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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을 하면서------------------------
8월6일 출발일이 내일인데 아직도 태풍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집행부는 만일을 대비하여 다른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고, 부산에서 배가 출항하기만 간절히 기도한다. 드디어 8월 6일 아침 10시 부산국제여객터미널 상황판에 모든 배의 출항이 정상이라는 전광판이 올랐다.
오후 5시부터 하나 둘 탐방참가자들이 터미널에 도착을 하고 여행사 직원은 탑승권을 준비하고 분주한 시간이 흐르고 6시30분 승선수속이 이루어졌다. 모두들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 가방으로 사람대신 줄 세우고 ......
이번 일본 탐방은 미리부터 준비되었지만 예기치 못한 태풍으로 마음고생들이 심했다. 일부는 태풍에 대한 두려움으로 취소를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더구나 아직도 세월호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바닷길 이용이라 더 했을 것이다.
단순한 일본 여행이 아니라 일본 문화를 제대로 느껴보고 조선 근대화과정에서 있었던 시모노세키 조약의 체결지로 떠나는 여행이라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더구나 야마구치현은 일본 근대정치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명치유신의 정신의 발현지이며,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주역들 그리고 현대 정치의 거물급들이 성장한 곳이기에 더욱 관심이 있다. 우리와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kf처럼 아직도 반목하고 과거의 역사로 인하여 서로가 서먹한 관계이기에 마냥 좋은 기분만은 아닌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일본이 세계적 이목을 받고 우리보다 앞선 국가임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인 만큼 감정적 문제가 아니라 냉철한 이성적 판단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무엇이 분명 있을 것이다.
탐방 일정을 다시 살펴본다.
---일본에서의 탐방 일정---
시모노세키-아끼요시다이-아카요시동굴-츠노시마대교-모토노스미이나리신사-센죠지키-류후쿠지 절-루리코지5층탑-유다온천마을-하기 명륜학사-하기박물관-쇼카손주쿠-킨다이쿄-이와쿠니성, 성하마을-조선통신사 기념비-
---시모노세키로 향하는 뱃길--
시모노세키는 1976년 부산직할시와 자매결연 협정을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잇는 정기 항로가 개설되는 등 양 도시는 한일 양국의 관문과 같은 역할을 담당해 왔다. 지리적으로 근접한 이유 때문에 과거로부터 양 도시 사이에는 정기 연락선이 연결되어 왔고 따라서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하였다. 시모노세키에는 많은 한국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특히 시모노세키역 북쪽 그린몰 상가 일대는 사실상 코리안 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시모노세키 시는 야마구치 현[山口県]을 대표하는 도시로 현청 소재지 야마구치 시보다도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어 야마구치 현 제1의 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면에서도 야마구치보다 시모노세키에 영업 거점을 두고 있는 기업이 많다. 총 면적 716㎢의 도시에 2011년 현재 28만 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매년 상주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부산광역시는 1963년 직할시로 승격된 이후 세계화·개방화의 흐름에 따라 외국 유수 도시들과 상호 교류 협정을 체결해 왔다. 1965년 한국과 일본이 수교한 이후 지방 차원의 자매결연을 추진한 결과 1976년에 시모노세키 시와 자매 도시 협정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부산직할시[현 부산광역시]는 1976년 10월 11일 부산직할시청에서 자매도시 협정 체결식을 가졌다. 이때 박영수 시장과 이가와 가쓰미[井川克巳] 시장이 협정서에 서명하였다. 부산광역시와 시모노세키 시 사이에는 1976년 자매도시 결연 이후에도 여느 도시보다 다양하게 인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조선 통신사 행렬 재현, 관광 전시회 교환 개최 등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부산시와 시모노세키의 관계를 생각하는 동안 성희호의 밤은 깊어가고 흔들리는 객실에서 잠을 청한다.
