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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성경 번역의 역사
성경이 새로 개정되거나 번역될 때마다 왜 번역이 자꾸 바뀌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특히 현재 대다수 한국 교회에서 읽고 있는 ‘성경전서 개역한글판’(1961, 이하 개역한글판)에 익숙한 독자들은 이미 많은 본문을 암송하고 있다. 친숙해진 성경을 ‘성경전서 개역개정판’(1998, 이하 개역개정판)이나 ‘성경전서 표준새번역 개정판’(2001)으로 바꾸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 왜 성경 번역은 계속돼야 하는가? 왜 한 번 번역된 성경을 계속 사용하는 데 문제가 있는가?
본고는 이런 질문을 갖고 성경 번역의 변천사를 개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초대 교회에서부터 루터의 종교개혁과 한국 교회사에서 성경 번역의 현황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을 살펴보고, 각 시대에 성경을 새로 번역하거나 개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필요성을 짚어본다. 그리고 우리말 성경 역사에서 여러 가지 번역 대본과 그 원칙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한국 교회가 읽고 있는 우리말 번역 성경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넓히고자 한다.
초대 교회와 성경 번역
신약 성경을 읽다보면 “성경 말씀”(요 2:17)이나 “성경 구절”(행 8:32)이라는 표현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성경’이란 초대 교회에서 읽었던 구약 성경으로, 히브리어 구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칠십인역’(Septuagint)을 가리킨다. 칠십인역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정복당한 후(기원전 587년) 이스라엘 본토를 떠나 그리스 문화권에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 번역돼 프톨레미 2세 때(Ptolemy Ⅱ, 기원전 285~246년) 완성되었다.1 칠십인역은 이후 그리스어 신약과 함께 라틴 교회와 가톨릭 교회의 경전으로 널리 읽혀지게 되었다.
초대 교회 당시 지중해 동반부에서는 코이네 그리스어가 통용되고 있었는데, 신약 성경이 바로 이 코이네로 기록되었다. 교회가 점차 로마 중심으로 재편되고 라틴어 문화권에서도 자리를 잡게 되자 히브리어나 그리스어 성경은 대중적으로 읽히지 않게 되었다. 라틴어 구약 성경이 2세기 중엽 로마 점령지인 북아프리카와 갈리아(Gaul) 지방으로, 3세기 초에 로마로 유포되었다. 신약도 3세기경 북아프리카, 소아시아, 갈리아, 스페인 등에서 고대 라틴어 곧 이탈라(Itala)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고대 라틴어 역본들을 정리한 교황 다마수스(Damasus)는 382년경 라틴어 성경 개정을 당대의 석학 제롬(Jerome, Eusebius Hieronymus)에게 공식적으로 맡겼다.2 제롬은 히브리어 구약과 그리스어 신약 사본 고대 라틴어 역본들을 번역 대본으로 삼아 390년부터 번역을 시작해 405년에 끝냈다. 그러나 라틴어 성경은 서방 교회에서 이미 널리 읽히고 있던 칠십인역과 다르고 또 전통적으로 읽히고 있던 고대 라틴어 역본들과도 다르다고 하여 교회 안에서 정착하기 어려웠다.3 1546년 트리엔트공의회에 가서야 비로소 제롬의 라틴어 역본을 공인 성경인 ‘불가타’(Vulgata, 공통적 혹은 대중적) 역본을 인정받았다.4 그러나 공의회는 이 외에 자국어 성경 번역을 금한다고 결정함으로써, 성경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것을 막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전에 기독교는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밀라노 칙령 이후 복음을 공식적으로 다른 지역으로 전파할 수 있게 되면서 여러 민족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다. 4~5세기에 시리아의 에뎃사와 서부 메소포타미아에 복음이 전파되면서 구약과 외경 그리고 신약 22권이 들어 있는 시리아어역 ‘페쉬타’(Peshitta, 쉬운 보통 말)가 번역되었다. 6~7세기에 신약 27권이 전부 들어 있는 시리아어역인 하클리안 판이 번역되고, 3~6세기에 이집트에서 콥트어역, 5세기에 그루지아어역와 에티오피아어역, 6세기에 누비아어역이 번역되었다.5
또 선교사들이 알파벳을 만들어 준 후 성경을 번역하기도 했는데, 4세기 중엽에 선교사 울필라스(Ulfilas)는 지금의 슬로바키아와 불가리아에 있던 고트족에게 고트어 알파벳을 발명해 성경을 번역했다. 메스로프(Mesrob 혹은 Mashtotz, 361~439년)는 406년 아르메니아어 알파벳을 만들어 4~5세기에 성경을 번역했다.6 이런 번역본들은 본문 비평에 중요한 자료가 될 뿐 아니라 기독교 선교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 증거가 되고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과 성경 번역
중세 교회가 일반 신도들로 하여금 성경 읽기를 금지하는 가운데,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1522년 9월에 「독일어 신약 성경」(Das Neue Testament Deutsch)을 번역하면서부터 세계 성경 번역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루터의 번역 목적은 잘 알려진 대로 누구나 성경을 읽도록 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직역이 아니라 관용적인 독일어로 번역되었고 일반 신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번역되었으며 가격도 저렴했다. 당시 불가타는 집 한 채 가격이거나 살찐 소 열네 마리와 맞먹는 가격이어서 유산으로 남길 정도였지만, 루터의 신약은 목수들의 주당 임금에 해당하는 금화 반 돈 정도였다.7 루터의 독일어 신약 성경은 놀라운 속도로 널리 유포되었고, 1522년과 1533년 사이에 85판을 발행했을 정도였다.
