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하르트 요제프 폰 로엔그람, 줄여서 라인하르트 2세는 알렉산더 1세의 장손, 세바스타인 1세의 장남이었으며 아버지가 우주선 사고로 죽자 그 뒤를 이어 황제로 즉위한 인물이었다. 대수로는 로엔그람 왕조의 제4대 황제로서 동시에 통치하는 로엔그람 왕조의 실질적인 마지막 황제이자 동시에 은하제국의 실질적인 마지막 황제이다.
흥미로운 점은 라인하르트 2세는 로엔그람 왕조의 황제들 중에서 이름답게 라인하르트 1세를 가장 많이 닮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래서 거기서 오는 외모와 카리스마, 그리고 라인하르트 1세와는 달리 수려한 말빨과 친화력 등으로 인해서 개인적으로 라인하르트 2세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고 아버지인 세바스타인 1세 못지않게 유능하였으며 나름대로 젊은 편이었기에 즉위 당시에는 많은 기대와 인기를 받았고 전반적인 통치도 준수한 편으로 로엔그람 왕조의 황제들과 비교하면 평균에서 처지는 편이지만 골덴바움 왕조의 황제들과 비교하면 그를 능가하는 명군은 얼마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로엔그람 왕조 치하 은하제국의 실질적인 마지막 황제가 된 이유는 간단하게 그의 사상 때문이었다. 그는 증조부보다도 더한 전제군주제 옹호자로 성인이 되기 전부터 전제정치를 동경하였다. 물론 로엔그람 왕조의 정치는 입헌정치와는 거리가 먼 전제정치이기는 했으나 기본적으로 로엔그람 왕조의 전제정치는 그 밑에 공정성이라는 바탕을 깔고 시작한다.
이는 골덴바움 왕조와 같은 정치를 재현하고자 않은 라인하르트 1세와 건국공신 세대들이 내린 결론으로 때문에 에시를 들어서 은하제국의 황제는 원칙상 법에 구애되지 않는 법을 초월하는 존재였으나 라인하르트 1세부터 알렉산더 1세, 세바스타인 1세는 최대한 법을 지켜가며 통치를 하였다.
그러나 라인하르트 2세는 이 대전제를 부정하였다. 물론 그도 폭군이나 암군은 황제답지 않은 황제라고 여기며 그런 자가 황제가 되어도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황제가 잘 통치하면 대중들이 잘 따르는게 아니라 대중들이 잘 따르고 그 대가로 황제가 잘 통치해야 한다고 믿었다. 즉 복종이 통치보다 우선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라인하르트 2세의 사상에서는 설령 황제가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절대권력을 쥐고 휘두르더라도 정치만 잘 하면 용인되며 신민들은 이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건국세대의 사상과는 정면대치되는 것으로 절대권력의 폐해를 깨달은 그 세대가 애써 절대권력을 쥐되 절대로 마구 휘두르지는 못하게끔 이런저런 장치를 마련해두었는데 라인하르트 2세는 결과만 좋다면 상관없다며 부정한 것이었다.
이 문제는 즉위 전부터 불안요소였지만 그래도 초기에는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알렉산더 1세가 3년 전, 퇴위하긴 했어도 아직 살아있었던데다 80년 넘게 재위한 그의 존재는 실로 어마어마하였기에 라인하르트 2세도 마음대로 정치를 할 수 없었고 또한 자신의 사상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마음대로 해선 안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때문에 라인하르트 2세 치세 초기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다. 물론 전대의 황제들에 비하면 억압적인 황제가 즉위한 만큼 그 반동으로 자유파의 세가 증가하기는 했어도 아직까지는 제국을 뒤엎을만한 힘은 없었고 그들도 대다수는 아직은 제국을 뒤엎을 생각이 없었으며 제국민들은 충성하였다.
심지어는 우주력 860년대 말부터 나이 많은 황제들의 치세 속에서 40대라는 젊은 황제의 등장으로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여러 새 정책이 실행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무엇보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제국정부 또한 서서히 새로운 세대, 정확히는 라인하르트 2세와 비슷한 세대가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며 제국 수뇌부 내에서도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며 젊은층의 기대감이 올라갔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분위기는 우주력 888년, 알렉산더 1세가 사망하면서 끝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