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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혼의가치 (2012.2. 5 누가 15:1-10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10) 오늘 본문 비유의 말씀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잃은 양을 찾는 내용이고 또 하나는 한 드라크마를 찾는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었습니다. 세어보니까 99마리였습니다. 다시 세어 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마리가 없었습니다. 날도 저물어가고 주변에 늑대들도 있고 다는 양들도 돌봐야 한 상황에 참 곤란 하였습니다. 실리적인 생각을 하면 차라리 한 마리를 포기하고 나머지 99마리를 잘 간수해서 돌아가는 것이 좋을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아흔 아홉 마리 양을 놔두고 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도록 찾았습니다. 그리고 찾은 후에는 너무나 기뻐서 즐거이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는 벗들과 이웃을 불러 잃은 양을 찾은 기념으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또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었습니다. 드라크마(drachma)는 당시 화폐단위로 는 희랍의 은전입니다. 희랍의 화폐 단위에서 비교할 때 이것은 1/100 므나, 즉 1/6000 달란트에 해당하는 가치로 당시 노동자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하루 품삯이라고 하지만 오늘도 하루 1달라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지구촌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주 작은 돈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를 찾으려고 등불을 켜고 집안을 쓸고 뒤지고 나올 때가지 찾았습니다. 그리고 여인 역시도 너무나 기뻐서 벗과 이웃을 불러 잔치를 하였습니다. 이 비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엇인가 이치에 맞지가 않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애쓰면서 더 큰 손실을 감수하며 찾아야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마리 양을 찾을 때까지 찾았다고 하는데 들에 둔 99마리 양들은 오히려 다른 짐승에게 먹힐 수 있고 위기에 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더 많은 양들을 잃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찾은 후에는 결과적으로 잔치까지 하면서 더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드라크마를 인해서 온 집안 난리 북새통을 만들고 이웃과 벗을 불러 식사 초대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웃까지 불러 잔치를 하면 한 드라크만 들겠습니까? 그러면서도 무엇이 그리 기쁠까?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잃은 양 한 마리, 한 드라크마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나을 것만 같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계산과 주님의 계산법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물질적 가치 수적 가치를 따지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한 영혼의 가치를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끝으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로 돌아온 죄인 한 영혼의 가치는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그러한 실례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거라사 귀신 들린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온 몸이 쇠사슬로 묶인 채 밤낮으로 무덤에서 소리소리 지르며 자기 몸을 상해하며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가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다 포기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살기보다 죽기를 바랬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한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대화를 하셨습니다. 그 속에 2,000 마리나 되는 군대 귀신이 들려있음을 아셨습니다. 그에게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귀신들은 이 사람을 놓아주는 대신 돼지 떼를 원했고, 예수님은 그 한 영혼을 살리시기 위해서 돼지 6,000마리를 희생시키셨습니다. 우리는 또 언듯 계산이 됩니다. 미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돼지 6,000마리면 한 마리당 20만원 잡을 때 얼마나 될까? 12억정도 입니다. 동네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더 계셨다가는 망하겠다 싶어 예수님을 동네에서 나가시라고 하였습니다. 또 한 번은 누가복음에서 한손 마른 자를 공개적으로 치료해주신 사건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장로유전에는 안식일에 일을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 안식일을 범하는 자는 죽이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침으로 인식 법을 어겼다고 해서 죽일 괴계를 꾸몄습니다. 예수님은 소외당한 한 영혼을 위해서 목숨까지 거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둘도 아니고 하나를 위해서 양 한 마리, 한 드라크마. 