「독일어 신약 성경」의 번역 특징은 당시 가톨릭 교회에서 읽고 있던 라틴어 성경을 대본으로 삼지 않고 에라스무스(Erasmus)의 ‘그리스어 신약 성경’(제2판, 1519)을 대본으로 삼은 데 있다. 구약 성경의 번역 대본은 ‘브레시아 히브리어 성경’(Brescia Hebrew Bible, 1494)이었는데, 루터는 ‘멜랑흐톤’(Philip Melanch- thon)을 비롯한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1534년부터 1546년까지 그의 번역을 열한 번 개정했다.8 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스웨덴어역(1541), 덴마크어역(1550), 아이슬란드어역(1584), 슬로베니아어역(1584) 등에 영향을 주었다.9 종교개혁 이후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사제들만 읽을 수 있었던 성경을 일반 신도들도 읽게 되었다. 그런 후에 근대 선교와 함께 미국,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들에 의해 성경은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다. 1804년 영국성서공회가 설립된 후 성서 공회 운동도 활기를 띠어, 1946년에 조직된 세계성서공회연합회(the United Bible Societies)가 성경에 대한 출판과 보급을 담당함으로써 성경 번역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우리말 성경 번역과 복음 전파
우리말 성경의 첫 번역은 1877년 스코틀랜드성서공회의 지원으로 한국에 온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에 의해 시작되었다.10 로스는 동역자 존 맥킨타이어(John MacIntyre)와 한국인 조력자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이성하 등의 도움을 받아 1882년 만주의 봉천에서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1882)와 ‘예수셩교한안ㄴㅣ복음젼셔’(1882)를 번역해 출간하고, 낱권 성경을 차례로 출간한 후 1887년에 첫 우리말 신약 ‘예수셩교젼서’(1887)를 번역해 출간했다. 로스역에는 서북 방언인 ‘아달’(아들, 막 14:61), ‘닐이치니’(일으키니, 막 1:31), ‘ㅅㅣ박에’(새벽에, 막 1:35), ‘쉽갓ㄴ냐’(쉽겠느냐, 막 2:9) 같은 어휘가 사용되었고 ‘키리쓰도’(그리스도, 막 16:61)와 같은 생경한 음역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한자어에서 빌려 온 ‘셩뎐’(성전), ‘졔사쟝’(제사장), ‘인ㅈ’(인자), ‘권능의 우편’ 등과 같은 중요한 교회 용어도 있고, 오늘까지 사용하고 있는 ‘하나님’과 ‘예수’ 같은 명칭도 있다. 이렇게 번역된 성경은 서상륜을 중심으로 한국인 권서들에 의해 주로 만주의 간도 지방, 서울과 평북 지역 등에 반포돼 복음 전파의 밑거름이 되었다.
