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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시, 시조)아우르기 (8) - 김 봉곤 - 시인 편
송 귀 영 (맥 문학가 협회 회장)
1. 깔끔하게 정제된 시상의 갈무리
시상이 긍정적이고 합리적인 서정의 틀에 안착 한다고 해서 문학의 혼을 결박하지는 못한다. 근자에 들어 문단의 시류가 비판적이고, 비극적이며, 사회 고발적 측면을 표현기법으로 창작하는 것이 문학적 지향인 것처럼 호도되고 있는 추세이다. 순수 문학은 고통을 극복하고 의욕의 생명을 부추기며 목적을 이루려는 작가들이 가져야 할 원동력이다. 마음에 느낌이 배어들어 사물을 보는 정직한 감성이야 말로 시상을 갈무리하는데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김 봉곤 시인은 감성이 맑고, 티 없는 순수함이 그의 작품에 녹아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창작은 감성의 촉수에서 발아되고 순수 무한대의 시정 세계에 맑고 정갈한 노력이 있어야 아름다운 작품을 생산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창작의 씨앗을 쓰라린 환희로 다듬고, 어루만지고, 조이면서 비롯해야 초유의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창작에 앞서 대량 축적한 감성을 고민 없이 가볍게 소비하는 시인들은 감정적 허술한 문제점의 귀환이 입증된다.
예술은 고통을 극복하고 목적에 도달하려는 의욕과 부추김에 생명력의 활력소가 된다. 마음에 배어들어 세상을 보는 정직한 감성을 열어주는 맥박이기도 하다. 문학의 기능은 목가적 사유로만 그 진실이 갖추어지지 않으며, 전통적 서정의 범주 안에서 현실의 복합성을 수용하고 그 전체를 새롭게 조성해 나가는 능력을 키워야한다. 문학은 예술의 본질에 밀착되지 않거나 사회적 기능이 약화 되는데 따른 위기를 초래해서도 안 된다. 정신적으로 굶주린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예술의 혼을 흔들어야 감동과 느낌이 흔들린다. 즐겁게 시 한 편을 읽는 것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보다 즐겁고 창작 행위가 잃어버린 시심을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능력을 일깨우는 행복의 한 방편이 될 수도 있다. 분노의 감정을 다독여주어 먼지처럼 떠다니던 생각들에 논리를 만들고 일상의 작은 풍광들을 정성어린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한다.
김 봉곤 시인은 이러한 모든 조건과 원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시상이 깔끔한 시인임을 그의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 이다.
청보리 노을 타는 봄
청노새 줄넘기하듯
동심추 넘나드는 꿈
-봄- 전문
시린 핏줄기
추억을 넘나들며
아린멍울 쓰다듬고
헝한 가지사이
땟물 흐르는 거리
-쪽방거리- 전문
햇볕이 따스한 어느 봄날 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에서 여자아이 대여섯 명이 고무줄넘기 놀이를 한다.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에 비해 딱히 놀 수 있는 종목이 많지 않아 공기놀이 아니면 고무줄넘기 놀이가 고작 이다. 겨울철 황량하던 들판에 봄바람이 파랗게 싹이 튼 보리(청맥) 밭의 출렁거림은 참으로 몽환적이다. 남도지방 고창을 위시해서 가파도 지역의 청 보리 축제를 상기케 한다. 봄바람에 출렁이는 파란 청 보리 들판 길을 “청노새 찰랑대며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울며 실없는 그 언약에 봄날은 간다.”라는 노랫말처럼 삶과 인생에 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우리 농촌 정서의 철학이 살아있다. 이 작품에서 “청 보리”, “청노새”, “줄넘기”, “동심추”, 등의 함축된 시어 속에는 많은 봄의 애절한 이야기가 숨어있을 것이다.
