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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50:33-46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레미야 50장은 계속해서 바벨론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했던 바벨론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멸망은 그들의 심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손에 붙잡혀 있던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바벨론을 심판하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바벨론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33-40절)
(33)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함께 학대를 받는도다 그들을 사로잡은 자는 다 그들을 붙들고 놓아 주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의 손에 붙잡혀 학대를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바벨론의 힘을 생각한다면, 포로로 끌려간 백성이 스스로 그 손에서 벗어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말씀을 주십니다.
(34) 그들의 구원자는 강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라 반드시 그들 때문에 싸우시리니 그 땅에 평안함을 주고 바벨론 주민은 불안하게 하리라
이스라엘과 유다가 바라보는 현실에는 강대한 바벨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바벨론의 힘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자가 누구이신지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들의 구원자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군대와 권세를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통치자이심을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들 때문에 싸우시리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힘을 키워 스스로 바벨론을 이겨 내는 것이 아니라, 강하신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친히 싸우시고 그들을 바벨론의 손에서 건져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평안이, 바벨론 주민들에게는 불안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 일을 이루어 가십니까? 이어지는 35절부터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어떻게 심판하시고, 그들이 의지하던 것들을 어떻게 무너뜨리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35-3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칼이 갈대아인의 위에와 바벨론 주민의 위에와 그 고관들과 지혜로운 자의 위에 떨어지리라 칼이 자랑하는 자의 위에 떨어지리니 그들이 어리석게 될 것이며 칼이 용사의 위에 떨어지리니 그들이 놀랄 것이며 칼이 그들의 말들과 병거들과 그들 중에 있는 여러 민족의 위에 떨어지리니 그들이 여인들 같이 될 것이며 칼이 보물 위에 떨어지리니 그것이 약탈되리라
35절부터 37절까지를 보면 ‘칼’이라는 표현이 계속해서 반복됩니다. 여기에서 칼은 단순히 하나의 무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킵니다.
먼저 35절에서는 갈대아인들과 바벨론 주민들, 그리고 고관들과 지혜로운 자들에게 칼이 임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당시 바벨론을 움직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고관들은 제국의 권력을 행사하던 사람들이었고, 지혜로운 자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지혜로 나라를 이끌어 간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시작하시면 그들이 가진 권력과 지혜도 바벨론을 지켜 주지 못합니다.
36절에서는 그 칼이 자랑하는 자와 용사 위에 떨어집니다. ‘자랑하는 자’라고 번역된 표현은 단순히 허풍을 떠는 사람만을 의미한다기보다 바벨론의 종교와 관련된 자들, 곧 점술과 우상에게 의지하여 미래를 말하던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벨론은 군사력만 강했던 나라가 아닙니다. 그들은 수많은 신을 섬겼고 점술과 주술을 통해 자신들의 미래를 알고 결정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면 미래를 안다고 자랑하던 자들이 오히려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용사들은 바벨론의 강력한 군사력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수많은 나라를 무너뜨리고 정복하면서 자신들의 힘을 자랑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칼 앞에서는 그 용사들마저 놀라고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번에는 바벨론이 전쟁을 위해 가지고 있던 말과 병거가 등장합니다. 당시 말과 병거는 강력한 군사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전쟁 수단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 있는 여러 민족”에게도 칼이 임한다고 말씀합니다. 이들은 바벨론의 군사력에 동원되었던 외국 출신의 군사들이나 용병들을 말합니다. 바벨론은 자신들의 군대뿐 아니라 여러 민족의 힘까지 동원하여 거대한 제국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그들 역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칼은 바벨론의 보물까지 향합니다. 바벨론이 거대한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막대한 부와 재물이 있었습니다. 여러 나라를 정복하면서 얻은 수많은 재물이 바벨론에 쌓여 있었습니다. 그 재물은 군대를 유지하고 더 많은 전쟁을 일으키며 제국의 힘을 키워 가는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보물마저 약탈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5절부터 37절까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심판의 대상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두 바벨론이 자신들의 힘이라고 믿었던 것들입니다. 나라를 움직이는 권력과 지혜가 있었고, 자신들의 미래를 알려 줄 것이라 믿었던 종교가 있었으며, 수많은 나라를 정복한 군사력과 그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재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 어느 것도 바벨론을 지켜 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랑하던 것들을 하나씩 무너뜨리시며, 그것들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38) 가뭄이 물 위에 내리어 그것을 말리리니 이는 그 땅이 조각한 신상의 땅이요 그들은 무서운 것을 보고 실성하였음이니라
앞에서는 바벨론을 향하여 ‘칼’이 임했다면 이제는 ‘가뭄’이 임합니다. 바벨론은 유브라데강을 끼고 발전한 나라였습니다. 풍부한 물을 바탕으로 농사를 짓고 도시를 발전시키며 강대한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과 번영의 중요한 기반이었던 물마저 마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38절 후반에서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이처럼 심판하시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 땅에 우상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은 수많은 우상을 섬기던 나라였습니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이 나라를 지켜주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며, 자신들에게 번영을 가져다준다고 믿었습니다. 여러 나라를 정복하면서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의 능력을 더욱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자 그들이 믿었던 우상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드러나게 됩니다. 자신들을 지켜 줄 것이라 믿었던 우상들은 아무런 능력도 없는 신상에 불과했고, 바벨론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건져 내지 못했습니다.
35절부터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모습을 계속해서 살펴보면 결국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바벨론이 강하다고 믿었던 것도, 자신들을 지켜 줄 것이라고 믿었던 것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결국 어떻게 될 것인지를 39절과 40절에서 보여 줍니다.
