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6일
충주의 비내섬, 중앙탑, 탄금대, 활옥동굴을 다녀올 계획으로 나섰는데 시간상 활옥동굴은 가지 못했다.
광주 집에서 비내섬까지 75km 거리에 한시간 남짓 걸렸다.
휴일인데도 고속도로 사정이 생각보단 원활한 상황이라 다행이다.
수안보와 더불어 충주의 3대 온천 중 '앙성탄산온천'이 있는 앙성면 조천리 마을 앞 남한강에 있는 25만평규모의 꾀 큰 섬이다.
여의도 처럼 하천바닥에 퇴적물이 쌓여 하천 한가운데 형성된 하중도로 섬 내부에 침수가 반복되면서 하천형 습지가 생겨나
멸종위기종인 수달, 삵 등을 포함하여 865종의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2021.11 환경부에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철새도래지로도 지정되어 한 마디로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왕버들 갯버들 키버들 선버들 등 여러종류의 버드나무 군락지가 더 넓은 물억새 군락지와 생태계 균형을 이루고 있어 물억새가
만발하는 가을철은 특히 장관을 이루고 있다.
비내섬은 억새가 바람에 흔들려 소리를 낸다하여 '소리의 섬'
억새와 나무를 비(베어)내는 섬이라 '비내섬'
조대(낚시터)마을과 벌천(비내의 한자표시)마을을 합쳐 조천리가 되었는데 벌천의 우리말이 비내라 한다.
5년전에는 군사훈련장으로 사용되고 있어 출입이 통제되었고
주변에 인공적인 요소가 없는 순수 자연상태라 수많은 드라마 촬영지가 되었다.
입구에 걸려있는 사진을 보면 사랑의불시착, 삼총사, 서부전선, 육룡이나르샤, 징비록, 정도전, 제왕의딸 수백향,
전우치, 광개토태왕, 근초고왕 이런 간판들이 나열되어 있다.
지난 달 입구 느티나무에서 15살 정도로 추정되는 멸종위기종인 황구렁이가 나무 구멍속에 서식하고 있는 것이 포착되었다.
이 느티나무가 그 느티나문가??
느티나무 안쪽으로 비내섬 주차장이 있다.
비내섬으로 들어가는 다리
억새수풀 사이길로 계속 걷는다.
키가 큰 엉겅퀴를 많이 만난다.
상류쪽 보도교 위에서 남한강 샛강을 내려다 본다.
다리를 건너서 좀더 간다면 남한강을 가로지르는 복여울교를 만난다.
우리는 보도교를 건너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나무 그늘 아래 아주 소박한 쉼터가 기다리고 있다.
억새수풀속에서 갑자기 커다란 개구리 한마리가 튀어나온다.
숲속에서 큰 동물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는 데 지나가던 관리인이 아마도 고라니 아니면 삵일 거라는 설명이다.
버드나무 외에도 재래종 뽕나무도 눈에 많이 띄는데 오디가 길에 많이 떨어져 있다.
나홀로 나무가 여기에도 있네. 나무 아래는 쉼터다.
사랑의 불시착 촬영지다. 불을 피웠던 돌맹이도 그대로 있다.
촬영지 바로 옆으로 나가면 유유히 흐르는 남한강을 만난다.
입구쪽으로는 금계국 꽃밭이 많다.
다리를 건너 주차장으로 돌아온다. 5km 정도에 한시간반쯤 걸렸다.
다음 목적지 중앙탑으로 간다.
신라 원성왕때 나라의 중앙을 알고 싶어, 잘 걷고 건장한 장정 가운데 보폭이 같은 두 사람을 뽑아 영토의 남쪽과 북족의 끝에서
한날한시에 출발해서 만난 곳이 이곳인데 이곳에 나라의 중앙을 알리는 거대한 탑을 세웠다고 한다.
국토의 정중앙에 왕권을 상징하는 탑을 세워 새로 편입된 백제와 고구려 백성들을 포용하고 흩어진 민심을 모으는 의미가 담긴
탑으로 대부분 탑은 절에 세워졌지만 중앙탑은 강이 흐르는 너른 평지에 우뚝 솟이 있다.
국토의 중앙에 세워져 중앙탑으로 부르는데 정식명칭은 '충주 탑평리 7층석탑'으로 국보 제6호로 지정되었고
신라석탑중 유일하게 7층석탑이고 현존 신라석탑 중 가장 높은 12.95m다.
일제강점기 1917년 해체복원시 훼손된 고서류, 구리거울, 목제 칠함, 은제 사리함, 청동함이 발견되었다.
