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에서 참여자로...
하루하루 자신의 능력 이상의 일들로 분주하게 '살아가다'보면 놓치는 것들이 많습니다. 분주함 뿐만 아니라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집중된 이기심이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언제나 방해를 하기도 합니다.
영국의 한 여성 조사연구관인 줄리아 보이드가 <히틀러시대의 여행자들>이라는 책을 썼고, 최근 우리말로 번역되어 소개되었습니다. 도시의 역사적 흔적이 지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혹은 이러한 역사문화적 유산들이 어떠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하는 것이 저의 연구과제 중 하나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곳곳의 많은 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현장을 답사했었죠. 특히 인류사의 큰 비극이라 할 수 있는 나치독일의 어두운 흔적들을 많이 둘러보았고, 언젠가 한 번 소개했듯이, '다크투어리즘'이라는 교육과 문화, 성찰을 위한 프로그램에 대한 구상도 해보았습니다(코로나 시국이 진정되면 좀 더 집중해서 공부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역사기록들을 보고, 그 현장을 수없이 밟으면서 생각의 생각을 반복해왔지만, '안네 프랑크의 일기>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된 수기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거나, '피아니스트'나 '우먼인골드'와 같은 영화를 접하지 않았다면, 그 당시의 절박함이나 생생함을 결코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줄리아 보이드가 지적했듯이 나치가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던 기록과 현장들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여전히 '담담한 모습으로 최소한의 호기심 정도에 머무는' 여행자들이 대부분이고, 그들 틈에 서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아프카니스탄의 긴박함과 처절함, 미얀마에서 지금 이순간에도 진행중인 참혹함들은 이제 더이상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평생 잊지 않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던 민족적 아픔이나 세월호나 천안함사건 등 불과 얼마전의 아픈 일들조차 서서히 희미해집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모태부터 기독교 문화 속에서 살아왔고, 특수한 가정형편과 더 특별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누구보다 성경을 많이 읽고 안다고 자부했지만 긴장감이나 절절함은 마치 중동에서 일어나는 탈레반들의 만행들을 보는 정도와 같은 덤덤함었습니다. 최근에는 교회사를 청년들과 함께 공부하며 관련된 많은 책들을 보았지만, 역사적 사실과 사회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고 나누는 건조함은 언제나 여행자의 한계였습니다. 그나마 처음 해보는 것에대한 관심으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서로 신기해하고 있는 것에 대해 만족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제임스 L. 파판드레아의 <로마에서 보낸 일주일>을 만나게 되었죠.
그리스출신으로 해방 노예의 신분이었던 스다구는 우연히 예수아(예수)의 대한 신앙을 품은 유대인 여인을 만나 '길따름이들(Way-followers)'라는 가정을 중심으로한 모임에 참여하여 공부도하고 기도도 드리지만 언제나 그의 관심은 로마의 시민으로서의 특권, 안정적인 경제기반, 자식에 대한 집착 사이에 존재합니다. 그의 후견인인 로마 귀족 우르바노 역시 더 높은 신분의 귀족인 아내 사비나와 함께 권력과 부를 쫓고, 로마 제국의 충실한 신민이 되는 것이었고, 로마를 지켜주는 많은 신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걸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들 소망이나 그 소망을 이루어줄 신들은 언제나 자신의 '출세'와 '쾌락'에 집중되었고, 이런 가치에 최적화된 로마의 문화와 제도는 사사건건 그것을 포기하는 '길따름이들'과 충돌합니다.
한때 예수아라는 청년을 따랐던 가정 교회의 리더인 마가는 어머니 마리아와 사실혼 관계에 있는 스도구에게 꾸준히 '길'을 전달했고, 이 '길'은 여러 긴박한 선택의 상황마다 스도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동시에 숨막히는 여러 정황들 사이에서 당시사회를 주도하던 철학과 덕목들... 외형적으로 보면 기독교의 윤리관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었던 스토아철학의 바탕을 둔 덕목들(지혜, 용기, 자제력, 정의 등)이 예수아의 가르침과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를 알아가는 과정이 숨이 막힙니다.
결국 자신의 출세와 현세의 욕망에 사로잡혔던 스도구의 후견인 우르바노가 자신을 지켜줄 든든한 호신용 부적이었던 금화를 내려놓습니다. 역시 '참된 길'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번민하였으나,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고 집사가 된 스도구가 들고 있던 구제를 위한 연보통에 아낌없이 바치는모습... 좁은 공간에 울러퍼치는 '그리스도인'들이 부르는 뜨거운 찬양에 동참하며 책장을 덮습니다.
<로마에서 보낸 일주일>은 초대교회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당시의 시대적 역사적 지식과 정보를 꼼꼼히 전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동시에 풍부한 상상력과 문장으로 초대교회의 형편과 그 시대의 풍조에서 치열하게 '길을 따름이'로 살아야 했던 신앙의 선배들을 무덤덤한 치열하고 절박한 모습을 그려줍니다. 그래서 덤덤한 한 '여행자'를 '참여자'로 이끄는, 가슴을 뜨겁게 해주는 책이었습니다. 심지어 아침도 걸른 제가 점심마저 포기했다는.....
첫장부터 마지막까지, 너무나 쉽고 편안한 문장과 표현들로 책을 놓지 못하게 사로잡았던 저자 제임스 L. 파탄드레아와 저자 만큼 아니 저자보다 더 멋진 번역자 오현미 선생님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쉽고 편안한 문장이 '실력'임을 또 한 번 느끼게 해주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