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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부모의 날'… 본지, 생활실태 추적
부천에 사는 강영주(가명·45)씨. 맞고 살다 2004년 이혼했다. 간병인으로 일하며 월 86만원씩 벌어 초·중학생 3형제를 학교에 보냈다. 2007년 자궁에 혹이 생겨 수술을 받았다. 1년 뒤 재발했지만 당장 안 벌면 생활이 안 됐기에 치료를 미뤘다.
작년 7월 아랫배에 납덩이가 든 것처럼 아파왔다. 그제야 병원에 갔더니 혹이 800g 크기로 자라 있었다. '조건부 기초생활수급자'라 수술비 304만원을 208만원으로 할인받았지만 저축도 보험도 없는 그에겐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었다. 그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한국여성재단이 수술비를 지원해 겨우 위기를 넘길 수 있었지만 앞으로 또 아프면 어떡하나 강씨의 걱정은 태산 같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한부모가정은 예외적인 가족 형태가 아니다. 이혼·사별, 배우자 가출 등으로 혼자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싱글맘·싱글대디)가 10가구 중 하나(8.6%)꼴로 늘어났지만, 대부분의 한부모가정은 빈곤의 덫에 빠진 채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다. 주변의 편견과 사회적 냉대는 물론, 정부의 복지지원 시스템에서도 한부모가정은 사실상 제외돼있다.
오늘(24일)은 '한부모의 날'. 취재팀이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와 함께 전국의 한부모 290명의 생활실태를 추적 조사해 확인한 이들의 평균적인 초상(肖像)은 이랬다. 평균 연령 41세, 월 평균 수입 100만원. 든든한 저축도 사회의 보호도 없이 사글세 집에서 비정규직으로 평균 1.6명의 자녀를 혼자 키운다….
이들은 10명 중 8명(78%)이 월수입 150만원 이하라고 응답했다. 10명 중 3명(30%)은 한 달에 10만원 이하를 저축하거나 아예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한 사람이 10명 중 2명(22%), 가입은 했지만 보험료를 못 내는 사람이 3명(26%)이었다.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은 간신히 절반(51%)을 넘겼고, 10명 중 1명(7%)은 국민연금에 가입만 하고 보험료가 밀리는 처지였다. 고용보험 혜택을 보는 사람은 절반(48%)에도 못 미쳤다.
전주에 사는 박영숙(가명·52)씨도 전형적인 한부모 빈곤층의 하나다. 박씨는 술로 세월을 보내다 가출한 남편과 2008년 이혼했다. 요양보호사 수입 76만원에 정부 지원금 19만원을 보태 두 아들 학비를 댔다.
어금니가 부러져 시큰거렸지만 치과에 갈 형편이 못 됐다. 작년 9월 밥을 씹지 못할 만큼 이가 아파 그제야 치과에 갔다. 견적이 140만원 나왔다. 치료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 두 아들과 함께 사는 월셋집 보증금(500만원)이 박씨의 전재산이었다.
한부모가정이 겪는 고통의 밑바탕에는 ‘가난’이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선임연구위원이 통계청 전국가계조사와 한국복지패널조사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18세 미만 자녀를 둔 한부모가정의 절대다수(79.8%)가 중위소득 이하 수입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위소득은 전 국민이 소득에 따라 줄을 섰을 때 맨 가운데 사람의 소득이다. 2008년 기준 한부모가정의 중위소득은 182만7490원으로, 부모가 둘 다 있는 집 중위소득(322만4130원)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한부모가정의 빈곤은 구조적인 문제다. 한부모가정 가운데 싱글대디는 20%뿐이고 싱글맘이 8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보건사회연구원 추정). 싱글맘은 특별한 기술이나 전문성 없이 이혼·사별 등으로 늦은 나이에 직업전선에 뛰어든 경우가 많다. 빈곤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들은 돈 벌고 아이 돌보는 이중(二重) 역할을 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보호막이 되는 사회안전망은 극히 부족한 실정이다. 한 사람 어깨에 모든 짐이 집중돼 실직이나 질병 같은 위기에 쉽게 무너지지만 국가에서 주는 혜택은 10세 미만 어린이 한 사람 앞에 월 5만원씩 지급되는 양육비, 고등학교 수업료·입학금 면제, 무료 급식이 거의 전부다(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 황은숙 회장).
한부모가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사회단체들이 정한 ‘한부모의 날’이 오늘(5월 24일)로 세 번째를 맞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