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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비평(精神分析批評)
1.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
인간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무의식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G. 프로이트
많은 사람들이 정신분석학을 일부의 정신질환자들의 정신상태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학의 한 분야라고 오인한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보편성으로 인해 누구나 신경증의 잠재적 소인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본다. 즉 무의식이 우연적인 게 아니라 보편적인 것임을 이해할 때, 정신분석학은 신경증의 치료학인 동시에 인간정신에 대한 심층적인 해석활동이기도 한 것이다. 더구나 정신분석학이 문학, 예술, 철학 등 학문체계에 끼친 영향을 고려해 볼 때, 인간 정신의 보편적 구조를 인식하게 하는 인문학적 의미와 가치에 더욱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라는 개념은 근대철학의 기초였던 '주체'와 '주체철학'을 해체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근대철학의 문을 열었던 데카르트의 코키토라는 명제는 주체와 의식을 동일시하여 근대적 주체를 통일성과 중심성을 갖고 있는 의식적 주체로 상정하였다. 그러나 무의식의 등장으로 더 이상 주체를 의식과 동일시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주체란 통일적인 중심이 아니라 이질적인 복합체이고, 자명한 출발점이 아니라 하나의 결과물인 셈이다.
프로이트는 샤르코 밑에서 최면술을 실험하면서 무의식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무의식이 인간 정신의 보편적인 것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당시 정신의학계는 신경증을 병리적인 현상으로 간주하고 개인의 유전적인 요인에 그 원인이 있다고 믿었다. 이때부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정신의학과 결별하고 독자적인 학문체계로 발전해 나가게 된다.
무의식이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믿음은 인간의 정신구조를 유형화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프로이트는 전 생애를 통해 세 가지 모델을 제시한다. 그가 초기에 강조한 것은 역동이론으로, 이 모델에 따르면 우리의 정신은 서로 대립되는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성된다. 이때 그는 무의식을 억압되고 해결되지 못한 갈등을 저장하는 역동적 체계로 정의하면서, 변형된 형식, 즉 꿈, 예술, 문학, 연극, 실언 등을 통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두 번째 모델은 경제적 모델로 쾌락 원칙과 현실 원칙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쾌락원칙은 오직 쾌락만을 추구하고, 사회가 규정하는 도덕적, 성적 경계를 위반하면서 본능적 충동의 즉시적 만족을 추구한다. 그러나 쾌락 원칙은 현실 원칙에 의해 규제 받는다. 현실원칙은 사회적 기준과 규정을 요구하는 심리영역이다.
마지막으로 지형학적 모델은 초기와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초기에는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뒤에 다시 한번 이 모델을 정의하면서 인간 심리를 본능, 자아, 초자아로 나눈다. 이때 본능은 쾌락원칙에 의해 움직이며, 초자아는 그것을 통제하려는 사회적·도덕적 질서가 내면화된 것이다. 자아는 본능의 욕망과 초자아의 억압을 매개한다.
프로이트는 내담자들을 정신분석 하는 과정에서 정신구조 및 성격, 정신질환은 대부분 유년기에 형성된 것임을 확인한다. 특히 유아 성욕은 혹독한 도덕적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인간의 근본 욕망이라고 고집했던 핵심개념이다.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과 성격, 그리고 정신질환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아 성욕에 주목해야 한다.