년시절 넘나들었던 쪽방 길은 양어깨가 닿을 정도로 협소한 길이고, 성년 이 된 지금에 와서 보면 땟자국이 얼룩저서 흐르는 좁아터진 길이다. 쪽방에서 내려다본 골목길은 수많은 사연들이 석이石耳같은 땟자국이 붙어있다. 그러한 쪽방 길이 유년에 한 올 추억의 틈서리로 끌어 들인다. “봄” 과 “쪽방거리”의 시를 읽으면서 순간적으로 문학에 향한 향수를 다시금 뒤 흔든 계기가 무엇인지 유념하게 한다. 그래서 시한 줄이 세상과 우리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작품이 간결하면서 깔끔하게 정제된 시상으로 여운이 남게 갈무리를 하고 있음은 이런 연유에서다.
동면의 갈증이
목젖을 당기는
흉터에서 풀어진
사랑의 건조 증
삐애기 눈물같은 비
마른 가슴 적시며
그리움 한 톨 끌어안고
개미걸음으로 횡단을 한다.
-봄비- 전문
겨울철에는 대체적으로 강우량이 적은 계절이다. 낙엽 떨어진 산과 들에는 바싹 말라있다. 모든 동, 식물들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겨울철에 비가 온다 해도 병아리 눈물 만큼이다. 마른 산야처럼 화자의 가슴은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 비의 목마름을 끌어안으려고 애쓴다. 개미 걸음처럼 더듬이가 분주하지만 느린 인내의 행보로 봄비를 기다리며 흉터 풀린 건조 증에 애뜻함을 감싸 안아 상처를 목젖 당기듯 어루만진다.
첫사랑 만나러가는 설레 임에
잠 못 이루며 뒤척이는 밤이다
그 소녀 오늘 모임에 나올까?
아마도 나온다면 내가 찾기 쉽게
붉은 연지 빛 소녀 적 볼을 하고 있을 거야
남편 앞에서 바퀴벌레 맨손으로 내리치며 잡던 모습
오늘만은 내숭으로 접고 중년의 어깨 쳐진 남친들 기 살리며
소년 적 환상 꿈 깨지 않도록 배려하는 의미로
수즙은 핑크빛 로망 야린 손가락 사이로 앙큼하게 보는 소녀여!
-소녀, 소년에게(1) 부문
첫 순정 가슴 깊게 간직하며
긴긴밤 쌈질하며 기다렸지
그 소년 오늘 모임에 나올까?
아마도 나온다면 내가 찾기 쉽게
자상한 소년 적 하얀 미소하고 있을 거야
아내에게 짓눌려 굽은 어깨 쳐진 눈꺼풀 왕따 된 가장
오늘만은 고무줄 끊고 치마들 치던 개구쟁이 모습으로 변신하여
소녀 적 붉은 수줍음 찾아 디딜방아 치는 소녀가슴
당당한 어깨로 다가와 자상한 미소로 안아주라 소년아!
-소녀, 소년에게(2) 부문
단편은 풍자와 재치, 아이러니를 활용해 뜻밖의 반전으로 인생의 단면을 포착하는 대신 시는 은유를 통해 인생의 내면을 포착한다. 자신을 녹여 버린 현실을 꿈꾸다가 현실과 꿈을 혼동하는 순간 그 꿈같은 현실 속에 가장먼저 녹아버릴 수도 있겠다. 초등학교시절 사연을 부려 놓으면 산처럼 쌓인다. 초등학교 동창회의 모임을 앞두고 시인은 소년시절로 뒤돌아 간다. 길음교, 및 북선동 언덕배기, 전릉 천 등 서울 성북구 일대에서 스케이트를 타거나, 물장구를 쳤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정릉 골 플러터너스 그늘 아래 고무줄넘기 하던 소녀들의 야실한 붉은 볼의 기억은 무딘 중년의 속마음에 추억으로 얹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자본의 물결로 과거의 시공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아파트촌으로 개발된 오늘의 시침을 돌릴 수는 없다. 어쩌겠는가. 40~50년 전을 오늘에 끌어 올 수도 없으니. 어릴 적 소녀, 소년은 야실 하고 내숭이 가득했던 복숭아 같은 붉은 얼굴은 이제 듬성듬성 흰 머리칼에 세월이 훑어먹은 주름살로 덧씌워져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추억과 그리움은 원초적 정서의 대상이지만 차라리 기억속의 소녀, 소년을 가슴속 깊이 몰래 품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2. 사고思考에 투사透寫 하는 상상적 원리
김 봉곤 시인은 현실보다 과거에 무게를 더 두고 있어 기억과 추억의 소중함을 내면에 잠재의식으로 일깨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과거에 침몰되거나 집착한다고 할 수 있는 시인은 아니다. 인간이 잠을 자며 꿈과 무의식의 바다를 여행할 때 침대는 곧 그들이 타고 다니는 배이듯이, 문학의 편력은 예술적 영혼의 세계를 탐색하는 여행이다. 거대한 서정의 호수에 빨대를 꽂고 이 세상 모든 감흥과 지혜는 물론, 감동을 빨아올리는 즐거움이 크면 클수록 떨리는 파장은 넓게 퍼질 것이다.
