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서울병원 갑상선암 명의 최준호교수 / 얄개 ・ 2019. 6. 8. 7:11
갑상선암은 암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갑상선암이 천천히 자라고 예후가 좋다는 걸 두고 마치 치료를 안 해도 되는 병인 양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유방내분비외과 최준호 교수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또박또박 힘이 들어갔습니다. 명칭은 유방내분비외과이지만 엄밀하게 최 교수의 전문 진료 분야는 내분비외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갑상선, 부갑상선, 부신 등 내분비계 질환의 수술에 특화된 과가 바로 내분비외과이지요. 최 교수는 그중에서도 특히 갑상선을 주로 보고 있습니다.
착한 암이니 거북이 암이니 하더라도 갑상선암은 어디까지나 암입니다. 어떤 암이든 몸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주변 조직을 파괴하며 중요 장기에 원격전이를 일으킵니다. 갑상선암도 폐와 뼈에 전이되면 웬만한 치료책이 듣지 않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아주 힘든 병이 될 수 있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죠. 천천히 자라고 예후가 좋다는 걸 확대해석하면 곤란합니다.”
최준호 교수는 갑상선암에 대한 과잉진료 논란이 빚어지면서 오해와 혼란이 가중되었다는 견해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잇따른 언론 보도에 환자들의 혼란이 가중되었다는 뜻입니다.
“당장 급하게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아예 수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게다가 수술을 마냥 미룰 수도 없습니다. 갑상선암도 많이 진행되면 듣는 약이 없습니다.
고용량 방사성 요오드 요법, 방사선치료, 항암화학치료, 면역요법 등등 그 어떤 것도 수술 시기를 놓쳤을 경우에는 듣지 않습니다. 적절한 때를 놓치면 현재 의료기술로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는 거죠. 수술할 수 있는 시기에 수술했을 때 예후가 좋다는 뜻이지, 숫제 수술을 안 해도 괜찮은 병이라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무턱대고 버티다가 뒤늦게 수술하게 되면 치명적인 결과까지는 아니라 해도 광범위한 수술 범위와 합병증의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쪽만 절제하면 될 것을 양쪽 모두 절제해야 하고, 림프절도 제거해야 하며, 평생 갑상선호르몬도 복용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부갑상선이나 성대 신경이 손상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흉터도 당연히 커지는 등 후유증도 커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생존에는 문제가 없더라도 삶의 질은 확연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기에 발견되는 비율이 높긴 하지만, 진행된 암이라서 광범위하게 절제해야 하는 케이스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천천히 자란다지만 1~2년만 그냥 둬도 전이가 돼서 그렇게 되는 환자가 생기기도 합니다. 당장 어제만 해도 젊은 남자 환자가 여섯 시간에 걸쳐서 양쪽 목 부분을 절제하는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갑상선암의 종류로는 유두암, 여포암, 수질암, 미분화암 등이 있습니다. 거의가 유두암이고 다음으로 여포암이 흔하지요. 이 둘은 암세포가 정상세포의 모양과 기능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 분화암이라서 예후가 좋은 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만져지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면 중년 여성의 절반 정도는 갑상선 결절(혹)을 갖고 있습니다. 결절이 암일 확률이 낮다지만 총인구를 놓고 비율을 따지면 절대적으로는 수가 적지 않죠. 특히 고령에선 굉장히 흔해요. 천천히 진행되니까 갑상선암이 아니라 다른 병으로 먼저 사망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죠. 고령까지 생존한 경우는 검사를 하면 할수록 갑상선암이 많이 발견됩니다.”
갑상선 초음파 검사는 갑상선 결절의 존재, 위치와 수, 형태와 크기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견된 결절이 암으로 의심되면 감별을 위해 미세침 흡인 세포검사를 실시하는 것이죠. 가느다란 주삿바늘로 결절에서 세포를 뽑아낸 다음 현미경으로 관찰해 악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포암의 경우는 이것만으로 양성 종양과 구분하지 못합니다.
“바늘로 조직을 얻더라도 주변의 정상 갑상선 조직을 전체적으로 같이 보지 않으면 양성 종양인지 여포암인지 정확하게 감별 진단을 못해요. 세포가 똑같이 생겼거든요. 수술을 해야 100%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어요. 의심되는 여포 종양 중에서 20%, 많게는 30% 정도가 여포암으로 나와요.”
여기에서 환자의 불만과 오해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암이 아니라고 하면 좋아할 일이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괜히 수술했다는 생각도 들게 마련이기 때문이죠.
