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대신에 무엇'이란 우리 말 표현에서 '꿩 대신 닭'과 같이 앞에 좋은 것이 위치하고 뒤엔 좀 떨어지는 것이 위치하게 된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용의 꼬리보다 뱀위 머리'도 비슷한 이치에서 사용되는 속담이 될 것이다. 그런데 본 글의 제목은 그것을 어기고 있다. '콩국수 대신에 삼계탕'이라니! 누가 봐도 콩국수보다는 삼계탕에 방점을 찍을 것이다. 그것이 더 중요한 음식이 된다는 얘기이다.
이 제목의 연원은 이렇다. 지난 주일 낮 예배 끝나고 공동식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래 지난 주 공동식사 메뉴로 콩국수가 잡혀 있었다. 아내도 그렇게 알고 국수와 야채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그런데 주일 하루 전(8월 13일) 토요일 날 인천에서 송칠순 전도사님이 김천으로 휴가를 오셨다. 따님과 함께. 좋은 세상, 갈 곳도 많고 부르는 곳도 많은데, 하필 다른 사역의 장인 교회로 휴가를 오다니! 그래도 송 전도사님은 우리 교회로 휴가를 오는 것에 무척 즐거워하셨다.
토요일, 단조로운 김천에 갈 만한 곳이 많지 않다. 만만한 곳이 직지문화공원. 그래도 송 전도사님과 따님 육선옥 자매는 무척 좋아했다. 직지문화공원의 문화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문학 미술 음악 건축 무용 등. 우린 문화에 취해 예술을 음미하면서 긴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사진도 찍고, 벤치에 앉아 마음 속 이야기도 나누고, 주님의 일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 등. 자연스럽게 주일 공동식사 얘기도 그 속에 포함되었다.
아내는 콩국수를 준비할 거라고 했다. 송 전도사님은 주일 공동식사를 공궤하고 싶다는 의사를 말했다. 그리고 토요일, 그러니까 주일 하루 전날이 말복이니까 삼계탕을 준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우리는 쉽게 메뉴를 바꿀 수 있었다. 복날 왜 보신탕을 먹고 삼계탕을 먹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아마 더위를 이기기 위해 몸을 보충하는 영양식으로 그것들이 제격이기 때문이 나닐까 막연하게 생각해 본다.
우린 직지문화공원에서 꽤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그리고 삼계탕 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마트로 향했다. 송 전도사님과 선옥 자매는 중소도시인 김천이 마음이 들고 특히 꾸며진 가로수 등 조경을 좋아했다. 이마트엔 닭이 없었다. 복날과 닭의 밀접한 연관성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 하나로마트에서 삼계탕을 위한 재료들을 살 수 있었다. 주님의 이름으로 섬기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나의 이름으로 섬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일 터인데, 주님의 이름으로 섬기다니! 주님은 내가 아니지 않는가!
봉사와 섬김은 기독교 제일의 덕목이다. 이것에 인색하거나 더뎌서는 아무리 잘 나고 많이 가지고 있어도 주님의 신실한 일꾼에서 벗어나기 쉽다. 주님의 일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봉사요 섬김임은 성도로서 가장 기본적인 사역인 예배를 영어로 'service'라고 부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주님의 일을 세상 사업의 논리로 접근하면 결과는 무(無)가 되기 쉽다. 그런 점에서 송 전도사님의 마음에서 주님의 마음을 읽게 된다. 작은 도시의 한 마트에서 즐겁게 공동식사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주님이 좋아하실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리라.
주일 아침 일찍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한 손에 다른 손이 도울 때, 일이 많이 쉬워진다는 것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쁜 포도 수확 철이라 많은 사람이 예배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 또 그런 와중에 예배에 참석한 일부 성도들도 공동식사엔 참석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이럴 땐 할머니들과 학생들이 중요한 식객이 된다. 공들여 만든 음식은 맛있게 먹어 주는 것만으로 기쁘다. 예수님께서도 공동 식탁의 중요성을 앞서 실천하고 우리에게 따르라고 시사하시지 않았는가.
사택 거실이 가득했다. 푹 고운 닭에 인삼 마늘 등이 들어가 구수한 냄새가 입맛을 돋우었다. 모두들 맛있다며 덕담을 나누었다. 먹는 것은 우리 삶의 필수 사항이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중 누구와 먹는가도 중요하다. 예수님은 당시 바리새인들의 눈총을 받아가면서도 죄인과 세리 그리고 장애인 등 소외계층과 즐겨 먹거리를 나누셨다. 그분의 고집을 꺾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 쌍눈에 불을 켜고 따라다니지 않았는가!
우리는 음식에 나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과거로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먹을 것이 없어 굶어보지 않은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서 음식으로 서운해 하기 쉽고, 음식으로 기분 펴질 때도 많고, 음식 때문에 시험에 빠지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이젠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돌아와야 할 때이다. 약자를 돌아보는 것은 말의 풍성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글의 매끈함으로도 되지 않는다. 바로 실천에 옮길 때 설득력이 있게 되는 것이다.
여름휴가를 받아 한 농촌 교회로 와서 예배도 드리고 식사도 하면서 지낸 송 전도사님이 그래서 고맙다. 더욱이 넉넉지 않은 경제 사정임에도 주의 종과 교회 성도들을 섬기려는 그의 마음은 참으로 따스하다. 믿음이 좋다는 것이 기도를 유창하게 잘 하고, 성경 지식이 풍부하고, 신앙 연륜이 오래인 것을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주님을 대신해서 섬김의 도에 열심인 사람, 죽은 영혼 앞에서 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를 구원하고 싶은 마음,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신앙이 좋고 믿음 생활에 충실한 사람인 것이다.
송 전도사님이 우리 교회에 와서 2박3일 동안 함께 하면서 느낀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다. 온갖 고난을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헤쳐나온 믿음의 노전사에게서 느끼는 것이 이런 것이지 않을까? 나는 송 전도사님과의 오래간 만의 만남에 대해 인터넷신문에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제목이 '10년만의 해후, 피보다 진한 만남'이었다. 나의 진심을 어느 정도는 담아낸 글 제목이다. 8월 15일, 소서교회에 가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은 송 전도사님의 고향이고 한 집 건너 친척이 되는 마을이다. 고향 방문에서 그는 소서교회 방문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주님 안에서의 삶은 우리가 돌이키고 싶다고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 그분은 우리의 산성이시요 피난처이시요 방패이시요 우리를 지켜주시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콩국수 대신 삼계탕으로 한 지난 주 공동식사였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세상 대신 하나님' 너무 맞아 떨어지는 언어조합 같다. 그렇다, 우린 이제 세상 대신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좀 더 말씀에 충실해지고 싶지 않을까? 휴가처답지 않은 곳에 와서 사랑을 실천하고 가신 송 전도사님과 선옥 자매에게서 말씀에 충실하고자 하는 신앙인을 모습을 발견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첫댓글 이번 휴가가 저에게는 축복,행복의 휴가였습니다 모두들 예수그리스도를 먼곳에서 찾으려 하는데
저는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하고 돌아왔으니까요 목사님 사모님 누구라도 다 품으시는 모습과
늘 한결같으신 모습과 소서리 박전도사님께서 어르신들을 영육을 공궤하는 것을 보며 여기가 작은
천국이고 예수님의 공동체라는 것을 확인하며 제마음에 기쁨이고 감사였습니다 목사님을 만남이
저에게는 축복이고 행복입니다~`
지난 번 저희 교회에 천사가 다녀 가셨습니다. 천사 같은 마음에 나오는 천사와도 같은 행동은 아무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궤하는 손길을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