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구에서 태어나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살다 보니 어느덧 예순다섯 살이 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6.25 전쟁, 고등학교 3학년 때 4.19 학생의거, 대학 1학년 때 5.16 군사혁명 등 격동의 세월에 젊은 시절을 가난하게 살아왔다.
대학 신입생 시절까지 나는 비교적 충실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대학입시를 앞둔 고3 때도 새벽미사는 자주 참례하였다. 그러나 대학 입학 후 점점 신앙에서 멀어져 갔고, 그 후 40년 동안 소위 냉담자 생활을 계속했다. 그토록 오래 냉담했어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언젠가는 다시 성당에 나가야 한다는 마음이 내재되어 있었지만 그때가 좀처럼 오지 않았었다. 성당에 다시 나오길 권유하는 본당의 형제님들이나 교우 친구들도 있었지만 내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2005년 8월말 예순세 살 때 현직에서 은퇴를 하였다. 38년 반을 전문직종에서 한 우물을 파면서, 다른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 주어진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계발하면서 밤낮으로 노력하고 일하였다. 여러 모로 부족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직장인이라는 말과 함께 명예로운 은퇴를 축하받으면서 상하이와 서울의 호텔에서 내외국인들과 함께 두 번의 은퇴식을 가진 것은 좋은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은퇴 후 채 몇 달도 되지 않아 급성췌장염으로 큰 고통을 당하였다. 응급실로 간 나에게 의사선생님은 하루만 늦게 왔어도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했다. 육신의 고통이 지금까지 내가 경험하지 못한 극심한 것이었으며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졌다. 정신이 좀 들자 나는 이것이 주님이 내게 보내는 경고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주님께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 때 공부 잘하고 성인이 되어서 평탄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던 그 모든 것이 주님 덕분이라는 것도 깨치게 되었다. 다행히 아내는 성당에 계속 다니고 있었고 레지오 마리애 활동도 하고 있었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 자매님들이 오셔서 기도도 많이 해주시고 이웃의 형제님들도 오셔서 많이 기도해 주셨다. 그 형제님들도 이미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평소에 내가 존경하던 훌륭한 분들이었다. 그 자매님들이나 형제님들이 모두 주님이 보내신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드디어 나는 40년의 냉담을 끝내고 다시 주님의 품으로 돌아왔다. 40년 만에 돌아와 보니 가톨릭 기도문의 내용들도 현대화되어 어릴 때부터 내가 외워서 기억하고 있던 것과는 모두 조금씩 달라져 있었고 미사의 방식도 과거에 신부님이 중심이 되어 라틴말로 드리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우리말로 진행하며 성가도 성가대만 부르지 않고 일반교우들이 함께 부르도록 되어 있어서 모든 면에서 현대화되고 좋은 쪽으로 변화되어 있었다.
주님 품으로 돌아와 첫 고해성사를 하면서 얼마나 목이 메고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첫 교중미사 때 성가 387장 주님의 기도를 옆의 형제자매와 손잡고 합창하면서 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작년 한 해 동안 나는 평소에 하고 싶었던 성경공부를 하고자 가톨릭 성서모임의 성서 40주간반에 다니면서 성경에 대하여 전반적인 것을 배웠다. 그것은 1년 과정이었는데, 1년에 신구약 73권을 다 배우다 보니 성경의 개념 정도만 겨우 배울 수 있었다.
금년에는 성경을 한 권 한 권 심도 있게 배우려고 하는데, 지금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을 배우고 있다. 강의를 하시는 앤 수녀님은 한국에 오신 지 수십 년이 되는 미국분인데 높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정열적으로 성의껏 가르치신다.
나는 작년 5월에 먼저 입단하신 이웃 형제님들의 권유로 대치4동성당 소속 레지오 마리애 창조주의 모후 쁘레시디움에 입단하였다. 이것은 내 신앙생활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큰 영향을 준 하나의 사건이었다. 지금은 내 신앙생활 중 레지오 마리애와 관련하여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으며, 보람을 느끼고 있다. 매주 수요일 밤 주회와 매월 2회 실시하는 외부 봉사활동에의 참여, 생활화된 까떼나와 묵주기도 바치기, 가끔 있는 미사봉사와 연도 등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충실히 함으로써 신심이 고양되고, 보람을 느끼며, 삶이 더 행복해짐을 느낀다.
지난해 주회에 꼭 한 번 결석했는데, 작년 가을에 아내의 회갑기념으로 아이들의 강권도 있고 하여 외국여행을 갔다 오느라 참석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행기간 중 성모님께 죄송하여 우리는 밤마다 묵주기도를 바쳤다.
지난 세월 학교나 직장에서 늘 일등을 하려고, 남보다 앞서려고 애쓰면서 살아오다가 요즈음은 다른 모든 이를 섬기면서 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다 보니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예수님께서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고 남을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지 않은가. 꼴찌가 되어 남을 섬기니 이렇게 편안한 것을….
장기간 냉담하는 사이에도 신앙생활을 계속하면서 내가 돌아올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아내 요세피나에게 감사하며, 다시 신앙생활을 하도록 인도하고 격려해주신 이웃의 형제님들에게도 깊이 감사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 유아세례를 받게 해서 내 신앙의 뿌리를 미리 준비해 주신 부모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외출 시에는 이웃의 형제님이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갔다가 선물로 사다준 나무묵주를 사용하며 집에서는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조금은 무겁고 긴 묵주를 사용하면서 소중한 아버지의 숨결을 느낀다.
은퇴를 앞두거나 또는 은퇴한 가톨릭 신자가 아닌 분들에게 나의 이 경험을 통해서 가톨릭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보다 평화로운 인생길을 가도록 권유하고 싶다.
신앙생활을 하면 첫째, 영원한 삶을 믿게 되어 인간의 숙제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다. 둘째, 신앙이 약하여 영원한 삶에 대한 확신이 가지 않는 경우에도 현실세계에서의 삶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된다. 셋째, 성경에는 신앙과 직접적인 관계없는, 삶에 도움이 되는 좋은 말씀들도 많아서 성경을 가까이하면 부족함이 많은 우리의 인격함양에 도움이 된다. 넷째, 신심단체나 지역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더욱 깊은 신앙생활과 함께 훌륭한 형제자매님들과 친교도 할 수 있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야 하기 때문에 같이 사는 가족 다음으로 접촉이 많게 된다. 각자 걸어온 길이 다른 그들과의 대화는 항상 유익하고 즐거우며 자신의 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다섯째, 은퇴 후 할 일이 없어서 시간 보내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특히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활동하게 되면 자기 하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생활이 바쁘게 된다. 여섯째, 부부가 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신심을 가지게 되면 부부의 성격이나 취미가 다른 경우에도 가정의 평화에 많은 도움이 된다.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