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적의 미소
7월 14일 월요일이었지.
그날은 1시간 늦은 6시에 느긋하게 일어났어.
주변 눈치 볼 사람이 없었거든.
독립된 공간인 모 숙소에서 편안하게 잤으니까.
더군다나, 그날은 4,9장인 영동 5일장날이었지.
일찍 움직여봐야 별 도움이 안됐거든.
그래 8시경에서야 그곳을 떠났어.
영동 5일장으로. 2년 전 찾았던 영동 5일장.
2년 전(2012년), 우리들이 출연했던 TV프로가 방영된 다음날,
장날인줄도 모르고 도착했다가 열렬한 환영을 받았던 장.
남희석씨가 맨 마지막 멘트로, 저분들 보면 뭐 좀 주시라던~
그래서였는지 그때 점심으로 보리밥까지 얻어 먹었었는데. 히히히~
근데, 무전여행 3년차(2014년) 14일째도 마찬가지였어.
대단하시다고, 정말 재미나게 사신다고, 아침부터 탁주 한사발씩 얻어 마셨지뭐야~
근데, 5일장 장터의 묘미가 뭔지 아남?
뭐니뭐니해도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 구경에 있지.
우리가 자리잡고 연주했던 곳은 특히 그랬어.
젊은이들은 거의 없고, 다들 장,노년의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어쩜 그리 하나같이
성격파 배우들 같은지.
체형, 얼굴, 걸음걸이 등등 너무나 대조적이고 판이한 제 각각의 스타일들이었지.
마치 전 세계의 인조 인형들을 다 모아놓은듯한.
그것도 부품 하나씩 결함이 있는듯한.
삼뽀냐 연주하는 산적 옆에 선 나는 느긋이 사람들 구경에 전념했지.
까만 턱수염을 기른것 까진 좋았는데 까만 머리숱과 어울려 영락없는
원숭이 얼굴 같은 사람, 팔랑개비 같이 걷는 사람, 네 팔다리가 귀찮아
떼어내버리듯 걷는 사람, 땅에 떨어진 동전이라도 주우려는듯 꼬구라질듯
땅만 보고 걷는 사람, 으스댈 게 많은 지 상체를 한껏 뒤로 제치고 걷는 사람,
먹이를 잔뜩 먹은 배불뚝이 개구리가 서서 걷는 듯한 사람, 등등.
얼마나 다양하던지.
느긋이 구경하는데 어느 아주머니 등짝에 쓰인 글씨가 눈에 들어오더라구.
반팔 티 전체에 커다랗게 쓰여진, '꿈' 이라는 글자.
과일가게 아주머니더라구.
순간 나는 과일가게 아줌마의 꿈은 뭘까 궁금했어.
바나나를 타고 하늘을 나는 꿈? 쪼개진 수박 속에서 쏟아지는 금은보화?
노란 참외 속에서 걸어나오는 노란 병아리?
나는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펼치다 제정신으로 돌아왔지.
산적이 11시 반에 연주를 접는 바람에.
그리곤 걸어서 읍사무소로 갔어.
마침 정자가 있어 그곳에서 잠깐 쉬는데,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낮잠 한숨 자라며 바닥을 깨끗이 닦아 주시더라구.
점심은 어쨌냐고~
복지회관에 가면 싼값에 밥 먹을 수 있을 거라고.
그래 그곳까지 일부러 찾아가봤더니 회원이 아니면 안된대.
식권도 떨어졌대.
에공~ 좋다 말았잖어~
발길 돌리는 울 산적 눈에 꽂힌 표지판.
'대동사'라는 절.
"미친 척 한번 가 봐?" 하더니 그곳을 향해 가더라구.
비탈길인데 한낮 땡볕에 끌개 밀어올리며 올라가려니 심장 박동이
요란스레 고동치더라구. 근데 그 힘듦은 톡톡히 보상 받았지.
울 산적이 절에 들어가 무전 여행길인데 쌀과 김치 조금만 얻을 수 없겠냐했더니
군말없이 주시더래.
울 산적, 쌀과 김치 얻어들고 나오며 짓던 미소란~ 흐흐흐~
무등산 산적이 영동의 절간도 털었다는 희열에 찬 그 흐뭇한 미소~
사실, 작년, 재작년 절이건 성당이건 교회건 다 퇴짜 맞았거든.
말도 못 붙이게 퇴짜 맞았거든.
이미 우리사회 종교 단체는 영리 단체가 돼 버렸거든.
가진자를 위한~ 흐흐~
그런데 그곳을 털다니...헤헤헤~
그래 그 절에서 나오는 길목에 있던 장애인 복지관 정자에서 그 쌀로 밥을 지어
그 김치 팍팍 집어먹으며 우린 맛난 점심 식사를 했지.
식 후, 노곤히 잠은 몰려오는데 간밤에 우릴 재워주셨던 분께서 차를 들이대
14일째 잠 잘 곳까지 태워다 주시잖아.
가는 도중 그분 사무실에 들러 차 한잔 주시는 특혜까지 베푸시며.
덕분에 영동 외곽의 주변 풍광도 구경하며 모 펜션에 도착.
남대천 강가에 위치한 지구별 펜션.
그곳에서 울 산적은 26년 만에 학교 동기생을 만났지.
26년 만의 재회라~
얼마나 반가웠을꼬~
헌데 그분 우리가 무전여행 중이라고 집의 냉장고는 다 털어 오신 듯.
캔맥주며 김치며 오리 고기며 이것저것.
마눌님한테 안 쫒겨났는지 몰러~ 키키~
아무튼 반가움에 한잔 안할 수 없지.
셋다 얼큰히~
시간은 흘러흘러 어느덧 자정 무렵.
그 친구는 집으로 돌아가고 우린 강 옆 텐트로 기어들어갔지.
그리곤 희끄무레한 새벽 여장 꾸려 그곳을 떴어.
배웅하느라 요란스레 짖어대는 세마리의 개들을 뒤로하고.
연결되남? 상 장백리 마을의 정류소까지~
그러면 13일째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오늘은 오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하호호 아줌마 투덜투덜 아저씨
소꼽친구 우리 친구 모두모두 즐거워~ 헤헤헤~
다음에...
2014.07.24. 아낙네
영동읍사무소앞의 물레방아
근처 대동사에서 쌀과 김치 얻어다 맛있는 점심을 먹다.
디저트로 귤 까먹고~
지구별 여행 펜션의 워터 슬라이드
몸에 물을 축이고 한번 타보았는데 처음엔 이거 이렇게 안미끌어져서 재미 있나 싶더니
순식간에 가속이 붙어 숭~ 하고 내려가더니 물속에 쳐박혔다.
남대천이 내려다 보이는 지구별 여행 펜션
지구별 여행 펜션 사장님이 직접 구워주신 바베큐에 맛나게 술을 마셨다.
그나마 옥천에 귀촌 했다는 훈련원 동기가 네이버 까페에서 우리를 보았다며
찾아와 26년만에 만나 밤 늦도록 애기를 나누었다.
글 - 아낙네
사진과 설명 - 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