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여조 광풍 소멸 후 조국당 태풍 왔다
민들레 언론,[유시민 칼럼]
입력 2024.03.18 06:00
수정 2024.03.18 10:14
지난 번 칼럼은 데이터가 많았고 평소보다 길었다. 검찰독재 종식을 바라는 시민들을 힘들게 했던 2월 여론조사의 실체를 분석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고 말았다. 오늘은 데이터 없이, 너무 길지 않게, 오랜만에 복고풍 문장으로 쓴다. 주제는 ‘2월 여론조사 광풍이 소멸한 후의 총선 기상도 변화’다.
선거 예측, 날씨 예보처럼 동역학(動力學) 써야 한다
선거 흐름을 분석하고 결과를 예측하려면 정역학(靜力學, statics)이 아닌 동역학(dynamics)을 써야 한다. 날씨 예보를 하는 데 정역학인 건축학은 쓸모가 없다. 유체역학과 기상학이 필요하다. 총선 시기에는 후보 수천 명과 정당 수십 개가 동시에 움직인다. 수백만 시민이 정당의 후보 결정에 참여하고 수천만 유권자가 투표소에 가서 후보와 정당을 선택한다. 수천 개의 신문과 방송이 후보와 정당의 말과 행동을 보도한다. 정치 정보와 선거 정보를 퍼뜨리는 개인 미디어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오프라인의 생활공간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격렬한 논쟁과 감정적 공방이 벌어지며, 대중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는 선거 정보는 인터넷을 타고 빛의 속도로 퍼져나간다. 이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경쟁하는 후보들의 득표와 정당의 승패를 결정한다. 그래서 선거 비평은 언제나 어렵다. 날씨 예보가 어려운 것처럼.
우리나라 선거 기상도의 기본 구조는 장마철 기상도와 비슷해졌다. 35년 전 ‘3당합당’ 때부터다. 가끔 변화가 일어나긴 했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원위치했다. 이번 총선 기상도 역시 마찬가지다. 성질이 크게 다른 고기압 두 개가 마주쳐 남북으로 긴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동쪽 고기압은 국힘당, 서쪽 고기압은 민주당이다. 언론은 전선이 한강에서 대전을 거쳐 낙동강까지, 경부선 노선을 따라 남북으로 비스듬히 걸렸다고 보도한다. 그 세 곳에서 이기는 정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2월 중순부터 3월 첫 주까지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선은 경부선 철도 노선의 서쪽에 치우쳐 있었다. 신문 방송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정치평론가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이 민주당의 결집력을 흐트러뜨리고 중도층 민심의 이반을 초래함으로써 국힘당의 압도적 우세 상황을 조성했다고 진단했다.
남북 비스듬히 걸린 고기압전선, 국힘당 우세는 없다
정말 그런가? 전혀 아니다. 2월 여론조사를 믿은 친윤언론은 두 거대 정당이 후보를 확정하기 직전, 국힘당 후보의 강세를 기대하면서 앞을 다투어 격전지 여론조사를 의뢰했다. 결과는 그들의 기대와 완전히 달랐다. 요약하면 이렇다. 국힘당 후보가 우세한 선거구는 거의 없다. ‘한강벨트’는 접전지가 아니다. 후보 개인의 득표력으로 버티는 극소수 선거구 말고는 한강 주변에 여당이 당선을 바라볼만한 데가 없다. 원래 우세한 강남‧서초‧송파구는 여론조사를 하지 않았다. 대전에서도 국힘당 후보의 강세를 확인할 수 없다. 접전지는 ‘낙동강 벨트’다. 부산과 경남의 낙동강 유역 선거구에서 양당 후보들이 초박빙 승부를 벌이고 있다. 창원·거제와 울산 등 낙동강에서 먼 선거구에서도 국힘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제압하지 못하는 데가 많다. 현재 상황은 분명 이렇다.
남북으로 갈린 고기압전선, 전체적으로 보면, 국힘당은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4년 전 총선 때만큼 고전하고 있다. ‘낙동강 벨트’에서도 그때보다 나은 성적을 얻으리라 장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2월 여론조사의 여당 강세 현상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국힘당 당원과 지지자들이 조직적으로 후보 경선용 여론조사 전화를 받은 탓에 생긴 착시현상이었다. 그것 말고는 국힘당 지지율이 1주일 간격으로 15퍼센트씩 널뛴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국힘당의 총선 전망은 2월에도 어두웠고 지금도 똑같이 어둡다. 작년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지금까지 민심은 달라진 적이 없다. 지난 번 칼럼에서 소개한 MBC의 패널여론조사 결과가 유력한 증거다. 갤럽과 리얼미터 등의 일반 여론조사의 지지율 수치는 민심 변화와 무관하게 오르내렸다.