--------일본에서의 첫날(7일) 일정이 시작되다.------------
화려한 부산야경을 뒤로하고 시작된 일정이 이제 일본에서의 첫 일정으로 이어졌다. 동이 트고 성희호는 일본열도 사이를 비집고 부산항에 비하면 규모가 매우 작은 시모노세키항으로 배가 들어선다. 우측으로는 공업도시인 기타규슈의 항구가 보인다. 해안선으로 길게 이어진 기타큐수의 중공업단지의 굴뚝과 도시들을 지나 구 시가지가 보이더니 배는 두 지역을 잇는 다리 세 개를 지나 항구에 접안을 시작했다. 배안에서는 아침 식사 줄들이 식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성희호는 천(天), 지(地), 해(海)를 기본 컨셉으로 하여 각 데크층마다 미술품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2002년 5월 22일 첫 운항을 시작으로 지금은 부관 훼리에서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부산항에서 일본 야마구치 현 시모노세키시 시모노세키항 구간을 왕복으로 매일 운항중이다.
162m×23.6m×14.5m의 규모로 16,875톤의 배이다. 배의 운항속도는 14노트 정도로 운항을 한다고 한다.
간단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하선을 하니 버스 두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여지없이 일본 특유의 모드로 시작되는 기사님의 인사
~ 우리는 짐을 싣고 가장 입에 익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일행 중 한분이 특별대우(?)를 받느라고 짐을 모두 풀고 하나하나 점검하느라고 시간이 좀 걸렸다. 아침부터 바쁜 일정을 시작한다.
처음 방문장소가 일본 국정공원 야키요시다이(秋吉台)와 아카요시동굴
산정상에 넓게 펼쳐진 모습이 꼭 대관령 목장지대를 보는 듯하다. 아래에는 동굴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동굴의 이름이 아카요시 동굴이다. 우리나라의 강원도 지형과 유사하다고 보면 좋겠다. 평범 할 수 있는 이 대지를 하나의 관광단지로 만들어 낸 것은 일본인들의 세심한 관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우리도 카르스트 지형이 많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처럼 동굴과 함께 연결한 관광 상품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아카요시 동굴은 일본 혼슈 섬 서쪽 끝 야마구치(Yamaguchi)현에 면적이 약 130km에 이르는 카르스트 지형인 아키요시 다이 아래이다.
대지에서 부터 지하 약 100m에 위치한 동굴로 남쪽 기슭에 뚫린 동양굴지의 대종유 동굴인데 우리 일행은 야키요시다이에서 아래 입구쪽으로 내려왔다. 입구의 에랄드빛 폭포수가 곱다.
아키요시 동굴은 약 10km정도의 길이를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볼 수 있도록 개방해 놓은곳은 약 1km 정도이고 일년 내내 약 17도 정도의 온도를 유지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여 일본 관광객도 많이 찾는 곳 이라 한다.
한국어 안내방송도 하고 있습니다.
아키요시 동굴안에 형성 된 석회 단구로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접시 모양을 한 연못이 500여 개가 계단 모양으로 이어져 있는데 우리 시골의 계단식 논 같기도 하고 신비롭기 그지없다.
아키요시 동굴은 동양최대의 종유동굴로 동굴 안을 일년 내내 물이 함께 흘러내리며 동굴안에 호수와 폭포에는 작은 새우가 산다고 한다.
동굴을 나와 점심식사를 하기위해 식당을 들렀다, 일본의 대표음식들이 바로 ‘야끼’......
점심 메뉴는 바로 야끼모밀면이다. 安富屋이라는 곳에서의 일본 첫 음식이 메밀면을 이렇게 뜨겁게 해서도 먹는다는 걸 몰랐다. 아무튼 첫 식사는 정신없이 해치우고 특산품을 구경하러 기념품상을 둘러보았다. 각기 자기 고장의 이름을 걸고 내놓은 상품들이 즐비하다. 특히 기념품은 정말 의미 있게 보았다. 그리고 아키요시다이의 특별한 나츠미캉 아이스크림이 있다고 하나 아이스크림을 즐기지 않는 편이라 맛을 보지는 못했다 .....