현대의 철학자 비토리오 휘슬레는 비판적 이성을 복원해서 윤리적 실천에 가닥을 잡고 관념철학의 전통적 맥을 현대문학에 걸맞게 체계적으로 접목시키려 했다. 여러 예술가들의 주관을 아우르는 즉 상호 주관성 개념을 통합해 인식과 윤리적 판단의 합리적 근거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플라톤이나 헤겔과의 맥이 닿아있는 것이다. 문학과 예술은 시간적 공간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사회적 약자와 차별을 찾아 사회의 위선을 폭로함이 철학과 궤를 달리 할 수도 있음이다. 문학이 독자들에게 감성을 부르게 하지만, 작품에 표현된 내용은 대중에게 감동을 느끼도록 해야 할 몫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나무에 수액이 오르듯 몸과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 때, 이미 영성 깊은 정신세계는 외적인 것에 휩쓸리지 않고 시인 내면의 내재율을 찾아가게 한다. 상실이나 사라짐은 문학이 지닌 기능적 역할과 또 다른 서정의 씨앗이 된다. 작품에 내포한 알갱이는 지금 이후의 영원성을 대변하게 됨으로서 현재의 많은 진실을 미처 잡지 못한 후일의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 문학은 글과 함께 독자의 상상과 자기화한 감흥에서 도취하여 완성되는 것이다. 작품은 기록에 그치지 않고 부재의 상실을 웅변하는 역할로서 여타 문학도와 타인에게 널리 읽혀져야 한다. 김 봉곤 시인은 이러한 측면의 시학적 테두리 안에서 모든 사유의 난자를 퍼트리고 있음을 느끼게 한 다른 작품을 살펴본다.
달리는 것들은 모두 갈기를 세운다.
말이 아니어도 말굽 놓고 허공을 달리면
햇빛도 달빛도 박하 분 보다 더 곱게
가루 가루 스미어 봄빛으로 윤색하는 꿈길이어서
삿자리의 붉은 눈까풀 까뒤집고
온종일 기다림 서성이던 잿길에
이제는 자식 하나가 전부 꽃이 되는 그리움은
초 잠조차 멀어지게 하더니
연애편지처럼 숨어 흘리는 노을 빛 붉기에
잠깐 뒤돌아 본 옛날이
먼 듯도 가까운 듯 어리 짐작하여서
아직 남았는지 물기 젖는 눈가
한두 어 번 부스럭 거리다가 지는 바람에
멈칫멈칫 뛰어 일어서는 초침소리
-검버섯- 부문
시인은 어머님의 손등과 얼굴이 지난 세월과 함께 얹혀 다닥다닥 붙은 검버섯을 자식사랑의 아름다운 증표로 맞물고 있다. 자식들의 앞날을 걱정할 때마다 하나씩 피는 검버섯은 젊은 날 그 곱던 어머님의 얼굴이 화사한 꽃으로 전이되고, 달려왔던 삶이 자식을 위해 갈기를 세운 세월은 박하 분가루처럼 부드럽고 향기로움의 상상적 투사透寫이다. 어머님의 생애가 삿자리의 눈까풀을 까뒤집을 만큼 고된 삶이지만 현재 진행형의 근본이 오직 자식 사랑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윤색의 꿈길로 비치는 것은 당연하다. 초침 소리는 멈추지 않고 있으며, 어머니에게 시간은 절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우리들에게 있어 어머님의 내리 사랑은 노을빛의 찬란함이요 봄날 같은 따뜻함이기 때문이다.
