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Kunzmann, Franz-Peter Burkard, et Franz Wiedmann, Atlas de la philosophie, Livre de Poche, p. 75, 1993(독일 원판 1991).
그는 "근대 프란체스코 학파"라 불리는 학파를 대표한다. 그는 논증의 예리한 의미와 섬세한 검토 때문에, "정교한 박사(doctor subtilis)"라는 명성을 얻었다.
우리의 자연적 지식은 감각적인 직관으로 확인되는 범위 안에서 확실하다. 그래서 초자연적 사물에 대해서는 인식이 부정확하고 매개로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적 이성으로 접근 할 수 없는 것에 이르기 위하여 계시를 필요로 한다.
형이상학의 대상은 신이 아니고 존재(l'être)이다. [우리가 보기에 인식론의 대상은 형상 존재이며 형이상학의 대상은 질료존재이다. 이 질료 존재에 자기 정체성(자아 정체성) 문제가 제기된다는 점에서 실천과 공동체 문제가 결합되어 있다.] 형이상학은 신에 대한 추상 개념에, 신학은 구체적 개념에 이른다.
존재(l'être)는 존재인 한에서, 가장 보편적인 개념이다. 왜냐하면 존재는 하나이자 동일한 의미(univoque)에서 모든 존재자들을 위하여 발언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존재가 더 넓은 어떤 규정성(결정성, détermination)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존재를 신과 세계와 동일한 방식으로 말해야지, 유추에 의해서만 말할 것이 아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달리, 둔스 스코투스는 초월자들(les Transcendantaux, 이 말은 모든 존재자에 타당한 술어라는 의미이다) 가운데 교환 가능한 술어(passiones convertibles)와 선택적 술어(passiones disjonctae)를 구별한다. 전자는 존재와 마찬가지로 확장되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이자 진리이자 선이며, 후자는 부분적으로만 존재에 일치하는 것을 의미하며, 유한-무한, 필연적-우연적 등이다.
스코투스는 지성에 대해 자유의지의 우선성을 옹호한다. 의지는 분명히 오성이 인식할 수 있었던 것에 영감을 줄 수 있으나, 오성이 제시한 내용을 선택하는 것은 의지이다.
스코투스에서 신은 또한 의지를 소유한다. 자신의 총체에서 창조는 신적 의지로부터 나오며, 신은 논리적 모순이 없는 것만을 원한다. 그래서 도덕적 질서도 신적 의지에 의존한다.
결국 선하다는 것은 신이 원한다는 점에서 선하다. [신의 의지를 강조한 것] 의지의 우선에는 사랑의 중요성에 대응한다. 인간의 완성은 모든 도덕성의 근본인 신의 최고 사랑에서 이루어 진다.
우리의 행동은 신에 대한 사랑으로 생겨났을 때 선하다. 스코투스는 두 개의 계명(Commendements)을 구별한다. 하나는 절대적으로 타당한 계명이며, 자기 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신도 변경할 수 없는 계명(이것은 신에 연관된 초기 10계명)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삶의 조건에 필수적이라면, 신이 변경할 수 도 있는 계명(예를 들어 일부 일처)이다. 그러나, 이 후자의 계명도 신이 오랫동안 다른 명령을 하지 않을 만큼 인간에게 타당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에크하르트의 글을 읽으면서 그의 사상들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가 한말들이 후에 문제가 되어 이단시 되고 추방당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후에 그의 사상은 여러 실존주의나 낭만주의 관념론 등 여러 이념에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에크하르트는 하나님과 합일하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여전히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인간은 이유를 묻지 않고 살아야 한다. 그 어느 것도 추구해서는 안 되며, 심지어 하나님도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러한 사고는 인간을 사막, 즉 하나님보다 앞서는 자리로 이끌어 간다. 에크하르트는 하나님이란 인간이 찾을 때만 하나님으로 존재한다고 보며, 하나님을 초월하는 만물의 기원을 신성이라 부른다. 하나님과 신성은 하늘과 땅처럼 구별된다.
인간영혼은 더 이상 성자가 아니며 이제는 성부이다. 만이 내가 없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초탈은 하나님을 돌파함으로써 완성한다.
위에 말들이 에크하르트가 말한 사상이다.
솔직한 말로 하면 맘에 거의 들지 않는 주장이다.
또 다른 생각으로는 에크하르트의 영향을 받은 실존주의나 낭만주의 관념론 모두가 하나같이 나의 생각과 많은 부분에서 상반된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그가 말한 것들에는 하나님보다 우위에 두는 것들이 있음을 알수있다.
또한 우리가 어떤 것을 즉 하나님을 계시고, 하나님이 계심으로 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알기 때문에 존재한다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럼 드는 다른 생각으로는 그는 평생 동안 하나님의 그런 깊은 은혜나 기적 같은 것을 체험하지 못한 채 철학자나 신학자가 되어서 그의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가?