같은 시기에 일본에서 이수정이 지식층을 위한 성경 번역을 시작했다. 그는 브리지만(E. C. Bridgeman)과 컬벗슨(N. S. Culbertson)이 개정한 중국어 ‘대표역본’(1864)에 이두식의 토를 단 ‘현토한한신약성서’(1885)를 출간하고, 야스카와(Yasukawa)와 녹스(G. N. Knox)의 도움으로 ‘신약마가젼복음셔언ㅎㅣ’(1885)를 번역했다. 특히 녹스는 그리스어 본문을 본 것으로 추정되는데, 중국어 역본의 ‘야소’(耶蘇)를 그리스어의 ‘예수쓰’로, ‘기독’(基督)을 ‘크리수도쓰’로 음역한 흔적이 보인다. 이수정 팀은 신약전서를 모두 번역하지 못하고 번역한 마가복음도 로스 팀의 번역본들만큼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일의 중요성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1885년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와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가 한국으로 올 때 이수정 팀의 마가복음을 가지고 들어왔다.
국내에서는 1885년부터 1887년까지 선교사들이 한국으로 속속 들어와 선교 활동을 시작하면서 로스역과 이수정역을 개정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운 번역 계획을 세웠다. 1887년 언더우드, 아펜젤러, 헤런(J. W. Heron), 알렌(H. N. Allen)을 중심으로 ‘상임성서실행위원회’가 구성되었다. 특히 한국에 진출한 영미 계통의 다양한 교단 대표들은 서로간의 협력을 위한 연합 활동을 추진했는데, 그 일환으로 주목할 만한 것이 성경 번역이다. ‘상임성서실행위원회’ 산하 ‘공인번역위원회’의 번역 과정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진행되었다. 개인역, 임시역, 시험역 단계로 번역 작업을 거쳐 1900년에 시험역 ‘신약젼셔’(1900)를 출간하고, 이를 1904년과 1906년에 손질해 공인역 ‘신약젼셔’를 완역 출간했다. 그리고 1897년부터 구약 번역이 시작되었다. 1911년에 ‘구약젼셔’가 번역돼 그것과 함께 1906년에 출간된 신약을 함께 묶어 ‘성경젼셔’를 출간했다. 한국 교회에서 오랫동안 ‘성경젼셔’를 읽어왔는데, 그것은 ‘성경 개역’이 간행된 후 1950년대까지도 계속 출간되었다.
우리말 성경 개정
‘성경젼셔’ 출간 직후 ‘공인번역자회’는 발전적으로 해체되고 ‘공인개역자회’로 전환되었다. 1911년 ‘구약개역자회’는 26년간의 작업을 거쳐 1938년에 개역을 완성하고, 신약의 개역은 1926년부터 시작해 같은 시기에 마무리했다. 선교사 11명과 한국인 4명이 구약 개역에 참여했다. 구약 개역이 ‘성경젼셔’를 근거로 해서 구약 번역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생겼을 수도 있는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개역되었다면, 신약 개역은 새로운 사본들의 발견으로 원천 본문인 그리스어 편집본이 좀더 원본에 가깝게 편집돼 출판된 점과 일제 치하에서 한국어가 급격하게 변화되었다는 점을 반영하기 위해 출판되었다. 신약개역위원회의 번역 완료 후, 1938년에 출간된 ‘성경 개역’은 1933년 조선어학회가 제정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반영하지 않았다.
한글 맞춤법을 채용한 성경은 대한성서공회가 1952년 부산 피난 시절에 펴낸 개역한글판이다. 개역한글판에서 이뤄진 개정은 맞춤법만 고치는 것이었고 번역에 속하는 어구는 전혀 손을 안 댄다는 원칙을 따른 것이다. 그 후 1961년 표기법을 더욱 손질해 출간했다.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따라 옛말을 당시의 말(성뎐→성전, 갈아대→가라사대, 닐아샤대→이르시되)로, 어법에 맞게, 띄어쓰기에 충실하게 작업했다. 또 우리말 성경으로는 처음으로 본문 비평 결과를 표기했다. 주기도문인 마태복음 6장 13절의 경우에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이 후대에 첨가된 본문이라고 판단돼, 번역 본문에 넣긴 했어도 괄호 속에 묶어서 넣었다.
