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제가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들어온 말입니다.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지만 항상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하시는 아버지와 저희 삼형제를 위해 언제나 헌신하시며 정작 당신은 좋은 것 한번 못해보고 사시는 어머님 밑에서 올바르게 사는 것이 무언인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부모님의 가르침에 한참 못 미치지만 남에게는 피해를 주면서 살지는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던 저는 집안의 전기기기를 분해해 보면서 왜 값이 싸면 고장이 잘 나는 것인지, 왜 확실한 매뉴얼을 안 주는 것인지, 왜 고장이 나면 수리하기가 어려운 것인지 이러한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면서 제는 품질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자라서 꼭 세상 모든 사람들이 편히 쓸 수 있는 그런 제품을 만들리라고 다짐을 했었습니다.
<성격의 장 단점>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자"
어찌 보면 상투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세상에서 가장 지키지 힘든 말 같습니다. 저에게 있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모든 결과에 후회 없도록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후회를 많이 해봤지만 앞으로는 모든 일에 후회가 없도록 진정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또한 친구들에게 있어 저는 믿을만한 놈으로 통합니다. 친구들이 고민이 있을 때는 주저 없이 저에게 고민 상담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매사 신중히 일을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어 가끔 주위사람들에게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
고교시절 산업공학과에 진학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저는 공주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대학시절 해보고 싶어던게 많았던 저는 넋두리라는 풍물패에 가입을 하여 상쇠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아서 정기공연을 준비하면서 패원들을 이끌어갈수 있는 리더쉽과 모두가 만족하는 최적해를 찾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학과생활과 동아리 생활을 둘 다 잘하는 것은 힘들다는 주위사람들의 말은 있었지만 욕심이 많았던 저는 학과에서는 부과대로 시작하여 체육부장까지 역임을 하였고 동아리에서도 주요 직책을 맡으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자부합니다.
대학교 3학년 시절 품질경영기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교를 휴학하고 공부를 하였습니다. 자격증을 공부하면서 자격증에 관한 것만 아니고 품질에 대해 다방면으로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저에게는 자격증과 함께 6sigma와 Toyota공법에 대한 지식이 돌아왔습니다.
대학교 4학년 시절 영어의 부족함을 느낀 저는 영어연수를 선택하였습니다. 그 당시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못하여 주위에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학연수 비용을 마련하고 호주로 떠났습니다. 10개월간의 호주생활은 저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습니다. 우선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두려움을 없앴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입니다. 그리고 여러 국적의 친구를 사귀면서 다양한 문화의 경험은 또 다른 저의 자산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지원동기>
대학교 신입생 시절 "산업공학이란 공대의 경영학과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회사를 가든 6sigma운동을 펼치고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TPS공법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산업공학이 공대에서만이 아닌 전 산업분야에서 핵심입니다.
그리고 고객만족이라는 산업공학의 궁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가 갖고 있는 산업공학에 대한 조그마한 지식을 귀사에 보태어 귀사는 물론 저의 발전을 이루고 싶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입사 후 포부>
회사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저는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10년, 20년 이상의 미래를 내다보며 열심히 배울 것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훌륭하신 선배님들께 배우고 현장에서도 배우고 배우는 것을 개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배워가면서 궁극적으로는 회사와 사회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은 당연하지만 그 것을 극복해 가면서 저를 발전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은퇴를 할 때는 내가 후회 없는 삶을 살았구나 라고 흐뭇한 웃음을 짓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