원래 이 지역은 가금면이었는데 2014년 중안탑면으로 개칭하였다.
중앙탑을 중심으로 충북 최초의 야외조각공원에 국내 유명작가 25인의 조각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충주박물관과
탄금호 국제조정경기장, 탄금호 유람선 선착장이 있어 중앙탑사적공원이 한국관광100선에 선정된 충주의 대표 관광지다.
공원출입구는 야외조각공원에 전시된 작품외에 또 다른 조각 작품이다.(작가 주재선, 작품명 융화 - 하나로)
중앙탑의 위용이다.
조각공원의 작품들은 앨범으로 별도 게재(https://cafe.daum.net/trekingforever/2YP2/1456)
남한강변은 충주댐 조정지댐으로 만들어진 호수 - 탄금호로 조정경기장이며 유람선이 다니는 곳이다.
조정경기 중계용 트랙을 무지개다리로 이용하는데 야경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탄금호반
이곳도 사랑의 불시착, 빈센조 등 드라마 촬영지여서 포토존으로 인기가 많다.
탄금대로 간다.
충주문화원 앞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문화원옆 카페에서 냉커피 한 잔하고 잠시 쉬어간다.
탄금대 해설은 안내판으로 대신하고
주현미가 부른 충주를 대표하는 향토 노래 '탄금대 사연' 노래비
탄금정 굽이 돌아 흘러 가는 한강수야
신립장군 배수진이 여기 인가요
열두대 굽이 치는 강물로 목메는데
그 님은 어디 가고 물새만 슬피우나
송림이 우거져서 산새도 우는가요
가야금이 울었다고 탄금인가요
우륵이 풍류를 읊던 대문산 가는 허리
노을진 남한강에 님 부르는 탄금 아가씨
전국의 충혼탑 중 가장 오래된 탄금대 충혼탑 (1955년 건립)
오늘이 현충일이라 오전에 행사를 마치고 주변을 정리 하는 중이다.
팔천고혼위령탑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맞서 싸우다 전사한 충장공 신립(1546~1592) 장군과
김여물(1548~1592) 부장 등 8천여 명 군사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충주시가 2003년 건립했다.
탑신 상단부의 혼불은 산화한 8천 영령을 추모하는 모습이고, 하단에 마련된 신립 장군과 4인 군상은 최후를 맞았음에도
굴하지 않은 호국충절을 상징한다.
이 시비의 주인공인 권태웅 선생은 1918년 4월 20일 충주 칠금동에서 출생했고, 어려서는 조부님께 서당공부를 하다가
충주공립보통학교, 서울 제일 고등 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를 거처, 일본 조도 전 대학 문학과에 진학하였으나,
민족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입건 되어 1학년도 마치기 전에 퇴학을 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렇게 중퇴를 당한 후부터는 (1938년) 재일 유학생들을 규합해서 독서회를 조직하고, 항일운동을 본격적으로 하였다고 전한다.
그 때문에 일본 경찰에 연행된 일이 한두 번이 아녔는데, 1938년 5월 교도소에 투옥되어 모진 옥살이를 견디지 못해 폐결핵에
걸려 몸이 말할 수 없이 쇠약해지자 1940년 6월에 출옥하게 되었다. 1945년 해방 후 신약의 효과로 병이 좋아지더니,
1950년 6.25사변으로 약을 얻기 어려워 결국 1951년 3월 28일에 별세하였다고 전한다.
이 시에서 “자주감자”는 물론 일본 사람을 지칭하고, “하얀 감자”는 백의민족인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
대문산(106.9m) 정상에 있는 탄금대기비(彈琴臺記碑)
충주의 역사 지리 인물 그리고 자연환경을 예찬한 내용으로 육당 최남선이 썼다고 한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면 탄금정을 만나고
탄금정 아래로 내려가면 열두대가 남한강 벼랑위에 있는데 나무데크로 감싸놓았다.
열두대는 탄금대 서북편 층암절벽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바위의 층계가 12층이라서 열두대라는 설도 있고 전설에 의하면 신립장군이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싸울때 열두번이나
오르내리며 병사들을 지휘했다고 하며 활을 많이 쏴 열을 물에 식히느라 암벽을 열두번이나 오르내렸다고 한다.
열두대에서 남한강과 강가운데 용섬을 파노라마로 잡았다.
우륵선생의 탄금대
신립장군 순절비
옛 신라 사찰 용흥사 자리에 1956년 새로 지은 대흥사
궁도장
야외음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