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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게 여행 계획을 세웠지만, 막상 갈려니 이것저것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그 고생을 왜 또 하러 가나, 여행 2일 전까지 일에 치여 철저하게 준비도 못했고, 북유럽 여행경비면 한국에서도 편하게 놀 수 있다는 속삭임-.-; 아무튼 별의 별 상념이 다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꼭 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미련이겠죠. 또 여기 노르게 카페에 있으면서, 다녀오신 분들의 여행기를 보면서 나도 저기는 꼭 가봐야지 하는 동경심도 있었고요. 제 여행기가 누군가에게 북유럽 여행을 부추 킨다면(제가 그랬던 것처럼) 저로썬 영광이고, 여행기를 써가는 게 보람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전 글 재주도 없고, 남들 웃길만한 유머도 없고, 열악합니다. 아무튼 여행기를 시작해봅니다.
<여행루트: 핀란드 헬싱키→ 스웨덴 고테보르그> 3년 만에 다시 북유럽을 여행하게 됐습니다. 지난번 여행엔 그냥 단기간 북유럽 여행자를 위한 스탠다드 코스로 편한 여행을 했지만, 이번엔 북유럽을 위, 아래로 한번 훑어 보기로 하고, 루트를 짰습니다. 그러다 보니, 들리기 싫은 도시도 어쩔 수 없이 경유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또 북유럽 북부 지역은 기차 노선 자체가 없어 버스를 많이 이용했는데, 금액도 만만치 않았고, 진짜 복병은 버스 시간대가 자주 있는 게 아니라 하루에 2편, 또는 하루에 1편 이렇게 편성되어 있어, 가기 전 루트를 짤 때도 골 때렸고, 가서도 루트를 수정할 때도 골치 아팠습니다.
원래 타이항공을 예약했었지만, 막판에 핀에어로 바꿔버렸습니다. 타이항공이야 가격은 싸지만, 일단 경유시간도 꽤 길고, 비행시간도 깁니다. 그래서 올해 새로 생긴 핀란드 직항 노선을 이용하는 핀에어로 바꾸고 티켓을 구매했습니다. 그 결과, 진짜 빨리 갔습니다. 경유 없이 인천에서 핀란드 헬싱키까지 한 9시간 걸렸고, 올 때는 8시간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더군다나 노르웨이 북부에서는 도시간 기본 이동 시간이 7~9시간 걸리면서 여행하다 보니, 돌아올 때, 비행 체감 시간은 진짜 세발의 피였습니다. ㅎㅎㅎ 핀에어 비행기를 타본 소감은, 기내 음식은 내용이 좀 부실한 것 같았습니다. 그냥 간단하고 저렴하게 먹을 것을 줍니다. 솔직히 맛을 별로였습니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새로 생긴 직항 노선에 대한 배려인지, 무척 친절 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비행기 이륙 직전에 모든 승무원이 검은색 가죽 장갑을 낍니다. 그리고 벗었다가, 착륙하기 직전에 또 장갑을 낍니다. 일종의 핀에어 승무원 전통인가 봅니다.
핀란드 사본리나에서, 핀란드 경찰이 범죄자를 체포하기 전에, 제일먼저 하는 게 가죽장갑부터 끼더군요. 핀란드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때, 승무원이 장갑을 끼자 그 광경이 떠올랐습니다. ‘이, 착륙할 때 허튼 짓 하면 골로 갈 수 있으니, 꼼짝 말고 앉아 주세요’ ‘아, 네;;;’ 기내식은 부실했지만, 다른 장점도 많았습니다. 좌석이 그리 좁지 않아 편했고, 무엇보다 좌석 별로 터치스크린 LCD와 게임 리모컨이 있습니다. 영화를 볼 사람은 LCD로 영화를 보고, 게임하고 싶은 사람은 리모컨으로 게임하면 됩니다. 일반 게임도 있고, 아동용 게임도 있어서, 아이를 동반하는 여행객에겐 참 좋은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오전에 인천을 떠나 같은 날, 핀란드 헬싱키에 3년 만에 다시 헬싱키 반타 공항을 보니, 반가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 썰렁함은 여전하고요. 근데, 출입국 검사관이 여권의 맨 뒤 장에 입국 도장을 찍어버립니다. 어이 상실했습니다. 5년짜리 복수 여권이고, 곧 만기가 되지만, 그래도 1년 가까이 남았는데, 뒷장에 찍어 버리면 앞으로 도장 찍을 공간이 없으면 어떡합니까?
추측이지만, 만기가 다 된 여권을 행여나 중국 브로커에게 넘기는 것을 방지 할려고 일부러 그랬단 생각이 듭니다. 핀란드에서 중국인들이 한국 여권을 위조하는 문제가 심각하다는 뉴스를 전에 본 적이 있어서, 아마 그것 때문에 그럴 거라 생각하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습니다. 어차피 여권 기한도 다 됐고. 아무튼 여권 중요합니다. 현금이나 신용카드는 잃어버려도, 절대 여권은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도착한 날 헬싱키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그래도 전에 와본 곳이라 익숙하게 공항을 돌아다니고, 공항버스를 타고 헬싱키 중앙역으로 갔습니다. 내일 오전에 일찍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가야하기 떄문에, info에서 Tallink 페리 티켓도 구매하고, 이것 저것 위치도 물어봤습니다.
헬싱키 중앙역에서 트램을 타고 호스텔로 갔습니다. 호스텔은 가까웠기 때문에 찾기 쉬웠지만, 비도 오고 첫날부터 헤매기 싫어서 그냥 편하게 갔습니다. 호스텔에 도착해서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있다, 옷도 안 벗고, 바로 쓰러져 잤습니다. 별로 피곤하지 않았지만, 그냥 잤습니다. 한밤중에 깨어나 보니, 미친 척 하고 아침까지 더 자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잤습니다. 그렇게 한 15시간을 내리 주무셨습니다.
이렇게 여행 첫날을 마무리했습니다.
헬싱키에 도착한 첫 날은 여행 기분도 아직 안나고, 어차피 탈린 갔다와서 다시 둘러볼 생각이어서 아무것도 안 찍었습니다. 더 큰 이유는 전에 헬싱키를 둘러봐서 솔직히 찍을 것도 없고 ㅋㅋㅋ. 비행기 안에서도, 헬싱키에 도착해서도, 북유럽에 왔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고, 뭐 여행하러 왔다는 느낌도 안 들었습니다. 정신과 생활습관은 아직도 한국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질렀긴 질렀는데, 잘한 건 진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여행 중반에는 반복되는 지루한 일정에 빨리 여행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적도 많았습니다. 여러 나라를 돌지 않고, 북유럽만 둘러 보니 그랬던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