(39-40) 그러므로 사막의 들짐승이 승냥이와 함께 거기에 살겠고 타조도 그 가운데에 살 것이요 영원히 주민이 없으며 대대에 살 자가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성읍들을 뒤엎었듯이 거기에 사는 사람이 없게 하며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하시리라
바벨론은 당시 누구도 쉽게 무너뜨릴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수많은 민족과 나라를 지배하며 자신들의 힘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바벨론이 결국 사람이 떠나고 들짐승들만 머무는 황폐한 땅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철저하게 무너졌고, 이후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엄중하고 철저한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당시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던 바벨론도 소돔과 고모라처럼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강하고 화려한 나라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스스로를 지켜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1절부터는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이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바벨론을 향해 다가오게 될 것인지를 보여 줍니다.
고니야 왕을 심판하시다(41-46절)
(41-46) 보라 한 민족이 북쪽에서 오고 큰 나라와 여러 왕이 충동을 받아 땅 끝에서 일어나리니 그들은 활과 투창을 가진 자라 잔인하여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그들의 목소리는 바다가 설레임 같도다 딸 바벨론아 그들이 말을 타고 무사 같이 각기 네 앞에서 대열을 갖추었도다 바벨론의 왕이 그 소문을 듣고 손이 약하여지며 고통에 사로잡혀 해산하는 여인처럼 진통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북쪽에서 한 세력을 일으키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우연히 바벨론을 공격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앞에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셨고, 이제 그 심판을 이루시기 위하여 실제 역사 속에서 한 세력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러자 43절에서 바벨론 왕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자신들을 향하여 군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손이 약하여졌다”고 말씀합니다. 싸울 힘과 의지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아직 전쟁이 시작된 것도 아닙니다. 적군이 바벨론을 완전히 점령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인데 바벨론의 왕은 이미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본문은 그 두려움을 “해산하는 여인 같이 진통한다”고 표현합니다. 피할 수도 없고 스스로 멈출 수도 없는 고통이 그들을 붙잡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앞서 34절에서 하신 말씀과 연결됩니다. 34절을 보면 “그 땅에 평안함을 주고 바벨론 주민은 불안하게 하리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바벨론, 수많은 나라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바벨론이 이제는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심판의 소식만으로도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44절부터 46절에서는 이 모든 심판을 계획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분이 누구이신지를 다시 한번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44-46) 보라 사자가 요단의 깊은 숲에서 나타나듯이 그가 와서 견고한 처소를 칠 것이라 내가 즉시 그들을 거기에서 쫓아내고 택한 자를 내가 그 자리에 세우리니 나와 같은 자 누구며 출두하라고 나에게 명령할 자가 누구며 내 앞에 설 목자가 누구냐 그런즉 바벨론에 대한 여호와의 계획과 갈대아 사람의 땅에 대하여 품은 여호와의 생각을 들으라 양 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어 가고 그들의 초장을 황폐하게 하리니 바벨론이 약탈 당하는 소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부르짖음이 나라들 가운데에 들리리라 하시도다
44절에서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나와 같은 자 누구며” “나와 더불어 다툴 자 누구며” “내 앞에 설 목자가 누구냐” 이 질문들은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같은 자는 아무도 없고, 하나님과 맞서 다툴 수 있는 자도 없으며, 하나님의 뜻을 막아설 지도자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막아설 수 없기에, 45절은 “바벨론에 대한 여호와의 계획과 갈대아 사람의 땅에 대하여 품은 여호와의 생각을 들으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여호와의 계획’과 ‘여호와의 생각’이라는 표현입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말씀하셨고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바벨론은 무너지게 됩니다. 누구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바벨론의 멸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과 계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심을 온 세상 앞에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본문의 처음으로 우리를 다시 돌아가게 합니다.
33절에서 이스라엘과 유다는 바벨론에게 붙잡혀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34절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들의 구원자는 강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라.” 그리고 이후의 모든 말씀은 이 선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결국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사람의 힘도, 세상의 권력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생각과 계획을 앞세우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많은 계획을 세웁니다. 오늘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할지 생각합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계획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이 다를 때,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때에도 말씀을 선택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을 벗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싸우시며, 말씀하신 뜻과 계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눈앞의 현실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내가 가진 것보다 하나님을 더 의지하며 살아갑시다. 오늘도 우리의 신을 벗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오늘 말씀을 통하여 구원자 되시며 자기 백성을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바벨론이 스스로의 힘과 자랑을 의지했던 모습을 기억하며, 우리는 세상의 기준과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따라 살아가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옵소서. 오직 하나님만을 우리의 힘과 자랑으로 삼으며, 우리의 삶을 다스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날마다 고백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만날 때에도 눈앞의 상황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시고, 자기 백성을 위하여 싸우시며 말씀하신 뜻과 계획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 우리의 생각과 계획만을 앞세우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신을 벗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우리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오늘 하루도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하루를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이스라엘과 유다는 자신들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강한 구원자로서 그들을 위하여 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내 힘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문제 앞에서 이 말씀은 나에게 어떤 믿음을 요구하는지 묵상해봅시다.
2. 바벨론이 의지했던 권력과 지혜, 군사력과 재물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습니다. 나는 어려움을 만날 때 가장 먼저 무엇을 찾고 의지하는지, 그 가운데 하나님은 어떤 자리에 계시는지 묵상해봅시다.
3.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과 계획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내 계획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신뢰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묵상해봅시다.
4. 오늘 하루 나의 신을 벗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겠습니까?
(작성: 정민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