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시의 번역 및 해설은 블로그 차일피일(http://blog.naver.com/yoonphy)에서 옮겨 왔음을 알려 드리고,「뻐꾸기 왈츠(Cuckoo waltz) 」를 들으면서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뻐꾸기에게(To the cuckoo)」를 감상해 본다.
5To the cuckoo
-William Wordsworth
O blithe New-comer! I have heard,
I hear thee and rejoice.
O Cuckoo! shall I call thee Bird,
Or but a wandering Voice?
While I am lying on the grass
Thy twofold shout I hear;
From hill to hill it seems to pass,
At once far off, and near.
Though babbling only to the Vale
Of sunshine and of flowers,
Thou bringest unto me a tale
Of visionary hours.
Thrice welcome, darling of the Spring!
Even yet thou art to me
No bird, but an invisible thing,
A voice, a mystery;
The same whom in my school-boy days
I listened to; that Cry
Which made me look a thousand ways
In bush, and tree, and sky.
To seek thee did I often rove
Through woods and on the green;
And thou wert still a hope, a love;
Still longed for, never seen.
And I can listen to thee yet;
Can lie upon the plain
And listen, till I do beget
That golden time again.
O blessèd Bird! the earth we pace
Again appears to be
An unsubstantial, faery place;
That is fit home for Thee!
뻐꾸기에게
-윌리엄 워즈워스
오, 쾌활한 새로운 방문자여! 난 들은 적 있네,
네 노래를 듣고 난 기뻐하네.
오, 뻐꾸기여! 널 새라고 부를까,
또는 단지 떠다니는 목소리라고 부를까?
풀밭에 누워
두 겹의 너의 외침을 난 듣네,
언덕에서 언덕으로 옮겨가는 듯,
아주 멀리에서, 그리고 가까이에서.
계곡에게는 단지 햇빛과 꽃들에 관한
재잘거림으로 들리겠지만,
넌 내게 꿈에 부풀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상기시키네.
진심으로 환영하노라, 봄의 귀염둥이여!
여전히 넌 내게 있어
새가 아니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며,
목소리이고, 신비한 것이네.
내 학창 시절에 귀 기울였던
바로 그 소리이며,
나로 하여금 덤불숲, 나무, 하늘을 향해
수천 번을 바라보게 했던 그 울음소리이네.
널 찾으려고 난 자주 헤매고 다녔네
숲속과 풀밭 위를,
넌 언제나 희망이었고 사랑이었네
항상 동경했지만, 결코 볼 수 없었던.
난 네 소리를 여전히 들을 수 있네,
풀밭에 누워
저 황금빛 시절이
다시 되살아날 때까지 듣고 있네.
오, 축복받은 새여!
우리가 걷고 있는 이 땅이
다시 환상적인 요정의 나라로 여겨지네,
네게 어울리는 집처럼!
(해설)
1807년에 발표된 윌리엄 워즈워스의 이 시는 뻐꾸기와 그 울음소리를 찬미하는 전원 서정시이며, 뻐꾸기 소리는 시인에게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일깨운다.
첫째 연에서,
'오, 쾌활한 새로운 방문자여! 난 들은 적 있네, 네 노래를 듣고 난 기뻐하네.(O blithe New-comer! I have heard, I hear thee and rejoice.)'라고 하였다. '오 쾌활한 새로운 방문자여' (O blithe New-comer!)라고 한 것은 봄이 되어 뻐꾸기 소리를 새로이 듣게 된 것을 말한다. 'blithe' 는 근심 걱정 없이 행복한 모습을 나타낸다. '난 들은 적 있네' (I have heard)는 뻐꾸기 소리를 들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말이다.
'오, 뻐꾸기여! 널 새라고 부를까, 아님 단지 떠다니는 목소리라고 부를까?(O cuckoo! shall I call thee Bird,
Or but a wandering Voice?)'라고 하였다. 시인은 어린 시절 뻐꾸기 소리는 들었으나 실제 뻐꾸기를 본 적은 없었으므로, 뻐꾸기를 '단지 떠다니는 목소리' (but a wandering Voice)라고 하였다.
둘째 연에서,
'풀밭에 누워 두 겹의 너의 외침을 난 듣네, 언덕에서 언덕으로 옮겨가는 듯, 아주 멀리에서, 그리고 가까이에서.(While I am lying on the grass Thy twofold shout I hear; From hill to hill it seems to pass, At once far off, and near.)'라고 하였다. '두 겹의 너의 외침' (Thy twofold shout)은 뻐꾸기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울리는 것을 말한다. '아주 멀리에서, 그리고 가까이에서' (At once far off, and near), '언덕에서 언덕으로' (from hill to hill) 울려 퍼지고 있다.