두 번째 일정---쓰노시마대교
쓰노시마는 둘레 약 17㎞의 장구 모양의 섬으로,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이다. 섬의 북서쪽과 북동쪽 곶이 소뿔처럼 생겼다고 해서 쓰노시마(뿔 섬이라는 뜻)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19세기 초에는 에도막부의 해양 감시소가 설치되었으며, 1940년에는 시모노세키 요새의 일부로 포대가 구축되었다. 2000년 본토와의 사이의 해협, 아마가세도[海士ヶ瀬戶] 위로 총길이 1,780m의 쓰노시마대교[角島大橋]가 완성됨으로써 본토와 육로로 이어지게 되었다. 쓰노시마대교는 일반 도로교량으서는 일본에서 2번째로 긴 다리이다.
섬의 주산업은 수산업이다. 호호쿠초 전체 어획량의 60%를 차지하는 이 섬의 어업이 섬 경제는 물론 호호쿠초의 수산업을 지탱한다. 농업에서는 쌀과 청완두가 재배되며, 축산업으로 옛날부터 일본소를 방목한다. 섬 전역이 기타나가토해안[北長門海岸]국정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섬 북서단에는 높이 43m의 쓰노시마 등대가 있는데 1876년에 첫 점등을 한 이 등대는 동해 쪽에 세워진 서양식 등대로는 일본 최초의 것이라 한다.
다리를 건너서 섬을 방문하고 돌아나와 다시 다리를 보는 순간 또 다른 한가지를 배우게 되었다. 다리의 모습도 참 아름답지만 섬과의 사이에 있는 작은 또 다른 섬을 피하여 교각을 세우고 다리를 완성했다는 점이다. 우리와 좀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우리라면 중간에 교각을 세우고 그 섬에는 또 다른 시설물을 설치하거나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참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설계를 한 것 같다.
바람과 비가 가끔 우리를 시원하게 해주는 가운데 또 다음의 일정을 이어간다.
모토노스미이나리신사
일본을 알고 싶다면 신사(神社)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어디를 가나 보이는 신사들..... 우리가 간 모토노스미 이나리신사는 독특한 모습과 경치가 좋기로 소문난 신사이다. 야마구치에는 여우와 관련된 것들이 많은데 이 신사가 그러하다. 신사문화는 오늘날 일본인의 일상적 삶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일본집안에는 거실 상단에 마련된 '도코노마'(바닥을 약간 높여 만들어 놓은 공간으로 꽃이나 족자 등으로 장식)를 만들고 '가가미모치'라 해서 설날에 가미를 대접하기 위해 차려놓는다고 한다. 개인집의 신사인 셈이다.
그리고 일생동안 고비고비마다 신사참배를 한다. 이는 일본의 사찰에서도 신사와 연결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중 모토노스미이나리 신사는 123개의 도리이를 지나면 작은 신사가 있다. 나카토 시에 있는 이 신사에서 기도를 하면 가게가 반창하고, 고기잡는 어부는 대어를 낚고,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고, 학업성취를 이루게 해주고 등등.... 아무튼 우리 인간의 모든 것들을 성취하게 해주는 곳인가 보다. 여기는 여우를 모시는 신사인데 ‘오카무라’라는 어부의 꿈에 여우가 나타나 바다를 잠잠하게 해주는 여우를 모시는 신사를 만들라고 한 이후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리고 신사에서는 5엔짜리 동전을 시주하는데 그 이후는 좋은 인연이라는 ‘고엔’이라는 일본어와 동일시하여 그렇다고 한다.
비가 중간 중간 내리고 우리는 서둘러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센죠지키로 향했다. 센죠지키는 다다미를 천개 깔아 놓은 것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확트인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근심걱정이 다 사라지는 느낌이다. 절벽위의 풍력발전소를 뒤로하고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온천 여관(야마무라벳간)이라 방을 배정받고 유카타를 입고 식당으로 와도 된다고 한다. 유카타(浴衣)는 원래 온천 안에 입장하기 전에 입는 가운이다.
