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시인 닉네임(시사랑, 글사랑,가출시인)은 경북 안동 출생이며
1975년 고 김현승 박재삼 두 시인께서 심사하여
한국문학(당시 발행인 김동리;소설가) 5월호에
반응의 숲에서 라는 시를 당선작으로 추천, 한국문학신인문학상을 받고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같은해 6월호 한국문학에 히회별신가면무극대사를 발굴 발표하므로써 국보제121호인 하회탈을 1978년 무형문화제로 지정케 했으며 (영국여왕 하회마을 방문) 1982년 정공채,홍윤숙,황금찬, 시인 등과 함께 보리수 시낭송모임을 창설해 시낭송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 후 한국시낭송연구회를 다시 창립하고 커피제조판매 주 동서식품의 후원 아래 2년간 대학로 달 밝 때의 춤에서 시낭송운동을 또 KBS 아침방송
상쾌한 아침입니다 프로에서 이계진 아나운서와 함께 또 MBC에서 시낭송을 해왔습니다.
여기에서 시낭송과 언어에 대한 철학적인 함수관계를 발견하고 지금까지 한국언어철학연구회를 이끌어 오고 있습니다.
지은 시집으로 그 말씀 한마디를 위하여, 어이할꺼나 이 얼레에 얽힌 실을 등이 있으며 현상학적 언어철학 고찰, 시의 길 언어의 길, 언어철학 무엇이 문제인가 등의 주요한 논문들이 있습니다.
..................................................................
또 다른 이재호 시인은 충북 청주 출신?이며 1985년 서울시 한강축제 백일장에서 시 한강을 발표하여 당선된 분입니다. 이 당시 심사위원은 보리수 시낭송모임 상임시인이셨던 홍윤숙시인과 한국문인협회장을 역임하신 분이였는데 당시 홍윤숙시인께서 이재호 라는 동명 2인줄 모르고 같은 값이면 아는 사람에게 상을 주는 것이 좋겠다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에게 좋은 일이 있으니 한턱을 내라고 했었습니다. 그 때 저는 그 말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몰랐다가 시상식 당일에야 홍윤숙선생이 제가 서울시 백일장에 작품을 낸 것으로 착각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상식에 가서 이재호라고 하는 분을 만나 저를 확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미 바뀔 수 없는 것임을 알고 돌아 왔다가
이충이 시인과 함께 이재호 씨를 만나 이름을 바꾸어 줄 것을 제의했으나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라서 바꿀 수 없다는 이야기를 본인으로 부터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들 문학인 사회에서는 통상적으로 후배가 선배의 이름과 동일할 때는 후배가 그 이름을 바꾸는 것이 도리라 생각을 했는데 이재호씨의 말은 자기는 한글로만 이재호라는 이름을 쓸 것이니까 저에겐 한문으로 이름을 쓰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시낭송운동을 했던 관계로 각 방송국에서 저를 많이 찾기도 하였으나 번번이 동명 2인인 사람에게로 연락이 갔습니다.
저에게 어려움은 끝일날이 없었습니다. 저에게로 와야할 편지들이 엉뚱한 사람에게로 가기 일쑤였고 각 신문사나 단체에서도 문협에 가입한 분에게 동명2인인줄 모르고 배달되곤 했으나 이 분은 단 한번이라도 저에게 연락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제 주소를 옳기면서 아예 알리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김소엽 시인께서 MBC에서 방송 출연 연락이 왔는데 이재호시인과 함께 출연한다고 해서 저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요. 그래서 동명2인이니 다시 연락을 하라고 한 일들이라든지 심지어는 현대건설에 근무했던 이 분 때문에 작고하신 정주영 명예회장과 저와의 웃지 못할 사연도 있게 되었습니다.
정회장께서 문학을 좋아하시게 된 동기 부여가 저에게 있었던 것이었지요. 심상해변 시인학교에 참석하신 정회장이 저와 회식 자리에서 마주 앉게 되었는데.............. 이 이야기는 당사자 본인을 위해 여기에서 그만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이유인즉, 저는 문단에 등단을 하면서 문인협회와 같은 곳에는 아예 가입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문인이 자기 문학만을 충실히 하면 될 것을 굳이 문협에 가입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고 또 자기 문학에 충실한 분들 역시 문협 가입 같은 것은 3류들이나 하는 짓거리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한국문학인 인명사전을 편찬 하시는 분들은 다행인지 모르지만 저를 기억해 주셨습니다.
................................................................
제가 지금에 와서 왜 동명 2인인 시인을 가름 하느냐고 하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 진실은 밝혀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같은 이름을 사용하는 분의 문학이 저 보다 더 나은 것이든 아니든 또 그분이 부모로 부터 물려준 이름을 고치든 그렇지 않든 한문이 아니고 한글 세대화 되어 버린 상황에서 문학 후배가 문학 선배를 고의적이든 아니든 역이용하거나 악용하거나 하게 되는 상황에서 저는 몹시 당황하고 또 불쾌한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한 때 저는 제가 문학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언어철학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발견하게 된 것이 한국수필문학 이론 정립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를 쓰는 시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