개역한글판의 출간 직후인 1960년대부터 한국 교회 내에서 대폭적인 개정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런 논의는 새로운 번역으로 이어졌고, 개역한글판의 개정 계획은 1980년대에 이르러 수립되었다. 1983년 9월부터 가능하면 지금의 개역한글판 분위기와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최소한 꼭 필요한 부분만 개정한다는 원칙 아래 개정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 후 약 10년간의 노력 끝에 개정 원고가 완성되었고, 1993년 8월에 17개 교단에서 파송한 성경 학자, 신학자, 목회자, 국어학자들로 구성된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개정감수위원회’를 구성하고 4년 동안 157회의 독회와 토론을 거쳐 개정 원고를 감수했다.11
1997년 11월에 ‘성경전서 개역개정판’(감수용)을 출간하고, 그 성경을 1,600여 명 이상의 한국 교회 각 교단 목회자들과 평신도 대표들 그리고 신학자들에게 보내어 의견을 들었다. 1998년 5월에 개정위원회와 감수위원회가 함께 모여 전국 교회로부터 들어온 여러 가지 의견들을 최종적으로 개정 작업에 반영하고 1998년 개역개정판을 출간했다.
개역개정판에 대한 한국 교회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너무 적게 개정했다는 것과 또 하나는 너무 많이 개정했다는 것이었다. 적게 개정했다는 반응은 개정 특징이 한국 교회가 오랫동안 사용해 친숙해진 용어는 그대로 두고 다음 개정으로 미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이 개정했다고 볼 수도 있는 이유는 신·구약 전체에서 약 7만 3,000개소가 개정되었기 때문이다. 3인칭 대명사 ‘저’와 ‘저희’를 ‘그’와 ‘그들’로 바꿨고, 명사나 대명사에서 의미 전달에 꼭 필요한 경우에 소유격과 복수형을 밝혔다. 특히 현행 문법상 잘못된 것이나 어휘 선택이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천국이 가까왔느니라→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등), 과거에 통용되었지만 현재에 잘 쓰이지 않거나 어려운 한자어는 쉬운 말로 바꿨다(훤화→소란, 후사→상속자, 비자→하녀, 참람한→신성 모독하는 등). 특히 장애인들을 차별하는 용어를 바꾼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개정에 좋은 초석을 놓은 것으로 봐야 한다(문둥병→나병, 소경→맹인, 곱사등이→등 굽은 자, 난쟁이→키 못 자란 사람, 절뚝발이→다리 저는 자 등).
2005년 10월 대한성서공회 성경 반포 보고서에 따르면, 개역개정판의 보급이 개역한글판보다 앞서고,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13개 교단이 개역개정판 사용을 결정했다고 한다.12 한국 교회에서 개역개정판이 정착돼 가고 있음을 말해 준다. 한국 교회가 ‘성경젼셔’를 ‘성경 개역’으로 바꾸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고려해 볼 때 더딘 변화는 아니라고 봐야 한다.
새로운 우리말 번역 성경
한편 1950년대 후반부터 한국 교회는 현대어로 된 새로운 번역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1959년 각 교단 총회가 새로운 번역 요청을 결의하고, 이에 따라 대한성서공회가 그해 5월에 성서위원회 정기 총회를 개최했다. 1960년 3월에 각 교단에서 파송한 9명의 위원들로 구성된 ‘개역관리위원회’가 조직되고, 그 위원회에서 번역자를 선정해 ‘개역위원회’ 즉 ‘번역위원회’를 구성해 신약 성경 번역에 먼저 착수했다. 1967년의 어느 번역을 수정하거나 손질한 것이 아니라, 한국 학자들이 원천 본문에서 직접 새로 번역한 구어체 번역인 ‘신약전서 새번역’이 출간되었다.13 새번역의 문체는 서술형에서 ‘하였다’를 사용하고, 대화체에서 가급적 경어를 쓰는 현실적으로 구성했다. 예상 독자는 성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그 중에서도 한국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30세 이하의 청년들로서 전도를 목적으로 번역했다. 신약전서 새번역은 출간 직후 곧바로 구약 성경 번역으로 이어지지 않고, 1968년에 가톨릭 교회와의 공동 번역으로 이어졌다.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 이후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가 성경에로 쉽게 접근하도록 요청했고, 성경 번역에서 개신교와 가톨릭간의 협조를 권고했다.14 이에 한국에서도 공동 번역을 추진하기 위해 개신교와 가톨릭 학자들을 중심으로 1968년 1월에 구약공동번역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어 1969년 1월에 신약공동번역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외경의 번역 위원들과 문장위원들을 선정했다.15 번역 지침은 교회 밖의 사람들을 위한 용어로 번역하고 신교나 구교 어느 편에 익숙한 표현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신교와 가톨릭 학자들의 헌신으로 1971년 4월에 ‘공동번역 신약전서’, 1977년 4월에 ‘공동번역 성서’(이하 공동번역)가 출간되었다. 공동번역은 개신교에서 1938년 성경 개역 이래 40년 만에 나온 공인된 성경전서이고, 가톨릭에선 첫 우리말 완역 성경전서다. 따라서 공동번역은 곧바로 천주교 측에서 읽혔으나, 개신교 측에선 대한성공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만 읽혔다. 공동번역은 1983년에 신약전서, 1984년에 구약전서가 북한 언어 실정에 맞게 교정돼 북한의 조선기독교도연맹의 이름으로 각각 1만 부씩 출판된 적도 있다.