목욕을 하게 되는 탕이 있는 곳은 우리나라의 목욕탕처럼 남/녀가 분리되어 있고 그 곳에서는 옷을 모두 벗는데 일본사람들은 주요부위를 수건을 살짝 씩 가리고 다니는 게 예의라고 한다. 아무튼 욕탕을 갈 때 입는 옷을 입고 식사를 한다는 게 참으로 묘한 일이기도 하다. 아무튼 일본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토록 예의를 중시하면서 이런 면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쓰시정식을 저녁식사로 하고 객실로 돌아와 차 한 잔으로 피로를 풀었다. 다다미가 깔린 객실에는 정갈한 찻상이 마련되어 있었다.
3일차
아침 6시에 기상을 하여 온천탕에서 간단히 온천을 하고 여관 밖 동네로 향하였다. 온천 동네라 여기저기 온천을 겸한 숙소들이 있다. 정갈한 골목길, 그리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깨끗한 골목길, 그리고 잘 갖춰진 주차장 등이 너무 부러웠다. 우리나라는 골목마다 주차장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시간인데 한 대의 차량도 골목밖에 주차하고 있는 차량이 없다. 주택안에 주차를 하거나 공용주차장에 반드시 주차되어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도로 한켠에는 수상의 사진이 있는 자민당 광고판이 세워져 있다. 짧은 시간 동네를 둘러보고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다.
아침식사 메뉴는 밥, 찬으로 생계란과 마즙으로 생각되는 즙, 고등어, 두부, 어묵 등이 나왔다. 아주 정갈하고 소찬이어서 나에게는 참으로 인상적면서도 좋은 아침인 것 같았다.
8시에 여관앞에서 단체 기념 촬영을 하고 바로 승차를 하고 3일째 일정에 나섰다. 오늘은 첫방문지가 류후쿠지 절이다. 이 절은 오우찌(大內) 씨를 기리는 절로 오우찌는 14~ 16세기에 주코쿠 (中國: 야마구치와 히로시마 일대)를 지배하는 대영주로 백제 성왕 의 셋째 아들 임성태자의 후손이다.
아시카가 막부 시대에 임성태자의 25세손 오우치 요시히로 는 오늘날의 야마구치와 시모노 세키 일대의 守護(수호)가 되고 1395년에는 규슈까지 지배하게 되었다.
오우치 요시히로는 1399년에는 고려를 이어받은 신생 조선에 사신을 보내어 팔만대장경 불경 을 주면 "왜구(倭寇) 를 소탕" 해 주겠다고 제의한다
그 후손 오우치 마사히로는 서부 6개국 수호로서 1,467년 무로마치 (室町) 막부 후계전쟁인 오닌의 난 에 참가하여 아들편에 섰으나 센슈에서 패하여 전사한다. 그는 일본 노래인 와카(和歌) 와 렌카(連歌) 에도 능했다는데 죽으니 조선과의 무역을 관장했던 동생인 모리하루가 카르비 절 을 짓고 5층탑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31대 오우치 요시타카 대에 이르러 7개국 수호로 최전성기를 구가하니 카야마(香山) 공원에 루리코지 (瑠璃光寺 유리광사)를 세우고 5층탑을 짓는다.
현재 히노키피즙을 입힌 5층탑은 일본에서 3대 명탑 에 속하므로 국보로 지정되었다.
요시타카도 교토에 올라가 아시카가 쇼군과 관령 호소카와씨 후계문제에 개입하느라
오래토록 영지를 비우고.... 또 귀향해서도 정무를 소홀히한 채 문학이며 음악등 놀이에 빠지니.... 중신인 스에하루타카가 모반 을 일으켜 망한다. 한편 불우한 처지에서 몸을 일으킨 모리(毛利) 모토나리는 오우치 요시타카에게 귀부한 후 요시다군 산성 전투에서 이즈모의 아마고 3만대군을 물리치고 명성을 얻는다. 모리 모토나리는 스에 하루타카가 주군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자 군대를 이끌고 이쓰쿠시마 전투에서 스에씨를 유인하여 급습해 죽이고는 서부일본 7개국의 수호가 된다.
