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사업자 재신고 과정에서 신고 회피...불법 하도급 온상으로 지적
엔지니어링업계에서 하루 아침에 1000여개 업체가 자취를 감췄다. 말 그대로 정부 공식 통계편람에서 사라진 것이다.
2일 한국엔지니어링협회에 따르면 2010년 총 4592개에 달하던 업체들이 2011년 3031개, 2012년 3635개사로 2010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1년 사이에 1500여개 업체가 사라진 후, 2년이 지난 현재까지 1000여개 업체들이 종적을 감췄다.
원인은 2011년 5월 엔지니어링진흥법 개정에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기존의 ‘엔지니어링 활동주체’로 신고했던 업체들을 ‘엔지니어링 사업자’로 변경하며 신고기준을 바꾼 후 재신고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빚어졌다.
산업부의 방침은 고였던 물을 일시적으로 정화하는 데 목표가 있었다. 소위 ‘좀비업체’와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들을 걸러 낸다는 것이다.
사업자 재신고는 사실상 묵혀 뒀던 서류를 정리하는 개념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신고기준이 강화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준은 약화됐다.
과거 활동주체로 신고할 때는 ‘기술사 1명과 기술자 5명’을 최소기준으로 요구한 반면, 재신고 기준은 ‘기술사 1명과 기술자 3명’ 혹은 ‘기술자 5명’이다. 기준이 대폭 완화된 셈이어서 기준강화를 빌미로 업체들이 신고를 꺼릴 이유는 없다.
실제로 산업부가 기준을 완화하면서 한국엔지니어링협회에 신고한 기술자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2010년만 해도 7만628명에 달했던 신고 기술자 수는 사업자 신고기준이 바뀐 이후 2011년 4만23명으로 급감했다. 2012년에 신고한 기술자수도 4만6544명에 불과하다. 이는 2003년 기술자 수(4만6152명)와 비슷한 수준으로 2004년(4만9819명) 이후 2010년까지 기술자 수가 4만명대를 기록한 사례는 없었다. 시장 규모가 그에 맞춰서 꾸준히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수 엔지니어링업체들이 사업자 등록에 필요한 최소 인력만 엔지니어링협회에 신고하는 상황에서 산업부가 2011년 기준을 완화하자 협회에 신고하는 기술자 수는 1년 만에 43%나 줄어들었다.
이처럼 기준이 완화된 가운데도 사업자 신고를 여전히 미루는 업체가 1000여개나 달한다는 사실은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 협회 “페이퍼컴퍼니 600여개, 곤란하네...”
산업부는 한국엔지니어링협회를 통해 미신고 업체들에게 5차례에 걸쳐 신고 독려 공문을 일제히 발송했다. 당초 산업부는 작년 말까지 재신고를 독려한 후 미신고업체에 대해서는 1차 경고에 이어 영업정지, 신고 말소 순으로 제재 강도를 높인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들 미신고 업체에 대한 산업부의 대응은 약간 미적지근한 상태다. 아직도 미신고 업체들이 1000여개에 달하다 보니 이들 업체들의 신고를 일제히 말소시키는 것에 정부가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협회는 올해 안에 미신고 업체들을 털고 간다는 목표다.
한국엔지니어링협회 측은 “일단 미신고 1000여개 업체 중 400여개 업체는 국세청에 신고가 말소된 업체들이기 때문에 실제로 신고 대상 업체들은 600여개 정도”라며 “이들 업체 상당수가 현재 일감이 없어 기술자들을 내보낸 후 ‘페이퍼컴퍼니’ 형식으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페이퍼컴퍼니’로 존재하다 보니, 재신고 과정에서 아무리 신고기준이 완화된다고 한들 고용부담이 발생해 재신고를 꺼린다는 것이다.
◆ 음성화된 업체들 ‘불법 하도급’ 온상
물론 협회에 미신고 상태인 업체 모두가 ‘페이퍼 컴퍼니’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오히려 ‘페이퍼 컴퍼니’보다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크다.
음성화된 상태로 대형 엔지니어링업체들의 하도급을 받아 일하는데, 다수가 발주처 승인 없이 불법 하도급 형태로 일하는 업체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대형 엔지니어링업체가 사업을 수주한 이후 발주기관 사전 승인 없이 적격심사 대상 기술자를 참여시키지 않고 자격이 없는 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한 예로 대형사 A가 발주처 승인 없이 불법으로 하도급을 준 사례를 보면 7개 하도급사 중 5개사가 한국엔지니어링협회에 사업자 신고를 하지 않은 업체들이다. 이들 업체는 약 15억원 규모의 사업에서 총 5억8000만원 가량을 수주해 교통과 도로 및 공항 분야, 토목구조, 항만해양, 도시계획, 건축, 조경, 환경 분야 업무를 수행했다.
사업 수행 업체가 바뀌다 보니 기술자도 적격심사 당시 기술자의 경력에 훨씬 못 미치는 기술자가 사업을 맡았다.
당초 적격심사 과정에 심사받은 교통분야 책임 기술자의 경력은 29년9개월이었지만, 불법으로 하도급을 받은 업체의 담당 기술자 경력은 13년10개월에 불과했다. 참여 기술자 역시 당초 경력은 19년이었지만, 하도급 과정에서 6년10개월 경력의 기술자로 바뀌었다.
문제는 이 같은 불법 하도급 실태가 발주처의 묵인 아래 이뤄진다는 점이다. 위의 사업에서도 하도급사의 기술자가 공정 보고회의나 자문회의 등에 참여했다. 발주처는 하도급사 기술자와 일을 하며 적격심사 당시의 기술자 경력보다 훨씬 낮다는 점을 알았지만 묵인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하도급법이 없어서 이 같은 음성적으로 발생하는 하도급이 상당히 자주 발생한다”며 “이를 발주처도 알고 묵인해주는 것이고 여기에는 대가성 로비가 오가기도 한다. 음성적으로 일하는 업체들은 사시상 로비의 온상”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엔지니어링협회는 지난 5월 실사조사를 거친 자료를 바탕으로 시장의 음성화를 양산하는 미신고 업체 정리작업을 본격화할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자격이 말소된 업체는 1년 동안 사업자 신고가 불가능하다.
최지희기자 jh606@
〈앞선생각 앞선신문 건설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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