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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졍현 후보가 '대한민국 역사를 새로 쓰겠다'며 큰 절로 화답하고 있다. | 시골 촌놈 이정현이 대한민국의 정치사를 다시 썼다. 곡성 목사골 무지랭이 아들로 태어나 호남사람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새누리당의 옷을 껴입고 야당의 텃밭에서 당선됐기에 더욱 값지다.
그러니까 1988년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이후 광주·전남에서 여당으로 출마한 후보가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7년 만이다.
대구에서 2번이나 새정치연합 후보로 출마해서 40%대의 높은 득표율을 얻고도 아쉽게 패배한 '바보 김부겸' 보다 '지역감정을 먼저 깨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도 일궈냈다. 지역구도를 타파하는 첫 번째 정치인은 그렇게 탄생했다.
순천 곡성지역 국회의원으로 첫 출사표를 던질 때 그는 이렇게 화두를 던졌다. '이정현이 당선되면 바로 선거혁명을 이룬 거’라고...
세월호 참사에다 인사 실패에다 새누리당으로서는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었던 정치적 백그라운드 상황에서 턱하니 이런 얘기를 내놓았다.
그러니 제 아무리 여왕의 남자라고 하더라도 설득력이 없는 얘기로 들릴 수 밖에 없었다. 어쩜 무모한 언행이었다.
하지만 이정현에게는 진정성이 있었다. 그리고 과거 박근혜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큰 몫을 했던 의리와 일편단심을 이제는 지역주민들에 대한 봉사와 믿음으로 채워가고 싶었다.
그래서 새벽 3시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교회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자신의 진정성을 유권자들이 믿어 줄 것’이라며 빌고 또 빌었다.
그런 진정성은 유세현장으로 이어졌다.
삼각형 모양의 둥근 깔대기를 입에 대고 애잔하게 외쳐대던 그의 목소리가 장터로, 논두렁으로, 주민 속으로 다가서면서 표심을 파고 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목이 마르면 물 한 모금 달라고 조르는 어릿광대 모습도 서슴치 않는다. 다리가 아프면 장터바닥에 주저앉아 상인들과 마음과 마음을 이어갔다.
쉬기도 하고 표심을 얻고 이보다 더 좋은 선거방법이 어디 있으랴.
지난 2012년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을 때 출간했던 ‘진심은 통한다’는 책 제목처럼 선거운동을 하다 보니 전국적인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찾아오는 타지 사람들에게는 “시간 내서 오는 것 보다 지인들을 찾아 이정현이 괜찮은 놈이다”고 말 한마디 해주는 게 자신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되레 부탁한 터이다.
일부 사람들은 오해를 하기도 했지만 그럴 시간에 유권자들을 한 분이라도 더 만나는 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이정현은 ‘李변’을 낳고 말았다.
투표율이 51%나 돼 전국 15개 선거구에서 가장 높았다. 순천은 49.7%, 곡성은 61.1%로 나타나 유권자들의 관심이 그만큼 뜨거웠다는 얘기다.
이정현은 이제 지역구도 타파에 앞장선 상징적 인물이 됐다.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정치적·역사적인 한사람으로 남게 됐다.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3김 시대 유산’인 지역감정을 깨는데 앞장을 서야하고 그렇게 해야만 하는 선봉장이 됐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대구 수성 갑에서 김부겸이, 광주 서구 을의 경우 이정현이 각각 출마해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느나 두 사람 모두 지역감정의 벽을 넘진 못했다. 그만큼 견고했다는 뜻이다.
당시 광주사람들은 이정현이가 야권 연대를 한 통합진보당 오병윤 의원에게 고배를 마시자 무척 아쉬워 했다. 특히 공무원들은 예산을 따오는데 '이정현'이라는 비빌 언덕이 없어지자 다른 대안을 마련하느라 무척 고심했었다.
이제 그런 걱정은 조금 내려놓는 게 나을 성 싶다.
이정현이 전국적인 관심사 속에 최대 이변을 낳은 것은 새정치연합도 한 몫 거들었다.
새정치를 한다던 안철수·김한길 대표가 광주에서 권은희를 살리고, 대신 기동민과 거물급 대선주자인 김두관 손학규 등 야당의 간판스타들을 볼품없게 만들어 버렸다. 천정배도 그러한 처지라고 볼수 있다.
모두가 공천실패에서 오는 새정치연합의 자업자득이다. 어찌보면 수원에서의 박광온을 어쩌다 건진 것 외에 한마디로 새누리당에 참패했다.
오죽했으면 “안·김이 박근혜 대통령도 살리고, 이정현이도 살렸다”는 우스겟소리를 했겠는가.
이제 이정현이도 대구와 부산 등 영남지역을 향해 한마디를 해도 괜찮을 듯 싶다. 호남에서 지역감정을 깨는 단초를 열어 제쳤으니 이제 너희 차례라고 말이다.
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때가 되면 병아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안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줄(啐)’이라 한다. 동시에 어미닭이 그 소리를 듣고 바깥에서 껍질을 함께 쪼아 주는 것을 ‘탁(啄)’이라고 한다.
지역감정 타파는 이렇듯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고사성어처럼,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격언처럼 영ㆍ호남이 화합과 통합을 위해 한걸음씩 다가서야 한다.
이제 이정현이 할 일은 ‘내편 네편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아우르는’ 큰 행보를 해야한다. 순천 곡성 주민들이 영락없는 시골 머슴인 이정현을 국회로 보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호남에 대한 예산과 인사에 대한 차별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국회의원으로서 이런 간절함을 풀어주는 게 이정현이 할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