노령산맥 능선 따라 입질하는
정읍 천에 흐르는 물고기 비늘
가을별 배들 평야 황금융단에 가득
막걸리 사발에 담긴 버들그림자
등짐 메고 한 숨에 달려온 논둑길
못줄 잡이 흥타령 홀태에 걸려
팔순의 어머니 손맛 곁들여 존득하다.
-팽나무 생각- 전문
팽나무 열매 너머로 따사로운 햇살을
자치기로 넘기며 동심은 날고 있다
울력하며 힘 모으던 왕골 켜는 아우성
둠벙배미 벼 벤 잔포기 새순 돋듯
쭈뼛쭈뼛 서릿발 일며 떠오르고
미나리꽝 우물 같은 민경 비침에
지그시 눈감고 뒤 새김질 하며
등짝에 붙은 쇠파리 쫓는
누런 황소의 여백
빙판에 도는 나무 팽이
당산나무 껍질 같은 그리움
울~컥~
-팽나무 그늘에 널어진 추억- 전문
위의 두 작품에서 “팽나무 생각”은 모심는 줄잡이와 팔순 노모의 새참 음식 솜씨를 의인화 하였고 “팽나무 그늘에 널어진 추억”은 시인의 유년시절 고향 풍경을 형상화 시킨 작품이다. 팽나무의 꽃말은 숭고함이나 고귀함을 뜻하고, 시골마을 어귀나 한적한 동구 밖 길가에 그늘을 드리워서 쉼터를 제공하기도 한다. 팽나무의 까맣게 익은 열매는 어린아이들의 새총놀이에 총알로 사용했던 기억도 되살아난다. 또한 팽나무 그늘아래 고삐 매인 누런 황소가 지그시 눈을 감고 뒤 새김질하면서 꼬리로 슬금슬금 귀찮은 듯 쇠파리도 쫒는다. 아스팔트와 시멘트 문화에 저당 잡힌 도시 아이들의 삭막한 정서에 비해 농촌에서 대가족으로 한 지붕아래 태어나 자연과 더불어 성장해 왔던 세대들은 할 말도 많고, 추억도 많고, 사연도 많을 것이다.
김 봉곤 시인의 안태 고향은 정읍이다. 노령산맥의 줄기를 따라 흐르는 정읍 천에 산그늘이 내리면 물고기들이 물위를 뛰어오른다. 시인의 고향은 언제나 강을 끼고 펼쳐진 들판의 농사철인 동시에 못줄의 홀태에 흥타령이 머물던 모심기이며, 시장 끼로 한나절의 쫀득한 어머니 손맛이 담긴 새참의 광주리와 논둑길이다. 그리고 시인은 유년시절의 정읍 천과 소년 시절의 성북동 정릉 천이 상호 보완 작용으로 상상의 궁핍을 배제 하면서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유년 시절과 소년시절 추억은 참으로 풍부하다. 즉 둠벙 배미 (논의 명칭)에 출렁거리던 청보리 길을 넘나들던 청노새나, 벼 벤 잔포기에 싹튼 순, 얼음판에 도는 나무 팽이, 그리고 어머니의 윤색하는 꿈길이 유년 시절 이었다면, 세상 물정을 조금씩 알아가는 시기에 정릉 골 플러터너스 그늘아래의 줄넘기, 정릉 천 스케이트타기, 북선 동 언덕 빼기는 소년 시절의 추억들이 아니던가. 이렇듯 김 봉곤 시인의 유, 소년 시절은 정서의 여백이 풍부하였다.
다소곳하게 내려앉아
또 다른 패랭이꽃을 피우기 위해
잉태위한 배부름으로
산부인과 대기실에 순번 기다리는
산모 같은 패랭이 씨앗
-패랭이 꽃씨- 부문
추위를 이겨낸 술 패랭이와 패랭이꽃은 여러 해 살이 풀로써, 12월의 꽃으로 상징 한다. 바위에 핀 대나무를 닮은 꽃이라 하여 석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화자는 패랭이꽃이 피는 것을 보고 곧 애기를 순산하는 산모의 모습을 형상화 하고 있다. 흡사 시집가는 설렘의 새 색시 마음 같이 예쁜 꽃이 피는 것과 새로운 생명의 출산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축복의 탄생인가.
