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문독서회 20회째 입니다. 여름부터 이인혜 선생님과 공부하면서 느낀 점들 적어 보았습니다.
한글 파일은 아래 내용과 같습니다.
불교한문독서회를 하면서 (선학과 3학년 이해인)
그러니까, 올해 여름 방학 중에 동기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한문으로 불교를 공부하는 모임이 생겼는데 한 번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고요. 한문 배워두면 여러 가지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조금 늦게 도착해 부랴부랴 앉았던 첫 날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당혹스러움도! 처음으로 교재(삼국불법전통연기)를 받았는데, 이게 웬걸? 한글이 하나도 없잖아? 그리고 띄어쓰기도 문단 나누기도 없었습니다. 빼곡히 한자만으로 가득한 책을 선생님께서 줄줄 읽고 계셨죠. 저는 번번이 놓치게 되었는데, 당연한 것이 한자가 어떻게 소리 나는지 빨리 생각이 안 났으니까. 어리둥절함과 당혹감에 옆에 앉은 동기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똑같이 한 숨 휴ㅡ 쉬었지요.
하지만 처음의 마음은 곧 가라앉고 이인혜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수업과 뭔가 다른 점을 발견했습니다. 한 덩어리씩 설명하기 전마다의 休止. 짧은 침묵이라고 할까요.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핵심을 끌어오는 시간- 진지하면서 몰입된 상태. 그러고 나서 선생님 설명은 재미있고 알아듣기 쉬웠어요. 저는 그것이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함께 공부하시는 분들이 의문점이 나면 바로 바로 질문하셨는데요. 정말 학부 학생들과는 많이 다르구나 느꼈습니다. 같은 텍스트를 놓고 선생님도 학생들도 몰입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겐 한자들로 가득 찬 책뿐만 아니라 선생님과 도반님들 다 멋져보였어요.
다음 시간부터는 스터디의 방법을 바꿔서 한 분씩 읽고 해석하면 선생님이 교정해주시면서 설명을 보태는 식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냥 선생님이 강의해주시면 안될까요?’라는 말도 나왔지만, 선생님은 직접 해봐야 빨리 는다고 하셨습니다. 전 처음에 부담감을 안고 발표했는데요. 모르면 선생님이 가르쳐주시고 틀리게 읽으면 옆에 도반님들께서 교정해주시면서 넘어갔습니다. 직접 발표해보면서 내가 전보다 나아졌다고 느껴지고 ‘내가 이런 어려운 걸 하고 있다니’ 제 자신이 뭔가 그럴 듯해(!) 보여서 다음 주도 나가고 다다음주에도 나가게 된 것이 이제 다섯 달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삼국불법전통연기 중권의 화엄종 결론 부분을 하고 있는데요. 이제 모르는 한자가 아니면 전보다는 빠르게 읽을 수 있고 끊어 읽기도 수월해졌습니다. 윤정선배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제는 아버지가 가방에 들어가는 것보다 방에 들어가시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인혜 선생님께서 세심하게 가르쳐주신 덕에요. 이런 수업 공으로 듣고 있다는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나중에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것처럼 제가 배운 것들 전해주면 좋겠다고, 조그맣게 소망해 봅니다.
수업을 받으면서 한문 실력도 늘었지만 별개로 느낀 점이 있습니다. 범어를 한자로 바꾸는 옛날의 역경사업이란 것이 그 당시의 첨단 인문학(?)과 같았다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는데요. 역경원이 상상이상으로 거대한 규모의 체계적인 분담 시스템을 갖췄다는 것. 그리고 경전은 당대의 총명한 지식인들이 공들인 하나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역할 분담을 설명해 주실 때, 그 시대의 총명한 땀들이 한 글자 한 글자로 바뀌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그 후 글자들이 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단순히 책 속에 빼곡한 것이 아닌, 살아있던 사람들이 썼던 살아있는 글자 같다고 할까요?
어제는 1학년 후배에게서 카카오톡이 왔습니다. 한문 스터디 같이 하고 싶다고요. 기쁜 일이다 생각되었고 앞으로 학부 학생들에게 더 알려졌으면 좋겠는데 했습니다. 전공 과목에 ‘불교한문’이라고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이렇게 과외식으로 지도받는 것과는 다르니까요. 한문 배우는 것도 그렇지만 일단 오면 재밌습니다. 선생님과 나누는 깨알 같은 이야기, 쉬는 시간에 차를 마시면서 하하호호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좋은 인연으로 공부할 수 있게 돼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들과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저번에는 독서회 열심히 나와서 공부한다고 장학금을 받았는데요. 좋은 수업도 듣고 이렇게 장학금까지 받으니 전 참 복쟁이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 부처님 말씀 전하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게으름 부리지 말아야 겠습니다. 그리고 한문독서회 앞으로 계속 되어서 많은 분들이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문독서회, 일본불교사연구소 파이팅입니다!
해인합장
2010.12.9
불교한문독서회.hwp
첫댓글 해인 학생, 좋은 글 감사!!! 그런데 첫날 같이 갔던 동기는 어디 갔나요? 새로 온다는 1학년 후배, 잘 좀 이끌어주세요.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 이상의 큰 복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기를 믿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일본불교사공부방" 제10호, 특집에 들어갈 글입니다.
저를 만나서가 아니라 해인씨는 원래 글을 보는 감각이 있었답니다. 열심히 하니까 그만큼 빨리 늘기도 했구요. 교만해질까봐 평소에 칭찬을 아꼈는데, 장합니다! 쭈욱~ 직진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