바울 사도가 말한 것처럼
(히 7: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 11: 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알기 때문에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살아계심으로 인해 우리가 그 분을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의 말을 좀 더 과감하게 말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존재 문제에 대해서 믿음이 없는 그는 불행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고전 15: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인간의 생각이나 필요로 지어진 산물이 아닌 우리와 육체와 정신과 영혼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인 것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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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네스 둔스 스코투스
둔스 스코투스는 아비센나에 찬성하고 아베로에스에 반대하여, 신학의 대상은 하나님이며 철학의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며 철학의 왕인 형이상학의 고유한 대상은 존재로서 존재라고 파악한다.
스코투스는 철학이 인간의 지식욕을 채우기에 충분하고 적합하다는 이성주의자들의 주장에 반대한다.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 보다 휠 씬 더 강력하게 이성비판에 힘을 들인다.
보편은 정신 안에만 있고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며, 사물 안에는 본성에서 형상적으로 구별된 개체성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구별은 인간 지성이 추상을 하기 위한 기초이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의지는 지성이 선이라고 인정한 것을 원한다고 보는 반면에, 스코투스는 자유를 강조하기 위해서 의지의 우위성을 주장한다. 의지가 지성에게 명령할 수 있는 데서 지성에 대한 의지의 우위를 주장하며, 또한 의지의 타락을 지성의 잘못보자 더 나쁜 것으로 보았다.
그는 자유의지를 강조하였고 우주의 제일원동자로서 신이 존재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한계를 느꼈다. 스코투스에게 제일원동자나 존재 자체라는 개념보다 무한한 존재라는 개념이 신에 대한 인간의 가장 완벽한 개념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대한 토마스주의의 증거들은 단지 동인들의 위계 속에 있는 최고 동인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뿐이지 성경의 독특하고 초월적이며 인격적인 하나님을 증명한 것은 아니라고 비판한다. 즉 이러한 우주론적인 증거들은 물리적인 세상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스코투스는 존재론적인 증거들을 제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코투스의 형이상학은 오직 무한한 존재의 실존을 증명하는 것뿐이며 전능하시고 공의로우시고 자비하신 존재의 실존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내용은 엄격하게 계시와 믿음의 영역에 속한다.
스코투스의 말처럼 기독교의 신앙은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한 예로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이나, 여호수아가 해를 멈추게 한 사건,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사건 등 수많은 사건과 일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및 여러 사상들은 어떤 인간의 이성과 노력에 의해서 믿음으로 나아가질 수 있는 부분들이 아니다.
만약 이런 것들이 인간의 지혜와 이성으로 믿어졌다면 기독교인 들은 구지 전도를 하는 것보다 오히려 이런 학문 연구에 더 중점을 두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린도 전서에 나타나 있듯이
(고전 1: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의 지혜, 신앙에 대해서는 인간의 지혜나 이성으로 분석하거나 믿어지는 부분들이 아니다. 물론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계시나 믿음만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이성적인 부분에 대해서 무시하거나 경시여기는 것 또한 옳지 못하다고 본다.
우선 우리가 믿음으로써 하나님을 인식하고 믿은 다음에 우리의 이성을 통해서 이것들을 살펴보고 연구해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스코투스의 주장으로 돌아가면 스코투스는 인간학에서도 아퀴나스의 지성이 최고의 자질이며 맹목적인 의지는 지성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스코투스는 의지가 지성에서 그 대상들을 지적하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지는 사랑이 소재하는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보다 더 위대한 것이며 이러한 의지는 지성과는 달리 자유로운 힘이기 때문에 의지가 더 고상하다는 주지론을 제시한다.
하나님과 관련하여 스코투스는 지극히 선하신 자신의 본성에 모순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의지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자유를 가르쳤다. 즉 어떤 것이 선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것을 의지하시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유와 권능은 어떠한 유한한 피조물에 의해서도 제한 될 수 없다. 따라서 심지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까지도 오직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택하시고 그것에 부여하신 가치만을 가질 뿐이다.
은혜와 구원에 관한 문제에서도 구원은 오직 개인들과 그들의 공로에 대한 하나님의 자유로우신 용납에 달려 있는 것이지 그들 영혼의 어떠한 자질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누구를 구원한고 구원하지 않으실 자를 자신의 절대적 의지에 따라 결정하였다고 한다. 구원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연적인 힘에 의하여 가능하며 따라서 구원은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도덕적인 선행에 의해 가능한데, 그 행동은 인간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존재로 만드는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도록 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하나님과 관련된 스코투스의 주장은 나에게 옳게 여겨졌는데 무한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그 어느 무엇에게도 간섭받지 않으시고 초월하신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은혜와 구원에 관한 문제에서는 하나님께서 미리 구원받을 자와 구원받지 못할 자를 정해 놓으셨다는 사실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딤전 2: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위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시길 원하시고 오래 동안 참으신다고 하셨는데 이는 스코투스의 주장과는 상반되는 내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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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둔스 스코투스
둔스 스코투스의 사상은 후대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역사 속에서 교회내 보다 오히려 교회 밖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인간 의지가 이성보다 더 우월”
중세 스콜라 철학의 대표 중 한 명
천국의 본질은 사랑에 있다고 주장
『13세기의 귀재, 중세 사상을 종합하고 새로운 철학을 가능케 했던 토마스 아퀴나스에 필적할 만한 영국 경험론, 독일 관념론 뿐 아니라 모든 사상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인물』
1993년 3월 2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 둔스 스코투스(1265/1266~1308)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더불어 중세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이자 철학자로 꼽힌다.
