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문집
영원한 사회부장 오소백
“기릴 선배가 많지 않은 요즘 선생이 유난히…”
우리는 너무 늦게 그의 이름을 부릅니다
吳 ‧ 蘇 ‧ 白
우리는 너무 늦게 그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제 그는 대답이 없습니다.
오 ‧ 소 ‧ 백
더러는 그가 누구냐고 묻기도 합니다.
이제 남은 자가 대답할 차례입니다.
영원한 사회부장
그는 역사를 기록했지만, 역사는 그를 잊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역사의 등잔 심지를 돋워 그의 초상화를 조명해야 합니다.
……………………………
망각의 세월은 그의 이름조차 허공에 날려 보내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합니다.
이제사, 그의 지인, 후배들이 바래가는 ‘吳 蘇 白 전설’에
正史의 옷을 입혀 추념문집 <영원한 사회부장 오소백>울 엮었습니다.
일주기를 맞아 삼가 영전에 바칩니다.
2009. 8. 광복의 달에
오소백을 생각하는 사람들
서울언론인클럽(회장 강승훈) 추모문집편찬위원회(위원장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는
1950∼1960년대 경향신문을 비롯해 여러 중앙 일간지 사회부장을 지낸
고(故)오소백 대기자의 1주기를 맞아 7일 정오 경기 여주 남한강공원묘지에서 추모비 제막식을 갖고,
같은 날 오후 6시30분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추모 문집 '영원한 사회부장 오소백' 출판기념회를 열었습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권오기 전 부총리,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
조용중 전 연합통신 사장, 신우식 전 서울신문 사장, 윤종현 전 한국일보 주필, 신경식 전 정무장관,
제재형 전 대한언론인회장, 윤양중 일민재단 이사장, 함정훈 전 국민일보 편집국장, 어경택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고바우 김성환 화백, 김후란 시인, 손일근 서울대 동창회 상임부회장, 송두빈 전 헤랄드경제 편집국장,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 교수, 안광식 이화여대 명예교수 등 많은 인사들이 참석, 성황을 이뤘습니다.
경향신문사우회(회장 이형균)에서는 옛 선배에 대한 추모의 염(念)을 담아 화환을 보내 자리를 빛내 줬습니다.
언론계에 본받고 기릴 선배가 많지 않다고 하는 요즘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새삼 언론인으로서 올곧게 살다간 ‘영원한 기자’ 오소백 선생이 돋보입니다.
대기자 청오(靑吾) 오소백선생은 40년대 말에 기자생활을 시작해
50년대와 60년 초까지 8개 일간 신문의 사회부장을 9차례 역임했습니다.
불안했던 해방정국과 반민특위, 그리고 정부 수립에서 6.25… 등에 이르기까지
격동 반세기 현장을 온몸으로 누비며 광산촌과 농어촌 등
어려운 곳과 불우한 사람들을 기사화한 그는 사회부 기자의 전범(典範)으로 불려왔고,
기자정신을 몸소 실천했던 ‘현장’이었으며, ‘역사’라 평가 받아 왔습니다.
소생(맹태균)이 이번에 기획 편집을 맡아 발간된 책에는
투철한 기자정신을 지닌 언론인이었을 뿐 아니라 시대를 앞서간 현대감각의 신문문장가였던
오소백선생의 언론사적 자취와 인간적인 면모, 화가이면서 시인이었던 모습과 함께
휴머니스트적 칼럼 등이 실려 있습니다.
