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레이션 게임 /고경숙
6인 병실 구석침대에 사내가 누워있는 걸 알 수 없게
TV 수상기를 매단다 의사의 처방도 투약도
간호사들이 체온을 재러오는 일도 없앤다
육신 멀쩡한 보호자들이 얼마 후 있을 대선후보들의 토론을 보며
지방색을 드러내기에, 어긋난 대화를 서둘러 닫는다
흰 벽쪽을 보게 눕힌다 옆 침대로 똑똑 떨어지는 링거액을 메트로놈 삼아
손장단을 치는 사내, 가끔 벽에 암호처럼 악보 몇 줄 그려준다
착란의 흔적이라 하기엔 너무 선명하다겠지? 직립의 음표들,
음역이 넘나드는 창문 너머 단풍의 진한 각혈을 손질한다
신께 무상으로 증여받은 유전자들을 사내 날마다 소포장해 버릴 때마다
누구하나 눈길을 주지 않는다 나도 입을 다문다
시한을 정한다는 것은 병력의 시비를 따지고들 때 얘기라
이 병동에선 반칙이다
준엄한 의사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죽음 뿐,
사내의 혈색이 너무 비극적이라 고치려다 만다
병실전화가 울린다 때 묻은 환자복을 갈아입히고
사내의 침대를 비상엘리베이터로 깊숙이 내려보낸다
바람을, 어둠을 뒤따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