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서면
(이음전)
가난하던 신혼에 우리가 인수한 집은 인근 남자들을 상대로 막걸리를 팔던 오두막이었다. 혼자 살던 주모를 찾아 술꾼이 그칠 날 없던 전성기를 어른들은 아직도 기억하는 그 집. 크고 작은 돌멩이가 앙상하게 드러난 좁은 마당을 처음 만나던 순간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장마로 흙이 사정없이 쓸려갔어도 가토(흙을 더해주는)는 여자 혼자서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다. 주막에는 변변한 화장실조차 갖추어 있지 않아서 거나하게 술이 오른 사내들은 마당의 귀퉁이 여기저기에서 볼일을 보았다지 않는가? 그 지점이 현재의 어디쯤인지 알고 있는 나는 웬지 지린내가 풍기는 것 같아 킁킁 냄새 맡는 시늉을 해본다. 여름날 성큼 자라있는 잡초를 지겹도록 비틀어 뽑으면서도 무성함은 그때 남자들이 뿌린 거름의 효과 때문이라고 궁시렁거렸다.
옛 주막으로 이사 와서 맨 처음 한 일은 마당의 돌멩이를 호미로 캐는 작업이었다. 나는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를 키우는 젊은 엄마였다. 반쯤 드러나 더 위험한 돌 마당에서 뒤뚱거리다 넘어지고 무릎이라도 깨면 어쩌나 애가 탔다. 첫아기에게 쏟는 지극함을 돌멩이 캐는 호미질에서 주변 분들도 눈치챘다며 두고두고 화제로 삼았다. 손바닥만한 방외에 아기가 걸음 연습을 할 수 있는 곳이란 오직 마당뿐이었다. 잔챙이 돌멩이 한 개 없이 포슬하고 보드라워진 흙을 밟아서 고르는 일도 며칠이나 걸렸다. 더없이 귀한 아가를 안아다 털썩 마당에 내려놓아도 이젠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저만치 간격을 두고 팔을 벌려서 어서 엄마 쪽으로 오라고 소리치면 비틀거리면서 드디어 도착, 해냈다는 환희로운 얼굴로 내 품에 달려들어 안겼다. 서너 자국을 힘들게 떼어 놓다가 점점 꼿꼿이 완벽했던 아기의 걸음걸이. 온전하지 못한 작은 한 발자국 떼어놓기가 마당에서 비롯되고 너른 세상까지 향했다는 의미를 더하면 새삼 특별하다. 농기구가 아무렇게나 세워진 삭막한 곳도 마당이었다. 그 점이 싫었지만 마땅한 창고도 빈터도 없는 구조였다. 요긴하지만 남루함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를 어디론가 숨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집에 들어선 사람들의 눈에 가장 먼저 띈다는 점이 특히 거슬렸다. 보금자리의 마당을 깔끔하게 꾸미고자 하는 애정이 우리가 처음으로 산 오두막으로 이사 왔을 때 더욱 왕성해졌다.
마침내 새집을 건축할 수 있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납작한 오두막을 뭉개고 몇 날 며칠 돌멩이를 캐낸 마당도 사정없이 밀어버렸다. 번듯한 집이 그 자리에 세워지고 내부가 완공되어 마당과 외관에 초점을 맞추는 시기였다. 어떤 방향으로 마당을 조성하면 좋을까를 의논했는데 배드민턴을 칠 수 있을 만한 크기라면 좋겠다는 바람이 일치했다. 순조롭게 터를 닦은 후 잔디까지 심어서 곧 초록이 어우러진 풍경은 감탄을 자아낼만했다. 콘크리트 담장보다 백송이며 주목 나무로 단장한 울타리도 마음에 들었다. 적당한 크기의 주목을 골라 성탄 맞이 트리를 반짝이게 꾸미는 일도 연례행사였는데 그때마다 이웃들의 신기한 듯한 시선은 잊히지 않는다. 그토록 눈엣가시였던 각종 농자재도 창고로 들여졌다. 원 채에 비견해 마당이 왜소해 보였다면 점점 나무가 자라고 푸르러지므로 오두막에 살았던 나는 웅장한 조화라는 생각이 다 들 정도였다.
