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비단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팽성 신대리 - 신왕2리 - 마안산 입구 - 구진마을 - 기산리 - 평택호 혜초비
짧으니 수월하게 얼른 걷자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고픈 배를 채우자면 빨리 '여선재'까지 가야했죠. 걸음이 절로 빨라 지더군요. 위장이 보내는 강력한 신호는 정말이지 느낄 때마다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이야 누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때까지 참고 있겠습니까. 하지만 느껴보시면 새삼 내 입에 밥이 들어온다는 것이 고맙게 느껴지죠. 물론 건강에도 좋구요. ^^
'여선재' 앞에는 쉬는 날이라는 글이 붙여져 있더군요. 아~~~~~~~아아악~~~~ 안돼~~~~~.
주린 배를 부여잡고 소리를 질러대는 위장을 다독이며 다음 표지를 봤습니다. 지금까지 섶길을 보면서 보지 못했던 산으로 이어지는 계단길...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흑흑..
마안산 정상까지 걸어올라왔습니다. 힘들었지만 제대로 된 숲길을 걷는 건 너무 좋았습니다. 살짝 호흡이 거칠어지는 건 그 동안 평평한 섶길을 걷는 것에 익숙해졌는데 짧지만 오르막을 만나서입니다. 호젓한 산길을 홀로 걷는 게 참 좋더군요. 누군가 한 사람쯤 같이 도란 도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어도 좋을 것 같아요. 아직 섶길을 다 걷지는 않았지만 비단길이 가장 좋았습니다.
마안산을 거의 내려와 구진마을로 가기 전에 있던 표지입니다. 실이 끊어져서 거꾸로 되어 있더군요. 하마터면 반대편으로 갈뻔 했습니다. 길이 세 갈래 인데 손으로 제대로 잡고 확인을 하는데 나머지 두 길중에 어디인지 몰라 중간에 있는 길로 내려갔더니 절개지가 나와서 다시 되돌아 와야했죠. 다시 한번 꾸준한 관리가 참 힘들구나 싶었습니다.
마안산을 내려와서는 긴 들판이 이어졌습니다. 숲속에서 사각 거리며 걷다가 사방이 탁 트인 논 한 가운데로 난 길을 저벅 저벅 걸으니 두 길이 극명하게 대비가 되면서 시원하더군요. 비단길은 정말 기막히게 길을 선정하신 것 같습니다.
이제 평택호 혜초비까지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힘이 불끈 ^^
하지만 역시 마지막까지 꼬이더군요. 화살표 바로 옆에 창살로 된 문이 잠겨 있길래 모서리를 지나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앞쪽에 공사장이 있는 것이 보였지만 우회로가 있겠지 하며 한참을 걸어 공사현장을 지나치려는데 작업을 하시던 분이 막더군요. 지나갈 수 없다는 겁니다.
다시 땡볕을 받으며 갔던길을 돌아 바로 이 표지석 앞에 섰습니다. 핸드폰 배터리는 3%, 장순범님께서는 통화중, 지도를 찾아보니 잠겨있는 문을 따라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가야 하는 거였죠. 위험요인이 있는지 확인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넘어가기보다는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빙 둘러 돌아서 가야했죠. 돌아가는 건 괜찮은데 원래 설정된 길이 평택호를 끼고 도는 길이라 참 보기 좋았을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겨우 겨우 도착해서 혜초비를 찾느라 헤멨습니다. 배터리는 1%, 마지막 사진을 찍고 나자 10초도 되지 않아 핸드폰이 잠들더군요. 그래도 마지막까지 사진을 찍어서 다행입니다. 덕분에 이곳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고생을 좀 했습니다. 버스편을 물어보러 들어간 카페 사장님이 곧 버스가 오는데 버스 정류장까지 2 Km 걸어가야 하고 그걸 놓치면 한참 기다려야 하니 자신의 차로 데려다 주겠다고 해서 고마운 호의를 받았습니다.
다 걸었지만 정말 오늘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지도는 놓고 왔고, 평택호 횡단도로는 건널 수 없다고 하고, 찾아간 식당 두 곳 중 한곳은 예약해야하는 곳이고 다른 곳은 휴일. 게다가 지금까지 없던 산길에 표지판 줄이 끊어져 길을 잃을 뻔 했고, 마지막 표지석이 지시하는 길은 창살문으로 막혀 있고, 배터리는 간당간당 정말 화끈한(?)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잘 걸을 수 있었던 건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항상 도와주시는 장순범님, 평택호 횡단로의 가교가 있다고 알려주신 노양리 동네 어른분들, 평택호 횡단로를 가로질러 신왕2리 마을회관까지 데려다 주신 공사장 반장님, 얼음을 듬뿍 담아주신 '장모사랑' 사장님, 버스 타는 곳까지 직접 차로 데려다 주신 카페 사장님.
마안산 숲길을 걸을 때 앞서 이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발자국이 만들어놓은 길은 그 어떤 표지보다도 분명했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분들의 도움이 바로 이런 표지와 같겠죠. 길은 혼자 걷지만 항상 많은 분들이 이뤄놓은 것들에 감사하며 걷고 있습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