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주인공 캐리가 멋진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곳은 바로 뉴욕 공공도서관이었다. 인기 칼럼니스트이자 스타일리스트인 뉴요커 여성이 웬 도서관에서 결혼이냐고 반문할 만하지만 이 도서관은 지난해 뉴욕 웨딩 매거진이 ‘뉴욕 최고의 결혼식 장소’로 선정할 만큼 꿈의 예식장으로 꼽히고 있다. 내부가 화려하고 값비싼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어서가 아니다. ‘뉴요커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공장소’라는 상징성이 도서관의 주가를 한껏 끌어올렸다.
미국 도서관은 하드웨어(건물)와 소프트웨어(운영체계)에서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①시애틀의 랜드마크인 시애틀 공공도서관 전경(사진 제공=건축사진가 남궁선).
뉴욕 공공도서관은 대중과 호흡하는 미국 도서관의 대표적 사례다.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 초판본, 토머스 제퍼슨의 ‘미국 독립선언문’ 초고, 조지 워싱턴의 고별사 친필본 등 4000만 점 이상의 자료를 소장해 양과 질에서 세계의 어느 유명 도서관 못지않으면서도 문턱이 낮고 취업·의료 정보 등 시민에 의해 활용되는 분야가 넓기로는 단연 세계 최고다. ‘뉴욕 시민을 길러내는 곳’ ‘뉴욕을 빛내는 지식의 보물창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②뉴욕 공공도서관 정문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사자상. ③뉴욕 공공도서관 내부. 열람실은 늘 이용자들로 붐빈다.
야구 모자에 턱시도 입은 두 사자상 맨해튼 번화가에 자리잡은 그리스·로마 양식의 웅장한 석조 건물인 도서관 입구에는 두 마리의 사자상이 떡 버티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 때 세워져 인내(Patience)와 불굴(Fortitude)로 이름 붙여진 사자들은 도서관과 시민을 하나로 묶어 주는 ‘살아있는’ 아이콘이다. 뉴욕 양키스와 뉴욕 메츠가 프로야구 경기를 할 때는 각각 양팀의 모자를 씌워 뉴요커들의 관심을 증폭시킨다. 도서관 안에서 공사가 진행되면 사자들 머리에 헬멧을 씌워 놓고, 시내에서 큰 페스티벌이 열리면 사자상에 턱시도를 입혀 놓는다. “사자들 때문에 맨해튼을 떠날 수 없다”는 열성팬도 상당수다.
④영화 ‘섹스 앤 더 시티’의 결혼식 장면. ⑤미국 의회도서관의 원형 열람실. 가운데는 개인 열람실이고 주위는 소열람실과 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⑥3개 의회도서관 건물 중 가장 오래된 제퍼슨 도서관 전경. 1897년 의사당 뒤편에 독립건물로 처음 지어졌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을 흠모하는 작가가 자신의 책 제목이 적힌 목록카드를 카드함에서 꺼내 그녀에게 보여주는 장면으로 유명한 본관 3층 목록실, 로라 부시 여사가 어린이들에게 구연동화를 들려주곤 했던 어린이 서고 등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실내공간도 한둘이 아니다. 영화 ‘투모로우’에서 쓰나미와 한파가 밀려올 때 뉴요커들이 뉴욕 공공도서관을 마지막 피난처로 삼은 것은 도서관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중과 함께 호흡하기’의 또 다른 통로는 85개의 지역 분원이다. 뉴욕시 곳곳에 자리한 분원은 지역주민들과 밀착 호흡하며 각종 정보와 편의를 제공한다. 의료건강정보센터와 직업정보센터가 대표적이다. 전국의 수많은 일간지 구인란을 모두 모아놓아 구인자의 천국으로 불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도 대학 졸업 후 미드 맨해튼 분원에서 직장 정보를 찾았을 정도다. 온갖 분야의 지역정보도 한데 취합해 놓아 ‘뉴욕에서 이사를 하면 먼저 도서관에 가보라’는 게 정설처럼 돼있다.
지역 공동체의 정보 허브로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공공도서관의 근본 취지에 맞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프로그램도 활발하다.
다문화 사회를 맞아 이민자 대상 무료 영어교실을 운영해 호평을 받았다.
잡지 ‘뉴요커’는 “자유의 여신상이 이민자에게 희망의 등불이었다면 공공도서관은 그 희망을 실현해 가는 공간이 되고 있다”고 썼다.
전자정보화 시대의 ‘정보 약자’들에게는 훌륭한 정보 접근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녹음자료 도서관은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한다. 헬렌 켈러도 수시로 이곳에 들렀다고 한다.
세계 수준의 연구도서관과 지역밀착형 분원의 공존 모델을 통해 단순히 책을 대출하는 장소에서 시민과 늘 호흡하고 상호 교류하는 생활공간으로 진화해 가는 모습이다.
96년 문을 연 과학산업 비즈니스 도서관(SIBL)도 인기다. 창업준비자, 중소기업 경영자, 개인투자자 등에게 방대한 규모의 자료를 체계적으로 제공해 ‘뉴욕 경제의 엔진’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도 “도서관 건설에는 막대한 돈이 들지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혜택에 비하면 사소한 비용에 불과하다”며 도서관 예찬론을 폈다.
이런 공공도서관이 미국 전역에 1만5000여 개가 있다.
미국 내 맥도널드 햄버거 점포 수보다 많다.
세계 최대 규모의 미 의회도서관 미국 도서관 하면 의회도서관을 빼놓을 수 없다. 워싱턴DC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관으로 책꽂이 길이만 850㎞나 된다.
서울~부산을 왕복할 수 있는 거리다. 도서관 주변 경관, 원형 열람실, 320개 황금빛 장미로 장식된 돔,
지식의 등불을 밝히고 있는 여신상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한국관의 장서수는 24만 점에 달한다. 13세기 목판자료, 19세기 고서와 문학작품 초고본, 한국전쟁 전후 남북한에서 발행된 신문·잡지 등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자료가 가득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도 이곳에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