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ling (젊은 여인들)
< 2009/8/24-26 >
친구의 요청에 따라 그의 직원들에게 내일에 있을 요트 체험을 시켜주기 위해 대난지도를 향했다.
친구는 세무 사무소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여직원들에게 단합과 친목을 위해서 하루의 일과를 포기하고 그들에게 요트 체험을 시켜 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들은 20대 초반에서 후반에 이르는 젊은 여성으로 다섯 명이라고 했다.
근래 우리 나라에서도 요트에 대한 관심이 점점 늘어 나면서 젊은 층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으로 요트 체험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기실 삼면이 바다인 우리 나라이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바다란 동경의 대상 일 뿐 어민들을 제외하면 바다에 익숙하지 않은 편인 것 같다. 여름이면 피서를 위해 해수욕장을 찾아 물놀이나 즐길 뿐 정작 배를 타고 항해하면서 바다를 접할 기회가 드물기 때문 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반인들에겐 바다는 바라 보며 감상이나 즐기는 대상 정도로 생각하고 만다.
바다에 대한 공포심 또한 적지 않다. 감히 맞설수 없는 바다의 위용에 압도되어 그에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은 한편 당연스럽기는 하지만, 항해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바다에 대해 무조건적인 두려움을 갖고 이를 피한다는 것은 바다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많은 가치를 생각하면 아쉬운 바가 크다.
바다는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한다. 그곳에 물이 있음에 바다는 지구라는 우리별이 살아 숨쉴 수 있는 생명의 근원적 역할을 한다. 그런 바다를 두렵다고 외면한다면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엄청난 생명력에 비하면 그것은 자아 존립에 반한 모순적 행위가 아닐까 싶다.
바다, 그 엄청난 양의 물이 이루는 조화는 가히 경이롭기만 하다. 대양 한 가운데에서 일엽 편주인 요트를 타고 넘실 거리는 너울을 따라 바람타고 나아가다 보면 대자연의 조화에 압도 될 수 밖에 없다.
너무나 작아 보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만 이어서 자신이 그 세상의 모두를 아우르는 듯한 또한 그 세상의 전부 임을 느끼게 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절대적 자유와 절대적 외로움이란....
대난지도에 도착한 것은 오후 두 시나 되어서였다. 난지도의 그동안 익숙해진 현지 사람들을 만나 함께 쎄일링을 하자고 권했지만 예나 마찬가지로 모두가 늘 바쁜 터인지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피서 철도 끝나 그들도 좀 한가할 것도 같고 나도 시간도 있는 터에 오늘은 현지 어민들과 함께 쎄일링을 하며 그들에게 체험을 해 주고자 기대 했었다. 서운하긴 했지만 그들 입장에서 이해 해야만 했다. 섬 사람들의 쫒기듯 살아가는 여유 없음을, 요트란 여유있는 사람들의 몫이어서 그들처럼 살아가기에 바쁜 사람이 이를 즐기고자 한다는 것은 분에 넘치는, 그들의 겸손한 마음임을 이해 해야만 했다.
고무보트는 그동안 방치 해둔 탓에 역시 주그렁 바가지가 되어 들어난 해변 바닥에 흉한 몰골을 하고 앉아 있었다. 내려가 살펴보니 보트의 튜브 안은 온통 물이 꽉 들어차 무거워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펑크 난곳을 찾아 수리 할 만한 도구도 없는 처지에 사용 가능할런지 알수는 없었지만 우선은 물을 빼고 다시 바람을 넣어야 했다.
보트는 다행히 바람 새는 곳을 찾아 검을 씹어 적당히 메워 놓으니 우선은 탈만 했다.
안간 힘을 쓰며 노를 저어 밀물을 거슬르며 겨우 Orion에 도착했다. Orion은 언제나 보아도 늠름한 그 모습이다. 비록 이곳 저곳 상처는 많이 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 바다 한 가운데에 고삐를 메어 달고 떠 있는 모습은 들녁의 황소의 모습이라 할까, 아니면 넓은 초원 한 가운데의 어린 코끼리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Orion은 이젠 내겐 바다에 떠 있는 고향같은 나의 아성이 되었다.
나의 아성에 입성한 후 빗장을 열고 선실의 문을 열었다. 후큰하고 쾌쾌한 냄새가 선실로부터 올라왔다. 그러나 그동안 아성에선 아무 일도 없었다. 일 주일 전 친구의 환갑을 기념하기 위해 네 부부가 함께 처음으로 요트를 체험했던 작은 체취만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엔진을 시동하고 흩어져 있는 로프도 다시 정리하며 곳곳을 점검한 후 우선은 메인 쎄일을 올렸다. 그리고 닻을 풀었다. 바다는 약간의 파도가 일 뿐 바람은 잠잠했다. 집 쎄일을 마저 편 후 엔진을 끄고 육도가 보이는 푸른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해무와 약간 구름 낀 하늘은 강열한 햇빛을 차단해서 일광욕을 즐기기에 안성 맞춤이었다. 주변엔 오직 발전소로 이어진 방조제 그리고 멀리 육도만이 보일 뿐 잔잔한 바다는 적막할 정도로 한가로웠다.