인간은 오랜 동안의 부모의 보호가 필요한 존재이다. 생물학적 자기보존본능이 유아를 부모에게 의존하게 만든다. 그러나 어머니의 젖을 빠는 동안 쾌락에 눈을 뜨게 되고,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이 생물학적 이유만이 아닌 성욕과도 연관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성욕은 처음에는 생물학적 본능과 함께 나타나지만 점차 분리되어 독자성을 지니게 된다. 프로이트 이론에서는 성욕 자체가 도착의 일종으로 타고난 자기보전적인 본능이 다른 목표를 향해 빗나간 것이다. 유아는 구순기, 항문기, 남근기를 거치는 동안 리비도의 점진적인 조직화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 단계로 접어들면서 아이와 어머니와의 2항 관계가 아이와 양친모두를 포함하는 3각 관계로 바뀐다. 거세위협과 이에 따른 무의식적 보상심리가 아버지를 자신과 동일시하게 되면서 성의 분화를 달성한 주체가 된다. 그러나 이 때 거세위협에 따라 억압된 욕망은 무의식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즉 주체는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열되고 무의식은 언제나 되돌아와서 의식을 괴롭힌다. 무의식은 시간개념이 없기 때문에 억압된 것은 최초의 상태 그대로 평생 보전된다. 정신분석학이 인간 정신의 구조를 심층적으로 해명하는 것 외에도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여기서 꿈의 중요성이 발생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본질적으로 무의식적인 소망의 상징적 달성이다. 우리는 꿈을 통해서 무의식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꿈은 해독할 필요가 있는 상징적 텍스트가 된다. 꿈의 재료들은 자아라는 검열관에 의해 비틀어지고 왜곡되고 다른 것으로 변모되어 꿈의 스크린에 투사되는 것이다. 꿈 변환의 기교는 환치와 응축으로, 훗날 로만 야콥슨이 말한 인간 언어의 두 가지 기본작용인 은유(메타포)와 환유(메토니미)와 대응된다. 라캉이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말한 이유도 위와 같다.
꿈 이외에도 무의식의 징후에는 말실수, 잘못된 기억, 오독, 농담 등이 있다.
2. 정신분석 비평의 흐름
⑴고전적 정신분석 비평
프로이트는 예술과 꿈의 관계를 추적한다. 꿈은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이고, 따라서 초기의 정신분석 비평은 전기적인 특성을 보여 준다. 곧 텍스트와 창조자가 피분석자가 되어 비평가의 분석이 이루어진다. 꿈이 그렇듯이, 수용될 수 없는 소망이 수용될 수 있는 형식을 구성하여 예술 작품이 된다. 프로이트는 독자에게 주는 작품의 효과를 분석함으로써 창조자의 기법과 독자의 관계를 추적한다. 따라서 정신분석 비평의 1세대는 대부분 창조자의 정신분석에 관심을 둔다. 마리 보나팔트의 「E.A. 포우: 정신분석사고」(1933)는 포우의 심리적 전기라고 할 수 있다.
꿈이 그러하듯 작품의 표면에 나타난 현시적 내용은 해석이 필요한 잠재적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예술적 상징 역시 꿈처럼 무의식적 내용을 드러내며, 해석의 열쇠는 '승화' 개념을 통해서이다. 승화란 충족시킬 수 없는 욕망을 좀 더 가치 있는 사회적 목적에로 전화시키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승화는 문명화의 중심적인 기제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성적본능은 창조적 예술 작품으로 승화된다. 꿈이 응축과 환치를 통해서 변환되는 것처럼, 비평가는 명시적 의미가 아니라 함축적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⑵ 원형비평
프로이트가 개인의 정신구조에 초점을 둔 반면에 융은 개인의 무의식에는 공동 축적으로서의 근원적 이미지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융에 의하면 인간심리는 개인적 의식, 개인적 무의식, 집단적 무의식으로 구성된다. 개인적 의식에 의해 저지된 심리의 심층에는 집단적 무의식이 존재하고, 이 영역에는 인류의 공동 축적된 이미지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바로 원형이다.
융에 따르면 예술가는 보편적 언어, 보편적 상징을 전달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원형비평은 예술의 원천에 풍부한 상상력을 주었으며, 프라이의 쟝르론에 영향을 주었다.