1999년에는 공동번역이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의 요청에 따라 개정돼 ‘공동번역 성서개정판’(이하 공동번역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공동번역개정판의 번역 특징과 대본 및 번역 원칙은 공동번역의 초판과 같다. 단지 노바 불가타(Nova Vulgata)를 기준으로 해서 공동번역 제2경전의 편집을 조정하고, 공동번역 초판과 통용할 수 있게 소폭으로 개정했다. 그리고 2005년 9월에 천주교중앙협의회 주교회가 새로 번역한 ‘성경’을 출간했다.16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동번역을 읽지 않는 한국 개신교 교회에서 앞으로 교회에서 성경 개역의 뒤를 이어 사용할 새로운 번역 성경을 준비해 달라는 요구가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그래서 성경 개역의 수정이나 교정이 아닌 전적으로 새로운 번역을 하되, 보수적인 정신과 한국 교회의 전통을 존중한다는 원칙 아래 번역위원회가 구성되었다. 1983년 개신교 각 교단의 신학자 16명과 국어학자 6명이 10여 년에 걸쳐 번역에 참여했다. 목회자와 신학자로 구성된 감수위원의 감수를 거쳐, 980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의 자문을 받아 최종 확정해 1993년에 ‘성경전서 표준새번역’(이하 표준새번역)을 출판했다.17
표준새번역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10대와 20대 그리고 우리말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현대어로 번역해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와 교회 학교 교육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성경 개역의 주요 용어들과 장절 체제를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성경에 나오는 몇 가지 고유 명사들은 한국 고등학교 교과서의 표기를 따라 바꿨다(애굽→이집트, 바사→페르시아, 구스→이집트, 서바나→스페인 등으로). 또 성경 개역과 달리 현대어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종결 어미 ‘-니라’, ‘-니이다’, ‘-니이까’, ‘-나뇨’, ‘-ㄹ꼬’, ‘-옵소서’ 등을 ‘-셨다’, ‘-입니다’, ‘-입니까’, ‘-십시오’ 등으로 바꿨다. 또 고어가 사라지고 쉬운 말로 바꿔(개동시→동이 틀 무렵에, 지로하다→안내하다, 경야하리라→하룻밤을 묵을 생각입니다 등) 우리말답게 표현했다. 그리고 성차별 표현(계집, 어미)을 달리하고, 내용상 여성이 포함된 남성 표현을 여성도 표현하는 용어로 번역했다(아들→자녀 혹은 아들딸, 형제→형제나 자매).
표준새번역은 2001년에 ‘성경전서 표준새번역 개정판’으로 출간되었고, 2004년에 ‘성경전서 새번역’(이하 새번역)으로 이름을 바꿨다. 새번역은 표준새번역에서 번역이 명확하지 못했던 본문과 의미 전달이 미흡했던 본문을 뜻이 잘 전달되도록 고쳤고, 가능하면 번역 어투를 없애고 우리말로 뜻을 표현 했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중요한 본문은 우리말 표현보다 원문의 뜻을 그대로 반영했다. 그리고 원문 자체의 난해구에 관해서 현대 성경 신학의 연구 결과를 응용해 그 뜻을 밝혔고 대화체에서 현대 우리말 존대법을 적용했다.
이렇게 우리말 성경 번역이 계속 돼야 하는 이유는 시대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바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번역 대본이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성경 사본학과 고고학의 발달로 그동안 권위 있는 사본으로 인정받던 것들 중 후대에 필사한 내용이 있음을 찾아내기도 하고(‘절 없음’으로 표기된 부분), 고고학적 발견으로 인해 해석 불가능했던 구절을 이해할 수 있게도 되었다.
