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나라 역사서 "금사"는 금의 멸망후 원나라에서 편찬한 역사서 인데 금의 시조는 고려(신라) 평산사람 김 함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후손 완안 아골타가 금나라를 세운후 함보를 경원황제로 추증하였는데 그 후손들 성씨는 모계제를 따라 "완안"(뜻은 역시 금)이라고도 하고 김씨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청나라의 전신은 후금으로서 성씨를 "애신각라" 로 하였는데 김씨성을 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애신각라"를 혹자는 신라가 조국임을 깨닫고 사랑하라"라는 뜻으로 지었다고도 하고 어떤이는 그것은 아전인수식 해석이고 애신(아이신)은 김씨 각라(조로)는 종가 를 뜻하므로 "김씨종가"를 뜻한다고 하고 한문에 정통한 황태극이 두기지 뜻을 다 담았을것이다 라고 하는 이 도 있습니다.
함보는 황해도 평산 사람으로서 여진 완안부 땅인 복간수 부근(현 흑룡강성 목단강)에 살았고 동생 보활리는 야라(현 러시아 우수리스크 지방)에 이주해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함보는 유목생활하며 이동하다 가축이 다른 부족에 가거나 다른 부족간 청춘 남여의 연애나 납치 강간등을 원인으로 하는 부족간 전쟁으로 골육상쟁하는 싸움을 물질배상법을 도입하여 그치게 만들었습니다.
아골타의 윗대인 오야속때 이미 고려와 갈라전의 여진족들 관할을 두고 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윤관장군이 동여진을 토벌한 사건에 대하여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에서는 고려군이 축성한 동북9성의 위치나 고려군이 출병한 정주성의 위치,여진과 고려가 전투를 벌인 지역의 위치를 현재 지명으로 치환할 단서가 없습니다
오히려 여진측 자료인 금사나 흠정만주원류고등에는 알새.석적환등이 고려군을 물리친 지명을 포이등하 포이등수 비등수 등으로 표현하는데 음가는 모두같고 위치는 흑룡강성 영안현 경박호 지역 입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역사고고학 연구소 아르쩨메바 나데즈다 박사나 국방부 역사연구관 메젠쩨브 알렉산드라 의견은 고려군이 1107년 영안방면으로 진격했으나 목단강시에 도달하지는 못하였다는 의견입니다.
메젠쩨브는 고려가 그당시 내륙에서는 고전했으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파르티잔스크.나호트카 부근까지의 남부해안까지 진격했다는 흥미로운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려가 9성을 돌려준후 국경은 길림성과 흑룡강성 경계인 노송령.태평령.노야령을 경계로 설정되어 크게 보면 대수분하 서남은 고려영토. 동북은 여진영토로 정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망시키는 때에는 대수분하 서쪽중 일부인 러시아령 우수리스크..옥타브르스키군 나데진스키군 흑룡강성 동영현 지역에 대한 통제력이 고려에서 금나라로 넘어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그 당시의 압록강 현 요하 동안 하류 의 보주 내원성과의 교환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금나라의 장수 포선만노가 독립해서 요양을 수도로 동진국을 세우고(동하로 개칭) 두만강유역으로 옮겨와 영토를 차지하고 우수리스크 남쪽 크라스노야르를 도읍으로 하였고 몽골에게 사이긴스카야 성에서 대패후 현 연길인 국자가에서 사로잡혀 죽었습니다. 이 당시 우수리스크 도시면적이 116헥타르로서 영국런던의 2배였습니다.
이때는 현 연길.훈춘.도문.왕청이 완전히 포선만노의 지배하에 있었다는것도 명백한 역사적 사실 입니다.
조선조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골야우디거 혐진 우디거는 모두 수분하 연안의 야인 우디거 종족이고 이성계의 주 활동 무대는 현 훈춘인 알동.오도리. 쌍성 (우수리스크)으로서 동북의 여진족을 기반으로한 군벌이었습니다.
조선조 세종때에도 혐진 우디거가 조선이 지배하는 훈춘지역을 자주 급습한 기록으로 보아 훈춘의 노흑산 .대토천 이북은 역시 여진의 활동무대로 보아야 합니다. 세종은 고려때 윤관장군이 세운 공험진 선춘령의 "고려지경"이 세겨진 고려경계비에 대해서 상세조사해서 보고토록 김종서 장군에게 명하였고 그 보고를 통하여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는 선춘령에 가는 노정이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게 됩니다
청나라 말기 불출호 전도에도 고려경계비가 흑룡강과 길림성 경계에 나타나 있고 조선지도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마땅히 금사를 고려시기의 북사로 편입해야 동북의 고려영토를 제대로 해석하고 만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첨부한 청나라지도와 조선지도는 바로 윤관장군이 공험진의 선춘령에 세운 고려경계비가 훈춘하의 발원지 북쪽 대수분하의 남안에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요동지역의 절대강자는 고구려 장수왕 광개토대왕 시대이었고 치우 단군님은 같은 동이족이지만 우리의 정서의 근간인 홍익인간을 저버리는 문화말살의 세력인 화족의 우두머리, 헌원과 100번 이상을 싸워 100번 전부 대승을 거두고 현재의 베트남 근경까지 쫒겨난 화족은 중국고대사서에는 자신들의 역사방침인 전쟁에 패한 기록을 왜곡합니다
대승을 거두었다고 기록하며, 전쟁에 나선 장수들을 참합니다...
성리학 조선500년 비밀문서에는 고대역사기록도 많이 전해져 내려 왔으나, 중화사상에 입각한 분서의 방침을 따랐죠.
삭제된 댓글 입니다.
뭐 간단히 말하면 고려영토는 두만강 북쪽 700리 까지였다 입니다
@amur 잊지말아야죠
Good
금사 요사 청나라 다 우리역사 입니다
기록에 나오는데도 현 역사학계는 외면하죠.
식민사학자들.
금사 요사 청나라 다 우리역사 입니다
만주원류고
요동지역의 절대강자는 고구려 장수왕 광개토대왕 시대이었고
치우 단군님은 같은 동이족이지만 우리의 정서의 근간인 홍익인간을 저버리는 문화말살의 세력인 화족의 우두머리, 헌원과 100번 이상을 싸워 100번 전부 대승을 거두고 현재의 베트남 근경까지 쫒겨난 화족은 중국고대사서에는 자신들의 역사방침인 전쟁에 패한 기록을 왜곡합니다
대승을 거두었다고 기록하며, 전쟁에 나선 장수들을 참합니다...
성리학 조선500년 비밀문서에는 고대역사기록도 많이 전해져 내려 왔으나, 중화사상에 입각한 분서의 방침을 따랐죠.
탁록대전이라는 동이문화 주류세력과 화족무리들의 결정적인 전쟁을 끝으로, 치우 단군의 5번째나 7번째의 아들이 전쟁에서 장렬하게 전사를 하게 됩니다
이를 두고 치우단구니 전사한것 처럼 역사를 왜곡하고, 자화자찬하는 역사의 시발점을 만들었지오
그러나 수백 수천년이 지나도 치우단군은 화족에게는 무시무시한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삼국지연의에 유비관우장비가 모여 출전을 앞두고 치우단군, 그들의 전쟁의신에게 전쟁에 이기게 해달라고 제사를 지내는 내용이 나옵니다
전쟁의신은 한번도 지지 않은 절대패자의 모습으로 화족에게 내려져 오고 앞으로도 그럴것 입니다.
만주 원류고 사서 아직 반도 못읽음......
china->친나->신라.
지나=가지
동이가 서천해서 세운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