인연이란
배꽃 같은 미소
산다화 피는 언덕에
홍조 띤 볼이 너무 아름다워
면경에 비추인 달빛이어라
살포시 내려지는 살빛
광주리 가득 정을 담아
떠오르는 초저녁 별 하나
-연산홍- 전문
김 봉곤 시인이 연산홍 꽃피는 것을 보면서 면경에 비친 홍조 띈 여인의 모습과 초저녁에 반짝이는 별처럼 아름다운 관경을 대칭 시키고 있다. 산다화, 동백, 연산홍은 진달래와 같이 군락을 이루며 일제히 피고 장렬하게 낙화한다. 면경과 유리는 경계이면서 비춰진 세계이다. 면경이 경계안의 대상을 비춘다면 유리는 대상을 통하여 경계 밖을 비춘다. 면경은 반사로써 외부와 단절하고 내부 세계만을 비추지만 유리는 투사로써 안과 밖을 허물며 투영한다. 이러한 면경에 산다화 피는 모습과 연산홍 피는 모습을 비춰보듯 상상해 보는 것이다.
시상은 눈을 크게 뜨게 하고 뇌를 활발하게 작동하는 힘을 갖는다. 뇌의 언어 감수성 변화로 상상한 행동과 느끼는 감각도 발달시켜 문학성 높은 공감에 지적 자극을 높이고 설명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 해 준다는 점에서 문학의 위대함을 깨 닿게 된다. 문학은 자신이 갖고 있는 사유의 느낌을 끝없는 환희로 창출해 내는 일이다. 시문학은 은유를 통해 인생의 내면을 포착한다. 자신을 녹여버린 현실을 꿈꾸다가 현실과 꿈을 혼동하는 순간 그 꿈같은 현실 속에 가장 먼저 녹아버릴 수 있다. 사연을 부려놓으면 산처럼 쌓인다.
3. 자연 메커니즘의 경고성축을 설정한 기작(機作; 메트릭스)
김 봉곤 시인은 자연에 관심도 외면하지 않고 청강수 같은 맑은 물을 후손에게 물려주기를 소망한다. 인간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자연을 훼손하고 개발한다. 그러나 자연이 인간들의 욕망에 의하여 훼손되는 일이 일상화되고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뒤따르는 것이 오염 문제이다. 오늘날 근대 사회에서 자연에게 저지르는 범죄행위로 도덕성의 외경마저 사라지고 있는 형편이다. 현대의 물질 만능시대에 개발행위가 난무하는 실상에서 유구히 맑게 흐르는 깨끗한 영혼의 “물”소리가 온전할 것인가. 그는 자아의 관점을 자연과 환경오염 문제에도 인식설정을 빠트리지 않는다. 자연의 울타리 안에서 “물”과 같은 사물의 고착적인 형태에 머물지 않고 해갈하는 반추의 신열 속에서 싱그러움과 맑음이 유지될 수 있는가에 강한 의문을 묘파 하고 있다.
아름다운 강산에
초록의 싱그러움 돋아나니
펼쳐지는 숲속의 아침
맑은 물이
진달래 빛
영롱한 이슬로 맺어
한 방울 한 방울 모아진다.
자작나무 뿌리 타고
산허리 감아 도는 소중한 물
아카시아 향에 젖어
계곡물 되어 흐르고
청강수 같은 맑은 물
지천을 휘 감으니
목마른 시객詩客
흐르는 물 오염될까 조심스러워
물 향기로 마음 적셔 강물에
버들잎 사연 보내오니
물아!
