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220829010003597#
[정만진의 문학 향기] 현진건 탄생 122주년
1900년 9월2일 현진건이 태어났다. 현진건은 `한국 근대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조연현)` `한국의 모파상(장덕순)` `기교의 천재(김동인)` 등으로 평가받는 `한국 단편소설의..
www.yeongnam.com
1900년 9월 2일 현진건이 태어났다. 현진건은 '한국 근대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조연현)' '한국의 모파상(장덕순)' '기교의 천재(김동인)' 등으로 평가받는 '한국 단편소설의 아버지(김윤식·김현)'이다.
현진건은 일장기 말소 의거의 '직접 책임자(국가보훈처 공훈록)'로서 고문과 투옥을 겪은 독립유공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진건은 문학관도 없고, 생가도 고택도 없고, 묘소마저 없다. 민족정기와 국가정체성을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 일'이다.
현진건 탄생 123주년을 맞아 박지극 시 '뫼비우스의 띠'를 읽는다. '현진건의 일장기 말소 의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고향 후배 문인으로서 걸출한 선배 민족문학가이자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품이 아주 아름답게 느껴진다.
두 바퀴를 돌아야 제자리로 온다
1시간11분29초
반환점을 돈 시간이었다
1936년 8월 9일
어디? 독일 베를린
제자리에 돌아온 시간
2시간29분19초 올림픽 신기록
누가? 손기정
손군 1착 남군 3착
1936년 8월12일 밤 동아일보사 옥상
누가? 기자 이길용 부장 현진건
뫼비우스의 띠를 잘라 하늘을 향해 세운다
해발로 치면 21.0975㎞
반환점 돌아오면 42.195㎞
일장기를 말짱히 지우고
우승자가 돌아왔다
시 속의 '손군 1착 남군 3착'은 당시 신문 호외들에 나오는 표현으로, 손군은 손기정, 남군은 3위를 차지한 남승룡 선수를 가리킨다. 현진건, 이길용, 최승만, 신낙균, 이여성, 서영호 등 민족언론인들은 두 선수의 시상식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렸다.
일장기 말소 의거를 일으키기 11년 전인 1925년 12월 현진건은 <고향>을 창작했다. '나'는 대구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어떤 노동자와 동석하게 된다.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농토를 빼앗긴 뒤 만주로 떠났다가 굶어 죽고 병들어 죽은 부모 이야기, 한때 자신과 결혼 이야기가 오갔지만 부모가 유곽에 팔아버리는 바람에 10년 만에 폐인이 되고 만 고향 처녀 이야기를 하면서 노동자는 눈물을 쏟는다.
'나'는 1925년 노동자의 얼굴에서 '음산하고 비참한 조선의 얼굴'을 본다. 나는 2022년 문학관도 생가도 고택도 없는 현진건 현창 실태 앞에서 '무심하고 한심한 한국의 얼굴'을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