총선 기상도의 압도적 변수는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
무엇이 총선 기상도 전선의 위치를 결정하는가? 여러 요인이 있지만 압도적인 변수는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국민의 압도적 과반수가 좋지 않게 평가한다. 2022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그랬다. 2월 여론조사 광풍이 불었을 때도 긍정 평가 비율은 40퍼센트에 겨우 턱걸이했다. 4년 전을 돌아보라. 총선 직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50퍼센트가 넘었다. 민주당의 21대 총선 압승은 그것 하나로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 지금도 같은 요인이 작용한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낮을수록 총선의 전선은 동쪽으로 이동한다. 민주당의 영토는 넓어지고 국힘당의 세력은 줄어든다. 국힘당이 한강벨트와 대전에서 열세에 빠지고 낙동강 벨트에서 민주당을 압도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대통령과 대통령을 맹종하는 한동훈 비대위원장 책임이다.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왜 이리 낮은가? 길게 말할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경제가 엉망이다. 성장률과 국민소득부터 물가, 금리, 주가, 무역수지, 환율까지 멀쩡한 데가 없다. 부동산 가격 하락도 미국이 주도한 고금리 정책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윤석열 정부는 집값을 올리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큰 효과 없었다.
낙동강에 천둥 번개 부르는 윤의 무능 사악함 기괴함
윤석열 정부는 재난관리와 질서유지 같은 국가의 기본업무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도심 축제에 가거나 도시 외곽에서 차량을 운행하던 사람들이 무더기로 목숨을 잃는 참사가 줄을 이었다. 대통령은 검찰을 비롯한 국가기관을 정치적으로 사유화해 정적을 제거하고 야당을 탄압하는 데 악용했다. 자신의 가족과 측근과 부하들은 범죄의 증거가 드러나도 수사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 일에 앞장선 측근을 여당 비대위원장으로 내세워 총선을 치른다. 대통령이 민생토론회를 빙자해 시장이나 군수가 할 법한 선심성 공약을 마구잡이 쏟아내는 행위를 총선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까지 한다. 비판에는 귀를 막고 항의하면 입을 틀어막는다.
요약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경제를 파탄에 빠뜨렸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법치주의를 짓밟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심조차 없다. 국내외 행사의 기본 의전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산만하다.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취임한지 2년이 되었는데도 실력이 하나도 늘지 않았다. 인간적 매력이라고 할 만한 게 있는 것도 아니다. 윤석열은 3관왕 대통령이다. 무능하기로는 박근혜를 이기고 사악하기로는 이명박을 앞지르며 기괴하기로는 전두환을 능가한다. 바닥을 기는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다수 국민이 윤석열 정부의 정책과 통치방식뿐만 아니라 윤석열이라는 인간 그 자체를 거부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번 총선은 윤석열이 승패를 결정한다. 전선은 경부선 라인 동쪽으로 한 뼘 이동해 있다. 한강과 대전은 평온하지만 ‘낙동강 벨트’에는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쏟아질 것이다.
조국당은 민주당의 ‘스핀 오프’ 정당
작년 가을 이후 정치평론가들의 ‘애착인형’은 소위 제3지대 신당이었다. 실제로는 어찌 되었는가?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다. 시끄럽기만 했지 나온 게 없다. 저마다의 이유로 거대 양당을 뛰쳐나온 정치인들이 여러 신당을 만들었지만 다 망했다. ‘빅텐트’를 세우지도 못했다. 이준석과 이낙연의 신당은 존재감이 희박하다. 운이 좋으면 비례의석 두어 개를 얻을 수 있겠지만 어디에서도 지역구 당선자를 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때를 잘못 선택한 게 문제다. 지금은 전선의 양쪽에 자리 잡은 두 고기압이 너무나 강력해서 제3의 세력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윤석열 정권이 만든 국힘당과 민주당의 대결 전선은 다른 모든 이슈를 튕겨낸다. 정치혁신이나 다당제 같은 의제로는 검찰독재정권 심판이라는 이슈를 흔들지 못한다. 제3지대 신당의 실패는 예정되어 있다.
변화는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조국혁신당 바람이다. 그 정당은 출범 보름 만에 비례대표 투표 3파전 구도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전선에 균열이 생긴 게 아닌가? 천만의 말씀, 전선은 더 강고해졌다. 조국혁신당을 간단히 조국당이라고 하겠다. 조국이 만든 정당이고 조국 대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당이니 그렇게 줄여도 된다. 조국당은 제3지대 신당이 아니라 민주당의 ‘스핀 오프(spin off)’ 정당이다. 민주당에서 뻗어 나온 가지라는 말이다.