자유로움...., 걸쳐진 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자연 속에 알몸을 그대로 내 놓아 보았다. 따스한 햇살이 온몸을 어루만지며 말초를 자극하고, 시원한 바람은 송글 송글 돋아나는 땅방울을 식혀 주며 나의 온몸을 희롱한다. 창조의 힘, 뭉클했다. 적당히 그을은 비록 한창 젊었을 때의 탄력진 몸매는 아니지만, 그런대로 중년의 건장한 모습이 그런대로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석양 속에 서쪽 하늘은 서서히 노을이 물들어 가고 있었다. 이럴 때면 들짐승들은 바쁜듯이 분주히 집을 찾는다. 노을을 바라보며 돌아갈 곳, 아니 지나온 곳을 생각하게 되는 인간의 회귀 본능, 주검으로부터 이어와서 주검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섭리이기에 거역할 수 없는 원초적 슬픔, 그 슬픔은 그나마 인간이기에 주어진 신의 선물이 아니겠는가, 그냥 그렇게 자위하며 석양을 뒤로하고 난지항으로 다시 뱃길을 돌렸다.
이제 선상 생활에 익숙해서 인지 지난 밤 잠을 잘 이룬 편이었다. 잠 자리가 옮겨지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습성 때문에 그동안 배 안에서 잠을 이루는 것이 못내 힘든 터에 단잠을 잘수 있었던 것은 내게 큰 힘이 되게 마련이다. 상쾌한 아침이었다. 예나 마찬가지로 잘 익은 토마토처럼 태양은 동편 하늘에서 안개 구름을 뚫고 살며시 떠오르고 있었다.
적당히 준비를 마친 후 아침 바다를 향해 다시 Orion을 몰고 나아갔다. 잔잔한 바다, 해무가 적당히 드리워진 육도가 보이는 널널한 당진 앞바다, 그 푸근함에 다시 알몸을 드러내고 아침 바람을 즐긴다.
멀리 부지런한 어선 한 척이 통발을 거두며 부지런히 고기를 낚고 있었다. 내외인 모양이었다.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 어부들의 삶이란, 그 애환을 감히 짐작을 해 본다. 그런 중 나를 비교하며 게면쩍음에 스스로 미안해서 옷가지를 주워 다시 몸을 감추었다.
친구로부터 예정대로 한 시 배를 타고 올 것이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미 시간은 12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그들을 마중하기 위해 Orion이 선착장에 이를렀을 땐 천문조의 영향인지 썰물로 접안 안벽이 온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수심이 낮은 관계로 접안이 매우 곤란했다. 겨우 선수를 안벽에 의지한 후 손을 잡아 찾아 온 손님을 한 사람씩 배에 테웠다.
친구와 그의 부인 그리고 고사리 같은 고운 손을 가진 다섯명의 자연산 인어와 같은 젊은 여인들, Orion은 마치 만선의 기쁨을 누리듯이 이들을 태운 후 다시 넓은 바다로 나아갔다.
'요트에 승선하게 되면 여러분은 바로 선원이 됩니다. 그리고 선원은 모두 선장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합니다.' 하며 일성으로 선상의 불문율을 선포했다.
맨발에 구명 조끼를 걸친 여인들은 각자 선장의 지시에 따라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풋나기 선장의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바람은 여전히 미풍이 일 뿐 잔잔하고, 햇빛은 옅은 구름마져 걷히면서 선상에 노출된 9명의 선원을 데워가며 서서히 열기를 뿜어 내고 있었다. 모두 땀을 흘리며 더위에 지쳐가고 있었다.
모두 구명 조끼를 벗도록 허락을 했다. 그리곤 '바람을 만들어 주겠노라.' 하며 엔진을 시동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요술처럼 바람이 만들어지며 바람은 선원들의 구슬처럼 흐르는 땀을 식혀 주고 있었다.
'아, 우리 선장님, 신이시여!' 하며 모든 선원들이 탄성을 짖는다.
젊은 여인들이란 역시 모든 것이 달랐다. 비록 처음 접하는 요트이지만 가벼운 걸음으로 갑판을 오가며 깔깔대고 자잘대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대범하고 싱싱했다. 호기심에 이곳 저곳을 만져보며 바다와 Orion 세상의 채취를 함께 느끼어 가고 있었다. 먼 바다를 응시하면서 강렬한 태양에 맞대어 또한 이를 즐기고도 있었다. 그들은 어른에 비하면 분명 무언가 다른, 바다와 바람과 태양을 피부로 느낄 줄 아는 젊음이 살아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여인들에게 번갈아 가며 Bow woman, 좌 우 Winch woman 의 자리를 맞기었다.
Tacking 준비....., Tacking!
젊은 선원들은 고사리 같이 고운 손을 민첩하게 놀리며 온 힘을 다해 풋나기 선장의 지시대로 Orion을 마음껏 농락해 가고 있었다.
그렇게 젊음을 마음껏 놀아대고 그들은 친구와 함께 돌아 갔다.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손을 흔들어 그들을 떠나 보내고 난 Orion의 남은 자리는 허전했다.
다시 서쪽 하늘은 서서히 석양이 물들어 가고, 동쪽 하늘엔 하얀 눈섶같은 초생달이 이미 중천에 떠서 고운 미소를 짖고 있었다. 그리곤 별들이 하나 하나씩 하늘을 수 놓아 가며 손님들이 남기고 간 붉은 와인과 함께 풋나기 선장의 저녁 파티를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내일은 또 어떤 손님이 찾아 오시려나......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