총 4부로 구성돼 1부에서는 현장을 역사로 바꾸었으며
현대사의 고비마다 뜨거웠던 지킴이 역할을 했던 ‘영원한 사회부장’ 오소백선생이
언론사에 남긴 자취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기자 오소백 인간 오소백’이라는 타이틀로 언론저술의 선구자적 발자취와
저널리스트로서의 不忘의 魂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또한 대기자로 통하는 오소백선생의 취재현장에서의 생생한 모습과 자유언론의 길잡이로서의 흔적,
그리고 후배 언론인들에게 남겨진 단상과 출판언론인으로써의 모습,
그리고 ‘메아리 학교’에 쏟은 선생의 사랑이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3부에서는 선생의 그림과 시(詩)를 ‘화가 오소백 시인 오소백’이라는 타이틀로 그려냈고,
4부에서는 ‘나라 망치는 땅도박’, ‘이데올리기의 광신’, ‘수수한 대통령’, ‘술벗이야기’ 등이
‘휴머니스트 오소백 칼럼’이라는 이름으로 담겨있습니다.
■ 추모 글 발문 중에서
"내가 아는 오소백 선배는 넓은 가슴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좁은 길을 택했다.
부귀영화 같은 건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자유언론수호를 위해 경영주와 맞서는 일은
그가 옮겨 다닌 회사의 숫자보다 많았다.
그의 날카로운 펜은 비록 마모되어 갔으나 결코 녹슬지 않았다."
김경래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익명의 편집국, 무위의 편집국에서 유일하게 내가 이름을 듣고 금방 알아 본 분이 오소백 사회부장이다.
왕년에 월간지 ‘신천지’에 서울의 밤거리 르포를 연재했던 오소백 선생.
그 오소백 사회부장이 무위의 편집국에서 하품만 하고 있던
‘無수습’기자에게 처음 취재지시를 하고 일을 시켜주셨다."
최정호 울산대학교 석좌교수
"오소백은 어느 누구보다도 시대를 앞선 매스컴 문장 분석가였으며
언론 문장수준의 향상을 위해 노력한 언론인이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문장이 지나치게 긴 기독교 성경을 혹평한 것이다.
그는 마태복음 22장 1〜14절의 문장이 만리장성처럼 길어 ‘암에 걸린 문장’이라고 비꼬았다."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
"오 선생은 한때 사회부장도 지냈으나 유격기자로 전국을 순회하면서 르포시리즈를 쓰고 있었다.
그때 기사내용은 소외계층에 대한 휴먼터치가 물씬 풍기는 아기자기한 얘깃거리였다.
그가 자주 지방취재를 다녀온 후 사회부 한 모퉁이에서 열심히 현장르포 기사를 쓰던 모습이
수습기자의 눈에는 존경스럽고 신기하게도 보였다."
여영무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경향 수습 출신)
"오소백 선생의 사회부장 경력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15년을 채 넘지 못한다.
반면 그의 언론학 교재 집필이나 언론학 교육경력은 40여 년에 걸쳐 계속됐다.
따라서 '영원한 사회부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언론인 양성에 앞장선 언론인'으로서도 오소백 선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용규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올챙이기자 방랑기>와 <기자가 되려면>이 뇌리에 남아…
그 기대만큼 그분의 강의는 내가 언론인으로 성장하는데 크나큰 양분이 되었다.
그분에게서 무엇보다 '올바른 기자 정신'을 배웠다.
“신문기자는 만인의 교사”라고 강조하시던 그 목소리가 지금 귀에 선하다."
맹태균 전 청주대 겸임교수
첫댓글 맹교수 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나는 오소백선생과 한번도 부딪친 적이 없지마는 언론계의 거목이라고 할 수 있지요. 출판 기념일날 가려고 했으나 강한필사장 빈소에서 늦어져 가지는 못하고 화환만 보내는 결례를 범했습니다. 오선생의 발자취는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맹교수가 이번에 너무 수고가 많았던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 회장님! 화환을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소백 선생은 특정 신문사 기자라기보다 한국 언론의 '큰 형님'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당대 언론의 師表가 될만한 분이 어디 오소백 선생 뿐이겠습니까. 아직도 그늘에 가려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우리시대 '참 언론인'이 있습니다. 바로 언론계의 거목 千寬宇 선생입니다. 그 분의 기개와 올곧은 정신을 기리려고 여러분들이 이심전심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