우리말 성경의 번역 대본
로스역은 번역 첫 단계에서 한국인 번역자들이 사용한 한문대표역본(Delegates’ Version, 1852)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로스와 매킨타이어도 영어 역본인 킹 제임스역(1611)과 영어 개역(1881, 1885)에 의존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로스는 번역 대본으로 영어 역본이 아니라 그리스어 개정 역본을 표준 저본으로 사용했다고 강조한다. 로스는 당시 중국어 역본이나 일본어 역본이 ‘텍스투스 레켑투스’(Textus Receptus)를 대본으로 삼은 것에 비해 우리말 성경이 최신 비평 편집본인 팔머(E. Palmer)의 ‘개역 그리스어 성서’(1881)를 대본으로 삼은 것을 높이 평가했다.
‘성경젼셔’의 번역 대본도 로스역과 마찬가지로 팔머의 개역 그리스어 성서였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영어 개역(1882)과 킹 제임스역을 많이 참고하고, 한국인 조력자들은 한문대표자역과 일본어 역본을 참고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번역위원회는 오늘날에도 성경 번역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주석이나 사전 그리고 번역 관계 서적들을 참고했다.18 성경 개역의 번역 대본도 당대에는 최신의 편집본이었다. 구약 번역 대본은 긴스버그가 편집한 ‘히브리어 구약 성경’(1926)이었고, 신약은 번역 대본이 에버하르트 네스틀레의 ‘그리스어 신약전서’(제14판, 1923)였다. 개역자회에서는 최신 편집본을 쓰기 위해 심지어 번역 마무리 단계에서 신약 번역 대본을 네스틀레의 편집본 제15판(1932)과 제16판(1935)으로 바꾸려고 했다. 그러나 본문의 차이가 없어 제14판을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개역한글판과 개역개정판은 새로운 번역이 아니라 성경 개역의 개정이므로, 성경 개역의 번역 대본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러나 개역개정판의 경우에 개역한글판 본문의 번역을 바꿔야 할 때, 구약은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1967, 1977)를, 신약은 세계성서공회연합회가 출판한 그리스어 신약전서(제4판, 1993)를 사용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새로운 우리말 번역 성경들도 언제나 최신 비평 편집본을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 신약전서 새번역의 번역 대본은 성경 개역과 마찬가지로 네스틀레의 그리스어 신약전서(제25판, 1963)를 사용했고, 소제목은 세계성서공회연합회에서 편집한 그리스어 신약전서(제1판, 1966)를 사용했다. 또 공동번역성서의 구약 대본은 키텔이 편집한 히브리어 성경(제3판, 1937)이고, 신약의 번역 대본은 세계성서공회연합회가 편집한 그리스어 신약(제1판, 1966)이었다. 표준새번역의 경우에 현재도 원문 연구에 사용되고 있는 비평 편집본을 대본으로 사용한다. 구약은 독일성서공회에서 출판한 히브리어 구약전서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에 실려 있는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을 사용하고, 신약은 세계성서공회연합회에서 출판한 그리스어 신약전서(제3판, 1983)를 사용했다.
우리말 성경의 직역과 의역의 변천사
번역의 차이가 생기는 또 다른 이유는 번역 원칙에 달려 있다. 번역 원칙을 직역에 두느냐, 의역에 두느냐에 따라 번역의 성격이 달라진다. 번역자들은 항상 원문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지만, 독자들이 읽어서 잘 이해하고 성경의 메시지를 잘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는 이중 책임을 지게 된다. 이런 고심은 우리말 성경 변천사에도 잘 나타난다.
로스역의 번역 원칙은 “본문의 의미와 한국어의 관용어에 적합한 절대적 직역”이다.19 그러나 로스 스스로 고백했듯이, 직역이 통하지 않는 몇몇 경우가 있었다. 또 초기 번역은 복음서에서 제자나 병자가 존대의 대상인 예수님을 지칭할 때 ‘너’라고 했는데 신약 번역에서 ‘주’로 바꿨고, 주기도문에서도 그리스어 2인칭 대명사를 ‘아바님’으로 번역했다. 원천어 ‘트루페마토스 라피도스’(마 19:42) 즉 ‘바늘 구멍’, ‘바늘 눈’을 ‘바늘 귀’로 옮긴 것은 유명한 예이다.