한 영혼을 위해서 온 재산을 다 투자하고, 심지어 우리 생명까지 투자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그렇게 하셨습니다. 3년 반 공생에를 그렇게 사셨지만 마지막도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죄인들을 위해서 바치셨습니다. 아무 죄가 없으신 분이 유대인들에게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고 로마군병들의 멸시와 조롱 속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거기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을 위해서 라고 합니다. 내 대신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저를 지를 자들을 위해서 용서의 기도를 드리심으로 이를 보여주셨습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었습니까? 이 역시도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우리 영혼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가치 수적 가치를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가치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누가 손해 보는 장사를 하려하겠습니까? 저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합니다. 인터넷에서 물건을 사도 제 가격을 주고 쉽게 사지 않습니다. 제일 싸게 파는 것을 찾고, 아니면 새 것 같은 중고를 찾아서 구매합니다. 쓰레기 봉투에 쓰레기를 담아도 봉투 하나에 1000원씩 하는 것을 감안해서 아구까지 발로 꽉꽉 밟아 담습니다. 아니면 테이프로까지 붙여서 아구까지 꽉 채운 후에 버립니다. 1000원을 아끼고 10,000원을 아끼기 위해서입니다. 물질적 가치를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가치를 생각하면 물질적 수적 가치를 띄어 넘게 됩니다. 여러분, 잃어버린 영혼이던, 배고픈 영혼이던, 불구자이던, 다문화가족이던 한 영혼의 가치를 생각하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영혼의 가치가 얼마 되는지 아시나요? 마 16:16절에서 주님은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습니다(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천하? 계산 할 수 없습니다. 천하는 너무 크고 지구상에 아주 작은 나라 한 반도의 가격이 얼마나 될까요? 2005년도 경실련은 "정부 자료를 근거로 서울 강남과 강북, 신도시 등 전국의 130개 필지를 샘플을 잡아 가격을 분석한 결과 대한민국의 땅값 총액은 5195조원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이것도 캐나다를 세 개 살 수 있는 가격인데 너무 커서 계산이 잘 안됩니다. 마태복음 18장에는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죄의 빚진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일 만 달란트를 탕감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일 만 달란트는 1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으로 6000일 품삯, 즉 16년간의 품삯에 해당됩니다. 요즘의 화폐 가치로 환산해 본다면 하루 품삯을 100,000원 정도로 계산할 때 6억원 정도가 됩니다. 1 달란트만 해도 이 정도인데 일만 달란트라면 6천만 데나리온으로, 164,400년을 매일 벌어서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하루 품삯을 100,000원 정도로 계산할 때 약 6조원 정도가 됩니다. 어떤 비유에서도 한 영혼의 가격이 산 곳은 없습니다. 여러분 영혼의 몸값은 기본이 6조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투자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투자가 무엇입니까? 조금 일하고 많이 받고, 조금 투자하고 많이 거두는 것 아닙니까? 영혼을 위한 투자를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세상 주식에 투자를 많이 하는데 잘하면 몇 배, 더 잘하면 10배 100배. 이는 엄청나게 대박입니다. 그런데 실지로 대박보다는 본전도 건지지 못하여 쪽박 차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평생에 모은 돈 그렇게 날립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 계산법으로 한 드라크마(5만원)이면 한 영혼을 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투자하신 돼지 6,000마리 이것도 많은 것이 아닙니다. 에 비하면 별것 아닙니다. 예수님은 계산도 안하시고 기꺼이 투자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30,00원이면 한 아프리카, 오지에 한 영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해 쓰면 100만원도, 천 만 원도, 일억도 별것 아니지만 영혼을 위해 투자하면 우리가 나중에 얻을 수 있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게 됩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살면서 정말로 지혜로운 투자자가 되어 영혼이 생명을 구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일은 세상에 알아주지 않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한 영혼의 가치는 정말 계산 할 수 없습니다. 일본의 나가노 목사는 교회를 개척하였지만 평생에 단 한 사람을 회심시켰다고 합니다. 그것도 결핵 환자였습니다. 오히려 안 왔으면 좋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밥상에 피를 토한 것을 씻어주며 그 한 영혼을 사랑으로 감당했습니다. 