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전 일본인들이 귀화해 정착한 이곳은 대구광역시 우록리(友鹿里)다. 최근 일본의 TBS방송은 “이명박 대통령이 이 지역을 한일우호의 상징적인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라고 보도하며 일본인 귀화 마을에 대한 적지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휘하의 좌선봉장(左先鋒將)을 맡은 사야카(沙也可)는 30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이 지역을 침공했다. 하지만 당시 경상병마절도사 박진(朴晉)에게 붙잡혀 사야카를 비롯한 일부 군사들이 귀순했다. 사야카는 김충선이란 한국 이름도 얻었다.
현재 우록리에는 당시 왜군의 후손 150여명이 살고 있다. 주로 농업에 종사하며 ‘자손회’란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간혹 한일감정이 악화돼도 이곳 사람들은 일본인의 후손이라고 해서 차별당한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조선에 항복한 뒤 왜군에 대항해 싸웠다는 점이 그 이유다. (동영상= 일본TBS방송의 THE NEWS 보도내용 화면)/ 취재: 조선닷컴 뉴스미디어부 정현상 기자 (jhs0521@chosun.com) , 영상편집: 조선닷컴 미디어전략실 동영상콘텐츠팀 임세영 (mnd104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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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전 일본인들이 귀화해 정착한 이곳은 대구광역시 우록리(友鹿里)다. 최근 일본의 TBS방송은 “이명박 대통령이 이 지역을 한일우호의 상징적인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라고 보도하며 일본인 귀화 마을에 대한 적지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휘하의 좌선봉장(左先鋒將)을 맡은 사야카(沙也可)는 30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이 지역을 침공했다. 하지만 당시 경상병마절도사 박진(朴晉)에게 붙잡혀 사야카를 비롯한 일부 군사들이 귀순했다. 사야카는 김충선이란 한국 이름도 얻었다.
현재 우록리에는 당시 왜군의 후손 150여명이 살고 있다. 주로 농업에 종사하며 ‘자손회’란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간혹 한일감정이 악화돼도 이곳 사람들은 일본인의 후손이라고 해서 차별당한 적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조선에 항복한 뒤 왜군에 대항해 싸웠다는 점이 그 이유다. (동영상= 일본TBS방송의 THE NEWS 보도내용 화면)/ 취재: 조선닷컴 뉴스미디어부 정현상 기자 (jhs0521@chosun.com) , 영상편집: 조선닷컴 미디어전략실 동영상콘텐츠팀 임세영 (mnd1041@chosun.com)
조선일보 2009.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