셋째 연에서,
'계곡에게는 단지 햇빛과 꽃들에 관한 재잘거림으로 들리겠지만, 넌 내게 꿈에 부풀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상기시키네.(Though babbling only to the vale of sunshine and of flowers, thou bringest unto me a tale
of visionary hours.)'라고 하였다. 뻐꾸기 소리는 단지 새의 지저귐에 불과할지 모르나, 시인에게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일깨우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계곡에게는'(to the Valley) '햇빛과 꽃들에 관한'(of sunshine and of flowers) '단지 재잘거림'(babbling only)일지 모르나, 시인에게는 '꿈에 부풀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a tale of visionary hours)를 '가져다주고'(brings unto me) 있다.
넷째 연에서,
'진심으로 환영하노라, 봄의 귀염둥이여! 여전히 넌 내게 있어 새가 아니고,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며, 목소리이고, 신비한 것이네.('Thrice welcome, darling of the spring! Even yet thou art to me No bird, but an invisible thing, A voice, a mystery;)라고 하였다. 시인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봄날의 뻐꾸기 소리가 너무나 반가워서 거듭거듭 '세 차례나 환영하고 있다' (thrice welcome). '봄날의 귀염둥이' (darling of the Spring)라고 불렀다. 아직 뻐꾸기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시인에게 뻐꾸기는 '새가 아니며'(no bird), '눈으로 볼 수 없는 것'(an invisible thing)이며, 단지 '목소리'(a voice)이고, '신비한 것'(a mystery)이다.
다섯째 연에서,
'내 학창 시절에 귀 기울였던 바로 그 소리이며, 나로 하여금 덤불숲, 나무, 하늘을 향해 수천 번을 바라보게 했던 그 울음소리네.'(The same whom in my school-boy days I listened to; that Cry Which made me look a thousand ways In bush, and tree, and sky.)라고 하였다. 지금 듣는 뻐꾸기 소리가 바로 어린 학생 시절에 듣던 '바로 그 소리'(the same)이다. '그 울음소리'(that Cry)를 듣고 뻐꾸기를 찾으려, '덤불숲, 나무, 하늘'(in bush, and tree, and sky) 등 사방 곳곳을, '수천 번 바라보았던'(made me look a thousand ways) 그때를 회상하고 있다.
여섯째 연에서,
'널 찾으려고 난 자주 헤매고 다녔네 숲속과 풀밭 위를, 넌 언제나 희망이었고 사랑이었네 항상 동경했지만, 결코 볼 수 없었던.(To seek thee did I often rove Through woods and on the green; And thou wert still a hope, a love; Still longed for, never seen.)라고 하였다. 숲과 들판을 자주 '헤매고 다니며'(rove) 찾으려고 했던 그 뻐꾸기는, 시인에게 '항상'(still) '희망'(a hope)이었고 '사랑'(a love)이었다. 보기를 '항상 갈망하였으나, 결코 본 적이 없었던' (Still longed for, never seen) 뻐꾸기였다.
일곱째 연에서,
'난 네 소리를 여전히 들을 수 있네, 풀밭에 누워 저 황금빛 시절이 다시 되살아날 때까지 듣고 있네.(And I can listen to thee yet; Can lie upon the plain And listen, till I do beget That golden time again.)라고 하였다. 시인은 '풀밭에 누워' (can lie upon the plain) 뻐꾸기 소리를 언제까지나 들을 수 있다고 하면서, 그 행복했던 '황금빛 시간' (that golden time)을 '되살릴 수' (beget) 있을 때까지 마냥 듣고 싶은 심정을 말하고 있다.
여덟째 연에서,
'오, 축복받은 새여! 우리가 걷고 있는 이 땅이 다시 환상적인 요정의 나라로 여겨지네, 네게 어울리는 집처럼!(O, blessèd Bird! the earth we pace Again appears to be An unsubstantial, faery place; That is fit home for Thee!)라고 하였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일깨우는 뻐꾸기 소리에 흠뻑 취한 시인에게, 이 세상은 더없이 아름답게 느껴지고 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 땅'(the earth we pace)이 '새롭게'(again), '환상적인 요정의 나라'(an unsubstantial, faery place)로 보이며, 뻐꾸기에게 '어울리는 집'(fit home for Thee)이 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한 경이로움을 주는 뻐꾸기를 '축복받은 새'(blessed Bird)라고 시인은 찬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