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고시위원장 수진 스님
“지금은 부처님과 비대면…정법(正法) 오래 머물도록 매진”
최근 11대 고시위원장으로 선출
위의·품격 갖춘 완성된 수행자
배출하기 위해 맡은 소임에 최선
2006년부터 화엄경소초 번역
누구도 가지 않았던 외로운 길
“시대적 사명”이므로 작업계속
오직 부처님 법에 의지해
꿋꿋하게 정진하라는 당부도
1월13일 부산 해인정사에서 만난 고시위원장 수진스님은
“부처님이 발견한 진리를 당대에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는 말씀이었듯,
스님이라면 스님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말을 하고 가르침을 주어야
법이고 진리가 될 수 있다”고 피력했다.
부산을 대표하는 명산 승학산에서 청정한 기운이 넘친다.
이 산기슭에 도심포교도량을 세우고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화엄경 주석서 번역에 몰두하고 있는 스님이 있다.
후대에도 부처님 정법을 올바르게 전해야 한다는 원력을 품었다.
한국불교 선불장, 승가고시 전담기구인 조계종 고시위원장 소임을 맡은
해인정사 주지 수진스님 이야기다. 새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한
1월 중순 스님을 만나기 위해 사찰로 향했다.
듣던 대로 스님은 앉은뱅이 책상 앞에서 경전을 보고 있었다.
바로 옆에 가지런히 다기를 놓은 찻상이 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이렇게 배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진스님은 지난해 화엄경을 풀이한 ‘화엄경소초(華嚴經疏金+少)’
한글 완역본을 세상에 처음으로 내놓은 주인공이다.
중국 당대 스님인 청량국사 징관스님(738∼839)이 화엄경소초를 쓴 지
1200년 만에 완역본을 출간해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화엄경소초는 80권본 화엄경에 주석에 해당하는 소(疏) 60권과
요약서인 초(金+少) 90권을 붙인 방대한 분량의 최고 화엄경 주석서다.
스님은 2006년 1월 주석서 번역에 착수했고, 10년 7개월 여만인
2016년 8월 총 10만매 분량의 완역 원고를 탈고했다.
하루도 원고를 쓰지 않은 날이 없다. 손에 마비가 오고 몸이 아파도
스님은 눕지 않았다. 하루 24시간을 정말 알뜰하게 썼다.
주로 저녁 예불이 끝난 이후부터 다음날 새벽예불 시간까지 작업에 몰두했다.
예불을 다녀온 뒤 한 두 시간 쪽잠을 청했다. 낮에는 강의 출강과
대외 활동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다시 해가 지면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그렇게 10년 이상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필기도구를 오랜 시간 동안 쥐고 있었던 탓에
오른쪽 손가락 검지가 비틀어졌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전체 100권 규모로 기획된 방대한 이 대작불사는 이제 시작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지금도 웬만해선 책상 앞을 떠나지 않는다.
일반에선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여정이지만,
후학들에게 정법을 전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매진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부처님과 비대면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발견한 진리를 당대에 누구에게도 들을 수 없는 말씀이었듯,
지금 우리는 스님이라면 스님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말을 하고 가르침을 펼쳐야 합니다.
그래야 법이고 진리가 될 수 있죠. 부처님의 완벽한 법을 후학들의 가슴속에
제대로 심어줘야 하기 때문이죠.
만약 이 경전을 이전에 다른 사람이 번역을 했다면 나서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 길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고
첫 결과물을 비로소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선배 스님들이 한글 번역을 통해 정리해 줘야 할 것이 많아요.
이걸 내버려 두고 떠나면 직무유기나 다름없죠.”
스님은 ‘천이백 년 침묵의 역사를 깨고’라는 제목의 책 서문에서도
“그 누가 ‘화엄경소초’를 완역한 적이 있었다면 이 번역에 착수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지금까지 이 황금보옥의 ‘청량국사화엄경소초’가 번역되지
아니한 것은 나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고 역사적 명령이라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렇게 ‘청량국사화엄경소초 화엄현담’을 10권으로 출간했다.
스님은 최근 종단의 중책을 맡았다. 제11기 조계종 고시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종단 승가고시 전담기구로 승가고시를 통해 스님들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종단 구성원으로서 위계질서를 바로 세우는 역할을 담당하는 만큼 어깨도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일선 수행포교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스님들 또한
이 고시를 통해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고 스스로의 자질을 향상시켜
수행정신을 새롭게 해 수행자로서 품위와 인덕, 양식, 학덕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어 간다.
