기로 차체를 떠받든 에어서스펜션이 자잘한 노면 충격을 말끔히 삼켜버린다. 8단 자동변속기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언제 변속하는지 모를 만큼 매끄럽게 기어를 바꿔 문다. 대형 세단을 진중하게 운전하는 맛을 훌륭히 살렸다.
속도를 높여도 변함없다. 시속 100km로 항속할 때는 엔진회전수를 1400rpm으로 낮춰 엔진 존재를 감춘다. 타이어와 아스팔트가 부딪히는 소음은 아득하게 들려온다. 무엇보다 서스펜션이 진국이다. 고속에서 다소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던 이전 G90과 달리 스프링 반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에어서스펜션을 달아 속도에 상관없이 차분하다. 휠베이스 3180mm 길쭉한 차체로 도로 위를 흐르듯 달리는 감각이 일품이다.
5800rpm에서 최고출력 380마력, 1300~4500rpm에서 최대토크 54.0kg·m 성능을 내는 V6 3.5L 트윈터보 엔진
기함이라면 편하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유럽 유수의 명차와 겨루려면 잘 달릴 줄도 알아야 한다. 과연 G90은? 본격적으로 달리기 위해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바꿨다. 에어서스펜션이 잽싸게 차체를 바닥에 찰싹 붙인다. 다른 서스펜션보다 반응 속도가 무척 빠른 편. 가속 페달을 콱 밟자, 2110kg 덩치가 무색하게 튀어 나간다. 최고출력 380마력 3.5L 트윈터보 엔진이 1300rpm부터 54.0kg·m 최대토크를 끌어내 4500rpm까지 줄기차게 분출한다. 빠르다.
네바퀴굴림시스템, 네바퀴 조향, 멀티 챔버 에어서스펜션까지 다양한 값진 주행 기술을 담았다
길이 5275mm 거대 세단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마치 아랫급 세단을 타는 듯 민첩하게 방향을 틀고 서스펜션은 든든하게 쏠림을 억제한다. G90의 핵심이다. 벤츠와 포르쉐처럼 에어서스펜션 공기주머니를 잘게 나눈 멀티 챔버 에어서스펜션을 사용해 주행모드에 따라 서스펜션 감쇠력을 조율한다. 또 속도에 따라 뒷바퀴 각도를 최대 4도 트는 능동형 RWS(뒷바퀴조향) 덕분에 저속에서 민첩하고 고속에서 안정적이다. 이전 세대가 무심해 보일 만큼 달리기 실력에 집중했다. 뭐, 밑바탕 삼은 3세대 저중심 플랫폼부터 이미 말 다 했다.
제네시스 G90은 그동안 나온 기함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제네시스만의 색채가 뚜렷하고 특별한 경험을 담았으며, 안락한 승차감과 날렵한 주행 성능을 수준 높게 아우른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어설프지 않다. 주눅 들지도 않는다. 마침내 방구석을 넘어 세계를 누빌 당당한 기함이 탄생했다.
마지막으로 쓴소리 딱 하나.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으로 빛났던 초대 아우디 A8처럼, 또는 압도적인 정숙함이 화제였던 초대 렉서스 LS처럼 후발주자로써 존재감을 드러낼 묵직한 한 방이 부족하다. 명심하자. ‘이야기’ 없는 명차는 없다.
글 윤지수 사진 윤지수, 제네시스
자동차 전문 매체 <탑기어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