이어 이즈모로 진격해 아마고씨를 죽이고 8개국을 차지한 후에는 자기 분수를 알고
교토 조정에 대적하는 일을 삼가니..... 후일 1,600년의 세키가하라 전투 에서도 오사카성에 머무르며 몸을 보전한다.
이 모리씨가 비명에 죽은 오우치 요시타카(大內義隆) 를 위해 그 저택 자리에 세운 절이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여기 류후쿠지(龍福寺 용복사)인 것이다. 조선왕조 실록 에 보면 태조에서 명종까지 大內殿(대내전) 이라는 이름이 무려 248회나 나오는데 그가 보낸 사신에 우호적이니 바로 오우치(大內)씨 를 가르킨다.
오우치씨는 1,379년 고려에 사신 을 보냈고 조선과도 오래토록 사신을 보내 무역을 했으니 신숙주는 해동제국기 에서 오닌의 난과 오우치(大內)씨를 상세히 기술하였다.
2009년에 오우치씨의 45대손 인 오우치 기미오 와 그 부인 오우치 다카꼬가 전북 익산을 방문해 미륵사지를 보고 부여까지 둘러보았다. 조상인 백제 성왕이 조성한 미륵사지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린 부부는 귀로에 1,500만원을 유적보호를 위해 익산군에 기부하기도 했단다.
절을 나와 가족 공동묘지를 지나 도로를 걸으면서 보니 마을에는 오우치(大內) 이름을 단 가게며 문패가 더러 보인다. 골목길에 나와서 동네의 주택을 돌아보니 일본전통가옥들이 그대로 보존되고 이어지는 모습들이 너무 부럽다. 우리는 어느 도시를 가보아도 한국 고유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도시 곳곳이 이렇게 역사의 흔적과 고유의 삶의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는 일본은 우리가 분명 본받을 대상이다. 우리는 과거 역사의 모습은 근대화과정에서 그리고 현재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깡그리 뭉개어 버리고 그래도 조금 양심이 있으면 기념비 하나 세워놓으면 그만이다.
류후쿠지를 나와 루리코지로 향했다. 목조탑인 루리코지는 500년이 넘게 흐른 시기에도 온전히 보존되고 있다는 게 참으로 경이롭다.
루리코지 방문을 마치고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바로 유다온천마을을 방문하였다. 온천의 국가 일본 곳곳에 보이는 족탕을 체험해보았다. 여기서도 여우의 전설이 있다. 더운 여름에 경험해보는 족탕은 또 다른 느낌이다. 간단한 족탕체험을 하고 하기의 명륜학사로 향했다. 역사 유적지를 복원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문화유산으로 등록까지 하는 일본의 모습에 또 한번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다운 것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것 우리는 얼마나 하고 있는가? 명륜학사와 하기시박물관은 돌아보는 내내 일본이 조선을 우습게 깔보고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힘을 어디서 얻게 되었는지를 알게 했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쇼카손주쿠로 향했다. 새로운 일본교육방식을 도입한 곳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교육방식이 명치유신을 가능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쇼카손주쿠(松下村塾 しょうかそんじゅく)는 조슈 번사인 다마키 분노신이 나가토 국 하기 성에 개설한 사설학당으로 원래 야마가(山鹿) 식 병법을 가르치던 시골 서당(私塾)이었다. 설립자의 조카 요시다 쇼인이 재인수해 존왕양이, 즉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외세를 막아내자는 사상을 퍼뜨렸다. 기도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다카스기 신사쿠 등 이른바 조슈 번 유신 지사들이 모두 그의 제자로 쇼카손주쿠는 메이지 유신의 요람이 됐다.