이날 스님은 가장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세상 사람들이 인생에 궁금증을 품고 절에 와 스님에게 의문점을 털어 놓았을 때,
난관을 타개할 수 있도록 수승한 수행자를 길러내는 데 방점을 두고 소임을 볼 것 이라고 했다.
“(탈종교화와 불자인구 감소 등으로) 난세라고 하지만 어디에서도 수행자는 살아있어야 합니다.
은사 스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있어요.
사람들이 절에 와서 부처님 법을 묻지, 영어를 묻더냐, 수학을 묻더냐고.
눈 뜬 사람이 눈 뜬 길로 가도록, 후학들을 정확하게 교육시키고
가르침을 똑바로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한국불교 역사 속에서
단 한 번도 수행자가 아닌 다른 이에게 이 사원을 비워준 적이 없어요.
이것이 바로 뿌리의 힘입니다. 이런 바탕에 수행자가 계속 배출되고,
또 올곧은 제자들이 나오면 한국불교와 종단 뿌리는 튼튼해집니다.
선배 스님들이 그래왔듯 우리 사회를 불교화 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은사 스님은 당대의 선지식이자, 통합종단에서 초대 감찰원장을 역임한 동고당 문성스님이다.
정화운동에 적극 나섰으며, 초대 감찰원장, 비상종단 재건회의 의원, 비상종회의장 등을 거치며
종단 안정에 진력했다. 은사는 스님을 유난히 아꼈다.
수진스님은 은사 스님에 대해 “위로는 칼 같고 아래로는
한 없이 자애로웠던 분”이라고 소개했다.
어린 시절 출가해 ‘출가사문이 먹을 거 다 먹고 갈 곳 다가고
잠 잘 거 다자면 언제 도(道)를 보느냐’는 말이 가슴에 팍 꽂혀
수개월을 수마와 싸우기도 했다. 강원(지금의 승가대학)에 다니던 시절
밤잠도 자지 않고 냉방에서 공부하는 상좌를 위해 그 시절 최고의 보약으로 불리던
원비디를 슬며시 문 앞에 두고 가기도 했다.
“우리 스님 좋아서 여기까지 왔어요. 선교율을 겸비한 어른이죠.
평소 상좌들에게 늘 화합하고 부처님 법대로 살라고 하셨어요.
‘사교입선’을 수행자의 기본 요건으로 꼽았어요. 교학을 완전히 탐독하고
선의 길로 들어가라 하셨죠.”
은사 스님에게서 배운 가르침은 고스란히 후학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수진스님은 특히 미래세대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동명대 세계선센터에서
대학생들에게 참선을 지도하며 불교의 정수를 알려주는데 혼신을 다하고 있다.
스님 감화로 출가한 학생들도 나왔다. 복잡미묘한 20대 아이들 마음속에
부처님 가르침을 어떻게 심어주고 있을까. 그 답은 간단했다.
“살아온 길이 길지 않기 때문에 돌려가며 말하지 않아요.
‘주인공은 너다, 바로 너다, 너를 대신할 존재는 아무도 없다’고 알려줍니다.
센터 입구에도 ‘나는 누구인가, 나는 정녕 어디로 가는 가’라는 문구가 있어요.
한 학기가 끝나면 자세가 정말 좋아져 있을 정도로 학생들이 잘 따라와 주고 있어요.”
늘 마음이 바쁜 직장인들에게도 참선을 권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으로
수행을 꾸준히 한다면 삶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직장생활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누워 있거나 말하거나 고요하거나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을 때도 “대체 이 놈은 어떤 놈인고”하면서 사유해 보라고 했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외아들을 사랑하듯이 하는 마음으로 실천해 보라고 제안했다.
코로나 장기화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불자들에게는
오직 부처님 법(法)에 의지해 당당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라고 당부했다.
세상에 변하지 않고 항상하는 것은 없다는 제행무상의 가르침을 들어 용기 잃지 말라는 격려였다.
“세상은 무상합니다. 만들어 진 것은 언젠간 사라지게 돼 있죠.
봄의 기다림이 있기 때문에 지금 추운 것입니다.
코로나가 우리의 신행과 수행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 또한 본래 신앙의 모습, 수행자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법(法)에 의지해 신앙하고 수행하는 참 불자의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소의 품성으로 조금만 기다리다보면 화사한 봄날의 진달래를 맞이할 날이 올 것입니다.
부처님 은혜가 함께하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2021년 1월 30일
출처 :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