“의사로서는 양성이라서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죠. 암으로 발전하기 전에 미리 뗐으니까 더욱 좋다고 말이죠. 환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수술을 안 해도 되는데 멀쩡하게 살던 사람을 괜히 손댔다고 불만을 토로할 수 있어요. 억울하다는 기분이 들겠지만 찬찬히 득실을 따져볼 필요가 있어요. 여포암은 유두암보다 예후가 나쁩니다. 유두암은 주변 림프절을 통해 천천히 국소적으로 번지는 데 반해, 여포암은 혈관을 타고 폐나 뼈로 원격전이를 잘하거든요. 경과 관찰만 한다고 확진할 방법은 없고, 세포 형태는 암으로 발전하는 종류로 의심되며, 일단 여포암이 되면 원격 전이를 잘해서 상대적으로 위험하다고 할 때, 어떤 선택이 안전하고 합리적인지 잘 생각해 봐야죠.
게다가 여포 종양은 초기 여포암을 포함해서 반절제가 표준 치료입니다. 환자로서도 큰 위험 부담이 없어요. 한쪽 엽만 수술하면 당연히 신경 손상이나 부갑상선 기능 저하 같은 합병증의 위험도 전절제술보다 낮죠.”
최준호 교수는 환자가 어떤 선택을 할 때 전문가의 의견을 귀담아 들을 것을 강조했습니다. 주변에 흘러 다니는 이야기만 듣고 섣불리 판단하면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 그냥 지켜볼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전문가와 상담 후, 의학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한다고 했습니다.
최준호 교수는 이 대목에서 ‘상식이 통하는 클리닉’이라는 진료철학을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의사와 환자가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 상식선에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전문지식의 전달과 설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의사가 환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문지식만 전달하거나, 반대로 제대로 된 지식을 말하지 않고 결정된 결론만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환자가 상식선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환자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전문가만의 의사결정을 강요해서는 안 되죠.”
최준호 교수가 환자 삶의 질에 관심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가 가능했습니다. 갑상선암이 당장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지만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삶의 질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환자로서는 건강하게 잘 살기위해 미용과 기능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합니다.
“갑상선암 환자는 여성이 대다수예요. 젊은 여성도 많은 편이죠. 살아갈 날이 많기 때문에 첫 수술이 아주 중요해요. 안전하고 완벽하게 수술해서 평생에 걸쳐 재발하지 않고 후유증이나 합병증으로 고생하지 않도록 해야죠. 그리고 장기간 추적관찰하면서 불편함이나 어려움은 없는지 체크하고 해결해야 해요. 예후가 좋은 만큼 환자 삶의 질에 더욱 중점을 둬야 합니다.”
최준호 교수가 원년 멤버로 참여해서 개발한 수술법은 양측 겨드랑이–유방 접근(Bilateral Axillo-Breast Approach, BABA) 내시경 갑상선 수술입니다. 바바 내시경 수술은 목이 아니라 겨드랑이와 유륜 부위를 작게 절개하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흉터가 남지 않습니다. 목을 작게 째는 것이 아니라 미용적인 차원에서 절개 부위를 바꾼다는 점에서 최소 침습이라기보다는 원격 접근에 의한 종양성형술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을 절개하는 전통적인 수술과 비교할 때 치료 성적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목 절개술을 해도 흉터가 안 보일 수는 있어요. 흡수사를 쓰고 매듭이 밑으로 들어가게 꿰매면 매끈하게 선만 남습니다. 그런데 가느다란 선만 남는 환자는 연령대가 대개 40대 후반 이후입니다. 젊은 사람은 흉이 크게 남을 수 있습니다. 피부가 하얀 환자는 빨갛게 남죠. 물론 젊은 사람도 조기에 레이저 치료를 하면 흉터를 줄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면 목소리를 제대로 빨리 내기 위해서 조기재활을 해야 하는데, 수술 후 초반에 목을 많이 움직이면 흉터는 남을 수밖에 없어요.”
최준호 교수는 모든 환자에게 내시경 수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권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환자를 위해 여러 가지 옵션을 구비하고 있느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 최 교수의 생각입니다. 환자가 원하고 필요한데 방법이 없거나 못 한다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의미입니다. 특히 최 교수는 바바 내시경 수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로봇수술까지 시행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손목 관절처럼 자유자재로 꺾어지는 로봇 팔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거든요. 더욱 선명하고 확대된 시야도 확보할 수 있고요. 내시경 수술의 기술적인 제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체구가 큰 환자나 남성 환자, 암의 위치가 비교적 깊거나 주변 림프절에 전이가 의심돼서 면밀한 수술이 필요한 경우 등에 적용할 수 있어요. 현재 삼성서울병원 갑상선센터는 광범위 갑상선 수술뿐 아니라 내시경 수술과 로봇수술까지 모두 아울러서 시행하고 있고, 제가 여기에 일조했다는 점에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최준호 교수는 진료뿐 아니라 연구에도 많은 에너지를 투여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에 특별연구원으로 2011년 9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장기연수를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의료 환경에서는 외과 의사가 기초연구를 하기가 사실 어려워요. 임상 업무가 너무 많거든요. 환자 진료하고 수술하면 일주일이 다 가죠. 암 기초연구를 할 때는 암 조직을 얻어서 바로 프로세싱을 해야 해요. 외과 의사들이 관심을 갖고 수술 현장에서 조직을 모으고 연구 아이디어를 내는 게 굉장히 필요하죠.
