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으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단 한명이다. 그것도 평화를 사랑하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 출신답게 평화상을 받았다. 그 수상자는 천주교 신자였고, 그의 세례명이 토마스 모어이다. 오늘이 그분과 함께 순교한 성 요한 피셔 주교의 축일이다. 영국 성공회가 생겨나는 과정에서 헨리 8세의 정책에 반대하다가 목숨을 잃은 분들이다.
조숙했던 나는 초등하교 3학년쯤에 이미 영화관 출입을 하였다. 지금 기억나는 영화 제목은 꼭 두 가지이다. “돌아온 외팔이”가 그 중 하나이다. 무협극이다. 사람 죽이는 장면이 무서워서 민방공 훈련 자세로 눈과 귀를 막고 몸을 숙이고 같이 보던 누나에게 “다 끝났어? 다 끝났어?”를 연신 묻던 기억이 난다. 다른 하나는 “천일의 앤”이다. 헨리 8세의 여인이며 메리라는 공주의 엄마인 앤이라는 여인의 이야기이다. 혹시 칵테일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블러드 메리”라는 술을 알 것이다. 바로 그 메리가 이 메리이다. 그리고 앤은 블러드 메리에게 피를 만들어준 어머니이다. 붉은 색으로. 앤을 주제로 한 영화는 수없이 많이 나와 있다. 실화이고 극적이기 때문이다. 바티칸 문서고에는 헨리 8세가 앤 볼레닌과 결혼하기 위해 당시의 중전 마마인 이사벨라와의 이혼을 청원한 편지가 보관되어 있다. 역사의 에피소드는 여기까지 쓰겠다. 궁금하면 찾아보면 된다. 인터넷이 좋은 세상인데.
토마스 모어로 돌아간다. 그분은 영국의 정치가이고 법관이었다. 왕정이 있던 나라에는 수상이 중요하다. 그런 일도 했다. 그분은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직책에 있으면서 아주 중요한 책을 한 권 저술한다. 그분의 정치적인 비전을 담은 책이다. 바로 Utopia이다. 영어 발음으로는 유토피아이지만 이것은 엄연히 라틴어 Ut-Opia로 웃 오피아 혹은 적어도 우토피아라고 발음해야 한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개신교의 영향을 받은 친구들이 조잡하게 교과서를 만들고 학문을 장학한 대한민국 인문 사회학의 현실은 별것을 다 왜곡하고 있다. 말뜻은 “아무 곳에도 없는 곳”, “이상향” 등으로 번역된다. 나는 개인적 “있어야 할 곳”으로 번역하는 것이 성인의 의지에 더 맞는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성인은 자신의 학문과 묵상을 통해 그리스도교 정신에 맞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열심히 그려 놓았고,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안 될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에 대한 다양한 성인의 기대가 정리되어 있다. 정치가의 모범이다. 그래서 정치가로서 세례를 받았던 전직 대통령은 이 성인의 이름을 선택한 것 같다. 그리고 그 대통령은 분단이후 처음으로 북한의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지금 이탈리아에는 죠르죠 라 피라 (Giorgio La Pira)라는 정치가에 대한 시복 시성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20세기 전반부에 살면서 좌익의 도시 피렌체에서 내가 기억하기로 무려 두 번이나 시장에 당선되었던 철저한 천주교 신자 시장이었다. 피렌체를 플로렌스라고 왜곡하여 우리나라에서 부른다. 남의 이름을 바꾸면 안 된다. 북경이 아니라 베이징이다. 코레아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다. 좌우간 라 피라는 철저하게 토미즘에 입각한 세계관과 정치관을 가지고 정치를 했다. 그분이 남긴 저서가 여러 권이 있는데 나는 책보다 아티클을 많이 읽었다. 그런데 그분의 논조가 늘 같아서 조금만 읽어도 스케마가 보인다. 헤겔의 이론인 변증법적 세계관이 이탈리아의 관념론인 크로체의 철학과 만나 발전하고 여기에 토미즘을 입힌 도식이다. 이런 철학적인 부분에 대한 상술은 피한다. 나름 강론이니까.
토마스 모어 성인의 축일에 그분의 저서 웃 오피아와 라 피라를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분석과 미래에 대한 비전이다. 두 분의 저서는 환상적인 미래를 이야기한다. 마치 비오 11세 교황님께서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그리스도의 통치”를 시대를 거슬러 말씀하신 것과 같이 세상의 비웃음 살 수 있는 “환상적인 미래”를 두 분은 말씀하신다. 그래서 엄청 비난을 받는다. 한 가지만 예를 들자. 대한민국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나온 이야기니까 꼭 말을 하고 싶다. 지금도 나오는지는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변함없는 생각이다.