그 사람이 변화되어 가가와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도 빈민을 위해 헌신을 하다가 중국에 건너가 똑같이 복음을 전하며 빈민들의 항문을 빨아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본이 2차 세계대전에 패해서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동안 나쁜 짓을 많이 한 일본인들이 무사히 중국을 벗어나 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보장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때 개석 총통이 전 중국에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일본 사람 한 사람도 해치면 엄벌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사히 200만이 귀국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장개석 총통 부인이 가가와 목사님과 성경을 공부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한 일들을 잘 알았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지만 가가와 목사가 중국에 한 일과 기도를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한 사람이 한 일입니다. 한 영혼의 가치는 계산 할 수 가 없습니다. 이 예배자리가 다 채워졌을 때 저는 한 영혼의 가치를 몰랐습니다. 참석한 머리수의 가치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개혁의 과정을 거치면서 성도들이 다 흩어졌고 몇 명 남지 않았을 때 비로소 한 사람의 귀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재중 집사님, 명남 정미 집사님 한 사람이 바로 교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형제들이 일반 교회로 간 아쉬움이 있지만 한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은 얼마나감사한지 모릅니다. 요즘은 중국 형제 자매님들은 인해서 감사가 됩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도 아니고 몇 사람을 보내주셨습니다. 현개 형제님 한 사람에 전경 형제, 류가권, 한빈 장지걸, 최서해 송우기,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어제 오후에는 최서해 형제님이 전화하고 이미영 자매님과 함께 들렸습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중국에서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고 전에 한번 우리 교회에 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관심이 있다고 하여 잠시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가를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주일 예배에 초청하였습니다. 오는 이렇게 오셨습니다.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미영 자매님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산다면 천하를 얻은 것보다 더 귀한 일입니다. 예수님 나의 구주로 영접하기까지 기도해야겠습니다. 이 세상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고 노력을 해도 그다지 남는 장사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겨우 겨우 입에 풀칠하고 나면 본전입니다. 그래서 지내놓고 보면 인생이 헛되고 헛되다고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혼의 투자를 해서 평생에 한 영혼이라도 얻게 된다면 그보다 더 큰 성공은 없습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하나를 통채로 사는 것보다 더 큰 이익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록펠러 지금으로 환산하면 그의 재산 평가는 빌게이트를 능가한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멋진 사람이라는 것은 사업 성공 후에 그 많은 재물을 사회에 환원하였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 중에 4289개 교회를 세우며 영혼 구원에 투자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기업가로서 오늘날도 열심히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기분 좋은 투자 하지 않겠습니까? 열심히 장사해서 많은 이윤을 남기고 그리고 그 이윤을 생명에 투자해서 하늘 창고를 넘치도록 채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기쁘고 행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한 영혼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영혼은 물질적 가치도 아니고 구적 가치도 아닙니다. 하나만으로도 천하보다 귀합니다. 억지로라도 물질적으로 환산한다면 기본이 6조원입니다. 우리는 왜 잃은 한 마리 양을 찾도록 찾았는가, 잃은 드라크마 하나를 왜 그렇게 찾았는가 그리고 또 이웃을 불러 잔치를 하였는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가치가 있고 행복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물질적 가치를 좇지 않고 영혼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며 투자하는 아름다운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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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말씀 은혜 받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추운 날씨에 따뜻하게 챙기시고, 감기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지난 번 편지 발받아 읽었습니다.
언니 소식도 듣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그래도 믿음 굳게 지키고 권사까지 되셨군요~
이제는 겨울도 한풀꺽였는지 날씨가 누구러들고 있습니다.
요안나님도 건강하세요~~
권사는 제가 아니구,,,언니가 그렇구요,,,
저는 치바센타에서 그냥 캠퍼스 역사 동역하고 잇습니다.
목사님 말씀과 여러가지 은혜받고,,,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언니이야기 하는거에요~~
요안나님은 그래요 여전히 믿음의 중심이 있으시구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