누가 조국당을 지지하고,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조국당의 과제는 무엇인가. 민주당은 앞장서기 어렵지만 그 민주당원들이 간절히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다. 그게 무엇인가? 검찰독재정권의 ‘조기 종식’이다. 조국당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윤석열‧한동훈과 정치검사들의 음습한 과거사를 폭로한다. 민주주의와 법치를 파괴하는 윤석열 정권의 행태를 가차 없이 비판한다. ‘3년은 너무 길다’는 슬로건을 들고 임기가 끝나기 전에 윤석열 대통령을 끌어내리자고 공공연하게 주장한다.
이런 정당을 누가 가장 먼저 지지했는가? 전투적 자유주의자 또는 진보 리버럴이다. 그들은 민주당에 속해 있거나 선거 때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중도 진보 성향인 민주당에서 다수파가 되지는 못한다. 2002년 노사모와 개혁당 당원, 2004년 열린우리당 기간당원, 2010년 국민참여당 지지자, 2019년 서초동 검찰개혁 촛불집회의 시민들이다. 그들이 조국당을 비례투표 지지율 10퍼센트로 만들었다. 여기에 검찰독재 청산이라는 과제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중도층 또는 무당층 시민들이 가세하자 조국당 비례투표 지지율은 20퍼센트 선을 넘었다. 조국당은 진보의 언어와 진보의 프레임으로 중도를 포섭하고 있다. 얼마나 더 커질지는 모르겠으나 금방 꺼질 거품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졌다.
조국당은 장마철에 발생한 소형 태풍이다. 검찰독재정권의 조기 종식이라는 선명한 이슈를 내걸고 빠른 속도로 다가와 전선을 강화하고 동쪽으로 밀어냈다. 지난 주 여론조사의 민주당과 조국당 비례투표 지지율을 합치면 조국당 출현 이전 민주당 비례투표 지지율을 확연히 넘어선다. 수치를 신뢰하기는 어려워도 추세는 인정할 수 있다. 이 현상은 총선 결과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조국당을 통해 전선에 합류한 중도층과 무당층 자유주의자들은 민주당 지역구 후보의 득표율을 올릴 것이다.
‘공격수 조국’ 남김없이 불태우라, 아름답게…
태풍의 눈은 당 대표 조국이다. ‘조국당의 조국’은 ‘조국사태의 조국’과 같은 사람이다. 그런데 미디어에서 보는 그는 예전과 완전히 달라 보인다. ‘조국사태 이전의 조국’은 아는 사람만 아는 지식인이었다.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법무부 장관에 지명되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무력화하려고 조국과 가족을 사냥했다. 그것은 선거를 통한 권력 획득으로 이어진 검찰 쿠데타의 첫 단계였다. 아내와 아이들이 인질로 잡히자 조국은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를 낮추어야 했다. 끝없이 추궁당하고 끝없이 비난받았다. 그때마다 거듭 해명하고 거듭 사과했다. 아내를 돌보러 교도소를 드나들었다. 학위를 취소당한 딸과 아들을 보듬었다. 그 자신도 법정에 끌려 다닌 끝에 실형 선고를 받았다. 대학에서 파면당했다.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 즉시 교도소에 들어가야 한다.
인간 조국은 더 떨어질 곳이 없는 밑바닥에서 창당의 깃발을 들고 세상에 나타났다. ‘조국당의 조국’은 수비만 하던 ‘조국사태의 조국’과 달리 공격 본능을 터뜨렸다. 고개를 바로 세우고 목소리를 반 톤 올려 윤석열‧한동훈의 거짓말과 비리와 범죄 혐의를 조목조목 추궁한다. 대중은 그의 내면에 그런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공격수 조국’을 발견한 것이다.
얼마가 남았는지 모를 자유의 시간에, 조국은 자기 자신을 남김없이 불태울 것이다. 어떤 운명이 그를 기다리는지, 그가 불탄 자리에 무엇이 남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있다. 인간 조국을 태풍의 눈으로 삼아 탄생한 조국당은 정체하고 있던 전선의 서쪽에 추가적인 에너지를 전달했다. 힘을 키운 ‘반윤석열 진영’은 중도층을 끌어들여 전선을 한 걸음 더 동쪽으로 밀어냈다. 조국당은 총선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주고 22대 국회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할 것이다.
조국을 보면서 영화 <레옹>과 <글래디에이터>를 떠올린다. 우리는 지금 자신에게 소중한 모든 것을 한꺼번에 빼앗긴 남자의 고통과 몸부림을 보고 있다. 인간 조국은 민주공화국의 공적 가치를 복원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존재의 자격을 확인하려 한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과 검찰 권력을 상대로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전투를 치르고 있다. 결말이 어떠하든 무슨 상관인가. 사회적 사망선고를 받았던 한 남자가 스스로 일어나 자신을 되살렸다. 그에게 주어진 부활의 시간이 길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은 듯하다.
나는 인간 조국을, 조국을 아끼는 나를 미리 위로한다. “그 시간이 짧으면 또 어떤가. 아름다움은 본래 찰나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