그리고 연구의 기초, 예를 들면 세포와 동물을 다루고, 데이터를 내서 분석하고, 기계 장비를 세팅하는 능력도 필요해요. 대부분의 시간을 기초연구에 필요한 내용을 익히는 데 보냈고 수료증까지 취득했어요. 내분비외과 쪽으로 특화된 실험실을 꾸리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죠.”
최준호 교수가 기초연구에 몰두한 데는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최 교수가 출원해서 획득한 특허와 관련해서 당장 쓰임새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최 교수가 따낸 특허는 자성 나노입자를 이용한 갑상선암 진단과 치료에 관한 것으로 박사학위논문의 주제이기도 했는데요, 지속적으로 연구를 해서 실용화 단계까지 나가려면 동물실험을 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는 등 기초연구의 뒷받침이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자성 나노입자는 오래 전부터 자기공명영상에서 조영제로 써 왔어요. 아주 작은 산화철가루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세포 내에 자유자재로 돌아다니죠. 다만 독성이 있는 탓에 생체적합 폴리머로 싸서 코팅을 해요. 그 폴리머에 화학적 기법으로 특정 항체를 심을 수 있어요. 요오드 펌프에 대한 특이 항체를 폴리머에 꽂아서 몸속에 넣으면 요오드를 섭취하는 펌프를 가진 세포에 가서 들러붙겠죠. 갑상선암이나 갑상선세포는 다른 세포에 비해 월등히 많은 요오드 펌프를 가졌잖아요. 결과적으로 자성 나노입자는 자기공명영상의 조영제 역할을 해 자기공명영상을 찍으면 그게 들러붙은 기관을 아주 세밀하고 정확하게 보여주게 됩니다. 몇 mm 단위로 말이죠.”
“그뿐만이 아니에요. 자성 나노입자를 교류 자장에 넣으면 1초에 몇 천, 몇 만 번 단위로 진동을 해요. 교류는 흐르는 방향이 주기적으로 바뀌는 거잖아요. 주파수를 올리면 쇠공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동하면서 순간적으로 고열이 발생해요. 자성 나노입자가 들러붙은 조직의 세포가 죽게 되죠.”
굉장히 효과적인 갑상선암 진단 및 치료 장비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방사성 요오드가 하던 일과 비슷해 보이지민, 그보다 훨씬 더 정확한 자기공명영상 장비와 훨씬 더 치료 효율이 높은 열 치료를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미 독일과 일본을 중심으로 자성 나노입자 연구가 많이 진행돼서 데이터도 축적되었는데, 다만 갑상선암 쪽으로는 아무도 연구를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최준호 교수가 세계 최초로 갑상선암에도 적용해 특허까지 획득했다는 말이었습니다.
“제가 기상천외하게 새로운 것을 발명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다 나와 있는 것을 조합해서 갑상선암에 원용한 것이죠. 독성 없이 안전하게 대사할 수 있는 생체적합 물질의 종류와 용량, 코팅하는 방법 등은 많은 논문이 나와 있습니다. 사용되는 물질 하나하나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이고 이미 다 FDA의 승인을 받은 것입니다. 다만 그걸 조합한 아이디어가 새롭다는 것이고, 적응증에 대한 특허인 것이죠.”
아직은 연구단계에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최준호 교수는 방사성 요오드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합니다. 방사성 요오드보다 합병증이 적으면서도 진단과 치료의 효용과 효율이 더 높은 물질을 합성하고 장비를 개발하는 것이 의사이자, 의학자로서 주된 관심사이자 목표라고 힘주어 강조했습니다. 이런 다짐은 최 교수 개인의 기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갑상선암 환자를 포함해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약속처럼 들렸습니다.
최준호 교수의 말을 듣고도 얼른 수긍이 되지 않던 차에 더욱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연구실 한쪽 벽에 놓인 전자기타를 본 것이지요. 어떻게 이런 것까지, 질문하는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습니다. 최 교수는 학생 때부터 취미로 기타를 쳤지만 자랑할 솜씨는 아니라면서 멋쩍게 웃었습니다. 몇 소절을 들었는데 문외한의 귀에도 예사 실력은 아니었습니다.
“아들이 드럼을 배우는데 제가 반주를 해주려고 조금 연습하는 거예요.”
무엇보다 반주라는 단어가 가슴에 확 와 닿았습니다. 반주라는 것은 나 혼자 잘해서 돋보이면 안 되는 것이니까요. 어디까지나 다른 연주자를 도와주는 것이고 하모니가 생명이란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최준호 교수가 여러 번 강조했던 진료 원칙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주 길게 봐야 하고, 그래서 더욱 의사와 환자의 호흡과 하모니가 중요한 갑상선암 치료. 최 교수의 반주라면 아주 길고 힘겨운 연주곡도 무사히 그리고 훌륭하게 끝마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삼성서울병원 갑상선암 명의 최준호교수|작성자 얄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