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7. (진도 시에그린 한국시화박물관)
매일 작정하고 운동하는 시간이 없으니 일주일에 한 번 트레킹을 나가는 일이 몸에 대한 예의이고 마음으로부터 안도할 수 있는 기회였으나 올 여름은 단 한 번도 관외를 나가 본 적이 없다. 60년 이상의 사계절을 맛보고 적응해오며 살아왔으니 어떠한 기후에도 잘 견딜 수 있으련만 점점 더위와 추위에 힘들고 무섭다. 그러나 말복과 입추 그리고 처서가 지났으니 아무리 더워도 햇살부터 다르다. 대놓고 가을바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밖에서 살짝 살짝 흔들려주는 나뭇잎에도 가을이 묻어 있다. 그래서 오랜만에 나도 남편을 흔들어본다. 마침 오늘은 근무가 아니라기에 가까운 곳 드라이브라도 다녀올 이 곳 저 곳 검색을 하다가 지난달 시인학교가 열려 여러 문학작가들이 모여 행사를 치루었으나 가게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던 <시화박물관>이 문득 떠올랐다. 그다지 멀지 않으면서 꼭 한 번은 가보아야 할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나서기로 했다. 사실은 언제나 그렇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족여행을 비롯해서 잠시 드라이브를 가더라도 남편에게 묻거나 의논한 적이 없다. 사실 문화관광해설사 일을 하고 계시는 남편은 많은 관광지를 다녀온 터라 혹여 의견을 묻더라도 늘 알아서 하라는 대답이니 차라리 어디든 내가 꼼꼼히 알아보고 모시는 것이 편하다 싶다. 그러다 보니 사실은 나의 눈높이와 내 중심적으로 장소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을뿐더러 문학인들의 정서나 생가를 찾아가는 일이 다반사이기도 하다. 그렇게 목적지를 진도로 두고 준비하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들아이에게도 연락해보니 마침 함께 동행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아들아이는 다음 주 화요일에 동남아 출장을 가게 될 계획이라서 주중에 다녀올 스케줄이지만 같이 나가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아들아이의 둥지를 거처 시에그린 한국시화박물관을 향해 떠났다. 특히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우리고장 영암에서 <농촌 사랑 개인시화전>을 수차례 해 왔던 나로서는 그림을 좋아하는 남편이나 미대를 졸업한 아들아이도 꽤나 관심 있는 분야라서 어떤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지도 상당히 궁굼했었다. 퇴직 후 아무리 새로 가진 직업에 대하여 재미있고 흥미롭다고는 하지만 집밖을 나서는 일만큼 에너지가 생기고 신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멀거나 가깝거나 여행은 자동차 시동이 걸리는 순간부터 설렘이다. 이른 점심시간에 출발한 우리는 초평항에서 식사를 서둘렀다. 진도가 섬이다보니 항구가 참 많은 편이지만 초평항은 처음 방분해보았을 뿐더러 이곳에 정박된 어선들은 언뜻 보아 바빠 보이지 않은 풍경이랄까? 오래 동안 머물러있는 듯한 차분한 정서였다. 물론 시에그린 한국시화박물관과 가까이에 식당을 잡았으니 여유롭게 들러보아도 될 채비로 움직였다. 2021년 6월 8일에 개관한 한국시화박물관은 이지엽 교수(경기대학교·시인)가 폐교된 석교초등학교 죽림분교를 리모델링 후 시와 그림, 수석 등 2,000여점을 상시 전시하고 있었다. 그는 일평생 수집한 한국의 대표적인 시·서·화(詩·書·畵) 작품들을 집대성하여 2021년 설립되었다고 한다. 진도는 예향의 고장답게 작은 면적의 섬 임에도 불구하고 박물관과 미술관이 참 많다. 미술관 박물관 투어만해도 며칠이 걸릴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그림이나 우리가락을 하는 예술가들도 특별히 많은 곳이 이곳 진도이다. 약간 늦은 점심시간에 그곳에 들어간 우리는 햇볕이 가장 뜨거운 시간이라 야외에 세워진 조각품들은 우선 뒤로하고 본관부터 둘러보기로 하였다. 폐교된 학교의 공간이라 주차는 물론 전시와 작업실로도 적격이었으며 아울러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우리나라 최초 박물관이니 만큼 이곳에는 여귀산 미술관과 진도수석박물관도 있어 복합문화공간으로 손색이 없었다. 야외에는 한국의 대표적 조각가인 양두환의 유작과 박달목, 배현, 박주부 조각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어 가을 쯤 차분히 여유롭게 둘러보면 더없이 아름다운 공간이 되리라 여겨졌다. 어디에서 출발하든지 진도읍을 초입으로 드넓은 다도해와 천혜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며 드라이브를 즐기는 일반인들에게 품격 높은 서정성을 음미하고 비단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예술의 향수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음에 손색이 없었다.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들어갔던 시화는 2층 복도에 전시되어 있으며 교실로 사용하던 칸칸마다 작업실이나 교육실로 지정되어 있어 한눈에 둘러보기 좋았다. 폐교된 죽림초등학교는 분교였기 때문인지 그리 크지는 않다. 요즘 출생율이 낮을뿐더러 시골에는 더 더욱 폐교되는 학교가 많아지고 있는가 하면 이처럼 박물관이나 팬션 등 잘 활용하는 곳이 많이 있다. 어느 지역이든 이처럼 잘 활용하여 문화예술의 집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둘러보면 내가 살고 있는 영암의 실정과 정서에 늘 욕심만 부리며 돌아오게 된다. 또한 도시는 교실이 부족해서 학교를 증축 또는 신축하는가 하면 이러한 농촌의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과 함께 간절한 욕심을 품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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