「정교한 박사」(Doctor subtilis)라는 호칭을 지닌 그는 성모 무염시태 교리를 고전적으로 옹호한 선구자로서 지식보다 사랑의 우위성을 강조하고 천국의 본질은 하느님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사랑에 있다고 주장했다.
불명확한 생애
그의 생애는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19세기 프랑스 역사가이자 철학자 에르네스크 르낭은 중세 위대한 사상가 중 둔스 스코투스 만큼 생애가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드물다고 했는데 그만큼 둔스 스코투스의 살아온 과정을 살펴보기에는 자료들이 충분치 않다.
그러나 최근 들어 특히 50년 사이에 그에 관한 꾸준한 연구가 이어지면서 많은 사실들이 발견되었는데, 14세기 초 필사본에는 둔스 스코투스가 작은형제회 소속으로 던스 출신의 스코틀랜드 사람이었고 캠브리지 옥스퍼드 파리에서 활약하다 쾰른에서 사망한 사실이 발견됐다.
1265년 12월 23일에서 1266년 3월 17일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둔스 스코투스는 스코틀랜드의 막스톤(Maxton)에서 출생, 12~13살이 되던 1278년 둠프리 수도원에 들어갔다. 수련소 입회 법적 연령인 만 15살이 되면서는 착복식과 함께 공식적으로 작은형제회에 입회했고 1291년 사제품을 받았다.
학자들은 스코투스가 수도원에 있는 기간 동안 스코틀랜드와 파리에서 학문적 철학적 교육을 연마하였고 특히 파리에 머무는 동안 메디아 빌라의 리챠드, 스페인의 곤잘보, 베드로 올리비 같은 이들을 알게 되고 그들로부터 많은 사상적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사제 서품 후에는 당시 철학 신학의 중심지였던 파리로 가서 정식으로 신학을 가르칠 자격을 얻는 한편 자신의 신학적 지식을 풍부히 할 기회를 가졌고 여기서 신학 교수의 호칭을 얻은 스코투스는 베드로 롬바르두스의 「명제집」을 강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03년경 프랑스 왕 필립과 교황 보니파시오 8세 사이의 갈등에서 교황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파리를 떠나 옥스퍼드에 간 것으로 추정되는 스코투스는 이후 다시 파리로 돌아와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1307~1308년 독일 쾰른에서 강의하다 1308년 11월 8일 사망, 현지에 묻혔다.
뛰어난 종합력 소유
스코투스는 13세기 전반 아우구스티노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간 논쟁의 연속 상황에서 이 두 사상 체계의 종합을 극적으로 실현해냈다.
이것은 각 학설들을 종합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해서도 특출한 지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그런 만큼 당대의 사상가로서 매우 특별한 인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토마스 아퀴나스와 비견될 만큼 뛰어난 종합력을 소유한 사상가로 소개되고 있으며 프란치스칸주의와 토마스주의 뿐만 아니라 아우구스티노와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모든 사상적 흐름들을 하나로 묶어 이해하고 새로운 종합으로 이끌어낸 것으로 알려진다.
그의 사상적 견해는 아우구스티노, 안셀모, 보나벤투라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여겨지며 토마스 아퀴나스의 주지주의적 경향에 반대해서 의지를 강조하는 주의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사상적 특징
가장 큰 사상적 특징은 인간의 이성보다 의지(voluntas)를 더 역설한 점이다. 그는 「단순한 의미에서의 의지」(affectio commodi)와 「항상 올바른 것으로만 향하고자 하는 의미에서의 의지」(affectio iustitiae)로 구분해서 생각했다.
이러한 구분은 인간의 이성이 의지를 움직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단순한 의미에서의 의지에만 해당되며 고유한 의미에서의 의지는 인간 이성의 범위를 넘어서서 이미 항상 올바르고 선한 본성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보다 더 우월하다는 주장으로 드러났다.
스코투스의 사상은 14~17세기 유럽 대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보다 더 많이 연구되었으며 계속해서 하이데거 등 후대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고 역사 속에서 교회내 보다 오히려 교회 밖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바보 취급 받기도
왕권신수설을 반대하고 교황권을 강력하게 옹호했기 때문에 16세기 영국 종교 개혁가들에게 호평을 받지 못하고 「바보」(dunce=Dunsman)라는 불명예스런 취급도 받았던 둔스 스코투스.
그는 또 건설적이고 체계적인 사상가, 진리의 충실한 종이라고 여겨지기 보다 성 토마스에 조직적으로 반대한자, 명민하지만 지나친 비판가, 스콜라학의 칸트 등 잘못된 개념으로 오랫동안 객관적 평가를 받지 못했고 올바른 접근에서의 연구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런 배경에서 그의 시복식은 역사 안에서 가장 힘들고도 오랜 세월의 시복 조사 과정을 거쳐야 했고 그만큼 뜻깊은 예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