산 개울
굽이굽이 흘러
해초 따는 여인에게도
맑은 물 사랑 전해주렴
-맑은 물- 전문
김 봉곤 시인은 초록이 싱그러운 아침 숲속에서 한 방울씩 모여 흐르는 “물”의 변주를 만난다. 나무들이 물을 머금어서 뿜어내고, 그 물이 모여 소중한 계곡물로 흐르는 맑은 향기에 도취한다. 하류까지 흐르는 과정에서 오염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화자의 인식 속에 회화된다. 인간성이 자연과 투쟁하거나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들의 욕구를 실현하기를 원한다는 철학자 ‘간트’의 자연관이 언뜻 연상된다.
해 섪픈 눈빛으로
더디게 이불을 걷어
일어나 홰를 칠 때
인부 수 십 명이 아침을 먹는다.
얼굴도 모르는 타인으로
객지에 만났지만
그들은 가슴에
콩나물 줄기잡고 창자 속을 채우기 위해
고등어 푸른 등 너머
된장국 사발에 희망 가득 안고
일터로 풍덩 잠긴다.
-희망- 부문
인간은 어떠한 역경에도 꿈과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교량 타설 작업을 위하여 철근을 묶어세우는 노무원들의 힘든 작업 현장이다. 아마 이들은 일용직 직업소개소의 소개로 노동 현장에 동원되었기 때문에 서로의 얼굴도 모르는 낮선 사람들일 터이다. 마른 입술에 침을 축인 현장식당(함바집) 아주머니의 가식적인 인사를 받으면서 피곤한 삶을 달랜다. 아침 콩나물 해장국밥 한 그릇에 고단한 막일꾼의 생활일지언정 그들에게도 꿈이 있고 희망이 있어 살맛을 느끼는 대찬 인생이다.
김 봉곤 시인은 감정을 다 표현하지 못한 서정이 담긴 시 한소절로 사유와 사색의 정수를 담아내는 것이 시인의 감성이란 점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 현대문학은 자아를 인식하는 일과 성찰하는 가운데 인본의 기본을 축조하는 영혼 세계의 발현임도 알고 있다. 인생이란 너무 눈부시게 그리고 요란하게 살 필요는 없지만 꿈을 이루고자 하는 데는 제한적 시간을 둬서는 아니 된다. 어떤 시인은 마흔이 훌쩍 넘어서 인생의 걸음마를 배웠다고 했다. 가장 추운 날씨를 견뎌낸 뒤에라야 송죽이 그대로 푸름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되듯이. 인생의 풍파와 모진 삶을 등에 짊어지고 구름처럼 떠다니다가 즐겨서 짜증이 날 때 한 발짝 뒷걸음질 치는 것도 스스로를 도리 킬 수 있는 여백일 테다.
4. 맺는 말
시란 생명의 근원인 것에 대한 탐구정신과 사회적 여건이나 인간의 삶에 진실을 투시하려는 시대정신이 형상화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정신이 함축된 주제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시 한 소절에 감동을 받기도하며 이미지, 리듬, 은유와 같은 시적 작법에 감탄하게 되지만 시인의 진정성이 떨어질 때는 한낱 잡음이나 속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그래서 시인은 현실과 가상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절묘한 오브제(Objet)의 내면을 투시하는 표현 기법이 필요하다. 시의 진정한 맛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순간을 포착하여 그 속에 깃든 의미를 캐내어 함축적으로 표현 해내는데 있다. 시상은 허상의 가능성 같은 기하학적인 형태를 반복해서 보여주거나 상징적인 이미지와 기호를 시각화 한다.
김 봉곤 시인의 시적 세계에서 필자가 첨언하고 싶은 것은 그의 작품성이 아직 설익은 포도 알로 이제 막 강열한 햇살을 받아 익어 가는 도정이다. 그러나 작품들이 깔끔하게 정제된 시상을 갈무리하고 있어 든든하다. 그리고 색깔 있는 작품성의 투사에 상상적 원리를 터득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흐뭇한 일이다. 시인은 자연에 대한 관심도 심도 있게 다루려는 자연의 메커니즘 적 경고성 축을 설정하는데 인색해서도 안 될 것이다. 표현기법을 알면서 행위에 옮기지 않는 다면 모르는 것 보다 더 못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향후 건필에 좌우명으로 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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