은신처인 꽃밭 속에서 뒹굴다가 마당을 가로질러 어슬렁어슬렁 느린 걸음으로 임신한 고양이가 나타났다. 힐끔 내 눈치를 보며 수돗가에 받아놓은 물로 타는 목을 축일 요량인가보다. 현관을 나서면 하루에도 몇 번씩 으레 만나는 또 다른 가족이 틀림없다. 식구가 단출해서 고독한 기분 없지 않은데 우리 마당에 출현하는 모든 생명체가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므로 훨씬 그 마음도 덜하다. 몰려온 까치 떼가 단풍나무 가지가 부러질 것 같이 위태롭게 곡예 하는 날도 실컷 먹으라고 쌀을 퍼다 흩뿌렸다. 그러나 짐승들은 분명 나를 극도로 경계한다. 동물들과 원활하게 교감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부드러운 인성의 소유자 같아 한 편 부끄럽다.대기가 잔잔한 날이면 갈망대로 초록 마당에서 남편과 어김없이 배드민턴을 즐겼다. 대결에서 이기면 목이 터질 듯 신나는 고함을 지르고 둥둥 풍선처럼 뿌듯함이 하늘로 떠올랐다. 둘 다 실력이 늘어서 래리가 길어지면 부부 대항전에도 나갈 수 있겠다고 큰소리 치며 하루를 마감하는 날이 많았다.
늙어가는 우리와 같이 어느덧 마당도 따라 나이가 들었다. 잔디밭에 쪼그리고 앉아서 잡초를 골라 뽑아내던 열정과 기운도 확연하게 줄었다. 어디든 좋은 꽃이나 나무가 있다면 달려가서 캐다 옮겨심은 여렸던 나무들이 고목의 느낌이 나는 듯하다. 아장아장 마당에서 걸음마를 떼던 아들도 중년이 되어 세상 속으로 나아가 고군분투 중이다. 한 해도 거르지 말아야 하는 가지치기도 걸핏하면 미루고 때로는 아예 거르기도 한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주목 가지들은 제 때에 이발을 못한 사람처럼 보기에 답답하고 주인의 게으름을 세상에 소문내는 듯 하다. 키 작은 꽃을 앞쪽에 심고 큰 나무 종류는 뒤쪽에 섰던 배열의 순서도 세월이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수분이 과해서 그대로 주저앉은 꽃도 있거니와 큰 나무의 그늘에서 볕을 그리워하다 시나브로 사라진 꽃들도 적지 않다. 큰 사람 휘하에서나 큰사람으로 키워질 수 있는 진리를 마당에서 화단을 보며 다시 새긴다. 큰 나무 아래에서는 어떤 식물도 곡식도 연약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잡초의 생명력에 혀가 절로 내둘렸다. 농사 틈틈이 뽑고 또 뽑아도 완전한 제거가 어려워 나는 맥없이 백기를 들고 말았다. 마당을 가꾼 햇수로 이 십여 년이 흐른 후다. 오랫동안 고민했으나 잔디 마당에 제초제를 뿌리던 날은 정말 착잡했다. 잡초는 물론이거니와 잔디까지 누렇게 말라 죽는 일은 눈 깜짝할 사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헌 마당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그곳에 서면 여전히 저 멀리 교회가 보여서 나는 설렌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성경을 끊임없이 학습하는 사람들. 믿지는 않더라도 사랑의 말씀을 날마다 전하는 목사님이 계시는 곳이어서 괜스레 교회 근처에는 다정한 기운만 감도는 듯하다. 우리 농장 입구이기도 해서 오며 가며 훔쳐본 교회 안에는 연로한 신자가 스무 명이나 될까? 집을 건축할 때 주변 분들은 한목소리로 정 남향인 점을 들어 명당이라며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교회와 아이들이 뛰노는 청명한 재잘거림이 운동장 가득한 초등학교를 날마다 바라볼 수 있어서 정남향인 것만큼 나는 흡족하다.
엊그제 같은데 건축한 햇수가 수십 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보수는 당연한 일일까? 사람도 집도 오래되어 자꾸만 삐거덕거린다.살살 어르고 달래며 살아야 하리. 주변에는 그동안 세련되고 예쁜 새집들이 줄줄이 지어져서 상대적으로 우리 집과 마당은 후줄근하다. 최근 몇 년은 연달아 수리에 집중했지만 새집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둔탁한 농촌 살이를 윤기나게 이끄는 길잡이가 나는 마당도 한몫한다고 믿었던것 같다. 오랫동안 긍지며 자랑이었는데 잡초에 패배한 후 내린 결단으로 초록 잔디가 자취를 감춘 이후에는 아쉬움도 그만큼 컸다. 하지만 새댁시절의 푸른 꿈과 치열했던 삶이 담뿍 담겨진 곳이다. 머릿속이 산만해져 사색해야할 장소도 늘 꽃이 있는 마당이었다. 장성했지만 결코 잊고 싶지않는 아들의 성장 스토리가 고스란히 배어있는 햇살 쏟아지는 마당에서 오늘도 무심히 나는 서성인다.
(2월 11일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