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보개산 심원사
심원사는 지장도량으로 가장 잘 알려진 사찰이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1리 72번지에 위치한 심원사는 ‘
생지장보살 도량(生地藏菩薩 道場)’으로 불린다.
심원사에는 ‘지장영험비’가 있으며,
지장보살의 영험함을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
사냥꾼 형제의 출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신라 성덕왕 17년(720) 의 일로 보개산 아래 마을에 산짐승을
잡아 목숨을 이어가던 이순석(李順碩) 형제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형제는 사냥에 나서
보개산 너머 담터라는 곳을 지나고 있었다.
마침 큰 멧돼지 한 마리가 눈에 띄었고,
순석은 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화살을 쏘았다.
마치 금란가사를 두른 듯한 누런 멧돼지는 왼쪽 앞다리에 화살을
맞고 보개산 정상인 환희봉 쪽으로 달아났다.
사냥꾼 형제는 핏자국을 따라 멧돼지가 멈춘 곳에 이르러
바라보니 금빛 멧돼지는 볼 수 없고 왼쪽 어깨에 화살이
꽂힌 돌로 된 지장보살상이 맑은 물이 넘쳐나는 샘물 가운데
상반신만 내놓은 채 있었다.
화살을 뽑으려 했으나 석상은
태산 같은 무게로 꿈적도 하지 않았다.
크게 놀란 형제는 깨달은 바 있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맹세했다.”대성(大聖)이시여!
저희들을 죄에서 구해 주시려고 이 같은 신변(神變)을
나타내신 것임을 알겠나이다.
만약 내일 이 샘물 곁에 있는 돌 위에 앉아 계신다면
마땅히 출가하여 수도하겠나이다.”
다음 날 형제가 그곳으로 가 보니 과연 석상이 돌 위에
있으므로 두 사람은 바로 300여 명의 추종자를 거느리고
출가하였다. 샘 옆의 숲 속에 돌을 모아 대(臺)를
쌓고 항상 그 위에 앉아 정진하였으므로 그곳을
석대암(石臺庵)이라고 불렀다.
암자에는 자신들의 화살에 맞은 석상을 모셨다.
견불령(見佛嶺)과 대광리(大光里)라는
지명도 지장보살석상의 영험에서 유래한다.
고려 초의 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 심원사 아래
마을에 어려서 열병을 얻어 장님과 앉은뱅이가 된
이덕기와 박춘식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심원사 대종불사를 하기 위해
마을에 내려온 화주 스님에게 “대종불사에 시주하면
부처님의 가피로 재앙이 소멸되고,
현생에서 복을 받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화주가 되기로 약속했다.
3년여 동안 이들은 서로의 눈과 다리가 되어
시주를 하였으며, 마침내 대종불사의 타종식 날이 되었다.
첫 타종의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순간
앉은뱅이 박춘식은 오색구름을 타고 밝은 구슬을
손에 지닌 지장보살님께서 하늘에서
심원사 쪽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앉은뱅이는 “지장보살님이 보인다”고
소리치며 장님의 등에서 뛰어 내렸다.
그러자 두 다리가 쭉 펴지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이덕기 또한 “어디! 어디!”하고 소리치며
눈을 비비자 앞이 보였다. 그들은 산 마루 위의
오색구름에 쌓여 큰 빛을 발하고 힜는 지장보살님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끊임없이 절하였다.
마침내 지장보살님의 가피를 입은 것이었다.
<강원도 철원 심원사>
그들이 지장보살님을 본 고개를 견불령,
그들이 살던 마을을 부처님의 큰 광명이 머무르는
동네라 하여 대광리라 불렀다.
애초에 심원사가 개창된 곳은 지금의 심원사에서
서남쪽으로 약20km떨어진 경기도 연천군
보개산(寶蓋山)이다. 647년(신라 진덕여왕 원년)
영원조사(靈源祖師)가 영주산(靈珠山, 보개산의 옛이름)에
흥림사(興林寺, 심원사의 옛 이름)로 창건하였다.
그 후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왕사로 유명한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주지로 주석하며 삼창(三創)하고
산이름을 영주산에서 보개산으로 절이름을
심원사로 고쳐 불렀다. 이후 수많은 영험이 생기며
사세가 확장되었으며 근세에까지 금강산
유점사에 딸린 말사(末寺)로 석대암, 지장암,
남암 등의 산내암자와 250칸의 당우, 1609위의 불상,
탱화, 탑이 있었던 대찰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6.25 전쟁의 참화로 본당이
천불전만 남기고 모두 소실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천불전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移建)하고
석대암 지장보살상을 봉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래의 절터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8호인
부도 12기와 아미타불 입상, 사적비, 공적비 만이
옛 영화를 말해주고 있다. 부도 가운데 서산대사
휴정의 제자로 의승군을 이끌었던
제월당 경헌(霽月堂 敬軒) 스님의 부도는
옥개석 운룡문(雲龍紋) 조각 솜씨가 빼어나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해야 하며,
아미타불입상을 포함해 사지(寺址)에 대한 전체적인
문화재조사가 시급하다는 것이 문화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옛 절터는 군부대 안에 있어 순례하려면
미리 군부대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