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1.4.30. 20:42
▲조선 문인화가 허유(許維,1807~1892)가 그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반신상
(국립중앙박물관·리움 소장)
▲추사 김정희선생 초상화 57.7㎝ x 131.5㎝ / 예산 김상기 소장품(국립중앙박물관 보관)
이한철(李漢喆)이 1857년에 그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선생 초상화이다. 머리에 사모를 쓰고, 쌍학문양의 흉배가 있는 관복을 입은 좌안 7분면의 전신 좌상이다. 의자의 형태는 서구식이며 호랑이 가죽을 깔고 있다. 두선은 소매 속에서 마주 잡고있어 보이지 않으며, 두 발은 여덟 팔자로 벌리고 발 받침 위에 가지런히올려 놓았다.
이 초상화는 김정희선생의 종가 유물 일솰과 함께 보물 제547호로 지정되었다. 견본설채(絹本說彩) 57.7㎝ x 131.5㎝, 김성기(金聲基) 소장품이다.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쌍학문양의 흉배를 착용한 좌안7분면(左顔七分面)의 의자에 앉은 전신좌상이다.
공신도상(功臣圖像) 형식에 따른 위엄을 나타내고자 한 상용형식(像容形式)을 따랐다. 화면에 나타난 의자의 형태는 서구적이며, 호피(虎皮)를 깔고 의연히 앉아 있는데 복식은 조선 후기의 특징인 듯 단령(團領)에 같은 감으로 선(線)을 두르고 있다.
그리고 이 초상화의 특색은 복고풍의 도상법(圖像法)에 있다. 당시 강세황(姜世晃,1719~1791)의 영정에서도 보듯이 태서법(泰西法)이라 하여 이미 서양화법이 도입 적용되었던 때임에도 불구하고, 주로 전례기법인 선조기조(線條基調) 화법에 의거하였다.
즉 얼굴은 단순히 기복을 표현하고 명암이나 질감은 고려하지 않았으며, 옷주름 역시 촉감 묘출을 시도하지 않앗다. 이러한 초상화법은 같은 시대 사람의 초상인 조인영(趙寅永,1782~1851) 영정 및 조병기(趙秉夔,1821~1858) 영정에서와 같은 형식을 보여주어 19세기 중엽의 복고적 표현 형식의 한 단면을 예시함과 동시에 차분히 가라앉은 사대부상의 단아한 분위기가 그대로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