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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2.24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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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가 1966년 발표한 책 ‘침묵’ 표지. /아마존
"이 바다의 무서운 적막함 위에서 저는 하나님의 침묵을 느꼈습니다. 비애에 빠진 인간들의 소리에 하나님이 아무런 응답도 없이 다만 말없이 침묵하고 계시는 듯한 그런 느낌을…"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1923~1996)가 1966년 발표한 '침묵'은 '고통의 순간에 신은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심오한 문제를 다룬 역작이에요. 엔도 슈사쿠는 침묵 외에도 '사해 부근에서' '깊은 강' 등의 작품을 통해 인간과 종교에 대해 깊게 다뤄요. 그런 그는 "종교 소설과 세속 소설의 차이를 무너뜨린, 20세기 일본 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았고,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요.
1638년, 젊은 포르투갈 사제 세 명이 일본을 향해 출발해요. 이들의 이름은 '로드리고' '마르타' '가르페'였어요. 당시 일본은 천주교 선교사들을 가혹하게 탄압했어요. 그럼에도 이들이 일본에 가려는 이유는 스승인 페레이라 신부가 잔인한 고문 끝에 배교(背敎)했다는 사실을 자신들이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어요. 인자한 스승이자 굳은 믿음의 소유자였던 페레이라 신부가 "눈부시게 순교했다면 몰라도" 신을 저버릴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이들이 마카오에서 일본행 안내자로 소개받은 사람은 '기치지로'였어요. 한때는 신자였던 기치지로는 간사해 보였죠. 천신만고 끝에 일행이 도착한 일본은 도모기라는 작은 어촌 마을이었어요. 도모기는 다행히 주민 대부분이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지요. 마을 사람들은 로드리고 신부 일행을 숨겨주며 정성을 다했어요. 하지만 얼마 못 가 로드리고 신부 일행의 행적이 밝혀지고, 본보기로 마을 사람 두 명이 잔혹한 고통 속에서 죽어갔어요. 이 모습을 로드리고 일행은 산속에서 지켜봐야만 했어요. 로드리고는 '사람들이 이토록 고통받을 때 신은 어디에 있는가' 질문하기 시작해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로드리고는 결국 관리들에게 잡히고 말아요. 하지만 관리들은 로드리고를 고문하지 않아요. 대신 마을 사람들을 가혹하게 고문함으로써 로드리고의 배교를 강요했지요. 그러다 로드리고는 스승인 페레이라를 만나게 됩니다. 페레이라는 배교하더라도 마을 사람들을 고문의 고통에서 덜어주는 것이 오히려 신의 뜻에 합당하다고 로드리고를 설득해요.
결국 로드리고도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밟고 배교해요. 그때 로드리고는 신의 음성을 들어요.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그리고 로드리고가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하고 있었다"고 하자 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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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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