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10월 23일 연중 30주일 전교주일 (마태 28, 16-20)
"사제가 그리고 교회가 밥과 약과 빛으로 사는 것"
어떤 책에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만약 1961년에, 한국이 앞으로 40년 후에는 세계 최대의 휴대폰 수출국이 될 거라는 말을 들었다면
당신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겠는가?”...
아마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전쟁이 끝난지 8년 만인 1961년 한국의 연간 1인당 소득은 82달러로,
당시 아프리카 가나의 1인당 소득인 179달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랬던 우리나라가 지금은 전세가 역전이 됐습니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 뜨면서,
지구 반대편 유럽의 청년들이 한국어로 흘러나오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에 열중하는 동영상을 보면서,
우리 K팝과 K드라마의 세계적 흥행에 의해 이젠 전세가 역전된 것입니다.
이번 10월 매일미사 책 표지 뒷면에 나온 전교주일 사진만 봐도 그렇습니다.
저희 세대가 어렸을 때 60, 70년대의 사진은 두 뼘이나 키가 큰 파란 눈의 서양 신부님이 서있고,
그 둘레에 허름한 차림의 한국 어린이들이 찍힌 사진인데,
매일미사 책 사진을 보면 전세가 역전돼 있음을 보게 됩니다.
저희가 어릴 때는 한국 신부님보다 대개 메리놀회나 아일랜드의 골룸바노 서양 신부님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여기서 또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는데... 덕적도 파란 눈의 메리놀 신부님의 전설같은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쾌속선이 생기고부터, 지금은 ‘낙도’라는 말이 무색하지만, 인천교구가 관할하는 서해의 섬들 중 ‘덕적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이 덕적도라는 이름과 함께 신부들 입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름, 미국 메리놀회 소속 최분도 신부 이야깁니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모든 것이 낙후한 섬으로 서른도 안 된 앳된 사제로 부임해 14년간 그곳에서만 일을 했습니다.
처음 그가 마음을 둔 곳은 변변한 치료 한 번 받지 못하는 섬 주민들을 위한 의료사업이었습니다.
급한 대로 어선을 개조해 인근 섬을 오가는 병원선을 마련하고 본국의 부유한 부모와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병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뭍에서도 보기 힘든 첨단의료기기를 갖춘 큰 병원이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밤이면 까마득한 어둠에 잠기던 섬에 100kw 발전기 두 대를 들여왔는데,
처음 전깃불이 들어오던 날은 그야말로 ‘광명의 날’이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주님들에게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섬 일대가 김 양식에 적합한 환경이란 사실을 확인하곤 양식업을 성공시켰다고 합니다.
이 파란 눈의 신부님은 약에, 밥에, 빛까지 전해 준 둘도 없는 은인으로 여겨졌고,
실제로 1만 명 남짓한 당시 섬사람 중 7천 명이 천주교 신자였다니 섬 전체를 선교한 셈인 것이죠.
1만 명에 7천 명, 엄청난 숫자이고 분명 대단한 선교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면 이제는 (파란 눈의 신부님 영웅담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오늘의 교회는 신자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전교란 무엇일까를 생각해야 할 겁니다.
‘약도 밥도 빛도’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 세상,
모든 게 풍족해졌고 더는 구호물자로 연명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 현재, 교회는 무엇을 전해줄 수 있을까요?
누구 말대로 먹고사는 문제로 서로 치열하게 찢기고 터지는 저 생존의 전쟁터에서 잠시 숨을 돌려 다시 나가 싸울 힘을 얻는 ‘마음의 평화’일까...
잠시라도 세상 풍파를 잊게 할 진공의 공간, 탈속의 고요일까...
그런 것만이 교회의 존재 이유, 혹은 선교의 목적일까 하는 것....
분명 모든 게 과거보다 비교할 수 없이 좋아진 환경이지만,
사실 더 막막한 것은 덕적도 황무지에서 맨손으로 일하던 저 파란 눈의 선교사 신부님보다 오늘의 사목자들의 심정이 더 막막한 게 아닐까...
이젠 뭐든 내줄 만큼 교회는 넉넉해졌지만 더는 그런 걸 얻으려 누구도 손 내밀지 않는 세상,
가난을 구하려다 제 스스로 가난을 망각하게 된 교회,
숭고한 사업을 이어가려다 숭고한 복음을 잃어버린 교회...
이런 막막함은 분명 어두운 바다를 바라보던 파란 눈의 선교사 신부님이 아니라, 정녕 오늘을 살아야 하는 사목자들의 심정일 것입니다.
이제는 옛날처럼 교회가 구호품이나 나눠주고,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밥과 약과 빛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제가 그리고 교회가 밥과 약과 빛으로 사는 것, 이를 분간하고 식별하는 것이 어렵지만 꼭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