⑶ 자아 심리학
프로이트에 의하면 자아는 본능과 초자아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프로이트를 계승하는 후기 학파들, 즉 하르트만, 크리스, 안나 프로이트, 에릭슨 등은 자율적 자아를 강조하면서 자아는 본능 갈등에 구속되거나 거기서 도출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자아 심리학은 프로이트의 후기 지형학적 모델을 인용하여 창조적인 행위로서의 자아 기능은 자아의 중화된 에너지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신비평과 연합하여 텍스트의 자율성을 주장하며, 사적인 것의 공적 약호화, 즉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에의 의미를 추구한다. 이 비평에서는 예술의 형식적 장치를 밝히고 독자의 반응을 고려한 최초의 이론이라는 의미에서 의미가 있지만, 신비평과 마찬가지로 문학을 총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⑷ 대상-관계 이론
대상-관계 이론은 자아와 본능의 내적 관계보다는 자아와 대상의 관계에 관심을 둔다. 자아와 대상을 중재하는 심리 과정과 이것이 예술의 형식적인 측면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관심을 둔다. 이런 관심은 예술가와 작품, 비평가와 분석 대상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는데 정신분학석이 얼마나 유용한지 연구하는 방향으로 발전된다.
⑸ 라캉과 문학비평
라캉은 구조언어학의 이론과 방법론을 기초로 프로이트주의를 재해석한다. 그는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된다'라고 주장하면서 언어와 무의식의 문제를 정면으로 부각시켰다. 프로이트가 제시한 응축과 치환이라는 두 가지 꿈 변환의 기제는 로만 야콥슨이 밝혀낸 언어의 기본적인 양 축인 은유와 환유에 각각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프로이트에게 꿈 변환의 작업을 수행하는 것은 자아였지만, 라캉은 자아를 내던진다. 대신 변환은 무의식 자체가 언어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무의식이 자신을 표현할 때 언어적 수단을 쓴다는 사실은 무의식이 언어와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언어는 이미 독자적인 질서를 갖추고 있으며, 따라서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면, 그것은 주체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인 체계와 질서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꿈의 주인은 의식 주체가 아니라 의식하지 못하는 주체 속의 '타자'이다. 따라서 무의식이란 '타자의 담론'일 수밖에 없다. 결국 무의식이란 '타자의 담론'이라는 질서가 개개인에게 내면화되는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인간은 의식 주체와 무의식의 타자로 분열되어 있는 것이다.
라캉은 포우의 텍스트를 분석한 「도둑맞은 편지 세미나」에서 무의식적으로 기표가 다른 하나의 기표에로의 운동을 계속한다고 보고 이 운동을 환유의 연쇄구조로 파악했다. 언어는 사물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기표의 끊임없는 환유적 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주체가 영원히 포착할 수 없는 욕망의 대상을 추구하면서 무의식이 발생한다. 즉 언어행위가 이루어지는 순간은 바로 억압과 무의식이 발생하는 순간인 것이다.
라캉은 유아가 어머니와 자기를 세상의 전부라고 상상하는 시기를 가리켜 '상상계'로, 언어 구조 속으로 아이가 진입하는 시기를 '상징계'라고 불렀다. 상상계의 유아는 주체와 타자의 분리가 없는 통합체이다. 그러나 언어의 습득은 유아를 사회적 주체로 재탄생 시킨다. 이때 기표화 이전의 자기 존재와 하나의 기표가 되어버린 자기 존재 사이에 분리와 균열이 발생한다. 기표화 이전의 자기 존재는 언어가 소외시킨 주체의 타자이며 무의식이 타자가 된다. 그는 주체의 꿈과 말의 유형, 특수한 비유법이나 실언을 연구함으로써 주체의 분열양상을 해명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라캉의 견해에 따른다면, 리얼리즘 소설 대신 실험적이고 인유로 가득한 모더니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이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텍스트와 실제 대상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문학작품은 심층텍스트를 하나 이상 가지고 있는 셈이 된다. 심층텍스트를 작품 자체의 무의식으로 규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이러한 방법에 의존하면 작품이 실제 만들어지는 방식과 과정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3. 방법론과 한계
정신분석 비평을 행하기에 앞서 프로이트의 개념을 중심으로 몇 가지 전제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먼저, 정신분석의 기본명제는 모든 작가는 신경증적이라는 프로이트의 주장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신경증은 불행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창조적인 작업을 해 나갈 수 있는 '승화'라는 개념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승화란 충족시킬 수 없는 욕망을 좀 더 가치 있는 사회적인 목적으로 전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보통 신경증 환자와 달리 작가는 창조적인 작업을 통해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신경증 질환을 극복할 수 있다.