토마스 모어 성인의 경제에 대한 생각은 정부가 책임지는 정책이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국민 모두를 먹여 살리고, 복지를 책임져야 한다. 이 생각은 영국 왕정이 늘 가지고 있던 생각이고, 실제로 복지정책을 제일 먼저 시도했고 모범적으로 법률을 발전시켜 온 나라가 영국이다. 지금 워낙 기금이 없어 고생하지만 그래도 그 골자를 이미 11세기부터 발전시켜 온 나라이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말한다. 이런 정책을 한 이유는 “국민은 여왕폐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좌우간 성인의 경제 정책은 이런 현실에 대해 그리스도교적 가미를 한다. 그런데 바로 성인의 다음 시기에 영국에서 위대한 경제학자가 태어난다. 아담 스미스이다. 그의 “국부론”은 처음으로 중상주의를 이론적으로 정립한 책으로, 혁명적인 것이었다. 그의 논지는 “시장은 스스로 자신을 조절할 수 있다”는 시장 자유 정책을 제시했고, 그 시장을 통해 나라는 강해질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솔로몬이 중상주의 시장정책으로 엄청난 국부를 축적한 것을 생각하면, 솔로몬의 지혜가 무려 삼천년이 지나서야 이론화 되었다고 하겠다. 문제는 그의 국부론이 지금까지 수 많은 경제제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시장의 위험성이 전 세계 경제를 파괴하고 있음에도 교조주의적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의 경제정책은 ...
토마스 모어 성인과 라 피라 두 분을 보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나는 경제 정책을 말하고 있지 않다. 그분들은 이상을 말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그분들이 이상을 말하기 전에 현실에 대해 어떤 분석을 하셨는지는 그 누구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분들이 했던 분석은 우리나라 굴지의 경제 연구소들이 사용하는 통계 수치를 무시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을 다 쓰셨다. 필요한 식량의 양, 주택 수, 인프라 등이 무시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것들을 분석하는데 사용하는 잣대가 어떤 것인지의 문제이다. 라 피라가 현실을 놓고 사용한 분석 잣대는 철저하게 토미즘의 것이었다. 이 토미즘의 분석틀은 현실에 대해 늘 포기하지 않는 강점이 있다. 사람들을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용기를 불어넣는 힘이 있었다. 피렌체에서 그리스도교 극단주의자가 두 번이나 시장에 당선되었다면 그가 가진 현실적인 역량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토마스 모어 성인과 라 피라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결국 사람들이 가진 “이해에 대한 포기 못함”이었다. 하지만 강한 이들에 의해 날개가 꺾인다고 해도 그들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늘 역사에서 살아나고 있으니까.
오늘 내가 고민하면서 글을 쓰는 근본적인 테제는 이것이다. 우리나라에 그리스도교적으로 현실을 특히 경제문제를 분석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스페인이 IMF와 유럽 은행과 유럽 연합에서 구제금융을 빌려갔고, 그리스는 살아남기 위해 모욕적인 정치적 선택을 지난 주일에 선거를 통하여 하였다. 당연히 지금까지 쌓여 온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졌으니 해결책이없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자신들이 겪을 경제 위기를 말로만 고민하고 있지 지금 구조를 개선할 엄두도 못 내고 있고, 더 나아가 바꾸고 싶지도 않다. 더구나 대선이 코 앞인데 무슨 새로운 시도로 국민들을 귀찮게 하여 표를 잃고 싶을까? 여기서 나의 고민은 적어도 우리 교회는 “분석”하는 기능에 대해 자신의 소명을 알고 있는가이다. 그리고 비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제시할 능력이 있는가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토마스 모어 성인이나 라 피라 시장이 가졌던 사회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 이다.
없지 않은 곳이라고 믿으며 그곳을 향해 살다가 세상의 권력자들의 싸움에 희생된 성인 토마스 모어와 요한 피셔 두 분을 경축하면서, 우리나라에 대해 교회가 조금이나마 책임을 통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없지 않은 곳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우리 사회에 스며들도록 헌신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척박한 자본만능의 시대에.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마태 6,20-21).
ㅈ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