‘성경젼셔’의 공식적 번역 방향도 직역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더우드가 고백한 것처럼, 번역자들은 원천 언어에서 한국어 문자 그대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며 원천 본문의 의미와 가장 가깝게 상응하는 관용어도 약간의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20 더욱이 ‘성경젼셔’의 번역 목적은 완역된 성경전서를 처음으로 갖게 되는 한국 교회에 한국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번역 성경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에 비해 성경 개역은 ‘축자역’이라는 번역 원칙을 따라 개정했다. 원문이 수동태 문장인 경우에 ‘성경젼셔’는 능동태로 바꿔 번역했으나, 성경 개역 원문대로 수동태로 개정한 경우가 있었다(마 5:9, 뎌희를 하ㄴ님의 아ㄷ이라 닐ㅋ를 것이오→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결과적으로 원문의 문법적 특징까지 번역문에 반영하는 개정이 되었으나, 한편으로 우리말 표현의 자연스러움을 부분적으로 잃게 되었다. 또 성경 개역은 ‘성경젼셔’가 자연스러운 우리말 어순을 따라 옮겼던 부분을 원문의 어순에 따라 바꾸기도 했다(마 8:26; 20:22; 21:9). 그것은 개역할 때 짧게 줄인 풀이역을 삼가고 가능한 직역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랐기 때문이다.21
새로운 우리말 성경의 번역 원칙은 세계 성경 번역 이론과 발을 맞춘다. 신약전서 새번역(1967)의 번역 원칙은 기계적인 축자역뿐 아니라 자유스러운 풀이역을 삼가는 것이었다. 그 목적이 개역의 본문 이해에 대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했던 만큼, 누구나 읽어서 알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공동번역의 번역 원칙은 이에서 더 나아가 내용 동등성을 추구하고 형식 일치를 피하는 것이었다. 이런 번역 원칙은 1962년 방한해 우리나라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세계적인 번역 이론가 유진 나이다(Eugene A. Nida)의 최신 번역 이론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나이다는 원문과 번역문간의 형식적인 낱말 대 낱말의 어구적 일치보다 문맥상 일치에 초점을 맞추고, 형식 일치보다 내용 동등성을 고려했다.22 이 원칙으로 번역된 공동번역은 너무 풀어서 번역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려한 우리말로 번역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표준새번역은 현대적 문체 때문에 종종 의역 성경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는데, 본래 그 원칙은 형식 일치 번역과 내용 일치 번역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버린 것이다. 실제로 형식을 일치시키는 번역을 해도 우리의 어법에 맞고 원문과 똑같은 뜻을 전달할 수 있을 때는 그렇게 번역하고, 글자 그대로 번역해 전혀 다른 뜻이 전달되거나 아무런 뜻도 없는 번역이 될 때는 뜻을 살리는 번역을 했다. 그래서 번역 본문에서 번역 어투를 없애고, 우리말 관용구를 활용해 원문이 뜻하는 바를 우리말로 분명하고 정확하게 번역하도록 했다.
성경 번역의 미래
성경의 번역과 개정은 언제나 선교의 필요성과 교회의 요구로 인해 진행되었다. 새로운 번역이나 개정이 교회에 받아들여지기까지 불가타와 같이 몇 백 년의 기간이 소요되기도 하며, 또 교회의 성경으로 인정받은 후에 다음 세대에서 성경 번역의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성경 번역은 초대 교회에서부터 시작해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나 오늘날에도 전 세계 언어로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현재 세계 언어들 중에 최소한 단편(쪽복음)이라도 번역된 언어의 수는 2,377개에 이른다(세계성서공회연합회 통계, 2004년 12월 말 현재).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기록된 말씀이 이렇게 많은 언어로 번역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우리말 성경 번역도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100여 년 전의 로스역이나 ‘성경젼셔’ 및 성경 개역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듯이, 다음 세대도 우리 세대가 읽는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때가 올 것이다.
또 새로운 비평 편집본이 계속 출간돼 원본에 가까운 원문 편집본이 계속 출간될 것이고, 성경 번역의 원칙이 되는 번역 이론이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빠른 변화의 시대에서 성경 바꾸기가 더딘 것은 우리 전 세대가 겪었던 갈등을 계속 되풀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조 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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