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장독대와 나팔꽃
우리 집 뒤뜰에는
작은 장독대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곳은 단순히 장을 담가 두는 곳이 아니었다.
우리 집의 계절과
어머니의 시간이
함께 머물던 자리였다.
마당 한쪽에 놓여 있던
크고 작은 항아리들은
마치 한 가족처럼 나란히 서 있었다.
된장 단지,
고추장 단지,
김치 단지,
그리고 묵은지를 담아 두던 큰 항아리까지.
그 항아리들 속에는
단순히 음식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해 동안
햇볕과 바람을 견디며
어머니의 손길로 익어 가던
삶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장독대 주변에는
여러 꽃들이 피어 있었다.
맨드라미와 봉선화,
접시꽃과 채송화.
그리고 담장을 타고 올라가던
나팔꽃.
아침이 되면
이슬을 머금은 나팔꽃이
조용히 하늘을 향해 피어 있었다.
나는 가끔
그 꽃을 바라보곤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삶도
어쩌면 그 나팔꽃처럼
조용히 피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학교가 끝나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곧장 장독대 쪽으로 달려가곤 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어머니가 있는 곳이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장독 뚜껑을 열고
김치를 꺼내거나
된장을 덜어 내곤 하셨다.
그 손은
언제나 거칠었다.
밭일과 집안일로
굳은살이 박인 손이었다.
그러나 그 손은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어릴 때
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머니는 밤새도록
내 곁을 지키셨다.
따뜻한 수건과
찬 수건을 번갈아 머리에 얹어 주며
한숨도 주무시지 않던 밤.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열이 내려 있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머니 손은 약손”이라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겨울이 되면
장독대 항아리 속에는
동치미가 익어 있었다.
물고구마를 한입 베어 물고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마시던 그 맛.
그것은 단순히
시원한 맛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어머니의 기다림과
시간이 함께 익어 있었다.
어느 해 겨울에는
장독이 다 채워지지 못한 해도 있었다.
그해 어머니는
유난히 말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장독이 비어 있을 때
어머니의 마음도
함께 비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그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래서 물동이를 들고
아랫집 펌프로 달려가
물을 길어 오기도 했다.
아이들이
“머시매가 물 긷는다”고 놀려도
장독에 물이 철렁철렁 채워지는 소리를 들으면
괜히 마음이 든든해졌다.
어머니의 마음도
조금은 채워지기를 바라면서.
세월이 흐른 지금
고향의 장독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냉장고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장독대는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서는
그 장독대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담장을 타고 올라가던 나팔꽃,
햇볕을 머금고 서 있던 항아리들,
그리고 그 곁에 서 계시던
어머니의 모습.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장독대는
어머니의 삶이
조용히 익어 가던
시간의 뜰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내 마음속에 피어 있는
엄니 꽃도
그 장독대 곁에서
조용히 피어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