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38장부터 하나님이 폭풍가운데서 말씀하십니다.
1절 “그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심판과 징벌하시는 모습입니다. 시내산의 하나님의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
시83:15절은 주의 광풍 곧 주의 폭풍이라고 하고, 시148:8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로
그 말씀을 따르는 광풍이라고 하십니다. 사29:6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2절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절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4절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내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하고 호통을 치십니다.
하나님은 욥을 하늘 적 차원으로 끌어 올리십니다. 땅과 바다, 공중에 있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지식을 처단하려 하십니다. 그의 입을 막으려 하시는 겁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와 진리는 은혜는 그 집행을 유예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판이 없지만 진리 안에서는 반드시 육신이 심판이 되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욥38-39장은 첫 번째 창조 곧 피조물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거듭남은 땅의 사람에서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만들어진 피조물의 특징은 창조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겁니다. 피조물의 특징은 있는 그대로 잘 사는 삶입니다.
그러나 창조물은 마25장의 열 처녀의 비유와 같이 항상 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된 자들은 하나님이 하실 기능과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되어 진 간증을 말씀을 통해 남에게 넘겨주기 때문입니다.
38장
16절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17절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
18절 “땅의 너비를 네가 측량할 수 있느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거든 말할지니라”
19절 “어느 것이 광명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어느 것이 흑암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이미 만들어 놓으시고 물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물을 보면서
하나님을 알고, 독생자를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24절 “광명이 어느 길로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땅에 흩어지느냐”
다 정해져 있습니다. 고기압 저기압의 등의 일기예보를 보면 항상 중국 쪽에서
오는 것을 봅니다. 이를 테면 필리핀의 대기 오염은 싱가포르로 갑니다.
그래서 옛날에 싱가포르가 필리핀에 항의를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바다에도 난류 한류가 흐르는 길이 있듯 하늘에도 기류의 길이 있습니다.
이렇게 첫 번째의 창조는 운명적으로 다 정해져 있습니다.
그 다음 영적인 창조 곧 거듭난 사람들은 새로운 운명으로 만들어져 갑니다.
땅에 있는 자들에게는 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유를 주면 방황하게 됩니다.
거듭나지 않는 사람은 자유로부터 도피라는 말이 있듯 자유가 오히려 불안합니다.
어떤 사람이 낭떠러지에 앉아서 불안해하는데 더 불안한 것은 스스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떨어지지 못하게 꽝 막아 놓으면 안심인데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낭떠러지가 몹시 불안하듯 모든 인간은 이와 같은
불안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 철학적인 인간의 해석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창조물은 법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영을 좇아 살아가는 자유를 누리며 삽니다.
욥기는 땅에 속한 자들 곧 첫 창조물인 인간들의 교과서가 됩니다. 근데 지금
인문학을 내세워 인간이 마땅히 할 일을 교훈하는 설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욥은 금욕주의자입니다. 돈, 여자에 철저하고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타고난 속성입니다.
이것을 자기의 의로 변질시켜 줄기차게 자신의 고난을 변명하고 있는 겁니다.
개가 집을 잘 지켰다고 칭찬을 할까요? 왜냐하면 그건 개의 기본 속성입니다.
22절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창고를 보았느냐”
눈 곳간도 있고 우박 창고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엄청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비를 머금고 있는 구름과 없는 구름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리고 눈구름이 있고 또 비구름이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욥에게 쏟아내시고 있으니 욥은 지금 어린아이처럼 얼떨떨한 겁니다.
인간은 자연과 필연적인 관계성입니다. 첫째 피조물은 자연과 불가불리입니다.
23-24절 “내가 환난 때와 교전과 전쟁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남겨 두었노라
광명이 어느 길로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땅에 흩어지느냐”
양자역학에 대한 이야기 중에 파동인지 입자인지는 모르지만 좌우지간
측정이 되긴 하는데 그 본질이 뭔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이를 두고
신은 인간과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우주와 물질의 제1원인을
과학이 실험을 통해 증명하지 못하도록 불규칙하게 역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과학이 호 로고스가 역사하시는 우주의 신비를 밝혀 낼 수가 없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시고 그의 뜻대로 만물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철학이 이데아라고 한 로고스(요1:1),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시고
하나님의 보좌에 오르신 후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의 영과 마음속에서 지금 말씀하십니다.
땅에서 난 첫 번째 창조에 속한 흙덩어리 속에 독생자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거듭나서(born again, from above) 재창조가 된 그리스도인들 속에서(dwell in)
그 말씀은 영과 생명으로 말씀하시며 생명을 주시되 한 없이 주시는 영생이 되십니다.
진리(truth)이신 그리스도께서 참(true)이 되므로 참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요일5:20)
만일 보이지 않는 말씀이 믿음에 의해 실상이 되지 않는다면 히11장의 믿음이 아닙니다.
실상은 실존 곧 진짜라는 말인데 만약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아
영의 생각을 할 수 있고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일 수만 있다면 그 생각이 뇌에서
신비한 물질을 만들어 온 몸에 생명의 기운으로 발현되는 걸 체험할 수 있을 겁니다.
그야말로 요즘 미국기독교가 말하는 SUPER NATURAL POWER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를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