둘째로 프로이트에 의하면 글쓰기의 주요 동기는 작가의 유년시절 무의식에 각인된 비밀스러운 욕망과 억압된 공포에 대한 회복심리과 연관된다. 비평가는 정신분석학의 개념들을 사용하여 텍스트 속에 숨어 있는 의미들을 정확하게 해명하고 설명해야 한다.
셋째는 문학 텍스트는 예술가의 꿈이기 때문에 꿈처럼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비평가는 변화된 꿈의 영상들인 텍스트 속에서 진정한 무의식적 소망을 발견해내야 한다.
이러한 전제들을 바탕으로 정신분석 비평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첫째, 초기의 정신분석 비평은 주로 작가의 심리에 초점을 둔다. 정신분석 비평가는 텍스트 뒤에 숨어 있는 작가가 작품 속에 투사되어 있는 사실 여부를 판단하고 분석해 나간다. 이는 작가-텍스트을 신경증환자-꿈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가정하여, 비평가가 정신분석학자가 되어 텍스트를 그의 증상으로 생각한다. 텍스트를 통해 작가의 무의식적 억압과 본능을 발견하려 한다.
둘째, 1950년대의 비평은 작가 심리에서 인물 연구로 초점이 바뀐다. 텍스트 속에 구현된 인물들의 다양한 심리적 양상을 연구한다. 이러한 인물 심리 연구는 작가 연구보다 복잡해진다. 중요한 것은 독자가 어떻게 다양한 인물들을 해석하는가 라는 문제와 직결된다. 인물을 창조하는 것은 작가지만, 독자는 과거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인물을 재창조한다. 따라서 비평가는 작가와 독자의 정신을 분석해야 한다.
셋째, 최근의 정신분석 비평도 독자를 중요시하지만, 인간 행위의 동기가 성적이라는 정신분석학의 명제에 따라 텍스트에 잠재되어 있는 성적 충동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진다.
넷째, 처음 융에 의해 주장되고 프라이가 발전시킨 원형 비평은 텍스트가 드러내는 다양한 원형들을 탐구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의 정신분석 비평은 라캉에 의해 발전된다. 라캉적 비평은 텍스트가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를 어떻게 재현하는가에 초점을 둔다. 비평가는 이 세 양상에 주목하고 자아의 파편적 본질을 연구하여 모든 개인들이 실제로는 분열되고 파편적인 자아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라캉적 비평의 목적은 통합되고 심리적으로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자아의 파편성을 수용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는데 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이 문학 비평에 끼친 영향은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이론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서 이해하거나 단편적으로 이해하여 문학의 심리학적 해석에 적지 않은 오류를 범해 온 것이 사실이다. 정신분석학은 인간의 정신구조를 해석하는 학문인 동시에 신경증이나 정신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반면에 문학비평은 문학의 이해와 향유에 보다 직접적인 목적이 있다. 즉 정신분석학과 문학비평이 동일한 목적을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은, 정신분석학을 문학비평에 응용할 때 여러 가지 주의할 것들을 노출시킨다.
첫째, 문학의 형식과 기교를 무시하고 심리적 내용만을 금과옥조처럼 받들 위험이 있다. 최근의 정신분석 비평가들은 형식의 심리적 의의도 설명하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문학의 무의식적 내용을 문학의 유일한 가치로 간주하여 그 밖의 다른 적절한 고려요소를 살피지도 않고, 억지로 이론의 틀에 끼워 맞춰서는 안 된다. 셋째, 전문적인 용어를 과도하게 사용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신비주의로 전락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