1860년 서양 문물을 직접 보려 밀항을 시도하다 발각당한 요시다 쇼인이 이이 나오스케가 주도하는 안세이 대옥에 처형당하며 1차로 폐쇄당하고 1868년 메이지 유신 후 부활했다가 1876년 순국군 내란이 일어나는 하기의 난 시기에 동문들이 휘말려 다시 폐교되었다. 1880년 요시다 쇼인의 친형 스기 민지가 재건했지만 1890년에 공표된 일황의 교육칙어로 완전 폐교됐다. 1922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됐다. 현재 쇼카손주쿠 유적에는 ‘메이지 유신의 태동지’라는 입석이 보인다.
방문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하기혼진으로 향했다. 어제 숙박지가 전통적 모습을 많이 간직했다면 다소 현대적 호텔의 분위기가 풍기는 숙소이다. 저녁을 간단히 하고 일행과 시내로 향했다. 일본의 일상적인 물품들을 구입해보기 위해서다. 걸어서 시내를 헤매다가 겨우 대형마트를 하나 발견하고 들어가 애들과 어른들께 드릴 먹거리를 몇 가지 구입하고 돌아왔다.
4일째
아침은 숙소에서 뷔페로 하고 8시에 숙소를 출발하여 킨다이쿄로 향했다. 목조다리인 킨다이쿄는 이와쿠니성을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다리이다. 이와쿠니성(岩國城)은 세키가하라 전투 후 이와쿠니 지방으로 임명된 깃카와 히로이에가 산요도 지방의 동쪽 요충지에 세운 것이 이와쿠니성이다. 성은 니시키강(江)에 면한 요코산(山) 정상의 성곽 부분과 산기슭에 있는 별관(오도이)으로 구성된다. 거주하는 저택과 성 아래는 다섯 개의 아치형 목제 다리로 연결된 긴타이쿄로 이어졌다. 산 위의 성곽 부분은 혼마루(주성)를 중심으로 남서쪽에 니노마루(둘째 성곽), 북동쪽에 기타노 마루(북쪽 성곽)가 배치되어 석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요새에 성루가 구축된 엄중한 짜임새로 이루어졌다. 혼마루에 만들어진 천수각은 4층 6단이다. 3층보다 4층을, 5층보다 6층이 밖으로 많이 튀어나온 특이한 남만조(南蠻造)형식이다. 그러나 완성된 지 겨우 7년 만에 에도막부가 내린, 각 다이묘의 번에 다이묘가 거주하는 하나의 성만 남기고 나머지 성은 없애라는 명령(一國一城令)에 의해 천수각을 비롯한 산 위의 건물과 석벽은 파괴되었다. 이후 1962년에 천수각이 재건되었다.
킨다이쿄는 태풍으로 망가진 교각을 다시 재건하는데 200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는데 현재도 다리 보수 등을 위한 모급을 계속하고 있고, 교각을 건너고 이와쿠니 성을 올라가는 로프카(?) 이용 요금을 꽤나 비싼 편이라 할 정도로 징수한다.
관람을 하고 내려 온 후 우리 일행은 이 지역의 특색음식인 이와쿠니스시를 먹었다. 조금은 부실한듯하지만 스시와 면을 먹고 나니 속이 든든하다. 이제 다시 시모노세키를 향해 출발을 해야한다. 죠후마을을 방문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일본에서의 공식 일정을 마치고 바다 건너에 있는 북규슈의 면세점을 들러 부산행 배를 타기 위하여 서둘러야 할 시간이다. 간간히 뿌리는 빗줄기와 함께 면세점을 들리고, 조선통신사 기념비는 차창으로 바라보며 시모세키 항 국제터미널에서 지나간 여정을 되새겨본다.
5일째
지난밤에는 무리무리 지어 아쉬움과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는 뒷풀이들이 이루어지고 어느듯 밤이 새고 우리가 타고 온 성희호는 광안대교를 스쳐 지나며 부산항에 접안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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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히 활용바랍니다.
에고...공무외 국외자율연수 대충올렸는데 요기 이렇게 명쾌하게 나와있는걸~~~~ㅎ ㅎ ㅎ
감사합니다.
박학다식하십니다
총장은 아무나하나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11.16 1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