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우리에게 어떠한 나라인가?

[이성철]

중국은 우리에게 어떠한 나라인가?

2017년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조선은 중국 종속국(從屬國)이었다고 과거사를 끄집어낸 그 속뜻은 무엇일까.

중국은 '김치'가 연변 조선족의 전통음식이라고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김치를 ISO에 등록했으므로 중국김치(泡菜: 파오차이)가 국제 표준이 되었다고 떠드는 나라.

'한복'은 물론 '아리랑' 노래까지 자기네(연변) 거라고 우기는 나라.

'고구려'가 역사적으로 자기네 나라였다고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하는 나라다.

우리나라의 사대주의(事大主義) 사상은 거슬러 올라가면 여진족의 하급 무사 출신이라 명나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아야만 고려 백성을 다스릴 수 있다고 했던 이성계(李成桂:1335~1408)의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거역할 수 없다(以小逆大不可)"는 개국의 명분에서 중국에 대한 종속(從屬)이 시작되었다.

이처럼 '사대(事大)'란 분명 우리 입장에서 보면 굴욕(屈辱)인데 '현대적 개념으로 보면 사대란 굴욕이 아니다'고 강변하는 점에서 한국사는 정직하지 않다.

조선이 중국에 조공(朝貢)과 인질(人質)을 바쳤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인데 우리나라 국사책을 보면 이러한 서술은 금기어(禁忌語)가 됐다.
그런 일련의 역사 인식을 대변하는 것이 삼전도비(三田渡碑)를 땅에 묻은 사건이다.

나중에 다시 찾아 세워놨지만 이거라도 땅에 묻어 그 당시에 있었던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고 싶어했던 마음이 이런 일을 벌인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치욕스러운 역사(dark history)'도 가르쳐야 한다.

어두운 역사가 없는 민족이나 국가가 어디 있으랴.

대한민국 발전의 상징물이 된 123층 롯데월드타워를 배경으로 삼전도비(三田渡碑)를 바라보노라면 심경이 착잡하다.
끝까지 싸우자던 척화파 김상헌(金尙憲:1570~1652)보다는 주화파 최명길(崔鳴吉:1586~1647)의 고민이 더 깊었을 것이다.
인조(仁祖)는 남한산성에서 죽음(黃泉)을 뜻하는 황토를 길에 깔고 시체를 상징하듯 몸을 일곱 번 새끼줄로 묶고 상여에 올라 산성에서 내려왔다.
그때 그와 울며 따르는 신하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미·중 패권 경쟁으로 신냉전이 시작됐다는데 '만동묘(萬東廟)와 삼전도비'의 역사적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시대의 민초들은 물론이고 지도자들도 지금의 우리가 중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도 한 가지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점이 있다.

중국이 '사면팔방 오랑캐'라 부르는 '사이팔만(四夷八蠻)' 가운데 지금 독립 국가로 남아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과 베트남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중국 지도부는 아직도 리훙장(李鴻章)이나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조선에서 군림하던 그 시대의 사고방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물론 우리가 중국에 고마워해야 할 일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은원(恩怨)의 5000년 역사에서 아름다운 추억보다 쓰린 기억이 더 많다.

그러므로 우리의 역사학은 민중의 눈으로부터 백내장(白內障)을 제거해야 한다.

그 백내장의 정체는 무엇인가.

첫째는 중국이 '큰 시장'이라는 막연한 기대다.
이는 이미 1940년 대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오판임이 입증됐다.

생선 뱃속에 납덩이를 넣어서 파는 것이 중국의 진정한 모습 아닌가.

오죽하면 중국의 사상가 후스(胡適)조차 베이징대 교수 시절 "중국이 협상하러 올 때는 그들의 속임수(虛僞)를 조심하라."는 말을 남겼을까.

둘째, '중국이 남북통일의 지렛대'라는 몽한적 대국주의다.

중국은 남북통일을 시켜줄 힘은 없어도 저지할 힘은 있다.

이게 우리에겐 비극이다.

지금처럼 한국이 중국에 경도될 경우 두 가지 걸림돌이 있다.

그 한 가지는 미국과의 관계다.

미국은 중국에 맞서 일본의 재무장이 끝날 때까지는 한국을 지켜줄 것이다.

그 뒤에는 한국을 버릴 수도 있다는 냉혹한 국제정치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두 번째 걸림돌은 일본과의 관계다.
한국인 치고 누구인들 일본에 거부감이 없을까마는 우리는 대일관계에서 지나치게 과거에 몰입되어 있다(일정한 체념이 필요하다).

역사는 화해하는 것이지 적개심을 함양하는 도량은 아니다.

신숙주(申叔舟:1417~1475)가 운명하기 전에 성종(成宗)이 승지를 보내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길 유언이 무엇이오."라고 물었을 때 신숙주는 "일본과 등지지 마십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일본이 아무리 미워도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안전문 유리에 '일본놈 저며 죽이자(屠戮:도륙)'는 시를 써 붙인 것은 문명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도쿄 긴자(銀座)역에 '조센징 찢어 죽이자'는 광고가 걸리면 우리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왜 지식인과 언론은 이런 걸 보고 침묵하는가?
적어도 우리에게 일본은 지금 중국보다 가깝지 않나.

한반도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지정학(地政學)적으로 일본과 적대관계를 가져선 안 된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게 끌려간 환향녀(還鄕女)의 역사는 잊어버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만 문제 삼는가.

중대한 역사의 갈림길에서 다시 묻는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하나?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Pericles)는 "강대국은 베푸는 것으로 동맹을 맺지, 받는 기쁨으로 동맹을 맺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은 베푸는 나라가 아니다.

중국이 우리를 동맹이나 '아픔을 나눌 형제'로 여길까.

그렇지 않다.

왜 그들의 레이더는 우리를 샅샅이 들여다보고 있는데 우리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사드) 체계를 배치하면 안 되는가.

이제 우리의 살길은 '강소(强小)국가'로 가야 한다.

지금은 봉신(封臣)의 시대도 아니고, 주한 미국대사관 담장에 올라가 '주한미군 철수 반대'의 혈서를 쓰는 것이 우국(憂國)이던 시대도 아니다.

우리 운명의 주인은 우리밖에 없다.

국난기(國亂期)에 애국자가 넘쳐나는 때도 있었지만, 애국자가 없었던 시절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에는 지사(志士)도 없고 책사(策士)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중국과 북한) 빨대' 뿐이다.

그 점이 두렵고 걱정스럽다.

지정학과 시대를 탓하고 운명이라 하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 슬프다.
우리는 어차피 그렇게 살았지만, 이런 삶을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수야 없지 않은가.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이 글은 6·25전쟁 70주년(2020년)을 맞아 신복룡 전 석좌교수가 중앙일보와 대담한 글에서 발췌한 것임.

원 타이틀은 '6·25전쟁 70주년, 중국은 우리에게 어떠한 나라인가?'이다.

*본란 216호 '독립문(獨立門)이 언제, 왜 건립되었는지 아시나요?'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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