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우리나라 칠엽수의 원조 나무인 일본의 천년 칠엽수
오늘은 마로니에라는 서양 이름으로 더 많이 부르는 칠엽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지난 번 《나무편지》에서 예고해드렸던 천연기념물 칠엽수입니다. 칠엽수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칠엽수는 두 가지입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의 분류에 따르면 하나는 칠엽수 Aesculus turbinata Blume 이고, 다른 하나는 가시칠엽수 Aesculus hippocastanum L. 입니다. 칠엽수는 ‘일본칠엽수’나 ‘왜칠엽수’ 혹은 ‘왜칠엽나무’라고 부르기도 하고, 가시칠엽수는 ‘서양칠엽수’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지요.
사진의 칠엽수는 이번 일본의 숲 트레킹 중에 만난 나무이니, 당연히 일본칠엽수, 국가표준식물목록의 이름으로는 ‘칠엽수’입니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큰 나무이지요. 무려 천년이나 살아온 나무로 알려진 나무입니다. 천년 된 칠엽수를 만난다는 건 적잖이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애초에 일본 숲 트레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일정 중에 천년 칠엽수가 들어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습니다. 여러 숲을 둘러보는 꽉 짜인 일정 가운데에는 비교적 짧게 스쳐지나게 되리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친숙하게 만날 수 있는 칠엽수의 원조격인 나무일테니까요.
천년의 세월을 한눈에 가늠할 수야 없습니다. 고작해야 육십 년 세월도 채 겪지 못한 사람으로서 천년 세월의 깊이를 어찌 한눈에 헤아리겠습니까. 그저 엄청난 나무의 위용을 말없이 바라볼 뿐입니다. 나무의 뿌리에서부터 곧게 뻗어오른 줄기의 꿈틀거림에는 그가 살아온 길고 긴 세월의 깊이가 넉넉히 담겨 있습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굵은 줄기 앞쪽에는 오래 전에 뻗어나온 맹아지로 보이는 또 하나의 줄기가 우뚝 솟았습니다. 천년을 살아오는 동안 나무도 아팠던 때가 있었겠지요. 나무라고 아프지 않았을 리 없지요. 굵은 줄기 한켠에는 스스로 아픔을 이겨낸 상처 자국이 선명합니다. 옹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큰 세월의 상처 뭉치입니다. 꽃이 필 계절이기는 하지만, 고지대의 낮은 기온 탓에 아직 꽃은 피어나지 않았습니다. 정해진 일정 때문에 오래 머무를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짧은 시간만으로도 신비로운 생명의 품에 안길 수 있는 흐뭇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칠엽수를 들여와 심기 시작한 건 1920년대 초반입니다. 당연히 일본으로부터 들여왔지요. 앞에서 말씀드린 칠엽수 종류 가운데 일본칠엽수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 칠엽수가 그때 들여온 나무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보다 먼저 들어온 칠엽수가 있었습니다. 1912년의 일입니다. 그 해는 1852년에 태어난 고종이 회갑을 맞이한 해였습니다. 그 회갑잔치에 네덜란드 공사가 보낸 선물이 칠엽수였습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보게 된 나무였지요. 칠엽수라고 했지만, 네덜란드 공사가 선물한 나무는 유럽에서 가져온 서양칠엽수, 즉 가시칠엽수였습니다.
정리하자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칠엽수 종류 중의 하나인 가시칠엽수가 들어온 것은 1912년이고, 본격적으로 일본으로부터 칠엽수를 들여와 곳곳에 심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초반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칠엽수가 가시칠엽수보다 많이 볼 수 있었겠지요. 그런데 그 뒤에는 서양으로부터 가시칠엽수 즉 마로니에를 많이 들여와 심어 키우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를테면 서울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의 가로수 역시 가시칠엽수이지요. 물론 정확한 통계는 아닙니다만, 제 관찰 경험으로 보아서는 일본에서 들어온 칠엽수보다는 서양에서 들어온 가시칠엽수가 더 많아 보입니다. 제가 사는 부천의 곳곳에 서 있는 칠엽수도 거의 서양에서 온 가시칠엽수이거든요.
서양에서 들여온 가시칠엽수와 일본의 칠엽수는 얼핏 보아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쭉쭉 뻗어오른 뒤 가지를 사방으로 넓게 펼치는 시원스런 수형樹形은 물론이고, 일곱 개의 넓은 잎이 모여나는 복엽의 형태 또한 다를 게 없습니다. 가시칠엽수와 칠엽수의 결정적인 구분점은 열매의 모양에 있습니다. 가시칠엽수는 열매의 껍질에 가시가 촘촘히 돋아나거든요. 열매가 맺기 전까지는 그래서 칠엽수와 가시칠엽수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도 이 특징에 기대어 이름에 ‘가시’를 강조해 드러낸 것입니다.
일본의 나가노현에서 쳔연기념물로 지정한 이 천년 칠엽수는 나이가 무려 천년이나 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일본의 나무 사정을 넉넉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 정도의 나이라면 아마 일본에서 가장 오래 된 칠엽수, 한발 더 나아가면 세상의 모든 칠엽수 중의 원조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보았던 칠엽수와는 그 규모나 생김새에서 비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나무는 일본의 오래 된 문헌에도 등장한다고 합니다. 특히 1740년에 기록된 일본의 역사 관련 문헌에서는 이 나무를 이미 “오래 된 아주 큰 나무”라고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같은 여러 기록과 현재의 나무 상태를 바탕으로 나무의 나이를 천 년으로 짐작한 겁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이 나무가 주변에 너무나 큰 그늘을 드리워서 농작물 피해가 컸답니다. 그때 마을에서는 이 큰 나무를 베어내자고 했답니다. 그러나 나무의 자리가 마침 군대에서 작성한 지도의 중요한 기점이었기에 베어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간신히 위기를 피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일본의 국도 19호선 도로변에서 훤히 내다보이는 언덕에 뒤편의 다른 나무들과 어울려 서 있어서 멀리서는 나무의 위용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나무의 위용 앞에 서면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나무는 오랫동안 사람들이 신성하게 모셨던 모양입니다. 나무 앞에 우리 식으로 하면 당산제와 같은 제사를 지내기 위한 앙증맞은 크기의 작은 사당이 있습니다만, 관리는 소홀해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보았던 칠엽수의 원형이랄 수 있는 한 그루의 오래 된 칠엽수 앞에서 머무른 시간은 짧았습니다. 그러나 짧아서 더 긴 그리움으로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겁니다.
일본의 숲 트레킹 이야기는 몇 차례 더 이어가겠습니다. 눈 쌓인 삼천미터 고지의 천연 숲인 미즈기사와, 가미고치 등의 깊고 아름다운 숲 이야기입니다. 마음에 담아온 천년 생명 이야기로 다음 《나무편지》도 이어가겠습니다.
지금 집 앞에는 가죽나무 높은 가지 위에서 노란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어느새 우리 앞에 찬란하던 봄이 멀리 떠났습니다. 비가 모자라 사람도 나무도 고통스러운 날들입니다. 나무가 아름답고 사람이 평화로운 그 날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오늘의 《나무편지》 여기에서 여미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